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1619년~1659년)은 조선 17대 왕으로 인조의 둘째 아들이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8년간 머물렀던 봉림대군이 바로 그다.
귀국 후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음으로써 세자가 되었고, 1649년에 왕이 되었다.
하지만 재위 기간은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북벌 정책 외엔 특별히 떠오르는 업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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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가운데 두고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있었다.
세종이야 워낙 유명한 왕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었지만 효종 능으로 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효종이 어떤 임금이었던가 기억을 더듬으며 걸어 올라갔다.
세종대왕릉도 영릉(英陵)이고 효종대왕릉도 영릉(寧陵)이다. 그래서 여주 영릉 하면 두 임금의 능을 다 이른다.
업적을 늘어놓은 전각 하나 없고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표지석도 세종대왕릉 앞에만 있어서 후손에게 인기가 떨어지는 왕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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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요런 숲길을 10여 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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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향을 준비하는 재실.
조선 왕릉 재실 대부분이 원형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곳은 옛모습 그대로여서 보물로 지정.
앞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품위가 느껴지고 좋은 느낌이 드는 재실이었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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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도 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저 앞에 보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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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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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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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을 바라보고 세워진 정자각(丁字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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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 뒷문을 열면 왕릉이 보인다.
이곳에서 왕릉을 바라보며 제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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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과 금천교.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이고 금천교는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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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이 효종릉이고 아래쪽이 인선왕후릉이다.
효종의 능은 건원릉(구리시에 있는 태조의 능) 서쪽에 있었는데 현종 14년(1673년)에 이곳으로 옮겨왔고
인선왕후는 현종 15년에 이곳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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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왕후는 신풍부원군 장유의 딸이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가 있을 때 다음 왕인 현종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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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은 소현세자와는 정치적 입장이 달랐지만 소현세자와의 의리를 생각해 북벌 정책을 추진했다고 한다.
소현세자는 효종보다 개방적이고 전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서구 신문물의 통로였던 청나라에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아버지 인조에게 제거당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 인조와 형 소현세자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조아림)한 치욕을 씻는 길은 오직 북벌(北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시열을 비롯한 신하들은 효종을 의리의 군주라 했다고.
효종실록에는 효종의 소현세자에 대한 애틋하고 살갑고 끈끈했던 기록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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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주변을 둘러싼 석물.
왕들의 업적은 다 밀어두고 산책하기 좋은 왕릉의 순위를 꼽으라면 단연 효종의 영릉이 세종의 영릉을 앞섰다.
아늑한 산골짜기에 부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도 좋고 넓게 펼쳐진 잔디(사초)도 좋아서
봄에 신록이 살아나면 다시 가보기로 했다.
세종대왕릉에 가실 분들은 그 옆에 있는 효종대왕릉에도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 집에 와서 바로 주문한 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효종의 북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
적자가 아니라는 자신의 정통성 콤플렉스 때문에 소현세자는 할 수 없는 북벌을 명분상으로만 내세웠다는 것이다.
거봐, 소현 형님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걸 내가 하고 있으니 내 정통성도 인정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