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십 년 동안 보수정권과 군사정권이 지배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 머릿속에 각인시킨 단 하나의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것. 그러다 보니 논리를 따져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고, 각자의 주장만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곤 했지요.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건 교통사고의 현장이었습니다. 심지어 뒤에서 앞차를 추돌한 일방적인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차에서 내릴 때는 언제나 한껏 목소리를 높이곤 했지요. 운전을 뭐 그 따위로 하느냐는 둥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둥 엄포와 협박은 일상이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건 경찰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는 기본이었고, 경찰이나 상대방을 향해 "너희들 다 죽을 줄 알아.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야. 두고 봐! 가만 두지 않겠어." 하는 식의 엄포성 발언은 끝도 없이 이어졌지요. 그런데 웃기는 건 이런 게 먹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목소리를 높였던 놈은 이런저런 연줄을 통해 무죄로 석방되기 일쑤였고, 엄한 사람만 죄를 뒤집어쓰곤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곳곳에 cctv가 달렸음은 물론 시민들의 제보나 증언 역시 아무런 대가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메이저 언론이 이를 다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튜브를 통한 개인 언론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갑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애써 부인하거나 변화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유력 대선 후보인 윤 전 검찰총장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던 건 저뿐만이 아니었던 듯합니다.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어떠한 해명이나 증거 자료도 내놓지 못한 채 '내가 그렇게 무섭냐?'며 윽박지르는가 하면, 최초 보도한 뉴스버스가 인터넷 매체라서 신뢰할 수 없다는 식의 극히 비이성적인 언론관을 내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시대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소위 대깨윤-나는 이런 말을 싫어하지만-이라고 하던데) 역시 과거 그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부정한다고 해서 그 시절이 반복되지는 않겠지요. '목소리 큰 놈'이 이기던 시대는 아주 오래 전 과거라는 사실을 그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뼈저리게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정으로 가는 첫걸음이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연한 일이지만 낮이 많이 짧아졌다. 아침에 일어나 산행길에 나설 때면 어둑어둑한 등산로와 고즈넉한 숲을 만나게 된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5시 30분이면 대낮처럼 환하던 길이 벌써 이렇게 변했나 싶은 게 불현듯 세월의 속도를 실감케 된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랜턴 없이는 길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맥없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걸 생각하면 왠지 우울해진다.

 

윤 전 검찰총장의 여권 정치인 형사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한 뉴스버스의 기사로 인한 정치권 파장이 심상치 않은 듯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작년 4월 3일 윤 전 총장의 최측근인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미통당 송파갑 국회의원 후보자였던 김웅 의원에게 유시민 이사장과 최강욱·황희석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3명과 언론사 관계자 7명, 성명미상자 등 총 11명에 대한 고발장을 전달했고 김웅 의원은 이를 당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고발장에 고발인란은 빈칸으로 남아 있었고, 명예훼손의 피해자는 윤 전 총장과 부인 김건희 씨, 한동훈 검사장 등 3명이었다는 게 보도 내용의 골자다.

 

말하자면 수사의 주체인 검찰총장이나 검사장이 자신들의 피해를 직접 고소하기는 좀 낯 뜨거운 면이 없지 않으니 제삼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고발장을 대신 접수케 하고 이에 대하여 자신들이 직접 수사하겠다는 것인데 쓰리 쿠션 수사라고나 할까. 아무튼 국민들 보기에 이래저래 볼썽사나운 건 사실이다. 그런 까닭인지 윤 전 총장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 대다수가 윤 전 총장의 대선 행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를테면 반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중도에 사퇴하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탈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 전 총장의 흠집이 너무 많은 데 비해 토론이나 다른 방식을 통해 검증되거나 해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윤 전 총장의 완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기게 되었고 당내의 경쟁 주자인 홍준표 후보에게로 지지세가 옮아가는 건 당연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오늘은 24절기 중 열다섯 번째 절기인 백로. 이맘때부터 밤에 기온이 떨어져 풀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는 것인데, 윤 전 총장도 이제는 조금쯤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판이 얼마나 비정하며, 자신이 주장하던 '공정'이 얼마나 허망한 구호였던가를... 혹여라도 그는 '공정'이 공작정치의 줄임말로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특정 직위에 부여되는 권위로 인해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누구든 직위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하게 마련이라는 뜻일 게다. 말하자면 '지위가 매너를 바꾼다'(Office changes manners)는 의미일 텐데 이와 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막내 사원일 때는 그렇게 촌스럽고 속된 말로 찌질해 보이기까지 했던 사람도 짬밥이 쌓여 승진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그에게도 한 부서를 책임질 수 있는 노련함과 경륜에서 오는 권위가 몸 곳곳에서 폴폴 풍겨오는 것이다.

 

'세대교체 주역'으로 화려하게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보면 확실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국회의원을 경험하지 못한 찌질한 정치인이었던 그는 웬만한 방송사의 패널로 초청되는 걸 큰 영광으로 여기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방송사 곳곳에 등장하여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되자 그는 이제 미리 약속된 방송 출연마저 제멋대로 펑크를 내는 안하무인의 캐릭터로 완벽하게 변신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녹화방송이 아닌 생방송을 말이다.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하기로 했던 그는 생방송을 단 40여 분 앞둔 시점에 출연 거부를 최종 통보했고, 방송 공백에 대해 '동물의 왕국'이나 틀면 된다고 답했다고 하니 그의 놀라운 변화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사람은 특정 지위에 주어지는 권위에 의해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본심이 어떤 권위가 주어짐으로써 자유롭게 표출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본심이 특정 지위에 오름으로써 자유롭게 분출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본모습이 나온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는 신중해야만 한다.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 120시간에 달하는 노동과 불량식품 섭취 발언 등 자신의 본심을 가감없이 표출한 어느 후보의 모습은 순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지 않고 미리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약 6개월,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철저한 검증을 통해 후보자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는 거짓 눈물을 비유적으로 일컬어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악어는 사실 장기간 물 밖에 나와 있을 때 눈이 건조해져 상하지 않도록 눈물을 흘리며, 눈물샘을 관장하는 신경과 턱의 저작행위를 관장하는 신경이 동일하기 때문에 먹이를 씹어 삼킬 때에도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14세기 초 존 맨더빌의 여행기에 의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었다는 이 말은 셰익스피어에 의하여 널리 사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애먼 악어는 억울한 면이 있겠습니다만 말이죠.


얼마 전에도 우리나라 굴지의 우유 업체 회장 한 분이 '악어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회사의 주가가 바닥을 치던 시기였습니다. 자신의 회사를 모 사모펀드에게 매각하고 자신은 즉시 회장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아들들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발표 이후 주가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회장의 눈물 어린 호소를 투자자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회사의 매각은 물론 회장직에서 사퇴하는 것도 없었던 일이 되었고,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아들들 역시 승진까지 했다고 하니 그는 어쩌면 '악어의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회장은 정계에 많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걸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회사의 고문으로 있는 그의 부인이 자택에서 단체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열네 명이나 모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들이었겠지요. 그중에는 부산 시장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5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 방역 4단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권력의 상층부에 있었던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게다가 방역 4단계에도 불구하고 정무에 바쁜(?) 부산 시장이 불원천리하고 달려왔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방역은 개나 돼지만 지키는 것이지 자신들은 방역 단계를 결정하고 지도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부산 시장과 같은 당에 있는 윤 모 의원이 최근에 또 '악어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론사의 카메라 앞에서 젊은 당 대표와 손을 잡고 제대로 폼을 잡고 말입니다. 아마도 그 의원님은 자신의 비리가 영영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무도 빨리 밝혀진 것이 분해서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지만 당 대표의 눈물은 좀 볼썽사나웠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당 대표도 머쓱했겠지요.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그 의원과 동조하자니 그도 역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정황상 말입니다. 단지 정황상.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막시무스 2021-08-26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정황이 악어의 눈물이라는 팩트를 지목합니다! 그러면 악어의 눈물이 맞다고 해야할 것 같아요!ㅎ

꼼쥐 2021-08-28 18:16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 님을 포함한 다수의 분들이 팩트라고 믿으신다면 아마도 그렇겠지요. ㅎ
 

계절이 바뀌려나 봅니다. 계절의 변화를 처음 목격한 돌쟁이 간난 아가도 아닌데 계절의 변화가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게 있을까마는 비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한동안 강더위가 이어지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오늘처럼 서늘바람이 부는 날씨가 새삼 반가웠던 것입니다. 물론 계절이 바뀌고 선뜻한 냉기가 도는 만추를 기약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날들이 흘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거나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나날이 더워지는 날씨 탓인지 그 정도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온종일 비가 내렸고 12호 태풍 '오마이스'의 상륙마저 예보된 처서의 풍경은 위기를 앞둔 팽팽한 긴장감이 넘쳤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에 곡식이 준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이맘때의 비는 그닥 반가운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에어컨 없이 밖에서 부는 바람만으로도 견딜 수 있는 이런 변화가 마냥 반가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맥락도 없는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것은 계절을 오가는 불필요한 소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처서에 내린 비로 한결 차분해진 나는 왠지 전에는 없던 기운이 불끈 솟아난 듯 퇴근하는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처서에 비가 내리면 독 안에 곡식이 준다는 데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