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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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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은 아니지만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어떤 목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 책을 읽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책을 쓴 저자의 의도와 목적, 그리고 출판사의 책의 출간과 목적등 많은 이유들을 떠 올리게 된다. 분명 어떤 것이든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 대한 나의 의문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사유 속의 영화> 영화 이론 선집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재미있고 즐겁고 감성적이고 사실적인 어떤 이유속의 영화가 아니라 단지 학문적인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눌 것 같아서 첫 장을 펼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였을까 첫 장을 펼치고 약 십여 페이지를 읽는 순간 집중 할 수 없는 글 읽기의 목적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유속의 영화를 말하겠다는 저자는 역순도 아니고 주제별로 다뤄진 것도 아닌 시대별로 이론서를 꾸렸다. 그리고 그 시대 순으로 엮어진 것과 이 글을 쓴 저자의 목적에 대해 너무 쿨하게 서술했다.

<어떤 의미로는 좋은 자자가 그렇듯이, 좋은 글은 일정 정도 “분류할 수 없는” 것이다.

P9>

<많지 않은 글들이지만, 선집 형태의 책이 흔히들 하듯이 인위적인 틀-앞서 말한 재인식-에 따라 글 전체를 분류하기를 포기라고 단순한 연개기적 배열을 선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P 9>

<글은 때로 글 자체로 읽어야 한다. 인위적인 분류나 딱지 붙이기는 (나중에 일정 부분, 혹은 반드시 부정되어야 하는) 초보적 인식의 수준을 넘기 힘들고 거꾸로 이러한 행위가 통찰이나 인식으로 여겨지는 상황 _ 한국적인 ‘빨리빨리’의 상황-에서는 섬세하고 내밀하며 창조적인 사유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P10>

 

영화는 이미 사유 속을 벗어나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영화가 예술 작품으로서의 사유가 아닌 사업으로 변질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물론 영화가 사업으로 인식되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분명 오래전부터 이 책속에서 말하는 많은 철학자와 기호학자들까지 영화 속에 숨어져있는 많은 사유속의 이미지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나에게 많이 버거웠다. 그래서 그간 이렇게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책이 별루 없었다. 그런데도 내게 삼백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이론과 서술에 대한 잔상이 남지 않는 이유는 뭘까. 쉽고 편하게 흘러만 가는 책들만 골라 읽어서였을까. 그런 습관으로 결국 이렇게 무겁게 내려앉은 책들은 읽지 못하게 된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독서의 방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론서를 찾는 이들에게는 꽤 정리가 잘된 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접어져 놓았다. 다만 저자와 다르게 내가 이 책을 따로 저술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그렇게 접혀져 놓을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어질 것 같다. 참 모호한 리뷰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책이 내게 그런 모호함을 많이 던져주고 말았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 대한 사유는 크게 이중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된다. 한편으로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구체적인 영화작품들에 의존해 있다. 개별 영화에 대한 비평이나 연구가 아닌, 아무리 추상적이 철학적인 글이라도 그것이 영화를 대상으로 진행될 경우 일정한 대상 의존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멀든 가깝든 이 사유는 구체적 영화작품과의 궁극적 대면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글을 읽을 때는 그것이 어떤 영화를 통해서, 어떤 영화와 함께 추동되었는가를 거슬러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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