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뿌리 깊은 나무>를 열심히 보고 있다. 4회까지는 이 드라마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기에 유료 방송으로 보았다. 아버지 태종 앞에서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어린 세종의 매력 때문에 4천원이 아깝지 않았다. 그 이후 본방송을 사수하고 있다.
한자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조선의 1%가 아닌 99%의 백성을 위해 쉬운 글자를 만들고자 결심한 세종의 마음을 생각하면 한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정치인의 올바른 선택은 사람을 바꾸고 역사까지 바꿔놓는다는 걸 세종의 한글이 증명했으니까. 99%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1%가 판을 치는 요즘 세종은 아무리 찬양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다수와 소통을 원하지 않는, 1%만을 위한 언어인 한자를 계속 써 왔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물론 부정적인 면이 더 많겠지만 긍정적인 쪽으로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건 우리만의 언어, 99%를 위한 한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1%만을 위한 언어를 쓰는 시대를 산다면 나는 어느 쪽에 속해 있을까? 음~ 생각하기 싫군.
내가 이 드라마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문화 가정 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은 반나절 만에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글자라는 세종의 말씀처럼 나의 그녀들은 두 시간 만에 자음과 모음, 한글의 구성 원리, 발음까지 다 익히면서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중급 이상의 한국어를 배우는 그녀들에게 한글을 만든 과정과 세종 임금 이야기를 해주면 자기들 나라에도 그런 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다.
나도 가끔은 그녀들 나라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배워 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중국어나 베트남어처럼 성조가 복잡하거나 캄보디아어나 태국어처럼 자모의 모양 자체가 어려운 언어가 많다. 내가 가끔 그림처럼 보이는 글자들을 흉내내서 쓰기라도 하면 그녀들은 정신없이 웃으며 다 틀렸다고 한다. 그래서 난 그녀들 나라 언어 배우기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런 걸 볼 때 몇백 년 후엔 쉬운 언어인 한글이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흐뭇한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