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내다보니 또 비가 내린다. 정말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늘 오후 출발하는 비행기 타고 제주 시댁에 가야 하는데 말이다. 이러다 두 달 전부터 예매해둔 비행기가 취소라도 되면 어쩌나 걱정이다.
요즘 정말 비가 싫다. 아니 밉다. 연이어 서해안을 휩쓴 태풍에 친정집 농사가 반은 망가졌다. 주말마다 일이 겹쳐 가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지난 주말에 잠깐 다녀왔다. 집 주변을 둘러싼 숲의 소나무는 수십 그루가 아직 넘어진 채 그대로였고, 고추나무는 벌써 누렇게 죽어가고, 콩은 영글 새가 없어 그냥 쭉정이로 말라가고 있었다. 마당가에 대추나무 감나무도 휑~하기만 했다.
올해 칠십으로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친정아버지는 평생 이런 태풍은 처음이라 하셨다. 늘 낙천적인 덕에 "가을에 추수할 게 없으니 한가해서 좋다."고 하셨지만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셨을까 싶다. 봄 내내 여름 내내 들인 정성을 단 며칠새 다 잃으셨으니...
사위와 소주 한 잔 하면서 "사는 게 다 그렇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하며 허허 웃으셨지만 더 허옇게 변한 머리에 검게 탄 얼굴이 도드라져 마음이 아팠다.
비야, 이제 제발 그만 와라~ 나 오늘 시댁에 꼭 가야 하거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