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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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판을 가지고 있는 그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다시 듣기 위해서였다. 사실 읽었던 내용이 너무 빨리 기억에서 가물거리며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다시 읽은 조르바는 그때와 좀 다르게 다가온 느낌이 난다. 나는 [어린왕자]를 몇 년에 한 번씩 읽고 있는데 간혹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다시 읽는 책을 만날 때의 여운은 남다른 것 같다.

 

오래전에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는 상스러운 남자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참 몰염치에 아는 척 많이 하고 남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노인네라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다시 읽은 조르바는 안쓰럽고 불쌍하고 측은하기까지 했다. 젊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늙는 다는 것의 기분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는 조르바의 여성편력까지도 그저 이해가 되어 버렸다.

 

주인공 ‘나’는 크레타 섬으로 가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조르바를 만나고 너무나 거침없는 조르바는 자신의 살아온 세월의 얘기를 해댄다. 그리고 나와 함께 폐광에서 다시 금맥을 찾아보기로 한다. 나는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 조르바와 함께 지내는 섬 생활이 계속 되면서 섬에서 그가 원했던 사업은 그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하고 모든 돈도 잃고 조르바와 헤어지는 이야기다. 내용은 참 간단한데 초반부의 조르바를 얘기해주는 부분이 사실 좀 지루하리만치 길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P22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자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은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P 99

 

 

일자무식이지만 세상의 이치로 지혜를 배운 조르바는 책만 읽는 주인공을 참 답답하게 생각하지만 그와 나운 대화속의 우정은 후반부에 갈수록 애틋해졌다. 남자들의 우정은 이런 것일까 궁금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 초반부터 삐걱거렸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의 애증은 애틋하기까지 했다. 마지막 조르바가 나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을 때는 그 마음의 깊음이 더 가중되었다.

 

 

여성편력이 심했던 조르바의 나이가 그때 60대였음에도 지치지 않은 정력을 지닌 그가 여자는 늘 자기 운명을 슬퍼하는 동물이라는 대사에 그가 그동안 겪어온 여자들이 어떤 여자들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가 만난 여자들은 그의 인생이 투영된 여자들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모든 여자들을 운명을 슬퍼하는 동물이라는 대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열린책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다시 개정되어 나오면서 번역도 다시 개정이 된것 같다. 사실 나는 이윤기님의 [그리스인 조르바]밖에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번역이 훨씬 좋은지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벗어나면서 다시 다듬어진 책이 반가운 것인가 생각을 해 봤다. 언어는 세월의 흐름을 타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수정해 주는 부분이 나쁜 것일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때문에 더욱더 그리스에 대한 열망이 가해졌다. 그의 묘비명에 적혀있다는 그 문장을 보고 싶어졌다.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죽는 순간까지 자유였던 두 사람의 모습이 어른거릴 것 같다. 10년 후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또 읽게 된다면 그때는 조르바가 어떤 사람으로 느껴질까. 10년 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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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매 - 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김세나 옮김 / 북로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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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서 있는 사람은 없고 모두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던 오후 한 낮이었다. 무심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다가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그 사람도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기사를 검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잠을 자는 어르신 한분 빼고 젊은 사람들은 모두 스마트폰 기사 검색, 게임에 열중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며 요즘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은 모습인것 같았다. 그전에는 지하철은 책 읽기 참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책을 읽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앉아 있거나 서서 가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흔한 일이 되었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인한 시간 낭비가 사실 나도 상당량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말에는 되도록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주말에 읽을 책을 책상에 올려 놓고 목표량을 한번 채워 읽어 보겠다는 결심으로 진행해보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핸드폰이 있기 전 호출기 일명 “삐삐”였을 때는 수첩에 적은 지인들의 번호보다 외우는 번호가 훨씬 많았는데 요즘에는 핸드폰 번호가 가운데 네 자리로 변경 되면서 외우는 변호조차 거의 없어져 버렸다. 갈수록 기계가 좋아지고 있으니 머리를 쓰는 일은 거의 없어진다고 할까.

 

 

[디지털 치매]는 우리가 좋아지는 환경이라지만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브레이크 없는 디지털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노희경의 드라마에서 배종옥은 엄마에게 절대 치매는 걸리지 말라고 신신방부 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이름도 잃어버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마저 기억하지 못하고 뇌가 점점 쪼그라드는 병에 걸려서 주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본인이 걸리고 싶어서 걸리겠는가. 치매는 모든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는 병이다. 디지털 시대에 웬 치매인가 싶겠지만 책을 읽으면 소름끼치도록 나의 일상이 너무 까발려진 것 같아 부끄러운 대목들이 너무 많아 놀라고 만다.

 

 

우리의 뇌는 사용 할수록 점점 좋아진다고 하는데 노의 기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 뇌를 사용하면 특수한 능력에 사용되는 해당 부위가 성장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뇌는 주요한 측면에서 볼 때 마치 근육과 같이 기능한다. 근육은 사용하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한다.”P44

 

 

글쓰기를 할 때도 가끔 나는 복사 + 붙이기를 해서 편집 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것들이 습관이 되어서 가끔 책의 내용을 옮겨 적을 때도 이 방법을 쓰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이런 부분들도 뇌를 사용하는 기능을 멈추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 가깜 어떤 요령을 누군가 발견하고 그런 부분을 전파하면 천재라고 좋아하면서 따라했었는데 그것은 나를 점점 더 바보로 만들었던 행동은 아니었을까 후회가 된다.

 

 

“뇌는 상세한 정보들을 처리하기 위해, 바꿔 말해 어떤 일이 일어났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유익한지 해로운지 혹은 이런 것들로 인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기존의 지식들을 활용한다.”P80

 

 

이미 많은 청소년들 또한 인터넷의 중독되어 있다는 조사에 따른 심각한 부장용들을 설명한다. 그중에 인터넷의 중독으로 인해 움직이지 않고 점점더 비만화 되는 사회가 일어나는 것 또한 인터넷 중독의 피해가 되겠다.

 

 

“로이 피의 연구는 이와 달랐다. 8~12세 여학생들의 경우,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와 실제 소셜네트워크 사이게 부정적인 상관관계가 있었다. 온라인 친구가 많은 여학생들은 실제 친구가 적었다. 결국 페이스북 친구들은 실제 친구들을 포기한 대신에 얻은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P144

 

 

"인터넷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사회적 행동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연구 자료가 최근 제시되고 있다. 그 결과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가늠이 힘들지만, 분명 생각해봐야 할 점은 있다. 지금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P147

 

 

일정부분 공감하는 부분이 참 많다. 우리는 가상의 공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터득하기 시작한 사람은 반드시 실제 세상과 맞닥뜨려야 한다. (P206)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의 뇌를 덜 이용하게 하고 결국 시간이 갈수록 노의 능력이 감소하게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에는 뇌의 형성도 방해한다. 그래서 이들의 정신적인 능력이 원래 발전 할 수 있는 수준보다 처음부터 낮게 머무를 수밖에 없다. (P377)

 

 

디지털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한 몇 가지 실용적인 팁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다.

 

 

“돈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해보겠다. 돈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건강하게도 만들지 않는다. 돈에 대한 생각은 욕심과 고독을 낳는다. 그리고 단신이 돈을 꼭 지출하고자 한다면, 사건에 대해 지출을 하되, 사물에 대해서는 지출하지는 마라. 사물은 낡고 녹슬게 되며, 공간을 필요로 하고, 먼지를 뒤집어쓰게 되어 있다. 사물은 언제나 점점 더 번거로운 짐이 되고, 우리를 아리로 이끌고 내려간다. 사건의 경우에는 이와 정반대다. 사건은 오래될수록 우리에게 점점 더 긍정적인 것처럼 비추어진다. 사건은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되고, 우리의 일부가 된다. 심지어 우리가 치매에 걸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치매에 걸리면 사물은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P348

 

 

 

내가 여행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부분도 이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풀플래임 카메라를 가지고 싶고 좋은 배경을 찍을 수 있는 광각렌즈만 있다면 물욕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뜬금없이 동생이 산 BMW의 승차감에 반해 차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사고 싶은 마음보다 그 돈으로 유럽을 몇 번 더 갔다 오고, 혹은 한 달은 산토리니에 베네치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많다.

몸을 움직이고 디지털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머리를 쓰기로 했다. 비록 지금 그렇게 쓴다고 해서 아인슈타인이 되지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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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 -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끝까지 지켜야 할 인생 키워드 35가지
가와기타 요시노리 지음, 이정환 옮김 / 예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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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부분으로 이직을 한번 했었던 그때 가장 걸렸던 부분이 나이었다. 이 나이에 그냥 있었던 자리에서 조금만 더 참으면서 살면 될 것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직을 했을까. 첫 출근을 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이런 생각이 많았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해도 나는 좀처럼 쉽게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만 생각할 뿐 그 순간의 자리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같이 시작한 그 자리에 있었던 동기들이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조금 창피한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지난 직장에서의 지위와 경력이 아쉽기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이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했었던 이직이 지금은 참 소중한 나의 자신이고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 책은 나와 같은 늦은 나이에 이직을 하려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다독이는 그런 책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과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지침서 같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1935년생의 나이 지긋한 남성분이 쓰신 책이기 때문에 사실 여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좀 많다는 것과 무엇보다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이것은 지켜야 해, 이것은 버려도 괜찮다고 말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가감해서 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 나는 이분이 쓴 책 내용을 읽으면서 깜짝 놀란 것이 세대차이다. 아마도 나는 아직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을 인생을 살아보니 참 중요한 것이라고 느끼시는걸 보면 내가 철이 덜든 어른인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 기억해야 할 9가지를 볼 수 있다. 이것에 관련한 단어들은 과거, 여유, 자존심, 대인관계, 돈에 대한 집착, 증오, 습관, 욕망, 호기심과 같은 단어들이다. 그간 읽었던 무수한 자기 계발서들과 조금 차이가 있는 단어들에 혹해서 읽었던 것들도 있다.

 

과거의 대한 부분들에 대해서 역시 인생의 고수는 좀 다른 것인가. 나는 유독 과거의 일들을 너무 잘 기억하며 산다. 시간이 지날수록 옛날 기억들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잊지 않는 일들이 되어서 괴로울 때가 많다. 살아가면서 잊는데 고수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에 가슴이 턱 막혔다. 나는 너무 많은 기억을 하며 살고 있다. 지난날의 그 어떤 상처를 지우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미래로 나아가는 일이 절름발이인 것이다.

 

 

“돌아보지 마라, 돌아보지 마라, 뒤에는 꿈이 없다.” P20

 

 

 

어느 날 선배를 만났더니 그 선배가 그날 있었던 자리의 음식을 계속 사셨다. 나중엔 우리가 돈을 각출해서 내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이번은 너희가 사라고 하셨다. 책을 읽으셨는데 그 책에 나이를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했다는 말에 충격정도는 아니고 나름 반성을 하셨다고 하셨다. 사실 그 얘기에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을 하지만 주머니 사정에 맞게 열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인데 가끔은 그것을 악용하여 무조건 얻어먹으려는 후배들을 만날 때 가장 괴롭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이런 문장을 알려줘야 하는 것일까.

 

 

여유의 부분에서 지잡이 든든해야 여유도 생긴다는 말에 절대적 공감을 한다. 내가 좀 여유가 있어야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남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여러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겠지만 [혼자 놀기의 장점을 잊지 말자]의 부분은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부부가 매일 같이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있다면 한 번의 주말은 남편이 아이를 돌보며 아내는 자신만의 주말 산책에 나가게 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만들어줘서 서로의 시간, 서로의 공간을 만들어서 나름의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와 같이 너무 잦은 각자의 시간은 곤란하겠다.

 

 

두 번째 매력적인 인생을 위해 기억해야 할 9가지에서는 상승 지향성, 멋, 목표, 의협심, 과시, 색기, 우정, 존경, 색욕에 관련된 얘기들이 펼쳐진다.

 

 

“나이는 멋을 버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 ‘멋’은 매력 있는 어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물론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되어야하지만, 우선 몸가짐에 충분히 신경을 써야 한다.”P77

 

 

그레이 톤의 슈트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고궁을 산책 나온 노신사 분을 본 기억이 난다. 정말 나이를 먹어도 저렇게 멋진 차림으로 산책을 나오는 그분이 어찌나 멋지던지. 젊음은 젊음에 맞게 움직이면 되지만 역시 나이가 주는 데커레이션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그것을 이용한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가장 잘 못하는 것이 포기였다. 그렇다고 지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적당하게 지탱하고 떨어져야 할 부분을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내게 이런 이것은 하지 말고, 이것은 하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때가 있는데 주입식 교육이 주는 병폐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닐까. 포기해야 하는 적당한 타이밍을 간파하는 능력이 ‘손절매’ 라는 주식용어가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나의 결단력을 습득하는 어떤 경험들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세 번째 능력 있는 인생을 위해 기억해야 할 9가지의 부분에서는 결단력에 관련한 부분을 빼고 나머지는 사실 공감 실패한 부분이다. 성공체험, 결단력, 도전정신, 직함, 질투, 인색, 젊음, 인맥, 아부와 관련된 단어의 지침들은 작가만이 가진 경험적 재산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같이 공감하기에는 시대적 흐름이 좀 바뀐 부분을 얘기해 드리고 싶었다.

 

 

네 번째 품위있는 인생을 위해 기억해야 할 8가지 중에서 품격은 천박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가끔 성질에 못 이겨 얘기 할 때가 있었는데 뜨끔했다. 그 모습이 어찌 보면 천박해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행동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의리는 바로바로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의리 때문에 배신당했던 일들은 어찌할지. 인정, 보답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인정이라면 그렇다면 의리에 대한 배신을 이렇게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수치심, 향학열, 부모의 마음, 노파심, 꿈이 마지막 단어였는데 뒷부분은 나이든 사람이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인생의 경험적인 부분이 많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가 한창 유행일 때가 있었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었다고 이것은 못하는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들이 많이 깨지고 있다. 그것을 떠나서 점점 나이 한 살씩 꼬박꼬박 먹고 있다 보니 가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이 나이에 내가 이걸 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지극히 들 때가 많았는데 그런 부분을 반성을 좀 했다. 앞으로 내가 얼마큼 살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나이에 맞게 긍정적으로 삶을 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러니까 멋지게 끝까지 살다가 쿨하고 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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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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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느날 나에게 소중했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했던 공간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정말로 빈 쓰레기 하나 없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달팽이 식당]의 린코가 그렇다. 3년을 같이 살았던 인도에서 온 구릿빛 피부의 그 남자는 그녀와 함께 살았던 모든 가전제품, 냉장고의 식료품, 첫 월급을 타고 산 르쿠르제 냄비, 교토의 젓가락 전문점에서 산 젓가락, 삼베 앞치마, 가지 자갈 절임을 만들 때 빼놓을 수 없는 굵은 자갈, 프라이팬, 밥그릇, 토스터기, 크고 작은 가재도구까지 모든 부엌 살림모두와 꼬박 꼬박 모아 두었던 돈 다발까지 가지고 사라졌다. 다만 수년 전 할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놓았던 겨된장 야채 절임이 든 항아리만 구석진 곳에 있어 못 찾았는지 그것만 덩그러니 숨어 있을 뿐 모든 것이 처음 집에 들어 왔을 때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 초기화 시켜 바탕 화면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린코는 텅 빈 집안에서 아무것도 모든 것을 다 들고 사라져버린 연인이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아파트를 나와 자신이 십여 년 전에 떠나왔던 고향집으로 향하기로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달팽이 식당]의 처음 읽으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고 무엇보다 부엌 집기들을 대하는 작가의 소소한 설명이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읽으면서도 즐거워지는 앞부분이었다. 이 소설은 마치 여성들을 위한 팬시 상품인격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십여 년전 어머니를 뒤로하고 떠나서 홀로 모진 세월을 견디며 있었던 도쿄를 떠나는 결정적은 이유를 만들어준것까진 참 좋았는데 이유가 없다.

 

그녀의 인도 연인은 왜 모든 것을 들고 혼자 이사를 했을까? 소설을 읽어도 그녀는 그에 대한 애틋함만 있을 뿐 도무지 그 이유를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나랑 같이 살고 있는 남자가 내 물건을 모두 들고 이사를 가버렸는데, 그것도 가게를 차리려고 모아 둔 그 눈물겨운 돈마저 다 가져 가버렸는데 왜 신고도 하지 않고, 그가 있었던 식당도 한번 들려 보지 않고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고향으로 향하냔 말이다. 그것도 10년 동안 한 번도 연락도 안한 엄마에게 말이다.

 

이 책에는 큰 것들에 대한 것은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인생이랑 이유 따윈 필요 없이 흘러갈 때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그녀의 애인이 떠난 이유를 알 수 없듯, 그녀가 왜 10년 전에 혼자 있는 엄마를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왔는지 그런 이유는 필요가 없다. 애인과 자신의 온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것처럼 잃어버렸는데도 그녀는 침착하게 눈물을 흘리며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그런 충격적인 일을 겪어서였는지 그녀는 목소리도 잃어버렸다. 보통은 이럴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병원도 가보고 치료도 해 볼 텐데 그녀는 그럴 돈이 없다. 너무나 애틋했던 애인님이 모두 다 가져가 버리지 않았던가

.

그녀는 목소리까지 나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목소리 따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그대로 전수 받은 요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나는 뭐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요리라는 강력한 아군이 있다.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과 마찬가지로 요리를 만드는 일이 내 생명을 지탱해 준다. 목소리는 요리에 필요 없는 기능이다.” P148

 

 

교향으로 돌아온 린코는 목소리도 전 재산도 잃고 (목소리는 언젠가 나올...뭐 그런 이유를 가지고 있을 테고) 그리고 그녀의 레시피 북들마저 모조리 사라졌지만 그녀의 손맛은 그대로 였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요리밖에 없었다.

 

그녀의 엄마가 하는 음식점 옆 작은 창고를 개조하여 마련한 그 식당의 이름이 [달팽이 식당]인 것이다. 그 식당에서 그녀는 흔한 요리가 아닌 오로지 한 사람만 받는 그런 식당을 차렸다. 참 멋진 아이템이다. 몇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라 미리 음식을 먹을 사람의 성격, 주변 환경도 포함한 프로필을 접수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어울릴 그런 음식을 만들어 준다니. 이런 멋진 식당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루에 한 사람 혹은 시간 오전, 오후를 나누어 많아야 두 사람을 받을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한다면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린코는 그런 식당을 열었다.

 

 

 

. 개다래나무주(酒)를 사용한 칵테일.

. 사과 겨된장절임

. 굴과 옥돔 카르파초

. 토종닭을 통째로 푹 고운 삼계탕

. 햅쌀을 이용한 가라스미 리조트

. 새끼 양고기 구이와 야생 버섯의 갈릭 소테

. 유자 셔벗

.마스카르포네 티라미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서

. 진하게 끓인 에스프레소 커피.

 

 

 

 

이것이 린코가 처음 대접했던 손님의 식사 리스트였다. 주문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전달 받고 그 사람을 위한 소울 푸드인 셈이다. 처음 식당을 찾은 그 사람도 이 음식을 먹고 마음을 치유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소설속의 내용이기 때문에 당연히 작가가 그렇게 써 놓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읽는 동안 정말로 진정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나의 마음을 읽고 나를 위한 공간에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음식을 하루 종일 만들며 차려준 식탁을 받는다면 마음이 요동칠 것 같다.

 

 

그녀의 식당이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을 치유할 그런 음식이 있기는 한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그런 음식이 놓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고 혼자 살며 상복만 입고 있는 할머니, 사랑을 이뤄지고 싶어 하는 고등학생, 딸을 데리고 나간 아르헨티나 아내를 기다리는 구마씨, 그리고 거식증에 걸린 토끼까지 달팽이 식당을 찾아와 마음의 치유를 받아 돌아간다. 음식을 통한 린코의 마음이 힐링이 된 것이다.

 

가끔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삼거나 치유하고 싶을 때 힐링이 되는 것들을 찾는다. 여행이 될 수 있고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것도 있고 등산을 하며 산을 오른 뒤 멀리 보이는 작아진 세상을 보며 힐링 할때도 있지만 이렇게 음식을 놓고 마음을 치유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소설의 엔딩은 사실 좀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며 그녀의 어머니의 갑작스런 안녕도 너무 벼락같이 떨어지는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사랑스러운 소설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크게 해될 것이 없는 것이 책을 읽고 나면 린코가 해준 나만의 요리를 먹은 기분이 든다.

 

 

작가의 [초초난난]을 읽기위해 초기작을 뒤져 읽었는데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 너무 궁금해진다. 가끔은 참 고민 없이 넘어가는 일본 소설이 좋을 때가 있기는 한데, 요즘 일본 소설이나 일본 드라마도 왜 그토록 다들 고민이 없을까 좀 아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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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달의 제단에 누가 오르고 있는 것일까.

 

심윤경의 두 번째 소설을 읽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그녀가 너무 좋아졌다. 그녀의 책은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프로필을 살피는데 그동안 그녀는 단편보다 장편을 훨씬 많이 쓴 작가이고 그나마 장편도 5권에 불과하다. 단편은 읽어보지 못해 그녀의 단편속의 문장은 어떻다고 말하기 힘들겠지만 그녀의 책 두 권밖에 아직 못 읽어봤지만 그녀의 단단한 문장력에 반하였다. 왜 그동안 이런 작가를 못 알아 봤을까 후회스럽다.

 

[달의 제단]은 KBS에서 단막으로 한번 방송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단막 드라마와는 인연을 끊었더니 못 보았다. 오히려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인 책이다. 만약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봤다면 상룡과 정실의 얘기에 가슴이 출렁거리지 않았을 것 같다.

 

상룡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안 계신 어느 집안의 종손이다. 그는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가 있었던 집으로 들어가 웃음 한 번 흘리지 않는 할아버지와 함께 종손으로서 집안을 일궈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도 없지만 상룡은 서자였다.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이었지만 자신을 지켜줄 아버지도 없고 자신을 처음과 끝을 늘 같게 쳐다보았던 첫째부인의 관심 밖에 있으며 살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룡은 늘 기가 죽어 있다. 그런 자신이 종손이 되고 하기 싫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그 일들에 늘 가슴이 답답했었다. 그런 상룡에게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안의 근간을 알 수 있는 언간을 해석 할것을 명받는다. 하지만 그 언간은 해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집안을 그나마 상룡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석을 하면 할수록 집안의 소문과 허물만 밝혀질 뿐이었다. 이것을 고스란히 해석을 해서 상룡은 늘 할아버지의 화를 돋울 뿐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 쇠락 할대로 쇠락한 효계당을 오늘날처럼 융성하게 만든 사람이 아니던가. 할아버지의 자본력과 귀적적인 취향으로 인해 절대 할아버지를 따라올 사람이 없지 않던가. 그런 할아버지에게 기죽어 살다가 유일하게 기를 펼 때는 언간을 해석할 때뿐인 상룡은 숨통이 늘 비좁고 괴롭다.

이런 상룡에게 가슴의 시원한 봄바람을 불어주는 이가 그 집 몸종이나 다름없는 달시룻댁 딸 정실이었다. 그동안 육중한 몸매, 즉 80키로가 넘는 몸과 불편한 다리, 그리고 어딜 가도 저렇게 못생긴 애는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며 처다 보지 않았던 박색인 정실과 상룡은 처음으로 정사를 나눈다.

 

처음에는 상룡도 그저 정실의 몸이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뚱뚱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그런 몸인 줄만 알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동안 서자의 슬픔으로 어머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한 세월의 서글픔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죽어버린 아버지의 자실로 괴로웠던 상룡의 온 마음과 정신을 품어주었다.

 

[달의 제단]의 내용은 사실 간단하다. 상룡의 얘기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속에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된다. 상룡이 풀이해야 할 언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상룡이 풀어야 하는 언간을 같이 마주 앉아 읽는 것이 처음에는 굉장히 괴로웠다. 내가 한참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이 작가가 대체 왜 이 언간을 작품 중간 중간 놓으며 몰입을 방해를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언간을 안 읽을 수가 없다. 중간쯤 가서야 그 어려운 언간의 내용이 들어왔다. 풀이하던 상룡도 어쩜 나와 같지 않았을까.

 

가문의 정통을 이어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상룡은 정통의 자녀가 아닌 서자의 몸이라서 늘 할아버지에게 죄스러운 몸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런 상룡에게 이 언간 풀이는 어쩌면 할아버지가 올곧게 믿고 있는 조씨 집안의 정통을 모두 깨트리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붉은 화염 속으로 떠나보낸 정실과 그간 자신이 믿어왔던 어떤 사랑에 대한 통곡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모습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달의 제단]속에 있는 인물들은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인물들만 보인다. 주인공 상룡도 그렇다. 그 주인공 밖에 있는 정실은 그렇지 않다. 정실만 부족한 정신을 챙기며 모든 인물들을 품으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정실의 마지막 행방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화염으로 사라졌지만 아마도 자신의 아이를 낳고 다시 돌아와 달의 제단에 자신의 아이를 올려놓고 새롭게 시작할 인물도 정실인 것이다.

 

정신이 부족한 정실 때문에 그동안 마을 남자들이 정실을 농간했던 장면들이 나올 때 마음이 아팠다. 어딜 가든 수컷들의 행동은 다르지 않다. 그것 때문에 상룡도 정실에게 화를 냈지만 그도 처음엔 동네 수컷들과 다르지 않았는데 어쩌겠는가.

 

심윤경의 [달의 제단]을 통해 그녀의 탄탄한 문장과 구성에 또 한 번 감동한다. 그녀의 작품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장편만 쓰고 계시는 것 같아 좀 섭섭한 기분마저 든다. 그녀의 최근작이 나온 것을 보니 그래도 글은 계속 쓰고 계시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작가는 어쩌면 쓰지 않고 못살 것 같은 천형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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