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까지 나왔다가 아주버님이 안내하는 가장 맛있는 중국집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먹고 나오다 보니 이중섭 거리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거리에 이중섭 느낌이 나는 것은 없고 그가 살던 집이랑 기념 미술관이 하나 있었다.
이중섭은 제주도에서 산 일 년이 생애 가장 행복한 기간이었다고 한다.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기에. 그후 다시는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상을 마주하지 못한 채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 보내고 부산으로 건너간 이중섭은 제주도에서 가족과 보낸 시간들을 추억하며 많은 그림을 그렸다.
아주 작은 미술관이다. 나름 신경을 썼으나 이중섭 미술관에 이중섭 그림은 몇 점 안 되어 실망스러웠다. 은지화 같은 소품 몇 점 기증 받아 전시해놓았다. 몇 년 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이중섭 특별전 할 때 가서 본 기억에 의하면 이중섭 대표작은 리움에 다 있었지.
조카 세 명과 함께한 아이들. 우리 아들은 어디서나 눈에 띄인다. 항상 너무 위험하게 놀아서 가슴이 철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다같이 사진 찍자는 말에 저렇게 위험한 포즈로 신나하고 있다.
미술관 마당에서 바라본 제주 바다. 이중섭도 아이들과 함께 저 바다로 나가 게랑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겠지?
방 두 칸에 부엌 하나가 딸린 아주 작은 집이다. 우리 딸의 말에 의하면 유명한 화가가 살던 집이 너무 초라하고 쓸쓸하단다.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는지 문 앞에 신발이 놓여 있었다.
한 평 남짓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방에 그의 사진이 놓여 있다. 행복한 추억만 남긴 방에 홀로 있는 그의 모습이 한없이 쓸쓸해서 사진을 치우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동안 이중섭 가짜 그림에 대한 뉴스들을 보며 씁쓸했는데, 그는 알까? 그토록 그리워하며 그려댔던 아들이 가짜 그림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학창 시절 미술책에서 본 이 그림 때문에 이중섭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 그림 작가로만 알았다 . 진품은 아니고 사진이다.
이중섭 미술관 2층에는 들으면 알만한 우리 현대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두 기증된 작품. 그 중 복도에서 만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미술관 입구에 수선화가 예쁘게 피어 있었다. 추운 날씨에 어찌 이리 예쁘게 꽃을 피웠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