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달의 제단에 누가 오르고 있는 것일까.

 

심윤경의 두 번째 소설을 읽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그녀가 너무 좋아졌다. 그녀의 책은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프로필을 살피는데 그동안 그녀는 단편보다 장편을 훨씬 많이 쓴 작가이고 그나마 장편도 5권에 불과하다. 단편은 읽어보지 못해 그녀의 단편속의 문장은 어떻다고 말하기 힘들겠지만 그녀의 책 두 권밖에 아직 못 읽어봤지만 그녀의 단단한 문장력에 반하였다. 왜 그동안 이런 작가를 못 알아 봤을까 후회스럽다.

 

[달의 제단]은 KBS에서 단막으로 한번 방송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단막 드라마와는 인연을 끊었더니 못 보았다. 오히려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인 책이다. 만약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봤다면 상룡과 정실의 얘기에 가슴이 출렁거리지 않았을 것 같다.

 

상룡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안 계신 어느 집안의 종손이다. 그는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가 있었던 집으로 들어가 웃음 한 번 흘리지 않는 할아버지와 함께 종손으로서 집안을 일궈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도 없지만 상룡은 서자였다.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이었지만 자신을 지켜줄 아버지도 없고 자신을 처음과 끝을 늘 같게 쳐다보았던 첫째부인의 관심 밖에 있으며 살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룡은 늘 기가 죽어 있다. 그런 자신이 종손이 되고 하기 싫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그 일들에 늘 가슴이 답답했었다. 그런 상룡에게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안의 근간을 알 수 있는 언간을 해석 할것을 명받는다. 하지만 그 언간은 해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집안을 그나마 상룡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석을 하면 할수록 집안의 소문과 허물만 밝혀질 뿐이었다. 이것을 고스란히 해석을 해서 상룡은 늘 할아버지의 화를 돋울 뿐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 쇠락 할대로 쇠락한 효계당을 오늘날처럼 융성하게 만든 사람이 아니던가. 할아버지의 자본력과 귀적적인 취향으로 인해 절대 할아버지를 따라올 사람이 없지 않던가. 그런 할아버지에게 기죽어 살다가 유일하게 기를 펼 때는 언간을 해석할 때뿐인 상룡은 숨통이 늘 비좁고 괴롭다.

이런 상룡에게 가슴의 시원한 봄바람을 불어주는 이가 그 집 몸종이나 다름없는 달시룻댁 딸 정실이었다. 그동안 육중한 몸매, 즉 80키로가 넘는 몸과 불편한 다리, 그리고 어딜 가도 저렇게 못생긴 애는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며 처다 보지 않았던 박색인 정실과 상룡은 처음으로 정사를 나눈다.

 

처음에는 상룡도 그저 정실의 몸이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뚱뚱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그런 몸인 줄만 알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동안 서자의 슬픔으로 어머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한 세월의 서글픔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죽어버린 아버지의 자실로 괴로웠던 상룡의 온 마음과 정신을 품어주었다.

 

[달의 제단]의 내용은 사실 간단하다. 상룡의 얘기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속에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된다. 상룡이 풀이해야 할 언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상룡이 풀어야 하는 언간을 같이 마주 앉아 읽는 것이 처음에는 굉장히 괴로웠다. 내가 한참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이 작가가 대체 왜 이 언간을 작품 중간 중간 놓으며 몰입을 방해를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언간을 안 읽을 수가 없다. 중간쯤 가서야 그 어려운 언간의 내용이 들어왔다. 풀이하던 상룡도 어쩜 나와 같지 않았을까.

 

가문의 정통을 이어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상룡은 정통의 자녀가 아닌 서자의 몸이라서 늘 할아버지에게 죄스러운 몸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런 상룡에게 이 언간 풀이는 어쩌면 할아버지가 올곧게 믿고 있는 조씨 집안의 정통을 모두 깨트리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붉은 화염 속으로 떠나보낸 정실과 그간 자신이 믿어왔던 어떤 사랑에 대한 통곡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모습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달의 제단]속에 있는 인물들은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인물들만 보인다. 주인공 상룡도 그렇다. 그 주인공 밖에 있는 정실은 그렇지 않다. 정실만 부족한 정신을 챙기며 모든 인물들을 품으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정실의 마지막 행방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화염으로 사라졌지만 아마도 자신의 아이를 낳고 다시 돌아와 달의 제단에 자신의 아이를 올려놓고 새롭게 시작할 인물도 정실인 것이다.

 

정신이 부족한 정실 때문에 그동안 마을 남자들이 정실을 농간했던 장면들이 나올 때 마음이 아팠다. 어딜 가든 수컷들의 행동은 다르지 않다. 그것 때문에 상룡도 정실에게 화를 냈지만 그도 처음엔 동네 수컷들과 다르지 않았는데 어쩌겠는가.

 

심윤경의 [달의 제단]을 통해 그녀의 탄탄한 문장과 구성에 또 한 번 감동한다. 그녀의 작품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장편만 쓰고 계시는 것 같아 좀 섭섭한 기분마저 든다. 그녀의 최근작이 나온 것을 보니 그래도 글은 계속 쓰고 계시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작가는 어쩌면 쓰지 않고 못살 것 같은 천형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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