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정신분석학에서 조금 자유롭게..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주 일요일, 퇴근 무렵 남편이 전화를 걸었다.
"데리러 갈까?"
"뭘, 괜찮아. 뭐, 데리러 와주면 좋긴 하지..그래도 뭐, 안 와도 상관없어."

전화를 끊자마자 옆자리 L이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본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고개를 젓는다.
어쩜 그렇게 말을 하냐는 거다. 데리러 와주면 좋은데, 안 와도 좋다구. 당연히 데리러 오라고 하는게 정상이란거다. 별로 동의하지 않았던 나는 "그게 뭐 어때서?"라 반문했다. L이 외쳤다.
"자기 주장을 한 번도 못해보고 산거지, 딱 드러난다니까!"
L은 이렇게 충격적인 지적을 하면서 내게 책을 내밀었다. 그가 그날 오후 리뷰를 썼던 바로 이 책이다. 오히려 당황한 내가 "그걸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냐"고 하니까, "책을 읽어보면 알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책은 작가 김형경의 '심리/여행 에세이'다. 이탈리아와 체코부터 뉴질랜드와 남태평양까지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쓴거다. 근데 사실 따지고보면 이건 여행에세이가 아니다. 이건 내가 본중에 최고로 쉽게 풀어쓴 정신분석학 책이다.

고대 로마의 지하묘지 카타콤에서 무의식의 비유를 깨닫거나, 미켈란젤로를 감상하다 겪은 에피소드에서 분노의 근원을 쫓는다거나...하는 건 멋있는 수식이고, 작가 김형경의 장난일 뿐이다. 이건 전적으로 정신분석학을 탐구해온 저자가 정리해놓은 보고서다.

김형경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집착은 이미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사실 고3 때 심리학도를 꿈꾸던 나는 학력고사를 마치고 친구와 도서관에서 프로이드 책을 찾아 읽곤 했다. 그때 그건 엄청 짜릿하고 지적 허영을 채워주던 일이다. 이루지 못한 꿈 같은 거라, 정신분석학엔 늘 매력을 느낀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기대 이상 흥미롭게 읽은 것도 그런 점에 기인할 듯 하다. '성에'에서도 김형경은 자신의 장기를 숨기지 않더니, 급기야 이번엔 제대로 책을 낸 것이다.

김형경의 분석은 때로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아 깨름칙하다.

"혹시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려 깊고 헌식적이고, 이상주의적이고 감성적인 그런 사람이 있는가? 충직하고 성실하며 항상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남을 위할 줄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며, 이웃과 무엇이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 말이다."....이런 사람들은 내면에 분노가 억압되어 있는 거란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감정인 분노를 잘못 처리해 삶의 질이 떨어진 거랄까.

특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대목은 이 부분이다. 이건 정말 내 얘기가 아닌가.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인정과 지지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인정받기 위해서이고 우리가 가끔 무너지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지지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지나칠 경우 '인정 중독'이 된다. 인정 중독인 사람들은 인정받는 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인정받기 위해 일 중독자가 되고, 그럼에도 늘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불안해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슬슬 심사가 꼬인 것도 당연하다. 어떻게 이렇듯 내 속내를 자로 재듯 학문적으로 진단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정신분석학, 네가 그렇게 잘났어?

모든 심리의 근원은 유아기에 다 완성된다고 하고  흔하디 흔한 분석이 엄마젖에 대한 거다. 김형경이 인정하듯 정신분석가는 잊을만하면 "엄마가 젖을 잘 먹였겠어요?"라고 묻곤 했단다. 엄마 젖을 못 얻어먹으면 결핍감과 시기심이 형성된다는 건데.....이거야, 원. 울 딸래미, 마침 내가 출산 직전에 수두에 걸린 탓에 감염 우려가 있다고 해서 젖 한방울 못 먹였다. 울 아들, 역시 한달 딱 먹인뒤....포기했다. 원대한 포부와 달리 무지 힘든 작업이었다. 어차피 출산휴가 2달. 난 출근하면서 젖 짜먹일 대단한 엄마가 아니었다....어쨌거나, 김형경의 분석, 아니 정신분석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울 애들은 이 엄마 탓에 평생 결핍감과 시기심을 무의식 저편에 눌러놓고 자라게 되는건가? 어떻게 칼로 자르듯 그렇게 예언하나.

김형경은 "내게 그토록 치명적으로 자기 존중감이 부족했던 이유는 유년기에 형성된 자아의 구멍 뿐 아니라 부모의 이혼도 큰 몫을 했을 거라는 사실을 그 즈음에 이해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혼이 흔하디 흔한 미국 같은 곳에는 요즘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존중감 부족에 시달려야 하는 거다. 어떻게 이런 '원인'을 가지고 모든 '결과'와 다양성을 뭉뚱그려 해석할 수 있을까.

이런 반응이 뭔가를 들킨 어린애의 유치한 반발이라 해석될 수도 있겠다. 정신분석학을 통해 '화 낼 줄 아는 사람',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우울증에서 벗어날 줄 아는 사람'이 됐다는 저자에게는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대단한 일이다. 담배중독을 독서중독으로 바꿀 정도로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고, 감정의 모든 걸 분석하고 해부하고 이해하다니. 이건 결코 비꼬는 얘기가 아니다. 나도 한 때는 그런걸 꿈꿨었지....하지만 이젠 아니다. 적당히 분석하고, 적당히 버리고 살고 싶다. 이타주의가 분노를 억압한 사람의 방어기제라고만 해석하기엔, 삶이 너무 삭막하지 않겠는가. 나를 알게 되면, 좀 더 철이 들 수는 있겠지만, 내 무의식의 모든 걸 알 필요는 없다 싶다. 역시 진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유치한 반응일까?

어쨌거나, 유려한 문체에다 결코 지루하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국제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덕분에, 책은 상당히 재미나게 읽힌다. 나를 들여다보는데 분명 도움이 됐음을 밝혀야만 할 거 같다. L의 말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동경과 선망, 어떤 꿈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아 조금 개운하다. 고작 한발자욱의 거리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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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2-1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
 
 전출처 : 水巖 > 톨스토이展 - 살아있는 톨스토이를 만난다

Home > 전시안내 > 전시개요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부활』의 작가 톨스토이의 친필원고가 처음으로 러시아를 떠나 서울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됩니다. 이번 전시에는 친필원고 외에도 일리야 레핀의 회화, 에디슨이 선물한 축음기, 육성 테이프 등 국보급 유물 600여점이 공개되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를 중심으로 그가 향유했던 19세기 러시아의 문학ㆍ예술ㆍ교육적인 면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본 전시와 더불어 러시아의 문화와 교육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부대행사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방학을 맞은 학생과 가족을 위한 연극 <바보 이반>,
작가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트리 페스티벌, 세계에서 가장 큰 책 만들기, <톨스토이 학교 교육 프로그램>,
<러시아 음식 문화 체험 존(zone)>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Home > 행사 프로그램 >  
 
 
 
톨스토이전은
톨스토이의 예술관, 교육관 뿐만 아니라
귀족이면서도 서민의 입장을 대변했던
톨스토이의 숭고한 휴머니즘이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믿음으로 가득찬 삶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정보, 교회 등의 제도와 사회 모순을 부정한
톨스토이의 살아 있는 인간정신을
보여줄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대표작『부활』,『안나카레니나』,『전쟁과 평화』를 중심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영화를 상영합니다.
 

 

 

이번 영화제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릴 <톨스토이전-살아있는 톨스토이를 만난다>의
한 기획 프로그램으로 톨스토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그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최고
영화들을 중심으로 러시아 영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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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그를 아는 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톨스토이展-살아있는 톨스토이를 만난다 >
일 시 : 2004년 12월 10일부터 3월 27일까지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 단체할인 : 15인 이상시 적용
* 무료입장 : 4세 미만의 유아. 65세 이상의 노인,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 국가유공자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2005년 1월 1일


평일 : 11시, 3시
토·일·공휴일 : 11시, 1시,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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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것은 www.tolstoykorea.com 에 가시면 됩니다. 

※  교통편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⑦번 출구, 서대문역 ④번 출구로 나오면 된답니다. 경희궁 앞      - 水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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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12-1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도가 빠져서 첨부합니다.  군세군회관은 구세군회관을 잘못 쓴것같네요. 아트 샵에도 재밌는게 많더군요. 잘 보고 오세요. 나도 한번 가 보려고 합니다.

stella.K 2004-12-13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다 수암님.^^

水巖 2004-12-2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후에 갔다왔답니다. 시간이 없어서 '화봉 책 박물관'은 못 들렸어요. 내일은<안나 카레니나> 무료 영화 상영이라지요.

stella.K 2004-12-2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내일 저녁 모임있는데 거기 가지말고 여기 갈까요?^^
 
 전출처 : 마태우스 > 사연이 있는 책: 거꾸로 읽는 세계사

 

 

 

 

 

아버님 서재를 뒤지다 보니 유시민의 명저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있다. 꺼내서 읽고 있는데 아버님이 이러신다.

“그 책 재미있지? 나도 읽었는데 그 책을 보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모택동이 대장정을 한 얘기부터 베트남전의 진실까지”

읽으면서 충격이 크셨던 듯 책 원래 책을 깨끗이 보시던 것과는 달리 책 곳곳에 빨간볼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외눈을 가지도록 교육받았던 우리에게 그 책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이리라.


사실 난 그 책을 읽으면서 별반 놀라지 않았다. 내가 무디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책을 너무 늦게 읽어서. 그 책을 읽을 때의 난 리영희나 강준만, 진중권의 각종 저작들을 읽은 후라 거기 나온 사건들의 진실을 대충 다 알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그냥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지, 놀랄 일은 하나도 없었다. 속상한 것은 어찌어찌하다가 그만 그 책을 잃어버렸다는 것. 돌아가신 아버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책을 잃어버린 게 어찌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홧김에 서점에 가서 그 책을 다시 샀지만, 그건 별반 의미없는 일이었다. 그 책이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좋은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엊그제, 누나 집에 놀러갔다가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조카애의 책장에 그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벌써 그런 책을 읽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카도 나처럼 그 책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기는 힘들 것 같다. PD를 그만두고 수능 공부를 3년째 하고 있는 친구에 의하면, 요즘 교과서는 우리가 예전에 배우던 것들과 전혀 다르단다. 유신이 구국의 결단이 아닌 독재를 위한 수단으로 이야기되고, 5공화국이 구현하려던 정의사회라는 것이 말짱 허황된 소리였다는 등 학생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들이 버젓히 실려 있어서 놀랐다는 것이다. 피카소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딴 크레파스가 판매금지를 당하던 때에 비하면 세상도 크게 달라졌다. 체 게바라의 평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모택동의 자서전도 합법적으로 출간되는 세상이 아닌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가장 큰 가치는 그 책이 다루는 사건들이 우리가 기존에 배웠던 관념들과 180도 다른 각도에서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접한 내 조카에게는 그 책의 제목이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을까.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해방 전후의 혼란스러운 한국사회를 다룬 책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다며 ‘좌파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적이 있다. 한나라당이 문제삼고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한 ‘교과서 파동’을 보면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거꾸로 살고 있는 사람이 이 땅에는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너무 오랜 기간 한쪽 눈만 뜨고 세상을 산 부작용일텐데, 한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가 되버린 그들을 위해 <거꾸로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바르게 살 수 있다>는 제목의  책을 써줄 사람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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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 오렌지 향에 숨겨진 인간의 상실감

송은경 옮김 | 문학동네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토속요리, 원예 등에 해박한 조안 해리스는 전원을 배경으로 하는 향기롭고오감을 자극하는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어린 시절의 원초적이고 포근한 기억들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에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아득한 향기는 그 음식과 연관된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기에서 유년기를 보낸 한 프랑스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어머니와 오빠, 언니에 대한 소녀의 내밀한 기억과 인생 역정이 음식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

조안 해리스는 몇 년 전 개봉된 영화 ‘초콜릿’의 원작자로, ‘오렌지 다섯 조각’ ‘블랙베리 와인’ ‘프랑스풍 주방’ 등 오감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요리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이 소설은 특히 프랑스 전원마을에서 성장한 작가의 토속 음식과 원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감칠맛 나는 묘사가 돋보인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시골 마을 레 라뷔즈에서 나고 자랐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 때문에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나이 든 과부 프랑수아즈 시몽(본명 프랑부아즈 다르티장). 그녀가 자신의 본명을 숨기면서까지 결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과거는 그녀가 아홉 살 때, 독일군 점령 당시 일어난 한 살인 사건이었다.

예쁘지도 않고 귀염성도 없지만 물러설 줄 모르는 고집을 지녔던 소녀 프랑스와즈는 어린 시절 내내 어머니와 부딪친다. 자녀들의 이름에 모두 과일 이름을 붙여 부를 정도로 과일을 사랑했던 어머니는 요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괴팍한 성격의 그녀는 자신의 기질을 가장 많이 물려 받은 주인공인 막내딸을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 겉으로는 여자다운 맏딸 레네트를 더 사랑하는 듯이 보인다.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은 막내딸은 어머니에 대한 애증(愛憎)으로 사사건건 대립한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독일 점령군이 찾아오면서 주인공인 어린 소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 신분이었지만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그 병사에게 어린 소녀는 무지갯빛 환상을 품는다. 오빠와 언니도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비밀을 그 병사에게 고자질하고 립스틱이나 담배 등을 얻어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병사가 살해당하자 독일군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다. 부역자로 몰린 주인공 가족은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당하고 집이 불타는 소동을 겪으면서 쫓기듯 마을을 떠난다.

그 병사를 죽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제는 나이가 먹어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형벌처럼 내려진 그 비밀을 혼자 짊어진다.

소설 중간중간 프랑스 토속 요리 조리법과 요리맛에 대한 관능적인 묘사는 소설 읽는 맛을 더해준다. 나이 탓에 쪼그라진 노인을 마치 만들다 실패한 수플레(계란 흰자에 우유를 섞어 거품을 낸 다음 구운 요리)가 슬그머니 가라앉는 것 같다고 묘사한다. 울컥 감정이 복받치는 장면은 ‘찬란한 혜성 같은 흥분이 겨드랑이를 쿡쿡 찌르고 뱃속을 팬케이크 뒤집듯 홱홱 뒤집었다’(61쪽)라고 표현한다.

고향에서 식당을 연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요리는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모티브다. 요리에 대해 애정을 쏟은 어머니지만, 유독 오렌지 향기만 맡으면 편두통을 앓는다. 그 오렌지에 얽힌 비밀스런 애증과 관능을 푸는 열쇠는 어머니가 죽으면서 물려준,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요리책에 담겨 있었다. 입 안에서 터지는 새콤달콤한 오렌지 향기 속에는 어둡게 얽혀든 상실과 원한 같은 인간의 어두운 면이 숨겨져 있었다.

성장소설로도 읽히는 이 작품은 미스터리 같은 인생의 진실에 접근하는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해 사랑과 미움, 양심과 배신 등이 얽힌 삶의 이중성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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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이 소설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요리 나오는 책, 영화, 방송 프로그램 모두 좋아해요.^^

stella.K 2004-12-12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초콜렛이란 영화 본적이 있는데, 되게 재밌게봤어요.^^

마냐 2004-12-12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어느 후배가 가져가려는 거 얍실하게 먼저 챙겨놓은 책인데....아직 읽지를 못하고 있으니, 제가 참 복에 겨운 게으름뱅이다 싶군요.

mira95 2004-12-13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콜렛 봤었는데 재미있더군요.. 이 책 저도 사려고 보관함에 담아 놨답니다. ㅋㅋ 언제 살 지는 모르겠지만...

stella.K 2004-12-1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님이 게으름뱅이라 하시면 저는 땅파고 누워야겠습니다. 마냐님처럼 부지런쟁이가 어디 있다고...^^

미라님/저도 이 책을 빨리 읽고 싶은데 어느 세월에 읽을런지 모르겠네요. 흐흐.
 

단두대에 대한 성찰·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프랑스는 1982년 사형 제도를 폐지했다. 사형 폐지론자들의 오랜 투쟁 끝에 진보적인 사회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루어진 일이다. 우연하게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사형장으로 끌려 가는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사형 제도 폐지 운동에 적극적인 지식인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1957년 사형수의 목을 자르는 프랑스식 사형 제도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오늘날에는 처형 광경을 아예 볼 수 없게 되었고, 형의 집행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만 들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간혹 사형 집행 소식은 부드러운 표현으로 분장되어 들려온다. 이렇듯 벌의 내용을 점점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 궁리만 하고 있는데 어떻게 미래의 범죄자가 범행 순간에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사형 장면을 공개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카뮈는 이것도 반박했다. “20세기 초에 영국에서 낸 통계를 보면 교수형에 처해진 250명 중 170명이 과거에 한두 번씩은 사형 집행 광경을 직접 구경해본 사람들이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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