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으로 숲해설가 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두 가지를 얻었는데 하나는 자연을 보는 눈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이었어요. 그 중 몇 사람과는 완도를 떠나기 전에 받은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마운 인연을 맺었답니다. 그 분들 덕에 6개월 동안 수목원에 가는 일이 더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 중 말 몇 마디 나눠보고는 담박에 내 마음을 빼앗은 분이 계신데, 해남에서 한옥 민박집을 하는 김순란 선생님. 선생님의 해맑은 웃음과 꾸밈없는 말씀들이 좋아서 무작정 마음속으로 친구삼아 버렸지요. 그리고 어제 오후 늦게 남편과 함께 선생님이 운영하는 한옥 민박집에 놀러 갔다 왔어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주인도 정말 마음에 들고, 마당이 넓은 한옥도 마음에 들어 남도를 오가는 분들이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완도 우리집에서는 30분 거리에 있고, 강진 쪽에서 들어오다 보면 남창이라는 곳을 1킬로 정도 앞두고 왼쪽에 이런 장승을 만나는데, 이곳에서 좌회전하면 됩니다.
큰길에서 보면 삼나무로 둘러싸인 한옥이 보여요. 마을길을 따라 500미터 정도 들어가면 함박골 큰기와집. 인터넷에서 해남군 남도민박을 검색해도 같은 집이 나온다고 하네요.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놓은 장미 아치, 봄엔 꽃이 활짝 필 것 같았어요. 울도 담도 없는 걸 보니 요것이 대문이요, 울타리인가 봅니다.
주인은 안 보이고 이런 글귀가 먼저 손님을 맞이했어요.
사람이 안 보여서 장독대 앞에서 전화를 하니 선생님이 집 뒤쪽에서 언니랑 나무를 심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꼭 밀레의 그림 한 폭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일을 하다 달려오신 선생님과 함께.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선생님은 서울과 광주에서 오래 살다 5년 전에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오셨다고 해요. 몸이 아프신 어머님도 돌볼 겸 고향집으로 내려와 한옥을 짓고 두번째 삶을 살고 계시는 중. 원래 있던 집을 가운데 두고 세 동의 한옥을 지었는데,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정원을 꾸미고 텃밭을 가꾸며 사는 일이 수월하진 않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나날이 행복하시다고.
장독대가 있는 한옥이 대흥사 입구에 있는 유선관이 생각나게 했지만 넓은 마당이라든가 주인의 넉넉한 인심은 함박골이 한 수 위라는 게 두 군데 다 다녀온 저의 생각이네요. 주인도 시끌시끌하고 번잡한 게 싫어서 유선관처럼 유명해지는 것도 싫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가까운 곳에 갯벌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가면 갯벌 체험도 할 수 있대요.
의자에 앉아 전화 통화중인 분은 김순란 선생님의 언니예요. 자매가 알콩달콩 살면서 민박집을 가꾸고 계세요.
넓은 마당에 큰 나무들은 이 집터의 세월이 만만치 않다는 걸 말해줍니다. 원래 이곳은 선생님댁이 대대로 살아오던 집터인데, 선친이 키운 아름드리 나무들을 골라 베어내고 한옥을 지었다고 해요. 마당 곳곳에 꽃밭을 만들어 봄에는 유채,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동백을 구경할 수 있는데, 어제는 색색의 국화향이 마당에 가득했어요.
마당 가운데 있던 작은 연못.
마당가에 심어져 있던 박인데 오랜만에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어린 시절 나의 고향집에서 보았던 하얀 박꽃과 바가지를 만들던 박 생각에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어요. 호박이 아니라 흥부전에 나오는 박이랍니다.
지는 해를 받아 붉게 물든 한옥.
공동 취사를 할 수 있는 부엌. 재료만 가져오면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모든 시설이 구비되어 있어요. 그리고 마당에는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 시설도 있었구요.
깔끔한 화장실. 한지를 붙인 창문이 눈에 띄네요.
한옥 한 동에는 이렇게 작은 찜질방까지 있었어요. 우리 아이들 후끈후끈하니 좋다며 나올 생각을 안 하더군요.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우리 남매. 사진 찍을 때만 친한 척하지요. 다음에 가거들랑 요기 앉아 막걸리 한 잔 하고 와야겠어요.
집이 앉은 자리에 있던 삼나무를 베어 이렇게 목재로 썼다고 합니다. 이 정도 큰 아름드리 나무를 키우려면 몇 대가 살아야 할지 궁금하네요. 집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곳곳에서 나무향이 났는데 우리 아들, 자연의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집이래요.
녹차를 마시면서 한옥을 짓게 된 이야기와 선생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들었답니다. 차를 마시면서 자세히 본 선생님의 모습에 더 정이 들고 말았어요. 아무렇게나 입은 편안한 옷(직접 염색해서 만든 옷이래요)에, 이마엔 구슬땀이 송송 맺혀 있고, 손톱 밑엔 풀물이 까맣게 들어 있고... 정말이지 친정엄마처럼 편안했어요.
선생님의 노동이 얼마나 고될지 눈에 선한데도 민밥집 이름처럼 함박 웃음이 가득했던 선생님의 얼굴... 그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자꾸 찾아가고 싶어질 것 같네요. 마당에 가득한 국화향보다 선생님의 웃는 얼굴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더 진했더랍니다.
*** 해남 함박골 큰기와집(남도 민박) 011-9606-7557 (김순란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