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희망도 무너진 환멸의 시대에, 난무하는 거짓의 언어와폭주하는 헛된 희망의 약속들 속에서, 나를 사로잡는 것은 정직한 비관의 언어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잘 지기 위해서다. 이길 가능성은 없다. 조문하듯이 시를 쓰는 것이다"라는 이산하 시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역사란 승자의 발자취‘라는 역사가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깊은 의미에서 역사는 잘 진 싸움의 궤적이다. 패할지라도 우리가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향한 싸움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발전해 온 것" 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는 싸움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이완전한 지옥이 되지 않은 것은 지는 싸움을 해온 사람들 덕분이다. 진 싸움이 만든 역사가 희망을 지켜주었다.
쉬이 희망을 말하지 않되 가벼이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 유토피아와 멜랑콜리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이 환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윤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차, 앞에 인용한 볼프 비어만의 말에는 한마디가 더 붙어 있다. 그의 말을 온전히 옮긴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