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계획이라는 게 뭐 '작심삼일'을 염두에 둔 하나의 이벤트와 같은 것이지만 이것도 사실 매년 반복하다 보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손도 까딱 않은 채 멀뚱멀뚱 시간만 보내는 것도 쑥스럽고 꽤나 머쓱한 일이어서 억지로 동참하게 됩니다. 예컨대 아침 운동을 계획한다거나 금연 혹은 금주, 다이어트 등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어길 수는 없고 적어도 삼일은 지켜야 예의인지라 작심이일은 넘기곤 하죠. 예의상 말입니다.


천성적으로 게으름이 몸에 밴 저로서는 그마저도 귀찮다 여겨질 때가 많고, 굳이 기록으로 남겨 '빼박' 증거가 되는, 그런 미련한 짓은 안 하는 게 상책이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까닭에 신년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부분의 집단지성(?) 추종자에서 벗어난 반지성주의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거나 부끄럽다는 어떤 감정적 견해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현실로서 존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연초에 읽을 책을 고르는 데는 비교적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의 제목이나 내용, 저자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살피기는 합니다. 연초에 읽기에 적당한 책인지 아닌지 나름대로 판단을 하면서...


반전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신중하게 골랐다고 하는 책을 반도 읽지 못한 채 슬몃 책꽂이에 꽂아 넣는다거나 책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일 년 내내 냄비 받침대의 역할만 묵묵히 수행하다가 장렬히 전사하는 게 그런 예외에 속하는 경우이겠지요. 아무튼 내가 연초에 고르는 책은 기분을 업시키거나 뭔가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책보다는 삶에 대해 관조적이거나 죽음을 생각하는, 말하자면 어둡고 칙칙한 주제의 책을 고르곤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도 나는 반지성주의자가 분명해 보입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김영민 교수의 책 제목처럼 '연초에는 죽음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저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이유진 정신과 전문의가 쓴 <죽음을 읽는 시간>을 읽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어 땅에 묻힌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쓰고 버린, 부패하지 않는 시간들이 서서히 차올라 발목을 덮고, 무릎을 덮고, 시나브로 정수리를 덮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쓰고 버린 시간에 묻혀 최후를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버린 시간에 묻혀 죽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삶은 고통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과정도, 살아가는 과정도, 죽어가는 과정도 모두 고통이다. 그러니 매 순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피곤한 인생도 없다. 삶이란 애초에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고통을 완화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정신분석 치료 또한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덜 불행하기 위해서 받는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p.331 '에필로그' 중에서)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덕담을 나누고 싶다. 새해에는 덜 고통스럽기를, 그런 시간을 써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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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성향과 일치하는 사람들을 가려 교류를 이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헤어지곤 합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고 하던가요. 사람들의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고, 돌아간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의미의 불교 용어이지요.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을 테고 그럴 필요도 딱히 없을 듯합니다. 우리의 삶이 한아름의 기억할 수 없는 기억과 기억하는 한 줌의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게 마련이지요. 어떤 필요에 의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 역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개중에는 남들에게 요만큼의 손해도 입히지 않으려 하고 반대로 자신도 남들로부터 눈곱만큼의 손해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고집이 세고 내면화된 자신들의 신념을 불변의 진리인 양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혹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뭐 나쁜가? 하고 말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개인의 행동지침으로 이것보다 더 쿨하고 쌈박한 것들을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듯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자신도 피해 입기 싫다는 데 그게 뭐 어떻다고?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자신 한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눈곱만큼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아주 작은 일까지 세세하게 따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난번에 내가 저녁을 샀으니까 오늘은 네가 저녁을 사라는 식이지요.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21년의 마지막 날, 그것도 아침부터 별 이상한 말을 다 꺼낸다 싶겠지만 그러한 행동지침을 내면화한 사람이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르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받고 있으며 그와 같은 도움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저 또한 그 사실을 가끔씩 까먹곤 하지만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늘 음으로 양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을 한나절 피곤하게 따지는, 그런 짓은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이름도 알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겠지요.


야당의 어느 대선 후보는 말하더군요. 현 정부가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정치해서 경제, 외교, 안보 전부 망쳐놨다고. 그도 현 정권의 고위직 인사 중 한 명이었으니 자신도 무식한 삼류 바보라는 절절한 고백이었겠지요. 오늘은 단 하루 남은 2021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무리 잘하시고 타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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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역시 추워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추운 건 역시 싫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율배반. 생각과 실천이 늘 같을 수야 없겠지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율배반의 태도 앞에서는 언제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표리부동을 지향하는 양심이 발동하는 까닭에.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한낮의 조막만 한 겨울 햇살 속에서도 손이 금세 얼어붙는 듯했다. 추위 탓인지 몸을 한껏 옹송그린 채 잰걸음을 놓는 사람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꽁꽁 언 세밑 풍경을 망연자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인들은 동장군의 기세에도 그닥 감흥이 없는지 뜸한 손님을 기다리듯 그저 물끄럼하였다. 나는 집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한 후 동네 서점에 들러 소일했다. 손님도 없는 책방에는 이문도 없는 훈기가 미안스레 뱅뱅 돌았고 나처럼 게으른 고객 몇몇이 눈치도 없이 거닐었다. 겨우 책 한 권을 골라 서점 주인에게 내밀었을 때 그의 얼굴에는 나른한 피곤이 서려 있었다. 산다는 게 이렇듯 피곤을 더하는 일일 줄이야...

 

야당의 어느 대선 후보는 말하기를 "극빈한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유가 제한되는 걸 극도로 꺼린다는 걸 오늘처럼 날씨가 추운 날이면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의 처지가 극빈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추운 날씨로 인한 행동의 제약도 이렇게 답답하고 속에서 열불이 나는데 어떤 힘 있는 자에 의한 억압이나 부당한 제재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다면 21세기 민주국가에서 이를 간과한 채 무심히 넘길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어쩌면 그의 말인 즉 자신은 그동안 자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만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향유했던 자유를 좀 나누어주고 싶다는 취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옛다, 자유"라는 의미로.

 

오늘 그 후보의 부인이 자신의 허위 이력 논란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하는 자리가 있었다. 잘 보이려고 자신의 경력을 부풀렸으며 모든 게 자신의 불찰이라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극빈한 사람들은 사과문 낭독만으로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어려운 게 사실,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부과받는 형식으로 법적 처벌을 받을 뿐이다. 극빈한 사람들이 보기에 부유한 사람들은 온갖 죄를 저질러도 달랑 사과문 한 장 들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는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들에게는 용서를 구할 자유가, 극빈한 사람들에게는 용서를 해야만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 게 아닐까. 날씨가 무척이나 춥다. 응어리진 설움이 시퍼렇게 물든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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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12-2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다, 자유 ˝ 이 말이 핵심이네요.
˝ 옛다, 사과문 ˝

꼼쥐 2021-12-29 20:52   좋아요 0 | URL
그렇게 툭 던져놓으면 자신이 국민들을 향해 선심이라도 쓴 듯 느끼나 봅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하더니...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07년의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은 다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물론 이명박-박근혜를 제외하면 다른 후보들은 눈에도 띄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후보자들 간 네거티브 공세도 치열하였는데 도곡동 땅 실 소유주 의혹 등에 대해 이 후보는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이라고 일축하며 관련 의혹이 자신과 무관함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 모든 게 '네거티브 공세'일뿐이라는 것이었죠. 덧붙여서 그는 "누구도 나의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라면서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는 지금 불행하게도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재의 야당 대선 후보는 입만 열면 '공정과 상식'을 부르짖던 인물입니다. 그의 아내와 장모, 혹은 본인의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게 여당의 공작이라거나 무리한 수사, 혹은 기획 수사라고 치부해 왔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고, 자신과 그의 가족 모두가 떳떳하다는 주장이었죠. 말하자면 "모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쳤던 MB의 재판이었던 셈입니다. 그렇게 말한 바는 없지만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해 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의 아내에 대한 허위 이력 보도가 곳곳에서 쏟아지자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이 꽤나 머쓱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화도 내보고 설명도 해보려 했지만 국민 여론은 이미 싸늘하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국민 대다수가 돌을 던질 듯한 분위기인 셈이지요.

 

지금 시점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려면 아내를 버리거나 대선 후보에서 물러나는 게 합당하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그는 또 아내를 버린 비열한 인간이 되고 말 테니까 말이죠. 진퇴양난은 아마도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말이 되면서 따뜻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눈도 조금 내려 추운 날씨에 한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작금의 대선 정국은 올해의 날씨만큼이나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변덕 심하던 이 날씨도, 국가의 존망이 걸린 대선 정국도 제 자리를 잡고 잠잠해지겠지요. 그때까지 국민 모두가 잘 견디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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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1-12-17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사람들은 자기 내면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 같습니다. ‘공정과 정의‘는 애초 기득권을 오랜동안 향유하고 있는자가 입에 담을 언어가 아니죠. 영웅주의라는 힘에 도취해 주변 진실의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을 겁니다. 꼼쥐님이 지적하신 반복되는 거짓말이 수구진영에서 거듭되는 이유에 공감합니다. 아마 그에게는 지금 이순간에도 타인은 보이지 않을겁니다.

꼼쥐 2021-12-25 16:46   좋아요 0 | URL
기득권을 향유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순간에만 정의롭거나 공정하다고 보이고 싶어 할 뿐이죠. 그 외의 일상에서는 어떻게 행동하건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듯합니다. 토끼가 수궁에 갈 때 간을 빼놓고 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2021-12-17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5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친숙하지 않다는 것은 곧 신기하다거나 독특하다는 느낌을 넘어 때로는 이상한 혹은 싫은 등의 부정적인 인식으로 발전하기 쉽다. 그러므로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얼마만큼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는가에 따라 대중이 혐오하는 대상도 얼마든지 친숙하다거나 옳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고, 일반 대중이 옳다고 믿는 어떤 사건이나 대상도 이상한 것 혹은 잘못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이것은 인간의 신념이나 가치 체계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뿐 아니라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학습 환경이나 언론의 다양성을 편견 없이 접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육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 한 건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하나의 반증이기도 하다.

 

얼마 전 야당의 선대위에 가담했던 한 젊은이(라고 말하기는 나이가 꽤나 들었지만)의 독선적인 자기 주장 내지는 지나친 편견에 대해 연일 이어지던 언론이나 대중의 지적에 대해 나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깊은 비애를 느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치열한 경쟁과 부의 불평등 구조로 전 세계에 악명이 높다. 이런 까닭에 아이가 있는 학부모들은 아이의 인성이나 건전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소위 'SKY'로 지칭되는 명문 대학을 향한 외길에 아이를 줄 세우곤 한다. 물론 예외적인 학부모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대부분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관점도 다양한 책이나 영상을 통해 습득하고 토론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 부모로부터 대물림받는 게 일반적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명문 대학 진학을 위해 학교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인성 교육이 웬 말이냐는 투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누군가(대개는 부모님)로부터의 강제적인 세뇌나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이 곧 자신의 노력이나 가치 판단의 결과로 형성된 것인 양 속단하곤 한다. 인생이 불행해지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인의 생각이나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거나 그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사고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공감능력이 현저히 낮거나 숫제 없는 사람을 우리는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존경해 마지않는 김구 선생에 대해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 죽인 인간'이라고 치부하거나, 5·18 민주화 운동을 일컬어 폭동이라고 하거나, 긴급재난지원금을 개밥에 비유하거나, 실업급여 수급자를 향해 거지근성이라고 하는 등 일반적인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이와 같은 사고를 지닌 당사자를 그저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만 한다. 그는 다만 5·18 민주화 운동의 실상에 대해서도, 김구 선생의 사상이나 업적에 대해서도, 혹은 가난한 이의 삶에 대해서도 별반 아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나 행동에 대해 그저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이면에 곪을 대로 곪은 병폐를 파악하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우리는 제2, 제3의 노 씨를 언제든 다시 마주칠 수 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지독한 편견의 소유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설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국제 사회의 정서와 동떨어진 일본이 끝을 알 수 없는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우리나라의 정서가 그렇게 변해간다면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동시에 먼 나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한 명의 지구인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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