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듣지도 못한 도시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는 기차에 올랐다.
5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카셀의 ‘도큐멘타‘를 보기위해 일정을 2틀이나 잡았는데 그녀를 만나기위해 반나절이 사라져야 했다. 나의 결정이니 누구를 탓할수도 없는 일이다.
기차를 타기전에 걱정과 함께 떨리기도 했다. 그녀가 혹시 마음이 바뀌어 오지 않으면 어쩌지? 이러면 기찻값도 날리고 어렵게 온 카셀의 일정도 아까울것 같았다.
아침일찍 그녀에게 카톡을 넣었다. 하지만 그녀는 카톡을 읽지않았다. 기차에 오르면서도 그녀의 회신이 없어 절망하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려면 한시간 반이나 기차를 타야했다. 나릉 지루한 시간을 지내는 도중에 그녀에게 답이 왔다. 그녀가 기차에 탔다고.
그녀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잠시 역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도착했다는 그녀의 톡을 받고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외국인들 사이에 유독 하얗게 빛나는 그녀였다. 먼길을 달려와준 그녀에게 고마워 커피를 사주고 싶었지만 워낙 시골이라 번듯한 카페도 없어 역사 안에 있는 맥도날드로 향했다.
그녀는 커피나 햄버거보다 미니언즈를 사랑하는 학생이었다. 미니언즈 캐릭터를 주는 해피밀을 주문했다. 카메라를 건너받고 다음 기차를 탈때까지 서로의 정보를 나눴다. 그녀의 한국집은 우리집에서 가까운 동네에 있는 곳이었다. 내일 방학동안 한국으로 출국해서 10월 중순에 다시 독일로 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9월에 만나기로 했다. 이것도 인연이니 그녀의 동네에서 유명한 즉석 떡볶이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보다 30분 더 일찍 기차가 있는 그녀가 해피밀의 미니언즈와 함께 먼저 떠났고, 나는 그녀가 애정어리게 삼년동안 가지고 찍었다는 카메라와 함께 카셀로 떠났다.
기차에서 한동안 카메라를 쓰다듬으며 마음이 울렁였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카셀에서 2박을 한 곳은 호텔이 아닌 한인 민박집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인 부부와 새벽 3시까지 독일 맥주를 마시며 그녀의 얘기를 하고 서로의 얘기에 공감하며 감동하고 위로를 했다. 카셀의 제일 유명한 헤라클래스가 있는 빌헬름회에 산성공원과 야외 온천을 가지못해서 꼭 독일의 이곳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때는 훨씬 더 좋은 맥주를 준비하고 있겠다고 하셨다.
나는 한달 반동안 힘들었던 심적인 고통을 이곳에서 위로 받고 있었다.
카셀을 떠나 하노버에 도착했다. 호텔에 누워 잠시 그녀들을 떠올렸다. 마음 어느곳에 온풍이 들어왔다. 앞으로 남은 혼자의 여행을 더 즐겁게 할수 있을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