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로 지낸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런 처지이다 보니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소소한 일상은 주로 아내의 입을 통하여 전해 듣게 된다. 가끔씩 '지금과 같은 아들의 모습은 다시 오지 않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면 아쉬운 마음에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어진다. 무엇 때문에 사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최근에 아내에게 들었던 아들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기록해 둔다.
#1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식으로 딱 부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아들의 시큰둥한 대답에 번번이 짜증을 내곤 한다. 특히 시간에 쫓기는 아침이면 그 정도는 더하다. 가령 아들과 아내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게 마련이다.
"0 0 아, 밥 더 줄까?"
"아니, 괜찮아."
"괜찮아가 뭐야. 더 먹겠으면 더 달라고 하고, 그만 먹겠으면 안 먹는다고 하면 되지. 더 줘, 말어?"
그제서야 아들은 "그만 먹을래." 한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아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었나 보다.
"엄마가 그렇게 대답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래? 잊어먹었어?"
이 물음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음... 그렇게 말하면 매정한 느낌이 들어."
요즘도 아들은 괜찮아라고 답한다.
#2
아들은 요즘 체스 게임에 푹 빠져 있다.
체스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 실력이야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여기 저기서 줏어 들은 것이니 오죽하겠는가. 얼마 전에는 체스를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와 체스를 두었었나 보다. 결과는 모르긴 몰라도 처참했었겠지. 화가 난 아들은 친구와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었다고 했다. 그 이후 체스에 관련된 책을 사달라기에 <체스 교과서>라는 책을 사주었다. 아들은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와 체스 게임을 즐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험이 코앞인지라 아내는 아들에게 컴퓨터 그만 하고 수학 문제집도 풀고, 다른 과목도 복습을 좀 하라고 했나 보다. 아내가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은 갑자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더란다.
"엄마, 오늘 내가 처음으로 체스에서 컴퓨터를 이겼어!"
이에 아내가 "오늘?" 하고 재차 묻자 자신의 잘못을 감지한 아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더란다.
컴퓨터를 안 하고 문제집을 풀겠노라고 철썩같이 약속했는데 너무나 신이 나서 그만 깜박했었지 뭔가.
아내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더 이상 채근을 하지 않고 아들의 말을 들어주었더니 아들 왈,
"그래도 컴퓨터는 착한 것 같아. 졌는데도 '축하합니다.'라고 해."
#3
아들의 친구 중에 승주라는 아이가 있다.
밝고 활달한 성격인지라 친구들도 많은 아이다. 그런데 아이의 장난끼가 차고 넘쳐서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번번이 놀려대나 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그런 친구들이야 한 반에 한두 명쯤은 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남자 아이들에 비해 여학생들의 성장이 빠르니 힘으로나 덩치로나 남학생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아이는 여학생을 실컷 놀려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때마다 여학생에게 붙들려 맞는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놀려대고.
아내에게 아들이 말하기를,
"요즘은 남자가 놀리고 여자가 때리는 시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