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밥헬퍼 > 사람만이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책을 다시 읽는다. 지난 책들은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가를 반추하게 한다. 그의 책은 이미 절판되었고, 그의 삶은 그의 말처럼 제대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주변에 여전히 그가 제시한 말들이 뿌리를 내리고 일어나고 있다. 그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시 태어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

1. 지난 97년 노동시인 박노해는 자신의 옥중에서 집필한 글들을 모아 “사람만이 희망이라”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다. 당시 그의 시는 현실을 고뇌하면서 그 굴곡된 상황을 사실적 언어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극찬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수환추기경은 그의 들을 평하면서 그에 대해 ‘이제는 그가 외부를 향한 외침보다도 내면의 자기와의 투쟁으로 전환하면서 인간적 고뇌를 담지한 겸손한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시 2편을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다시>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은 사람은

  그 자신의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변화 속에서>

  사람은 세월이 쌓여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을 때 늙어가는 것이다.

  이상도 하나의 생명이라서 계속 성장시키지 않으면 죽고 만다.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세월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거친 세월이 흘러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는 사람은

  변한 세월만큼

  변화의 빠름과 크기만큼

  치열한 자기 변화를 이루어내서

  결코 변해서는 안 될 것을

  굳건히 지켜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세월이 쌓여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을 때 늙어가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가슴벅찬 감동을 가지고 두고두고 되새겨 보았던 기억도 있다. 그의 글들은 사실 그 막강한 힘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예전처럼 그의 글들이 삶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운동력을 담보해낼만큼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 읽으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되새겼던 것은 ‘도대체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과연 이 시대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는가?’하는 것에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주제인 듯 하다.


2.위에서 잠깐 읽어본 두 시에서 공통적인 것은 ‘사람’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더불어 ‘사람’안에 담겨진 위대한 가능성에의 찬사이다. 시인의 마음 속에 그려지고 있는 인간은 크게 두 자기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의 출발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희망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자기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인이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는 이상적 자아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이 땅의 모든 문제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실존적 자아이다. 바로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에 가득찬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의 희망 그 자체가 될 수 있으며 길 찾아 떠나는 사람은 그 자체가 이미 새로운 길의 개척에 이른 것이다. 첫 번째 시에서 시의 전환점을 이루는 것은 ‘다시’라는 용어이다. ‘다시’라는 말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부터 새로운 존재로 전환할 때 갖게 되는 기대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완전한 새로움‘을 향한 의지를 담은 결단의 표현이다. 또한 그것은 안으로의 굴곡이 아니라 밖으로의 지향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다음에 우리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언어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그가 바라보는 희망은 밖으로의 지향이 아니라 인간 내면으로의 회구인 것이다.

시인은 지금 인간 내부로의 회귀를 통해 우리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려고 시도한다. 또한 시인은 존재하는 인간에게서는 희망이 없음을 선언한다. 그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희망 찬’ 마음을 가지며, ‘길’을 찾기도 하고, ‘참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시집에서 읽은 두 번째 시에서는 시인이 추구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사람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도 자신을 꿋꿋이 지켜 변하지 않는 것을 굳게 지켜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이다. “변한 세월만큼/변화의 빠름과 크기만큼/치열한 자기 변화를 이루어내서”라는 것. 즉 이 시대의 변화에 그저 파묻혀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을 항상 변화시켜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며, 다시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사람’은 결국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로 그러한 사람만이 희망일까?를 생각해 본다. 어느모로 보나 기댈 것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희망이 없는 것일까? 우리 주변만 돌아보더라도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서로 앉겠다고 아우성치며 이전투구하는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땅의 정의와 억눌린 자들이 삶을 대변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 던진 그들에게 희망이 쉼쉬고 있는 것일까?

  마음을 추슬러 그의 시들을 다시 읽어본다. 시인은 희망을 걸만한 사람은 다름 아닌 “결코 변해서는 안 될 것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을 제대로 간직하기 위해 자신을 늘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시인의 전력을 생각해 볼 때, 아마도 자신과 같이 투쟁의 선봉에 선 사람들, 그래서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부정과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싸움의 주체인 민중들에게 이러한 희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들의 강철같은 의지가 불변의 세계를 지탱할 것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조용히 우리 자신에게 물어본다. 결코 변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의 세계에서 그것은 과연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것인지……

  그런 점에서 이 시들을 읽으면서 갖게 되는 결정적 한계는 불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늘 푸른소나무인 것 같다. 그러나 늘 푸른 소나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땅에서 변해서는 안 될 것을 막연히 지켜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를 비추어 보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3.나는 여기서 다시’ 구약성경을 읽는다.   

구약성경의 이사야 40-55장은 구약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심판과 멸망에 직면해 있는 이스라엘에게 제2의 출애굽을 통한 ‘다시’ 살아남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락 속에는 먼 옛날 출애굽을 회상하는 것과 하나님의 창조사건이 새롭게 기술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처음으로 신학화되는 순간이기도하다. 이러한 서술은 하나님의 이 땅의 주인이시고 온 세상 역사의 주관자라는 ‘경험적 사실’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여 선포하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특수한 선민의식을 자랑할 수 없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온 우주 속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규정될 뿐이다. 이스라엘은 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이 변하지 않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역사 속에서 선포한다. 이러한 자의식의 결정적인 내용이 가장 함축적으로 이사야 40장6-8절에 소개되어 있다. 그 본문은 이렇다.


  <6절 한 소리가 외친다. "너는 외쳐라." 그래서 내가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7절 주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하고 그 답을 찾는다. 그들은 더 이상 부귀영화를 누리며 그들 속에 영원토록 삶을 지탱할 힘과 지혜와 능력을 독점하듯이 주어져 있지도 않다. 그들은 다만 풀이며, 꽃이다. 만약 하나님의 기운이 바람처럼 불기만 한다면 곧 스러질 그런 풀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면 그 내용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서술하고 있는 말들이 절묘한 문학적 기법을 통해 말의 의도가 아주 논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6절의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다.’는 것과 7절의 ‘이 백성은 풀이다.’ 그리고 8절에서 선언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구절은 일정한 논리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요한 특징은 바로 6-7절과 8절의 대조라는 것이다. 그 대조의 내용은 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에게 대조되는 것이 하나님 자신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동동한 창조물이라고 스스로 우쭐되었던 인간이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조되는 존재임을 다시 일깨우게 된 것이다.

  성경의 의미를 올바르게 추적하는 것은 인간은 마르고 시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과 영원히 서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두 표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궁극적으로 부여잡고 살아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나아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가변적 선언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이 희망이다.’ 라는 불변적 선언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한 방향을 보게 할 것이다.

즉 이사야의 선언과 시인의 말이 궁극적으로 갈라지게 되는 자리는 바로 변하지 않는 주체를 설정하는 것이다. 시인의 말 중 ‘결코 변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은 변할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현실 중에서 스스로를 변하지 못하도록 제어해야 하는 것을 노래한 반면 이사야는 결코 변하지 않는 것, 즉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선언을 노래한다. 시인이 인간의 의지에 강조점을 둔다면, 이사야는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변화되지 않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을 때 우리는 이 말이 제한적 진리를 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변하지 않는 ‘말씀’의 온전한 대리인으로 ‘다시’존재할 때 비로소 거기에 희망을 가져도 될 것이다. 따라서 성경적 관점을 견지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곧 희망찬 인간이 되도록、또한 길을 찾아가도록, 늘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면서 희망의 주체로 등장해야 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말씀을 담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모든 것이 희망없는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들에게는 더욱 희망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약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연약하다고 인정할 때 가장 강하고 놀라운 존재로 ‘다시’ 서게 되는 것이다. 그 안에 진정한 ‘힘’과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담고서 말이다.  시인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서 간직하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살아가며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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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지혜롭게 화내는 12가지 방법

지혜롭게 화내는 12가지 방법 

 

1. 다른 사람의 기분에 좌우되지 마라.
- 침착함을 잃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공격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2. 당당하게 말하라.
- 공격자는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약하게 만들기에 싸우지 않고서도 쉽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냥감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

3. 강박감에서 벗어나라.
- 공격을 당했을 때 빠지게 되는 무력감. 이런 강박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일단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났다면 심호흡을 한 후, 자신의 주위에 공간을 두며,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4. 상대를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라.
- 이를 위해 제시한 방법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상대의 자극적인 말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무시해라.
둘째,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아무 말도 않는 것이다. 혹은 오히려 친근하게 웃어주는 것이다.
셋째, 상대가 부주의하게 내뱉은 말이라면 아예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것.

5. 화제를 바꿔라.
- 신경에 거슬리는 상대의 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화제를 끄집어낸다.

6. 한 마디로 받아쳐라.
- 순발력 있고 재치 있는 반격을 위해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다. 한 마디면 충분하다. 이때에도 상대를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을 겨냥해야 한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예요?” 또는 “아하, 그래!” 정도면 적당하다.

7. 속셈을 드러내지 마라.
- 나를 공격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려면 의미없는 말을 해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괜찮다. 엉뚱한 속담을 인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8. 되물어서 독기를 빼라.
-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상대에게 그 즉시 되물어라. 상대에게도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

9. 마음의 균형을 잃게 하라.
- 상대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서 자신의 의견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상대를 칭찬해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10. 감정적으로 받아 치지 말라.
-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라. 상대의 공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상대를 자세히 관찰하여 상대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지적하라.

11. 모욕적인 말은 저지하라.
- 상대에게 나를 모욕했던 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얼굴을 마주보며 사과를 요구하라.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여
그런 식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12. 핵심을 명확하게 말하라.
-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고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는지 간단명료하게 말하라. 상대와 대화의 규칙을 정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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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시대를 살면서 본의 아니게 타인의 오해를 받아 논쟁에 휘말리게 되거나 이유없는 분개에 휘말려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혹은 아무 생각없이 던진 말인데, 상대에게 날세운 반격을 받아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실제로 얼굴을 보고 하는 대화라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어조나 뉘앙스를 살필 수 없는 글임에야 더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글 "지혜롭게 화내는 12가지 방법 "은 인터넷을 떠도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마키아벨리적인 처세술을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막상 이 충고를 따르기는 쉽지 않다. 인간이기에 아무리 저런 충고를 듣는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공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입에는 침이 마르고, 손발은 차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역시 인터넷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날세운 이들의 공격을 받을 때가 있는데, 내 경우를 유형별로 나눠보자면 누군가의 속물 근성(혹은 전문가 의식)을 보면(나역시 속물임에도) 공격본능이 발동하곤 한다. 한 마디로 치기어린 잘난 척을 하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나와 특정한 타인 사이에 끼어들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식의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사람에 대해 역시 공격적이 된다. 전혀 예의란 건 갖추지 못하는 사람, 예를 들어 내가 쓴 글, 내가 만든 이미지들을 자기 마음대로 퍼가놓고도 일언반구 사과 할 줄 모르는 사람(혹은 도리어 큰 소리 치는 이들도 있었다)들을 보면 순간 머리에 핏기가 싹 걷히면서 열불이 오르곤 한다.

지혜롭게 화 내는 방법을 12가지 아니라 1,000가지를 알아도 그걸 실천하기란 참 어렵다. 대신 인터넷 상에서 싸움이 나지 않도록 미리 주의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1.  늘 상대방의 호의에 감사하라.
-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반갑습니다."란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괜찮다.

2.  진지하게 쓰고 있는 글인지, 아니면 적당히 가볍게 받아주길 바라는 글인지 문장 안에 표시하라.
- 가령, 내가 즐겨 사용하는 "흐흐"와 같은 의성어나 이모티콘들 "^^, ^^;" 들은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가는 윤활유 구실을 해준다.

3. 게시판에 오르는 글은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1) 게시판의 주인장과 내가 아무리 친하다고 하더라도, 그 글을 주인장의 부인이나 남편, 혹은 절친한 친구들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인터넷상으론 그 주인장과 아무리 가깝고, 흉허물 없는 사이라도 오프라인상의 인연 아래 있는 이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글은 사적인 통로로 전하라.
2) 불필요하게 타인의 눈쌀을 찌푸릴 만한 짓궂은 장난은 회피하라. 누구라도 중간에 끼어들 소지가 있으며, 그 경우 주인장이 당신 편만 들어줄 수는 없다.

4. 상대방이 허용하는 부분까지만 참견하라.
- 종종 인터넷상으로 자신의 고민이나 최근 심경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글쓴이가 허용하지 않는 부분까지 지나치게 참견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5. 확대해석을 경계하라.
- 누군가 심심하다는 글을 썼다고 해서 그가 당신과의 데이트를 희망하고 있는 건 아니다. 지나치게 진지한 것도, 지나치게 장난스러운 것도 경계하라. 한 마디로 과유불급이다.

6. 남의 게시판에서 주인장 행세하지 마라.
- 그곳을 찾는 이들은 당신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 남의 게시판에 가서 주인 대신에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면 먼저 주인의 허락은 물론, 그곳을 찾는 이들의 묵인도 필요하다.

7. 칭찬은 남들 보는 데서, 비판은 소리 없이 하라.
- 남들 보는 데서 야단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한 두번은 가능해도 분명 나쁜 기분은 축적된다. 칭찬은 공공연하게, 비판은 비밀리에 하라.

이상으로 압축해보았습니다. 뭐 더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충고는 제 체질이 아니라서요.
이상의 말들을 더 단순하게 축약해보자면 이렇겠지요.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무엇이든 넘치는 것은 경계하라"는 말....

누군가 정말 친해지고 싶다면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자꾸만 주어야겠지요. 전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자꾸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날 주던지, 내 시간을 주던지, 내 물질을 주던지, 내 관심을 주던지, 내 말을 주던지... 무엇이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상대방이 불편해 하지 않을 정도로 자꾸만 주어야겠지요.

제가 풍소헌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종종 바람구두란 사람은 이것도, 저것도 풍족해서 혹은 내 보기엔 너무 까다로울 것 같아서 뭔가 주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가 하는 이벤트가 다소 어려워 보이더라도 거기에 참가해준 이들은 그만큼 자기 체면이나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제게 그만한 정성과 노력을 보여준 이들이지요. 정말 누군가와 마음을 열고 친해지고 싶다면, 그 정도 노력없이는 안 될 겁니다. 

저는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관심과  이해 그리고 노력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노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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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2004-08-3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지도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출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예의나 배려가 부족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앞으로 더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걸요~^^

stella.K 2004-08-3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요? 설마...이렇게 예쁜데...^^
 
 전출처 : 마냐 > 시대를 초월해 아름다운 그녀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라.…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배우 김혜자씨는 자신의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오드리 헵번의 이 말로 책머리를 연다. 배우로서 젊은 날을 불태운뒤, 인류를 위한 봉사활동에 나선 `선배'가 몸으로 보여준 가르침이다.

 

 단지 사랑스런 눈과 매력적인 입술이 전부가 아니었다.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여인, 오드리는 살아가는 도리를 이처럼 명징하게 밝히고 있다.

 

 책은 지난 99년 오드리 헵번 탄생 70주기를 맞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기념하며 나왔다. 단순히 한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헵번 신드롬'을 창조했던 그녀의 스타일.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다.

 

 짧은 유행과 달리 스타일이 오랜 생명력을 과시한다면, 옷을 입은 사람의 인간적인 내면과 관계가 있다. 아들 숀 헵번 페러는 "내 어머니에게 스타일은 자제의 삶, 타인을 존중하고 휴머니티를 희망하는 삶을 유지해온 내적인 미의 확장이었다"고 전한다.

 


 

 특히 `로마의 휴일'(1953년)은 여성의 스타일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였다. 공주의 환상이 아니었다. 짧은 헤어스타일, 그리고 일상복이 태풍의 중심에 있었다. 1960년대에 비로소 `일상복'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니, 사실상 첫 역할 모델은 오드리였다.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는 `헵번 신드롬'을 심하게 겪은 경우. 그녀는 `로마의 휴일'을 촬영할 때 오드리가 사인해준 사진을 늘 지니고 다니거나 드레스룸 거울에 꽂아두었다. 큰 체격에서 소리를 뿜어내던 칼라스는 당시 1년만에 36㎏을 감량, 목소리까지 변한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눈 화장 등은 오드리의 그것을 그대로 모방했다.

 

 `유행을 따르지 말고 취향을 따르라'는 오드리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평생 이어졌던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와의 관계도 흥미롭다. 프랑스의 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오드리는 지방시의 옷을 전 세계적으로 칭송받게 했고, 지방시는 이를 통해 자신의 천재성을 숭배받았다"고 평가했다.

 

 스타일만으로도 오드리는 신화다. 하지만,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으로 미소짓던 노년의 오드리는 훨씬 더 아름다웠다. 88년 유니세프 특별대사로 임명된 그녀는 "행동, 그리고 행동.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웅변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다"라고 외쳤다.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돌보던 그녀는 "집단 죄의식은 믿지 않으나 집단 책임은 믿는다"며 스스로 동정은 빈말이 아니며 친절은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 경제, 정치학, 종교, 전통과 문화의 전문가가 되는 편이 좋을 것"이라면서 "나는 이중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는 어머니다"라고 말한 오드리는 당당하게 지구촌 아이들 곁을 지켰다.

 

 영국 등 유럽 왕실의 여인들과 교류했던 한 기자는 "진정한 프린세스는 오드리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네덜란드 귀족의 핏줄로 태어나 너무 커버린 키(173㎝) 때문에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했던 그녀. 하지만 세상에 대한 열정은 그녀를 `만인의 연인'으로 이끌었고, 고통받는 이들을 지키는 `수호천사'로 삶을 마감하게 했다. 1993년 63세의 이른 죽음은 `행동하는 양심'에 밀려 제때 진단받지 못한 암이 원인이 됐다.

 

 사실 글보다는 그녀의 매혹적 사진에 한숨 짓고 장면 하나하나의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는게 흥미로운 책. 오드리의 옷장을 차지하던 의상과 구두, 가방 등을 구경하는 재미도 색다르다. 4만5000원의 책값이 좀 비싼게 아니냐 했더니, 원서는 유럽에서 약 7만2000원에 팔렸단다.

 



 

(사실상 오드리의 사진집입니다. 서양인들 특유의 '그녀의 영혼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특별했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다..는 식의 회고담 등 글 내용은 그리 풍성하다 하기 어렵구요. 하지만, 워낙 의미있는 '여신' 이라, 어쩌다보니 리뷰까지 하게됐슴다. 

 

새삼, 그녀의 우아한 매력에 눈을 떼지 못했죠. 또 아름다운 삶과 마무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군요. '스타'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 그저 존재함으로써 대중에게 안겨주는 즐거움 등도 오드리의 경우는 특별한 사례로 기억될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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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아키타이프 > ㅇㄴ와ㅈㅎ


아마도 그 시작은 [소나기]에서 부터 일것이다.
소녀와 소년의 로망스에 대한 유별난 애착.
그래서 [소나기]는 말할것도 없이 [동백꽃]을 얼마나 읽어댔던가.
내게 있어 "어림"에 대한 향수는 
순수함과 수줍음을 함께 담고 있어야 한다. 
뭐 절대적인건 아니다.
때로는 영화 <작은 사랑의 멜로디>처럼 앙큼하고 저돌적이어도 좋다.

이 부분은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두 주인공의 어린시절을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한 부분이다.
순정영화를 표방하면서 개봉한 영화 <와니와 준하>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중에서 보기 드물게 수작인
이 부분 역시 함께 묻혀 버린 듯해 참으로 아쉽다.

마치 나의 기억의 한 조각을 떼어다 만든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영상은 반가움으로 가득하다.
쉴새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개구쟁이들, 
백원에 5분씩 태워주시던 목마 아저씨,
끝없이 이어지던 구불구불한 골목길들...

한참 쫓아 다니다 보면 어느새 10살적 나와 만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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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8-28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니와 준하, 분위기만 잡다 끝난 영화긴 해도 도입부에 시작되는 애니 만큼은 일품이에요.

stella.K 2004-08-2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전 안 봐서요...근데 저 애니는 첨 보는데 정말 예쁜 거 같아요.^^

mira95 2004-08-28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와니와 준하에서만큼은 김희선이 좋아 보였어요.. 정말로 순수해 보이더라구요..
 
 전출처 : 바람구두 >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숨을 거두기 일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들에게 들려준 말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1929.5.4~1993.1.20)

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네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눠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네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면서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무지한 것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스텔라님 서재에 갔다가 간만에 오드리 헵번 사진을 실컷 보았다.
스필버그의 1989년작 "영혼은 그대 곁에 (Always)"이 오드리 헵번의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이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은 천사로 등장한다. 많이 핼쓱해진 얼굴이긴 했으나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고왔다. 윗글을 읽고 나니 그녀가 천사로 등장한 것이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녀는 여전히 천사였다.

영화 속에서 피트(리차드 드레이퓌스)는 산불진화전문 비행사이다. 그는 늘 산불과 싸우며 저공 비행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훌륭한 조종사였으나 그의 애인 도린다(홀리 헌터)는 늘 피트를 염려한다. 그러던 어느날 화재신고가 들어와 출동하는 피트. 그는 동료 피행사인 테드의 비행기 엔진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불을 꺼주지만 자신은 산불에 희생당하고 만다. 피트 덕분으로 살아난 테드는 도린다를 위로하다가 도린다를 사랑하게 된다. 이제 죽어서 영혼으로 남은 피트는 이 두 사람을 보며 괴로와 한다.

시간은 흘러 테드 역시 피트만큼의 훌륭한 조종사다 된다. 그러던 어느날 산불이 일어나 육상진화반 대원들이 산불에 갇히는 사태가 벌어진다. 항공기를 이용해 강으로 갈 수 있는 대피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만 구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도린다는 테드를 염려하여 자신이 테드의 항공기를 몰래 타고 사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옆에는 피트의 영혼이  앉아서 도린다의 조종을 돕는다. 그 덕분에 도린다는 조난대원 일행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린다의 비행기는 돌연한 계기고장으로 강에 비상착륙하게 된다. 기체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도린다에게 피트가 나타난다. 피트의 손에 이끌려 물 밖으로 나온 도린다에게 피트는 "앞으로는 죽은 자기 생각은 말고 새생활을 시작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피트의 말을 뒤로하고 도린다는 테드의 품에 안긴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짓는 피트는 둘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도린다에게 남은 미련 때문에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피트 앞에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하늘 나라로 이끄는 천사가 오드리 헵번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영화 자체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오드리 헵번과 사운드 트랙으로 흘러나오는 The Platters의  "Smoke gets in your eye" 역시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They asked me how I knew my true love was true.
I, of course, replied something here inside cannot be denied.
사람들이 묻더군요, 내 참된 사랑이 사실이란 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내 마음 속의 이 무엇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라구요.

They said some day you'll find all who love are blind.
When your hearts are on fire, you must realize smoke gets in your eyes.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사랑에 빠진 사람 모두 눈 먼다는 걸 당신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구요,
사랑으로 가슴이 불타오를 때, 그 연기가 당신의 눈을 가린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구요.

So I chaffed them and I gayly laughed to think they could doubt my love.
나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나의 사랑을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는 통쾌하게 웃었습니다.

Yet today, my love has flown away.
I am without my love.
하지만 지금, 나의 사랑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나의 사랑은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Now laughing friends deride tears I cannot hide.
So I smile and say when a lovely flame dies smoke gets in your eyes.
나를 비웃는 친구들은, 내 숨기지 못하는 눈물을 놀려대고 있군요.
그러면 나는 웃음지으며 말한답니다.
사랑의 불꽃이 꺼져갈 땐 그 연기가 눈가에 스미는 것이라구요...

사랑을 감정(emotion)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랑(Love)은 감정이 아니라 상태 혹은 행위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슬픔, 기쁨, 서러움, 고통, 외로움은 "명사"로 표현되지만 사랑은 기껏해야 "명사이면서 하다형 타동사"라고 정의된다. 사랑은 저 모든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이 모든 감정들을 한꺼번에 느끼고 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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