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가 높아진 탓인지 조금만 걸어도 덜 마른 옷을 입었을 때처럼 바지가 허벅지에 척척 감긴다. 장마철의 아침 산책은 고도의 인내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상쾌함이나 뿌듯한 느낌에 대한 기대는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라지고, 빨리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픈 마음만 간절해진다. 게다가 내가 오르는 산의 능선에 설치된 운동기구에서 몸을 풀다 보면 웬 모기가 그리도 많은지... 장마철에 반소매 차림으로 나선 초보 등산객들은 드러난 피부가 산모기의 습격으로 인해  멍게로 돌변하기 십상이다. 수년째 산을 오르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불상사에 대비하여 한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고 모기 퇴치용 부채를 손에 든 채 산길을 오르지만 말이다. 그 바람에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의 자취가 또렷이 느껴지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집 떠난 뒤 맑음>을 읽고 있다. 단문 위주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 때문인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스토리 위주의 빠른 전개가 장마철에 읽기에는 딱이다 싶은 소설이다. 묘사 위주의 끈적끈적한 소설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지금처럼 습하고 불쾌지수가 높은 계절에는 어쩐지 꺼려지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의 수가 천 명대로 증가했다. 뉴스를 보고 나 역시 깜놀. 그럼에도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겁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다들 인내심에 한계가 와서 그러려니 넘어가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도망치듯 후다닥 빠져나오는데 여전히 찝찝한 기분. 백신이라도 맞아야 조금 안심이 될 텐데 그마저도 아직 순서가 되지 않았으니 모든 게 조심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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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시작되었다. 여와 야의 유력 정치인들이 속속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했다는 건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유권자 전체를 두고 내 편으로 얼마나 많은 숫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숫자 싸움에 골몰하는 시간이 선거 막판까지 지루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선 출마자들이야 그 시간이 촌각을 다투는 짧은 여정으로 여겨지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진흙탕의 아수라장을 수개월 동안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암담하고 길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저절로 긴 한숨이 터져 나올 정도로 말이다.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든 한 인간이 뒤늦게 선보이는 도리도리 까꿍도 그닥 귀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00의 아바타입니까?' 하고 물었던 어느 정치인의 유치 찬란한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부인은 자신이 쥴리가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대중의 머릿속에 그녀가 쥴리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마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계속해서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는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남에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 없다던 그의 장모는 3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이것은 다만 출마 선언 직후에 터진 몇몇 예고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앞으로 얼마든지 더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홍 모 의원 역시 '도리도리 윤'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대통령 직무는 날치기 공부해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거나 "도리도리 윤은 평생 검찰 사무만 한 사람이다. 대통령 직무에서 검찰 사무는 0.1%도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그의 '경험 부족'을 지적했던 것이다. 역시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정치권에서 굴러먹은 홍 의원의 시각은 날카로웠다.

 

반면 여권에서의 출마자들 간 경쟁은 다소 싱거운 맛이 있다. 지지율에서 한참 앞서가는 이 지사와 이를 견제하는 다수의 경쟁자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는 있지만 시간적으로나 인지도 면에서나 역부족인 듯 보이는 게 사실이다. 물론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 두 명이나 있으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언론의 카메라는 도리도리 윤과 이 지사에게 집중되는 걸 보면 그놈의 인기라는 게 마냥 거품은 아닌 모양이다.

 

대선 경쟁이 시작된 것처럼 뒤늦은 장마가 시작되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져 치유가 불가능해지는 것처럼 성질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 기단이 만나면 장마의 피해는 심해지게 마련, 부디 장마도, 대선도 무난하게 넘어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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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출근 시간에 늘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게 마련입니다. 일종의 루틴인 셈이지요.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메일을 체크하고 자신의 일과를 정리하는 일이야 기본 중에 기본이니 차치하더라도 바쁜 현대인들이 오전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내는가 하는 문제는 업무 성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듯합니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서너 종류의 종이 신문을 읽는 게 나만의 경건한 의식인 양 행해지곤 했습니다. 그러자면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해야만 했고, 빈 사무실의 고요함 속에서 신문을 읽는 재미는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장을 옮겨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종이신문을 접할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종이신문에서 풍기는 구수한 잉크 냄새와 사무실에 퍼지는 종이 접히는 소리 등은 마치 오래된 동무처럼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지고 나니 세상은 온통 IT 기계와 스크린 속 활자로만 가득한 듯 여겨졌고, 그 삭막함 속에 힘껏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결국 평일에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종이 신문을 구독하기로 하고, 무려 네 종류의 신문을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종이신문으로는 한겨레, 조선, 매일경제를, 그리고 Financual Times 온라인판이 그것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같은 기사일지라도 성향이 다른 두 신문사의 기사를 함께 읽는 버릇이 있는지라 한겨레와 조선이라는 어찌 보면 극과 극의 이념 성향을 보이는 두 신문사를 선택했던 것이지요. 물론 최근의 한겨레는 열심히 우클릭을 한 탓에 진보 신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반거들충이 진보 신문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나는 몇 년째 열혈(?) 구독자로 잘 지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불거진 조선일보의 패악질로 인해 나는 조선일보의 구독을 사실상 끊었습니다. '사실상'이라고 쓴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구독 철회를 통보하자 무료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테니 계속해서 신문을 구독하라며 원하지도 않는 신문을 줄기차게 배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배달된 신문들을 문 앞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무튼 나는 조선일보를 끊고 중앙일보로 대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문은, 더구나 최대 구독자수를 자랑한다는 일간지는 일개 기자의 한풀이 수단이나 평소 자신의 이념과 달랐던 특정인을 향한 조롱이나 모욕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것은 신문이 아닌 특정인이 제작한 조악한 전단지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전단지를 읽을 필요도 없겠거니와 돈을 내면서 구독할 필요는 더더욱이 없는 것이지요. 관련도 없는 기사에 현직 대통령을 모사한 일러스트를 삽입하는 정도는 그저 애교 수준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다 하다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었던지 성매매 관련 기사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딸의 삽화를 삽입하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백주 대낮에 버젓이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야 말았습니다. 무슨 짓거리를 해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던 것이지요.

 

종이 신문을 구독한다는 게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공짜로 보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중앙 일간지의 기사가 일개 네티즌의 댓글 수준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한국 언론의 현 수준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1'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32%로 조사 대상 46개국 중 38위라고 합니다. 주요 매체별로 보면 조선일보가 34.82%로 지역신문보다 낮게 나와 최하위를 기록하였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사실은 이런 질 낮은 언론 매체를 여전히 신뢰하고 있는 국민이 34%나 된다는 것입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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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업체 쿠팡의 경기도 이천 덕평물류센에서 난 화재는 인적, 물적 피해와 함께 이를 지켜본 국민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게 했던 사건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쿠팡의 성장세는 놀라웠지만, 그에 비해 노동자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눈을 감았던 게 사실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기업이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말이다.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던 택배 기사들이 목숨을 잃고 하나 둘 사라지더라도 기업이 현행법을 어긴 게 아니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비정한 논리. 그렇다면 쿠팡의 소비자이자 쿠팡 노동자들의 이웃일 수 있는 우리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그저 맥 놓고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그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할 짓인가. 우리는 과연 자신의 양심과 시민의식에 비춰 한 점 거리낌도 없었을까.

 

화재현장에서 실종됐던 소방관이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 속보를 통해 들었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그는 결국 화마 속에 묻히고 말았다. 어쩌면 그것은 돈과 탐욕이라는 자본주의 불길이 누군가의 생명을 불쏘시개 삼아 훨훨 타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OECD 산재 사망률 1위인 대한민국 노동 현실의 초라한 성적표는 수술실 cctv 설치만큼이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거듭하고 있다.

 

한낮의 기온이 화재현장의 불길처럼 뜨거워졌다. 나는 쿠팡 노동자들의 죽음을 접하면서부터 쿠팡과의 거래를 완전히 끊었다. 나 한 사람쯤이야 쿠팡의 전체 매출액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적어도 내 양심에 비추어 그들의 희생을 나의 편리와 맞바꿀 수 없었다. 목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는 그들의 희생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악이란 뿔 달린 괴물처럼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언제나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라는 아렌트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요즘, 투명한 여름 햇살이 가난한 이의 살갗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어느 기업가의 비열한 눈동자에 깃든 탐욕의 덩어리를 태울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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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1-06-20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지지난주부터 시작된 밤꽃의 개화는 비가 오락가락했던 지난 한 주 동안 오롯이 그 향기를 더하더니 이번 주에 들어서는 숫제 온 산이 밤꽃 천지이다. 뽀얗고 보송보송한 솜털이 마치 여우꼬리를 닮았다고 하는, 이맘때의 산은 온통 비릿한 밤꽃 내음 가득한 그야말로 밤꽃 세상이다. 그러나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아주 잠깐, 삶의 마지막엔 언제나 한평생이 마치 순간처럼 짧았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매 순간이 일장춘몽이요, 돌이킬 수 없는 모든 것들이 그리움인 것을...


방랑식객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임지호 자연요리연구가가 오늘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향년 65세. 방송에서 언제나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던 그였기에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저 황망할 뿐이다. 우리는 이런 비보를 접할 때마다 '아,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 숙연해지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의 죽음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며칠 전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 등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다. 김 모 부장판사가 판시한 판결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과연 이 자가 대한민국의 판사가 맞는지, 아니 그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그런 판결문을 써 내려갔는지,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국민의 수난사를 그는 과연 알고 있기나 한 건지 논리도 없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문구로 사람들의 화를 돋웠다. 어쩌면 그는 대한민국의 역사 대신 일본 우익이 펴낸 일본의 역사를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100년도 안 되는 짧디 짧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 그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양심과 인류애를 저버린 채 그런 어리석은 판결을 했을까.


이번 주가 지나고 다음 주가 되면 흐드러진 밤꽃도 지고 세상은 다시 초하(初夏)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겠지. 세상은 그렇게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면서 복잡함을 향해 달려간다. 김 판사도 어쩌면 세상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기 위해 그런 말도 되지 않는 판결을 내렸던 건 아닐까. 세상이 너무 차분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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