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 주거지는 움막 '집의 진화' 통념 깨뜨리기
김연홍 옮김/ 다우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입력 : 2004.08.20 17:38 53' / 수정 : 2004.08.20 17:53 01'
30년 연구를 집약한 작품답게 방대한 자료와 그것을 친절하게 풀어내는 글솜씨가 우선 놀랍다. 저자는 시작부터 우리의 편견을 뒤집는다.
‘인류 최초의 주거는 동굴이 아니다.’ 실제로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초기 인류들은 동굴에서 살기보다는 움막을 지었다. 오히려 동굴은 임시 피난처였을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움막에 대한 통념도 깨뜨린다. “최초의 움막은 ‘방(方)’형이 아니라 원형이었다. 이는 곧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지었다는 뜻이다. 방형이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형태라면 원형은 감정적이고 직관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6000여년 전 도시주거가 탄생하기까지 움막에도 발전의 역사가 있었다. 저자는 그것을 6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첫째, 오늘날의 부시맨이나 피그미족의 움막에서 볼 수 있는 일시주거로 유랑하는 무리들이 며칠만 머문다.
둘째, 인디언의 천막집처럼 발달된 수렵채집기술을 가진 무리들이 몇 주 동안 사용하는 간헐주거다.
셋째, 이동주거로 목축경제를 영위하는 유목민들의 집이며 오늘날 몽골족과 키르기스족의 유르트나 베두인족의 흑색천막집이 그것이다.

넷째, 마사이족의 보마나 나바호 인디언의 호간처럼 목축과 부분농업을 같이 하는 반유랑식 부족사회의 경우에는 계절주거에서 산다.
다섯째는 마야인들의 타원형 주택처럼 여러 해 살 목적으로 짓는 반영구주거다.
그리고 끝으로 영구주거는 국가로서의 정치·사회적 조직이 갖춰지고 잉여농산물을 보유한 정착 농경사회에서 출현하며 오늘날의 대부분 주택은 여기에 속한다.
대략 이 무렵이 지금으로부터 6000여년 전이며 주거역사의 새로운 단계인 도시 주거로 접어들게 된다. 저자는 고대문명의 도시들을 추적한다. 크게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구분하는데 내향형은 주로 동양에서, 외향형은 서양에서 발달했다.
내향형의 경우에는 가정생활과 물질소유라는 두 가지 중요한 프라이버시를 이웃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거리를 중심으로 지어진 서양의 외향형 주거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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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옥 내부. 최근 들어 한옥을 현대적으로 개량해 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조선일보 DB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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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건축으로 넘어오면서 저자는 일터와 주거가 통일되어 있던 당시 주거의 특징을 집어낸다. “중세시대의 대규모 주택은 다기능 주택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그 이후 어떤 시대도 중세의 주택만큼 주민생활을 위한 모든 시설을 제공한 적은 없었다.” 즉 그때의 주택은 기후와 외부침입자로부터 주민을 지켜주는 피난처임과 동시에 집주인의 신분을 나타내주는 성이었으며 보육원이자 학교였고 병원이었으며 교회이기도 했다.” 장인에게는 공방, 예술가에게는 아틀리에였다.
화약의 발명은 중세의 성벽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외부로 넓게 퍼져나가는 것이 도시방어를 더욱 어렵게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확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도시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는 1570년부터 1870년 사이에 도시면적은 그대로인 채 인구만 3배가 늘어났다.
저자는 20세기까지 각 나라 주거형태의 변화를 직접 그린 도판을 통해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거형태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