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맛있는 것은 커피라고 하셨다.
특히 비 오는 날 직장에서 일하시다가 자판기에서 뽑은 종이컵에 담긴 달달한 커피가 담배보다 더 좋다고 하셨다. 커피를 사랑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집에는 커피와 프림이 떠날 날이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원두커피보다 커피, 프림, 설탕을 각각 2:2:2인, 투투투 조제된 커피야 말로 피곤이 가시는 마약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가 먼저 한잔 진하게 타고 안방으로 들어가 신문을 보시면 조르르 달려가 엄마 몰래(머리 나빠진다고 엄청 못 마시게 하셨다.) 한 모금씩 먹었던 것이 어느새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꼭 마셔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관에 가서 콜라와 팝콘을 사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팝콘보다 뜨거운 커피 한잔이 좋았다.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뜨거운 믹스 커피를 마신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갈 때도 늘 커피가 필요 했다. 그때도 나에겐 뜨거운 믹스 커피가 들려 있어야 했다.
비가와도, 눈이 떠지지 않는 햇살 좋은 날이어도, 하루 종일 어둑한 하늘이 창에 걸려 있을 때도, 심심해서 입안이 궁금할 때도, 때로는 화풀이처럼 마시고 싶은 음료가 있을 때도 늘 커피였다.
하지만 그런 믹스 커피와 헤어 질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믹스 커피를 좋아 했던 친구 때문이었다. 그 커피를 너무 좋아 했던 그녀와의 추억이 깊어 간혹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길을 가다가 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 믹스 커피와 헤어져야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모두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의 저녁은 식당에서 몰래 가져온 남은 음식과 믹스커피 세 봉지였다. 뜨거운 물을 올리고 잠시 기다린 후 커다란 유리잔에 믹스 봉지 세 개를 뜯어 넣고 숟가락으로 몇 번 휘 저어 먹는 그녀의 커피는 내가 우울하거나 즐겁거나 나른 할때 마셨던 커피가 아닌 한 끼의 식사였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 표정 없이 앉아 남은 음식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 처연해서 눈물이 났다. 잊고 있던 믹스 커피 향이 생각났다. 달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그 커피.
문득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그녀도 떠올랐다. 나는 그녀 때문에 믹스 커피를 더 이상 먹지 않는데, 그녀는 커피를 끊었을까? 그녀와 함께 했던 그 노랑 커피를 한동안 마셔볼까 생각중이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 했던 작가들도 함께 해 볼까 한다. 왠지 요즘은 그녀가 많이 그리워지니까. 그냥 이런 이유는 봄이 와서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