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해설가 모임에서 신안군 증도에 다녀왔다. 증도는 예부터 물이 귀해서 시루섬(물이 시루 구멍처럼 다 빠져 나가서)이라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정해진 날에만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얼마나 물이 귀한 동네인지 알 만하다. 또 증도 주변 해역에서 엄청난 송원대 해저 유물이 발견되면서 보물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인구가 222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인데 청산도처럼 슬로시티로 지정되었기에 답사 코스에 넣었다. 우리나라의 슬로시티는 4군데로 완도군의 청산도, 신안군의 증도, 담양군의 창평, 장흥군의 유치면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인구가 5만을 넘지 않아야 되고, 패스트푸드점이나 대형 마트, 대량 운송 수단이 없으면서 세계의 보편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돌면서 비교해볼 예정이다.
증도는 재래식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과 자전거를 이용한 친환경 교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증도에 간다고 했을 때 나를 선뜻 나서게 만든 건 바로 염전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도읍 지신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수다를 떨다 보니 15분만에 증도에 닿았다. 배 안에서 바라본 증도는 내가 완도에서 바라보던 바다 풍경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섬을 가운데 두고 많은 섬들이 죽~ 병풍을 두룬 듯했다. 그래서 완도에서 탁 트인 바다에 익숙해진 눈엔 어딘지 답답한 느낌까지 들었다.
배 안에 있는 대형 버스는 우리 일행이 타고 간 것이다. 여행하면서 저런 관광 버스를 처음 타본지라 멀미도 하고 무척 힘이 들었다. 가을겆이만 끝나면 저런 버스를 타고 수시로 단체 관광을 다니는 친정 부모님 생각이 났다. 젊은 나도 힘든데 노인들이 얼마나 힘드실까 싶었다.
증도 전체 모습이다. 우전해수욕장, 짱뚱어 다리, 철학의 숲 등 명소가 많았지만 나에겐 염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증도의 첫인상은 과도한 친절이었다. 우리가 간다는 연락을 받은 증도 면장님께서 마중을 나오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하시던지 정말 몸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서글서글 편안한 말씀으로 증도를 잊을 수 없는 섬으로 만들어준 분도 바로 그 면장님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염전인 태평염전의 모습이다. 이 염전은 1953년 갯벌에 둑을 쌓아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그곳 직원의 말에 따르면 여의도 면적의 두 배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는 판단하에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태평염전에서는 햇볕이 좋은 5월부터 9월까지만 소금 작업을 한다. 지금도 할 수는 있지만 질 좋은 소금을 위해 여름에만 작업을 한다고 했다. 동서 양쪽 염전을 사이에 두고 늘어서 있는 60여 개의 소금창고가 참 인상적이었다. 여름에 찾아가면 직접 염전에서 소금 걷는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고 한다. 날이 흐려서 사진 상태가 별로다.
소금밭 사이 사이에 있는 수차.
비가 올 때 소금물을 저장하는 함수 창고다. 비가 오면 소금의 농도가 약해져서 질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저 창고 아래로 물을 내려 보낸다고 한다.
가족도 데려갈 수 있다는 말에 두 아이도 함께 갔다. 소금밭에서 체험을 할 수도 있다는 내 꼬임에 따라왔던 두 아이는 소금밭이 꼭 논 같다며 별로 신기해하지도 않았다. 소금창고 안에서 사진을 찍으면 복 받는다는 말에 모두 돌아가며 이렇게 사진 한 장씩 찍었다.
태평염전에서 천일염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2007년에 만든 소금박물관이다. 증도를 가는 분들에게 꼭 들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알차게 꾸며놓았다. 외딴 섬 증도에서 만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소금의 역사, 문화 등 소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어갈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코끼리. 코끼리도 소금이 있는 곳을 따라 이동한다고 한다.
박물관 입구에 소금을 쌓아놓아 직접 만져보면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박물관 내부도 깔끔하고 직원들이 설명도 잘해주었다.
우리가 먹는 소금에는 천일염과 정제염이 있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서 농축해낸 것이고, 정제염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염화나트륨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천일염에는 미네랄 등 많은 성분이 들어 있어 우리 몸을 이롭게 하지만 정제염, 일명 꽃소금은 짠맛을 내는 나트륨밖에는 들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 주부들이 소금을 살 때는 천일염인지 정제염인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할 것 같다. 고혈압의 원인이 되는 짠맛의 범인도 정제염이라고 하니까.
류시화 님의 <소금>이라는 시다. (사진을 클릭하면 글씨가 크게 보인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소금을 담아놓은 작은 항아리들이 참 예쁘다. 이걸 보는 순간 지금도 장독대 항아리 중 하나에 간수를 뺀 소금을 보관하는 친정집이 떠올랐다.
세계의 유명한 소금. 예쁜 병에 담아놓으니 소금이 아니라 보석 가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적인 면에서는 우리나라 천일염을 따라올 수 없는데 프랑스의 어떤 소금은 1킬로그램에 8만원이나 한단다. 마케팅의 효과지 싶다. 태평염전에서 간수를 안 뺀 소금은 20킬로에 만오천원이고, 간수를 뺀 소금은 10킬로에 만오천원이라는데.
1년 이상 묵혀서 간수를 빼야 불순물이 빠지고 쓴맛도 나지 않는 좋은 소금이 된다고 한다. 우리 친정에서는 소금에서 뺀 간수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가 두부를 응고시킬 때 쓴다. 요즘은 중국산 소금이 많기 때문에 김치를 담갔는데 맛이 이상하면 소금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함께 갔던 나의 제자 연서와 우리 아이들이 태평염전 사무실이 있는 뒷동산에 올라가서 염전을 내려다 보았다. 염전에 가는 것보다 학교에 안 가는 걸 더 좋아했던 우리 아이들이다.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이렇게 놀아도 되는가 모르겠다.
염전에 다녀온 아들이 체험 학습 보고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란에 쓴 말이 걸작이다. "소금이 짜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대체, 그 전엔 소금 맛이 어땠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