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입니다. '처음'이 갖는 막연한 설레임으로 나는 그렇게 눈 내리는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은 곧 '익숙함'으로 쉽게 변질될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눈이 시작되는 아득한 허공과 내 시선이 닿을 수 있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 이르기까지, 마치 나는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목을 길게 늘인 채 한동안 하염없었습니다. 이편(현실)과 저편(과거)의 경계가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던 내 유년 시절의 막연한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허망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지켜질 수 없는 허망한 약속을 누군가에게 수도 없이 약속하며 빈 세월을 건너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떠오른 후회 한 모금을 쓴 커피와 함께 마셨습니다. 내가 지키지 못한 많은 약속들이 첫눈이 녹듯 누군가의 가슴으로부터 말끔히 지워지기를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월요일의 무게를 잠시 잊었던 듯합니다.
다들 말이 없었고, 침묵 속에서 각자의 추억들이 눈발처럼 나부꼈습니다. 세월은 결국 두려웠던 대상을, 달아나고 싶은 어떤 미래를 우리의 눈앞에 야멸차게 펼쳐놓곤 합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겨울이 성큼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말입니다.
첫눈이 내렸습니다.
겨울을 맞이하는 통과의례처럼 2013년의 겨울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