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는 등꽃이 꽃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듯하다.  말하자면 이런 것, 만개한 꽃을 보는 사람들의 호들갑스러운 관심과 환호, 꽃과 함께 나누는 연인들의 밀어, 가족 나들이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 소리 내지는 특별하고 낯선 삶의 우울 등과 같은 것 말이다.

 

도시에서는 오히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벚꽃길이나 물감을 짙게 풀어 뿌려놓은 듯한 철쭉의 화단,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인도 옆의 화단, 그리고 무슨 박람회니 뭐니 해서 급작스럽게 옮겨 놓은 정체도 알 수 없는 꽃들이 사람들의 짧은 관심을 받고 스러질 뿐이다.

 

등꽃은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핀다.  옅은 보라색의 꽃잎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하얀 촛불을 켠 듯한 문양이 신비롭기만 하다.  자연의 색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등꽃은 그들 스스로 드러내지 않기에 짙은 선홍색의 철쭉이나 그보다 더 진한 붉은 빛을 띠는 영산홍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그늘이라곤 찾을 수 없는 도시 한복판에 작은 그늘을 만들고자 조성한 등나무의 용도는 도시인들에게 꽃으로서의 효용이나 관심은 숫제 없었던 듯 보인다.

 

변덕스러운 봄날씨에 구름이 끼고 비라도 흩뿌릴라치면 등꽃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찬란한 햇살 속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데 칙칙한 도시 배경에 가린 등꽃은 오죽할까.  보는 이의 가슴마저 우울하게 한다.  오직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되는 자본주의 악령은 도시의 등꽃에도 고스란히 옮겨진 듯 보인다.  사람들이 환호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일 리 없고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지 않으니 경제적 가치로는 제로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맘때가 되면 등꽃은 또 어김없이 피고 진다.

 

도시에서는 사람도 소리소문 없이 죽어가는데 하물며 꽃이 피고 지는 것쯤이야 대수일까마는 소리도 없이 피고 지는 등꽃을 보며 오늘은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쓴 낙서를 같이 적어본다.  약간의 쓸쓸함을 더하여.

 

   공원 벤치에서


침묵의 계절 겨울이 순례를 떠나는 날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해묵은 편지를 읽었다

처음과 끝이 맞닿은 어느 곳에서
가볍게 부유하던 너는 
기별도 없이 내게로 왔다

봄은 속삭이는 계절
소리치지 말 것
험한 얼굴로 인상쓰지 말 것
바람의 언어로 시를 쓰고
태양의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 오후를 방해하지 말 것
그렇게 숨죽이고 지켜볼 것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아련함이 흐르는 한낮

도시 저편에는 회색빛 게으름이 졸고
꽃이 피려는지
아이들 웃음이 맑다

봄은 속삭이는 계절

소리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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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딱히 정해진 것도 없으면서 은근한 기대와 달콤한 희망에 꽃망울처럼 한껏 들뜨게 되는 달이다.  5월은 게절적으로 봄에 속한다지만 봄과는 구별되는 달이기도 하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서 홀로 도도한 듯 보이는 5월에 새로 나온 책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슬로 라이프>의 작가 쓰지 신이치, '나무늘보 친구들'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NGO 활동에도 열심인 그가 여행 작가 김남희와 1년간 함께 걸으며 서로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 하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해 그리고 행복의 의미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책으로 엮었다니 정말 기대가 된다.  언젠가 나는 <슬로 라이프>를 읽고 리뷰를 썼었고, 쓰지 신이치의 생각에 공감했었다.  물론 김남희 여행 작가는 더없이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특히 그녀가 쓴 <인생 기출 문제집>은 지금도 가끔 꺼내어 읽는다.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 코엘료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드물지 싶다.  그의 신작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어쩌면 이 5월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의 글에 황중환 작가의 그림이 더해졌다니 공감 100%의 책이 되지 않을까?

 

 

 

 

 

 

 

 

 

 

조금 우울하고 생뚱맞은 선택일 수도 있다.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이병주와, 김윤식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 책을 주저없이 선택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했으리라.  진보와 보수가 극한적으로 대립했던 지난 대선과 보수 여당에 패배한 진보의 좌절, 그리고 개성공단의 폐쇄로 이어지는 남북한의 극한 대립, 어디 하나 마음 둘 데 없는 작금의 나에게 이 책은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든, 직업적으로 글을 쓰든 간에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누구나 힘든 시절이 있고, 그 시절을 글을 쓰는 일과 함께 견뎌낸 사람들의 경험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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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 6시 30분 

 

아침에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같습니다.

일정한 시각, 일정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죠.

오늘도 그랬습니다.

산의 능선에서 만나는 할머니와 그녀의 딸.

검은 선캡을 쓴 모습도 다른 날과 같았습니다.

오늘은 처음 보는 할아버지 한 분도 만났습니다.

자주색 생활한복에 중절모까지 갖춰 입은 폼세가 범상치 않습니다.

게다가 운동화는 벗어 한 손에 쥔 채 맨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엊그제 내린 비로 바닥은 촉촉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할머니 왈,

"길 닦아 놓으니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더니...

내가 지금껏 살아보니 속담 틀린 거 하나 없더라."

이 말에 딸은 옆에서 소리가 나도록 크게 웃었습니다.

 

#2 낮 12시 30분 

 

점심을 먹으러 자주 들르는 식당에 갔었습니다.

왁자한 분위기의 식당은 손님들로 만원이었죠.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마쳤을 즈음

내가 앉은 테이블의 바로 옆에는

부부 또는 연인인 듯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주문을 하고는

이내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주문한 식사가 나왔는데도 쉽게 게임을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들은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3 낮 1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봄비가 꽤나 요란하게 내렸습니다.

바람도 불고, 빗줄기도 굵고.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보도 위를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감기들텐데..' 생각했습니다.

분홍색 우산을 받쳐 든 어린 여학생이 인사를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쯤의 아주 어린 학생입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얼떨결에 어색한 인사를 합니다.

"그래, 안녕?"

아이는 그 길로 또 저만의 생각에 빠져듭니다.

길가의 풍경들에 이것저것 관심을 두면서.

어쩌면 '어린왕자'가 '어린공주'로

다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풍경일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항상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그들은 3인칭의 '그'와 '그녀'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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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로 지낸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런 처지이다 보니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소소한 일상은 주로 아내의 입을 통하여 전해 듣게 된다.  가끔씩 '지금과 같은 아들의 모습은 다시 오지 않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면 아쉬운 마음에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어진다.  무엇 때문에 사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최근에 아내에게 들었던 아들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기록해 둔다.

 

#1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식으로 딱 부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아들의 시큰둥한 대답에 번번이 짜증을 내곤 한다.  특히 시간에 쫓기는 아침이면 그 정도는 더하다.  가령 아들과 아내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게 마련이다. 

"0 0 아,  밥 더 줄까?"

"아니, 괜찮아."
"괜찮아가 뭐야.  더 먹겠으면 더 달라고 하고, 그만 먹겠으면 안 먹는다고 하면 되지.  더 줘, 말어?"

그제서야 아들은 "그만 먹을래." 한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아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었나 보다.

"엄마가 그렇게 대답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래?  잊어먹었어?"

이 물음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음...  그렇게 말하면 매정한 느낌이 들어."

요즘도 아들은 괜찮아라고 답한다.

 

#2 

아들은 요즘 체스 게임에 푹 빠져 있다.

체스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 실력이야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여기 저기서 줏어 들은 것이니 오죽하겠는가.  얼마 전에는 체스를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와 체스를 두었었나 보다.  결과는 모르긴 몰라도 처참했었겠지.  화가 난 아들은 친구와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었다고 했다.  그 이후 체스에 관련된 책을 사달라기에 <체스 교과서>라는 책을 사주었다.  아들은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와 체스 게임을 즐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험이 코앞인지라 아내는 아들에게 컴퓨터 그만 하고 수학 문제집도 풀고, 다른 과목도 복습을 좀 하라고 했나 보다.  아내가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은 갑자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더란다.

"엄마, 오늘 내가 처음으로 체스에서 컴퓨터를 이겼어!"

이에 아내가 "오늘?" 하고 재차 묻자 자신의 잘못을 감지한 아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더란다.

컴퓨터를 안 하고 문제집을 풀겠노라고 철썩같이 약속했는데 너무나 신이 나서 그만 깜박했었지 뭔가.

아내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더 이상 채근을 하지 않고 아들의 말을 들어주었더니 아들 왈,

"그래도 컴퓨터는 착한 것 같아.  졌는데도 '축하합니다.'라고 해."

 

#3

아들의 친구 중에 승주라는 아이가 있다.

밝고 활달한 성격인지라 친구들도 많은 아이다.  그런데 아이의 장난끼가 차고 넘쳐서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번번이 놀려대나 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그런 친구들이야 한 반에 한두 명쯤은 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남자 아이들에 비해 여학생들의 성장이 빠르니 힘으로나 덩치로나 남학생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아이는 여학생을 실컷 놀려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때마다 여학생에게 붙들려 맞는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놀려대고.

아내에게 아들이 말하기를,

"요즘은 남자가 놀리고 여자가 때리는 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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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아침 운동을 나서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밤새 뭔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주차해 놓은 차량의 유리에는 온통 알 수 없는 무늬들이 얼룩져 있었다.  잠들기 전, 그러니까 자정이 넘은 시각에 잠시 외출을 했던 나는 그 시각까지 하늘에선 그 어떤 것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내가 잠들었던 새벽녘의 짧은 시간 동안 비인지, 눈인지, 그 중간쯤의 어떤 것이었는지가 소리도 없이 내렸다는  얘기다.

 

산을 오르는 입구에는 침목을 박아 놓은 계단이 있다.  그 계단 위도 하얗게 얼어 붙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산의 중턱에 있는 묏등에도, 낙엽이 쌓인 숲 언저리에도 비인지, 눈인지, 중간쯤의 그 무엇인지가 하얗게 쌓여 있었다.  4월이라는 날짜 관념이 무색해졌다.  분홍빛 진달래의 눈인사도 오늘따라 차갑기 그지없다.  산에는 이제 제법 나뭇잎 티가 나는 새순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치장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좁쌀만한 새순이 겨우 움을 틔웠었는데...  끝내 닭이 되지 않을 듯하던 병아리들이 어느새 중닭이 되어 나타나 어미닭 흉내를 내는 것처럼 뾰족한 새순은 어느새 그럴 듯한 나뭇잎이 되었다.

 

산의 능선에 있는 운동 기구와 나무 의자도 온통 얼어 있다.  윗몸일으키키대도, 철봉도, 평행봉도...  결국 나는 조금 더 걷기로 한다.  이렇게 오래도록 걷는 날에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것들이 떠오르곤 한다.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삶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슬픔 뿐이야.  기쁜 일,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시답잖은 일들은 그저 삶의 양념에 불과해.  그런 것들은 쉬이 잊혀질 뿐더러 오래 기억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해.  우리가 삶의 경험에서 삼키는 것은 오직 슬픔 뿐인 셈이지.  그래서 우리는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눈물을 흘리는 거야.  처음과 끝을 슬픔으로 채우는 것은 중간 과정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고 볼 수 있지."

 

산을 내려올 때는 이미 해가 저만치 떠 있었다.  우듬지에서 녹은 물이 '후두둑 후두둑' 비처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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