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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나에게 소중했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했던 공간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정말로 빈 쓰레기 하나 없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달팽이 식당]의 린코가 그렇다. 3년을 같이 살았던 인도에서 온 구릿빛 피부의 그 남자는 그녀와 함께 살았던 모든 가전제품, 냉장고의 식료품, 첫 월급을 타고 산 르쿠르제 냄비, 교토의 젓가락 전문점에서 산 젓가락, 삼베 앞치마, 가지 자갈 절임을 만들 때 빼놓을 수 없는 굵은 자갈, 프라이팬, 밥그릇, 토스터기, 크고 작은 가재도구까지 모든 부엌 살림모두와 꼬박 꼬박 모아 두었던 돈 다발까지 가지고 사라졌다. 다만 수년 전 할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놓았던 겨된장 야채 절임이 든 항아리만 구석진 곳에 있어 못 찾았는지 그것만 덩그러니 숨어 있을 뿐 모든 것이 처음 집에 들어 왔을 때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 초기화 시켜 바탕 화면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린코는 텅 빈 집안에서 아무것도 모든 것을 다 들고 사라져버린 연인이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아파트를 나와 자신이 십여 년 전에 떠나왔던 고향집으로 향하기로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달팽이 식당]의 처음 읽으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고 무엇보다 부엌 집기들을 대하는 작가의 소소한 설명이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읽으면서도 즐거워지는 앞부분이었다. 이 소설은 마치 여성들을 위한 팬시 상품인격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십여 년전 어머니를 뒤로하고 떠나서 홀로 모진 세월을 견디며 있었던 도쿄를 떠나는 결정적은 이유를 만들어준것까진 참 좋았는데 이유가 없다.
그녀의 인도 연인은 왜 모든 것을 들고 혼자 이사를 했을까? 소설을 읽어도 그녀는 그에 대한 애틋함만 있을 뿐 도무지 그 이유를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나랑 같이 살고 있는 남자가 내 물건을 모두 들고 이사를 가버렸는데, 그것도 가게를 차리려고 모아 둔 그 눈물겨운 돈마저 다 가져 가버렸는데 왜 신고도 하지 않고, 그가 있었던 식당도 한번 들려 보지 않고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고향으로 향하냔 말이다. 그것도 10년 동안 한 번도 연락도 안한 엄마에게 말이다.
이 책에는 큰 것들에 대한 것은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인생이랑 이유 따윈 필요 없이 흘러갈 때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그녀의 애인이 떠난 이유를 알 수 없듯, 그녀가 왜 10년 전에 혼자 있는 엄마를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왔는지 그런 이유는 필요가 없다. 애인과 자신의 온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것처럼 잃어버렸는데도 그녀는 침착하게 눈물을 흘리며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그런 충격적인 일을 겪어서였는지 그녀는 목소리도 잃어버렸다. 보통은 이럴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병원도 가보고 치료도 해 볼 텐데 그녀는 그럴 돈이 없다. 너무나 애틋했던 애인님이 모두 다 가져가 버리지 않았던가
.
그녀는 목소리까지 나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목소리 따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그대로 전수 받은 요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나는 뭐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요리라는 강력한 아군이 있다.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과 마찬가지로 요리를 만드는 일이 내 생명을 지탱해 준다. 목소리는 요리에 필요 없는 기능이다.” P148
교향으로 돌아온 린코는 목소리도 전 재산도 잃고 (목소리는 언젠가 나올...뭐 그런 이유를 가지고 있을 테고) 그리고 그녀의 레시피 북들마저 모조리 사라졌지만 그녀의 손맛은 그대로 였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요리밖에 없었다.
그녀의 엄마가 하는 음식점 옆 작은 창고를 개조하여 마련한 그 식당의 이름이 [달팽이 식당]인 것이다. 그 식당에서 그녀는 흔한 요리가 아닌 오로지 한 사람만 받는 그런 식당을 차렸다. 참 멋진 아이템이다. 몇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라 미리 음식을 먹을 사람의 성격, 주변 환경도 포함한 프로필을 접수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어울릴 그런 음식을 만들어 준다니. 이런 멋진 식당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루에 한 사람 혹은 시간 오전, 오후를 나누어 많아야 두 사람을 받을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한다면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린코는 그런 식당을 열었다.
. 개다래나무주(酒)를 사용한 칵테일.
. 사과 겨된장절임
. 굴과 옥돔 카르파초
. 토종닭을 통째로 푹 고운 삼계탕
. 햅쌀을 이용한 가라스미 리조트
. 새끼 양고기 구이와 야생 버섯의 갈릭 소테
. 유자 셔벗
.마스카르포네 티라미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서
. 진하게 끓인 에스프레소 커피.
이것이 린코가 처음 대접했던 손님의 식사 리스트였다. 주문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전달 받고 그 사람을 위한 소울 푸드인 셈이다. 처음 식당을 찾은 그 사람도 이 음식을 먹고 마음을 치유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소설속의 내용이기 때문에 당연히 작가가 그렇게 써 놓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읽는 동안 정말로 진정으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나의 마음을 읽고 나를 위한 공간에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음식을 하루 종일 만들며 차려준 식탁을 받는다면 마음이 요동칠 것 같다.
그녀의 식당이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을 치유할 그런 음식이 있기는 한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그런 음식이 놓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고 혼자 살며 상복만 입고 있는 할머니, 사랑을 이뤄지고 싶어 하는 고등학생, 딸을 데리고 나간 아르헨티나 아내를 기다리는 구마씨, 그리고 거식증에 걸린 토끼까지 달팽이 식당을 찾아와 마음의 치유를 받아 돌아간다. 음식을 통한 린코의 마음이 힐링이 된 것이다.
가끔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삼거나 치유하고 싶을 때 힐링이 되는 것들을 찾는다. 여행이 될 수 있고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것도 있고 등산을 하며 산을 오른 뒤 멀리 보이는 작아진 세상을 보며 힐링 할때도 있지만 이렇게 음식을 놓고 마음을 치유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소설의 엔딩은 사실 좀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며 그녀의 어머니의 갑작스런 안녕도 너무 벼락같이 떨어지는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사랑스러운 소설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크게 해될 것이 없는 것이 책을 읽고 나면 린코가 해준 나만의 요리를 먹은 기분이 든다.
작가의 [초초난난]을 읽기위해 초기작을 뒤져 읽었는데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 너무 궁금해진다. 가끔은 참 고민 없이 넘어가는 일본 소설이 좋을 때가 있기는 한데, 요즘 일본 소설이나 일본 드라마도 왜 그토록 다들 고민이 없을까 좀 아쉽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