욕구가 없이 행동하는 사람의 행동은 욕구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의 행동보다 마땅히 훨씬 나아야 한다. 이것은 지당하다. 왜냐하면 후자는 결과와 역할에 마음이 끌려 결과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느라 자기의 시간과 주의력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욕구가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모든 시간과는 힘을 몽땅 행동에 쏟아붓는다." 이것은 ‘영성은 실천적인 것이아니라는 그릇된 통념을 말끔히 지워버린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영성은 사실은 ‘영적 욕구를 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그것은 욕구에 내몰린 행동보다 더 큰 잘못이며, 착각 그 자체에의존하는 무언의 욕구에 지나지 않는 이른바 ‘관상‘이라고 하는 지독한 착각이다.

쥘리앙 그린은 이렇게 말한다. "종교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신심에 자화자찬하기 위해 깊은 신심을 가지기를 바라는사람은 종교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필요한 것은 하느님안에서 자신을 완전히 망각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완전한묵, 초자연적 침묵이다. 종교적인 이야기에는 무언가 혐오감을 갖게 하는 것이 있다."

진정한 종교란 하느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 안에 태어난 ‘종교‘, 어쩌면 종교라고 불리지 말아야 할 종교,
곧 하찮은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을 위한 모든 계획(비록 그것들이 거룩한 자신, 순수한 자신, 사랑이 많고 희생하는 자신을 위한 계획일지라도 말이다)이 처절하게 허물어진 상태에서 생겨난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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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단상 - 통회하는 한 방관자의 생각
토마스 머튼 지음, 김해경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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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이 분별 있는 사람들을 난폭하게 할 때,
그들이 성숙한 세기를 깡그리 발가벗길 때사랑은 감각적인 어린아이로부터 되살아나야 한다.
- W.H. 오든

온전한 지혜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감미로운 순간에 스스로의 모습을 가다듬고 나타나려 한다. 인간의 지혜는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자제自制하느라 어느 누구의 허락도 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꺾이지 않는 목적을 가진 인간으로서 아침을 맞이한다. 우리는 시간을 알고 기간을 정한다. 우리는 기간을 정할 수 있고, 우리는 바로 시작부터 우리의 옳음을 입증하는 시계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몇 시인지 알고 있다. 우리는 감춰진 내면의 법칙과 접촉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날이 되어야 할지를 미리말하려 한다. 그러고 나서 필요하다면 하루가 우리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조처를 취하려 한다.

새들은 어둠과 빛 사이, 비존재와 존재 사이의 절대무의 지점외에는 알려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만일 경험이 있다면, 새들이
깨어나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어리석음이지 새들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쓸모 있다고생각할지도 모르는 어떤 것, 예를 들어 지금 4시라고 새들이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욱더 어리석은 것이다.
그들은 잠에서 깨어난다. 먼저 개똥지빠귀, 홍관조, 그리고 내가 모르는 어떤 새들이 깨어난다. 다음에 멧종다리와 굴뚝새가 깨어나고, 마침내 비둘기와 까마귀가 깨어난다.
까마귀가 깨어나는 모습은 사람이 깨어날 때와 가장 흡사하다.
불평이 많고 시끄럽고 품위가 없다.

여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낙원이주위의 도처에 있는데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낙원은 활짝 열려 있다. 불 칼은 제거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우리 중 ‘한 사람은 자기의 밭으로,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사놓은 것을 보러 간다. 불이 켜져 있다. 시계는 똑딱똑딱 가고 있다. 자동 온도조절장치는 작동하고 있다. 조리용 레인지는 요리를하고 있다. 전기면도기는 라디오 수신기에 잡음을 더해 주고 있다.
"지혜."라고 여명의 부제副祭가 외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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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사람이 되셨네 / 말씀이 심장이 되셨네 / 하느님께서 심장을 가지셨네. / 하느님의 심장이 뛰시네 / 수백만의 인간의 심장의 맥박 안에서 / (…) /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네 / 사람의 심장 안에 살고 계신 것이 누구이신지 / 우리의 심장은 채워지지 않는 몽상이 아니라네 / 우리의 심장은 출구없는 절망으로 내몰리지 않는다네 / 우리의 심장은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의심장은 옳다네 /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심장을 취하셨으니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피와 살을 취하신 하느님이 우리의 심장 안에서 함께 숨 쉬게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잠들고 지치고 쓰러져도 그분은 우리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깨워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시간 안에들어오신 영원하신 분, 한 처음에 하느님 곁에 계셨던 말씀이자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젊음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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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쾰른의 한 지하실 창고에 적혀있던 기도문에 이 곡을 붙였습니다. 그곳은 유대인들이 숨어있던 곳으로, 이 기도문은 곧 많은 이에게 알려졌고 비극의현장인 바르샤바의 게토에서도 발견됩니다. 두려움과 절망속에서도 신앙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이들은 이렇게 기도했겠지요.
나는 태양이 비추지 않는다 해도 태양을 믿습니다. / 나는사랑이 주변에 없는 듯 느껴져도 사랑을 믿습니다. / 그리고 나는 그분이 침묵하신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믿습니다.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 그저 속삭일 수밖에 없는말들. / 아니면 노래할 수밖에 없는 말들. / 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 뱀은 뱅글뱅글 돌고 / 비버는 연못 위에서 / 꼬리를 친다. / 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 / 황금 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 / 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 / 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끌어안는다. / 아니면 예쁜 연필과 노트를 꺼내 / 감동의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
(메리 올리버 ‘아침산책’)

나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덕이 아니라는 것을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는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그 감정을 자유롭고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절제와 기도하는 삶을 통해 얻게 되는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메리 올리버가 노래하듯 ‘감사‘
야말로 우리가 왜곡 없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숨김없이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 아닐까요? 시인은세상 모든 일에 혹은 모든 존재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있는 듯합니다.

루 게릭은 은퇴식에서 구장을 가득 채운 자신의 팬들에게 자신이 맞이한 운명에 대해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병고에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지난 2주 동안 제가 맞이한 불운에 대해 읽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제 자신을 지상에서 가장 운좋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이 운동장에 17년간 있으면서제가 받은 것은 팬들로부터의 호의와 응원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비록 제가 이런 불운에도 살아야 할 많은 이유가있다고 말하며 이만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6월 1일 보스턴의 웰즐리 고등학교에선 이 학교 출신 명사가 축사하는 관행을 깨고, 영문학 선생님인 데이비드매컬러 주니어가 ‘여러분들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You are notspecial‘ 라는 주제로 축사를 맡았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 성공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에 눈을 두라는 이 축사에서 다음대목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지 깃발을 꽂으려고 산에 오르지 마세요. 맑고 신선한공기를 마시며 경치를 즐기세요. 세상이 당신을 보게 하려고 산에 오르지 말고, 당신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산에 오르세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우리가 특별하지않다는 걸 느낄 때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르다는 착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에 너무도 안심하고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나의 행복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고 다른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것에 감사드립니다." (토마스 머튼)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그리스도교의 근본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비로소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보다 자신이 나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며 얻는 성취감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를 끊임없이 경쟁구도 속으로 밀어 넣고,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합니다. 토머스 머튼은 우리에게 가장 큰행복은 내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같은 ‘인간‘임을 깨우칠 때 온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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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존재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니체 철학의 핵심적인 질문중의 하나는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는 대로의 우리가 되는가?‘ 이다. 모든 지적 탐구의 주체는 ‘나‘다. 아래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Kierkegaard)의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은 어느 과학자도 알아낼 수 없으나,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자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삶의 기적이다."

문제는 나는 나로서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또 다른 나로 변신을거듭한다는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나는 지금의 나일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넘어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다. 새롭게 변신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 존재는 주어진상태로서의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신하는 과정으로서의 동적인 존재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끊임없이 변신을 추구했던 니체. 그가 말하고 싶은 한 가지 화두, 그것은 ‘생존미학‘이 아니라 ‘존재미학‘이다. 니체가 던지는 화두는 먹고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현대인들에게 얄팍한 자기계발 비법이나 던져주는 생존미학이 아니다. 니체의화두는 스스로를 발가벗기고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변신을 거듭하는 존재미학이다. 나를 나로 올곧게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여기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스스로 흔들어 깨워야 한다. 과연 나는 진정한 나로 살고 있는가? 근본에 관한 질문은 존재의 모습에 관한 물음이다.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질문이 존재를 더욱 튼실하게 만든다. 세차게 흔들려본 사람은 더 큰 시련과 역경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흔들지 않으면 누군가에 의해 흔들린다. 내가 먼저 나를 흔들어야 남도 흔들 수 있다. 흔들어도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는 낡은나를 망치로 부술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두뇌를 수술하는 일이니 고통이 따르겠지만, 심하게 부서진 그곳이 바로 내가 다시 일어설 지점이다. 스스로를 파멸시켜야 또 다른 나로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밧줄 사다리로 온갖 창문에 기어오르는 법을 배웠다. 나는 민첩한 발로 높은 돛대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다양한 길과 방법을 통해 나의 진리에 이르렀다. 내가 사다리 하나로만 먼 곳을 볼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른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계속해서 물어가며 걸었다. 물음과 시도, 그것이 내 모든 행로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고기를 잡고 싶으면 새로운 그물이 필요하듯 새로운 관점으로나에게 물음의 그물을 던져라. 그런 질문의 반복을 통해 비로소 나만의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길을 걸어가는 여정에서 어느 순간 욕망의물길이 치솟는 때를 맞이한다. 그것이 바로 ‘물음표‘가 가져다주는 느낌표다. 바로 그 느낌표가 시키는 대로 걸어가라. 이와 관련해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우상의 황혼》),

"이제는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희들의 길은 어디 있는가?" 나는 내게 ‘길‘을 묻는 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해왔다. 왜냐하면,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높이 오르고 싶으면 그대들 자신의 발을 사용하라! 결코 실려서 오르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낯선 사람의 등과 머리에는 올라타지도 말아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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