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노화기에 접어들어서야 노화에 관한 의미 있는 글을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경우, 노화는 이미 당신 안에자리를 잡고 당신과 하나가 되어버리므로 노화를 오롯이 파악하기란 힘들다. 암튼 이 주제는 충분히 나이 들기 전까지는제대로 다루기 어려울 터이니… 결과적으로 내 안의 젊음이완전히 죽지 않았을 때여야만 늙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브누아트 그루Benofte Groult , 《별표 자판 La Touche étoile》

"시간과 더불어, 간다. 모든 건 다 떠나간다."
219. 11:2Léo Ferré, (1ztat Cleo Avec le temps)

약하고 닳아버린 나. 앞으로 다가올 세월에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세월이 나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위협적인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토록 믿고 있던 나 자신에게 이보다 더 큰 수모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도 몰라보게 된 몸과 세상 앞에서 점점 더 자기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겁 많은 노파가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유는 그저 더는 잃을 것이 없다‘의 다른 말이다."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나와 보비 맥지Me and Bobby McGee)

"남자들은 여자들을 바라본다.
여자들은 그렇게 바라보이는 자신들을 바라본다.
이러한 사실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대부분을결정할 뿐 아니라 여자가 여자와 맺는 관계까지도 결정한다.
여자의 내부에 있는 관찰자는 남성적이고,
관찰되는 자는 여성적이다. 이렇듯 여성은스스로 대상이 된다 -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시각적 대상, 즉 이미지로 변한다."
존 버거John Berger,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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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스마트폰이 바꾼 것은 세상입니다. 그러니까스마트폰이라는 기술은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을 재구조화했습니다. 그것이 스마트폰이 일구어낸 지난 10여 년간의 변혁의 핵심입니다. 이를 방증하듯 스마트폰혁명 이후 가장 관심을 끈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이었어요. 그래서 인문학 열풍이 불었죠. 스마트폰의 핵심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를 기술적으로 혹은 비즈니스적으로만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폭발력은 스마트폰 이후로 고정된 인간 간의 연결 방식을 또 한 번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 있어요. 스마트폰이 언제 어디서나 타인과 연결되는 세상을 만들었다면 메타버스는 언제 어디서나 타인의 정신과 연결되는 세상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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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희망도 무너진 환멸의 시대에, 난무하는 거짓의 언어와폭주하는 헛된 희망의 약속들 속에서, 나를 사로잡는 것은 정직한 비관의 언어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잘 지기 위해서다. 이길 가능성은 없다. 조문하듯이 시를 쓰는 것이다"라는 이산하 시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역사란 승자의 발자취‘라는 역사가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깊은 의미에서 역사는 잘 진 싸움의 궤적이다. 패할지라도 우리가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향한 싸움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발전해 온 것" 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는 싸움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이완전한 지옥이 되지 않은 것은 지는 싸움을 해온 사람들 덕분이다. 진 싸움이 만든 역사가 희망을 지켜주었다.

쉬이 희망을 말하지 않되 가벼이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 유토피아와 멜랑콜리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이 환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윤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차, 앞에 인용한 볼프 비어만의 말에는 한마디가 더 붙어 있다. 그의 말을 온전히 옮긴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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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동반자가 갖추어야하는 가장 중요한 첫째 조건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 말하자면 하느님과의 만남 안에서 자기 영혼의 최고점과 최저점에 다다르는 것이다.

수도승이 영적 동반자에게 요구하는 둘째 조건은 영을식별하는 선물이다. 영적 동반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성령에게서 온 것인지 혹은 - 수도승의 언어에 따르면 -악마에게서 온 것인지를 식별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요즘우리는 대체로, 생각은 자신의 초자아超自我, Über-Ich에서나오거나 아니면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생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느님에게서 오는 생각은 항상 자유, 활력, 평화와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악마, 초자아에서 기인하는 생각은 곤란과 불안, 지나친 부담을 준다. 여기서는 나자신의 느낌을 믿어야 한다. 노인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내

영적 동반자가 갖추어야 할 셋째 조건은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은 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의 선한 본질, 곧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가려는 그 사람의 갈망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투사投射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억압된 욕구라는 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투사는 내 안에서 억압했던 무언가, 예를 들면 두려움과 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가그 사람에게 덧씌운 그것을 배경으로 해서만 그 사람을 바라본다. 따라서 영적 동반자는 항상 자신의 눈을 정화해야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노인은 옛 삶의 습관, 즉 강요와 불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내적 자유의 길을 익혀야 한다. 일상의 구체적 문제들을 견뎌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향하는 것, 하느님이 인생의 목적임을 인식하는 것이 노인에게는 중요하다. 시선을 늘 하느님께로 돌릴 때에만 비로소 노인이되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일상적 문제를 적절하게 다룰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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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A에서 승객들은 옆 좌석을 돌아보며 괜찮은지를 묻는다. 도움이필요한 사람들은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갈 수 있게 도움을 받는다. 심지어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행성 B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자도생해야 한다.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밀치락달치락 아수라장이 된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들은 탈출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짓밟힌다.
이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느 쪽 행성에 살고 있는가?
포스트메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사람들의 97퍼센트는우리가 행성 B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으로 추정하곤 했다. 진실은 거의모든 경우 우리는 행성 A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역사상 가장 중대한 재난도 행성 A에서 발생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예로 들어보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모든 사람이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할 것이다(현악사중주는 예외이다). 사실 대피는 매우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다. 어느 목격자는 "공황이나 히스테리의 징조는없었다. 두려워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승객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미국 대폭발 테러사건당시 쌍둥이 빌딩이 불타오를 때 수천 명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착하게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들은 소방대원이나 부상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아니에요. 먼저 가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어느 생존자는 나중에 "그 순간에도 사람들이 실제로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비켜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있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인간은 본성 자체가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며 공황 상태에 쉽게 빠진다는 신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네덜란드의 동물학자 프란스 드발Frans de Wal이 ‘껍데기 이론Veneer theory‘ 이라고 즐겨 부르는 것이다. 문명이란 아주 가벼운 도발에도 갈라져버리는 얄팍한 껍데기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다. 우리 인간은 위기가닥칠 때, 즉 폭탄이 떨어지거나 홍수가 났을 때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혹은 플라시보 Placebo 효과를 예로 들어보자. 의사가 당신에게 가짜 약을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상태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처방이 극적일수록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주사는 알약보다 효과가 더 좋다. 그리고 옛날에는 심지어 사혈(치료방법으로 행하던 피 뽑기 - 옮긴이)도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중세시대의 치료법이 정말로 선진적이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처럼과감한 시술이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가짜 약을 먹으면서 이약이 병을 생기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환자에게 약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한다면 아마도 그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 것이다. 소위 노시보 효과다.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것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예측하는 일은 일어나게 된다.

인터넷에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우화 하나가 떠돌고 있는데, 단순하지만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다. 어떤 노인이 손자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내면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두 마리 늑대의 처절한 싸움이다. 하나는 악이다. 분노에 차 있고 탐욕스러우며 질투가 심하고 교만하며 비겁하다. 다른 하나는 선이다. 평화롭고 타인을 사랑하며 겸손하고 관대하며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다. 너의 내면에서도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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