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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공간적 감각을 키우자 [방과 후 - 히가시노 게이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며칠이 있었다. 그렇게 선택된 책이 책장에 잠들어 있는 게이고의 책들이었다. 그의 책들은 쉽게 읽히는 가독성이 좋은 책들이고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자신하며 읽었지만 오만이었다. 읽는 동안 공간적 감각을 키우며 읽으나 그림까지 그렸던 적은 없었다. 마치 내가 경찰이 되어 범인을 꼭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드는, 그런 순간이 계속 놓이게 하는 소설이다.
그가 추리 소설가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시초가 된 작품이니 오래된 책임에도 전혀 시대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면 모르는 일본의 흐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2007년 초판을 가지고 있는데 2019년에 출판사가 다르게 신간으로 발간되었다. <방과 후>는 1985년에 출판된 책이니 벌써 37년이나 된 작품이다. 37년이 되어도 새로운 작품으로 나와도 이질감이 없는 소설이라니.
어느 한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마에시마는 플랫폼에서 누군가가 밀어서 떨어질 뻔했다. 그리고 수영장 샤워 실에서 감전사를 당할 뻔 했고, 머리 위에서 화분이 떨어져 크게 다칠 뻔 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위협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일들이 지나간 후 그를 둘러싼 두 번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첫 번째 살인사건의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교내 탈의실에서 학생지도부 교사가 청산가리를 마시고 살해된 것이다.
교사와 단둘이 여향을 가지고 유혹하는 문제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미소녀, 얌전한 얼굴과 달리 남자관계가 복잡한 여교사등 범인 후보가 잇따라 밝혀지지만 마에시마는 그 셋 모두 의심스러웠다가 모두 혐의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사실 그때 나는 복선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던 소품을 가져간 사람을 의심했었다. 왜, 하필 그것을 가져갔을까?
두 번째의 살인사건은 학교 축제에서 발생했다. 가장 행렬에 술 취한 피에로로 변신하기로 했던 마에시마는 그날 피에로가 아닌 거지 분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원래 마에시마가 하기호 했던 피에로로 변장한 교사가 또다시 청산가리로 음독 살해되었다. 세 번 정도 자신을 스쳐갔던 위험을 떠 올리며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 놓인 마에시마는 범인을 추리해 나간다. 살인의 방법, 살인의 이유를 찾기 위한 그의 불안감은 깊어만 갔다.
두 번째 살인의 방법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지만, 여전히 나는 첫 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난 탈의실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이해하느라 힘들었다. 이런 나를 위해 작가가 그려 놓은 몇 가지의 그림을 통해 눈으로 그려지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곳으로 살인범을 그려 놓고 그 행위를 그려 나갔다. 이후 닥쳐오는 살인의 이유. 그것은 알기 힘들었다. 혹시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가 범인임을 알게 되고, 그 이유를 듣고 나서는 마음이 아팠다. 어떤 치욕스러운 부분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든 모욕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복선을 찾아나가는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면 정말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인데, 정작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어긋나는 소설이었다. 새로 나온 책의 표지가 급 스포일러라는 걸, 읽고 나면 알게 된다. 마지막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화수분 같은 그의 글쓰기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