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야당의 어느 대선 후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조짐이 보일 때 선제타격밖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선제타격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이와 같은 대북 강경론은 극우 세력의 허풍이거나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하나의 술책으로 종종 이용되곤 했었다. 1997년 대선 당시만 하더라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비선조직으로 활동하던 오정은·한성기·장석중 3명이 이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측에 대선 직전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소위 '총풍사건'만 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은 뒷전이고 오직 정권 쟁취에만 눈이 먼 극우 세력의 진면목을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사실 그들에게 안보는 하나의 전술이자 술책일 뿐 국민의 안전이나 국가의 발전과는 하등 관련이 없어 보인다. 흔한 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북한과의 긴장관계에서 오는 한국 기업들의 저평가로 보아야 하지만 대선 때마다 일부러 긴장관계를 획책하는 극우 세력들의 만행으로 볼 때 그들의 행동은 하나의 매국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북한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하는 말이나 행동이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군사력이 비슷한 두 나라의 충돌은 공멸이라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애도 추측할 수 있는 결과이다. 물론 군사력의 격차가 현저할 경우에는 쉽게 제압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선제공격 운운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모두 공멸의 길로 가자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바보 같은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후보 부인의 녹취록이 공개되는 걸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도대체 후보 부인은 기자에게 뭔 말을 씨불였기에 그들이 온 힘을 다해 막으려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 역시 짜증이 나는 건 매한가지다. 숨길 게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공인으로 왜 나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나 소나 다 대선 후보가 되면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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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에는 언제나 오류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군생활만큼 많은 허풍과 넘치는 오류가 존재하는 이야기도 드물지 싶다. 그래서일까 군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처자들이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 역시 남자들의 군대 체험기 되시겠다. 물론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뻥'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이 처자들의 귀를 어지럽힌 탓도 있을 테고, 군이라는 통제 구역에 대한 공통 관심사 역시 남녀칠세부동석의 가르침과 함께 전혀 진전되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게다. 그럼에도 갓 제대한 대한민국의 예비역들은 자신이 경험한 군대 시절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전달하기 위해 지금도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의 주임무가 마치 대한민국의 군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인 양 말이다.


적당한 때에 이르러 "닥쳐!"라는 말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지 않으면 3박 4일로도 그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르는 까닭에 처자들은 때로 평소에 쓰지 않던 더 심한 말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가리 닥쳐!"와 같은, 처자들이 자신의 교양에 극도의 스크래치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굴하지 앟고 꿋꿋하게 버티는 예비역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에 반기를 드는 처자들을 지지하는 또 다른 남자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찬란한 '똥방위' 아니 '동방위' 되시겠다. 군에 입대하여 일정 기간을 복무하는 현역병들과는 다르게 지역의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단기사병들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하여 현역병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의식(또는 한)이 컸던 만큼 현역으로 제대한 예비역들의 '뻥'을 섞은 무용담을 극도로 싫어했었다.


이런 분열에도 불구하고 홀로 고고한 척 이들과 동떨어진 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군 면제자 그룹이었다. 그 이유인 즉 현역 입영자들이 추운 겨울밤 외곽 근무를 서며 과체중, 담마진, 부동시 등 그 많은 면제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 하나도 건지지 못했을까? 한탄하며 면제자들을 부러워했던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누구는 질병이 없어도 면제를 받고 너는 질병이 있어도 면제받지 못한다는, 현역 입대자는 개 돼지에 불과하다는 조롱과 차별이 그들 사이에는 엄연히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병역 회피는 대한민국에서 중대한 범죄라는 걸 자신들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절대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그들의 병역 면제가 의도적 범죄였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밝혀진다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났을 테고 말이다. 그러나 양심의 문제는 여전히 유효한가 보다. 자신들의 범죄가 미안했던지 어느 재벌 총수는 '멸공'을 내세워 애국자 코스프레를 하고, 어느 대선 후보는 멸치와 콩을 사서 그 역겨운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담론 중 하나는 병역 문제가 아닐까 싶다. '멸공'으로 범죄도 세탁이 될 수 있다면, 병역 면제를 그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면 누군들 '멸공' 대열에 앞장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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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불현듯 찾아올 때가 있다. 그것은 뭉근하게 가슴을 짓누르다가 때로는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기도 하고, 잊고 지내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게도 한다. 나는 다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오가는 마음길을 터주었을 뿐인데 이다지도 많은 슬픔이 밀려드는 걸 보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슬픔이 산재하고 있었던 것인가! 미처 알지 못했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 닿지 못했던 슬픔을 생각할 때 나는 이따금 동시대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3명의 소방대원이 화재 진압 과정에서 순직했다. 28년 차 베테랑 소방관도, 결혼을 석 달 앞둔 예비 신랑도, 8개월 차 막내 소방관도 화마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웃의 죽음에 너무도 둔감해진 까닭에 그 깊은 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 박수를 치고 환호하던 정치인이 표정을 바꿔 형식적인 조문을 하기도 하고, 어느 재벌 총수는 뜬금없이 중국 시진핑 주석의 사진과 함께 '멸공' 해시태그를 달아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감정도 없고, 뇌도 없는 것인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사람다움'이 아닐까.


며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여지없이 미세먼지가 찾아왔다. 탁한 하늘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치 좀비처럼 살고 있는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은 어찌할 것인가. 아름다운 삶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와 우리 이웃의 마음을 뒤덮은 슬픔이 주말의 거리를 온통 잿빛으로 물들게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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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계획이라는 게 뭐 '작심삼일'을 염두에 둔 하나의 이벤트와 같은 것이지만 이것도 사실 매년 반복하다 보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손도 까딱 않은 채 멀뚱멀뚱 시간만 보내는 것도 쑥스럽고 꽤나 머쓱한 일이어서 억지로 동참하게 됩니다. 예컨대 아침 운동을 계획한다거나 금연 혹은 금주, 다이어트 등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어길 수는 없고 적어도 삼일은 지켜야 예의인지라 작심이일은 넘기곤 하죠. 예의상 말입니다.


천성적으로 게으름이 몸에 밴 저로서는 그마저도 귀찮다 여겨질 때가 많고, 굳이 기록으로 남겨 '빼박' 증거가 되는, 그런 미련한 짓은 안 하는 게 상책이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까닭에 신년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부분의 집단지성(?) 추종자에서 벗어난 반지성주의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거나 부끄럽다는 어떤 감정적 견해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현실로서 존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연초에 읽을 책을 고르는 데는 비교적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의 제목이나 내용, 저자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살피기는 합니다. 연초에 읽기에 적당한 책인지 아닌지 나름대로 판단을 하면서...


반전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신중하게 골랐다고 하는 책을 반도 읽지 못한 채 슬몃 책꽂이에 꽂아 넣는다거나 책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일 년 내내 냄비 받침대의 역할만 묵묵히 수행하다가 장렬히 전사하는 게 그런 예외에 속하는 경우이겠지요. 아무튼 내가 연초에 고르는 책은 기분을 업시키거나 뭔가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책보다는 삶에 대해 관조적이거나 죽음을 생각하는, 말하자면 어둡고 칙칙한 주제의 책을 고르곤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도 나는 반지성주의자가 분명해 보입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김영민 교수의 책 제목처럼 '연초에는 죽음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저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이유진 정신과 전문의가 쓴 <죽음을 읽는 시간>을 읽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어 땅에 묻힌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쓰고 버린, 부패하지 않는 시간들이 서서히 차올라 발목을 덮고, 무릎을 덮고, 시나브로 정수리를 덮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쓰고 버린 시간에 묻혀 최후를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버린 시간에 묻혀 죽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삶은 고통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과정도, 살아가는 과정도, 죽어가는 과정도 모두 고통이다. 그러니 매 순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피곤한 인생도 없다. 삶이란 애초에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고통을 완화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정신분석 치료 또한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덜 불행하기 위해서 받는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p.331 '에필로그' 중에서)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덕담을 나누고 싶다. 새해에는 덜 고통스럽기를, 그런 시간을 써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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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성향과 일치하는 사람들을 가려 교류를 이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헤어지곤 합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고 하던가요. 사람들의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고, 돌아간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의미의 불교 용어이지요.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을 테고 그럴 필요도 딱히 없을 듯합니다. 우리의 삶이 한아름의 기억할 수 없는 기억과 기억하는 한 줌의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게 마련이지요. 어떤 필요에 의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 역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개중에는 남들에게 요만큼의 손해도 입히지 않으려 하고 반대로 자신도 남들로부터 눈곱만큼의 손해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고집이 세고 내면화된 자신들의 신념을 불변의 진리인 양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혹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뭐 나쁜가? 하고 말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개인의 행동지침으로 이것보다 더 쿨하고 쌈박한 것들을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듯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자신도 피해 입기 싫다는 데 그게 뭐 어떻다고?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자신 한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눈곱만큼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아주 작은 일까지 세세하게 따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난번에 내가 저녁을 샀으니까 오늘은 네가 저녁을 사라는 식이지요.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21년의 마지막 날, 그것도 아침부터 별 이상한 말을 다 꺼낸다 싶겠지만 그러한 행동지침을 내면화한 사람이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르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받고 있으며 그와 같은 도움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저 또한 그 사실을 가끔씩 까먹곤 하지만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늘 음으로 양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을 한나절 피곤하게 따지는, 그런 짓은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이름도 알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겠지요.


야당의 어느 대선 후보는 말하더군요. 현 정부가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정치해서 경제, 외교, 안보 전부 망쳐놨다고. 그도 현 정권의 고위직 인사 중 한 명이었으니 자신도 무식한 삼류 바보라는 절절한 고백이었겠지요. 오늘은 단 하루 남은 2021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무리 잘하시고 타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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