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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기 소년 ㅣ 창비아동문고 232
유은실 지음, 정성화 그림 / 창비 / 2007년 3월
평점 :
그녀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유은실이라는 작가가 좋다. 그녀는 슬픈 이야기도 유쾌하게 풀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킬킬대며 읽다 보면 어느새 한 작품이 끝나곤 한다. 하지만 한 번씩 작품을 되돌려 읽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진정성에 콧끝이 찡해지곤 한다. 그리고 킬킬댄 것에 미안해진다.
작품 대부분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들어 있다. 주인공 아이들은 한결같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씩씩하다. 시인 백석과 이름이 같은 소년의 에피소드 <내 이름은 백석>은 엄마인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마음대로 쓰라고 받은 용돈 천원을 가지고 고민하는 자매의 이야기 <맘대로 천원>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손녀딸의 이야기 <선아의 쟁반>은 딸아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동화이다.
표제작 <만국기 소년>은 제목만 보고 아이들 운동회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진수는 새로 전학 온 아이이다. 선생님이 뭐든 잘하는 것 하나만 해보라는 말에 나라 이름과 수도를 줄줄이 외운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낯설게 쉬지 않고 나라 이름을 외우고, 아이들은 놀라 쥐죽은 듯 조용하다. 가난한 진수가 볼 수 있는 책은 얻어 온 국기책 하나뿐이다. 보고 또 보다가 나라 이름과 수도를 다 외워 걸어다니는 만국기가 되고 말았다.
외운 나라 중에서 제일 가 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진수는 대답이 없다. 대신 그 많은 나라와 수도를 외울 때는 아무 표정이 없던 진수의 얼굴에 슬프고 겁에 질린 표정이 생기고 말았다. 그 순간 진수가 받은 상처는 아무도 모른다. 창밖의 맑고 파란 하늘이나 알까!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진수가 더 초라해 보인다. 가 본 적도 없고 앞으로 가 보고 싶다고 꿈도 꿀 수 없는 한 소년의 가난이 슬픔을 넘어선다.
진수를 지켜보는 주인공 아이의 마음이 아이답지 않다. 진수네가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았다는 말에는 엄마를, 어느 나라에 가고 싶은지를 묻는 선생님을 원망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짠해진다. 주인공 아이 덕분에 진수가 외롭지도 않고 표정도 있는 학교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