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정치상황 속에서 문학은 시대의 나침반 역할”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4.08.27 19:15 05' / 수정 : 2004.08.27 20:45 52'

▲ 박종성 교수는“정치가 살아숨쉬는 개개인의 행복에는 공염불이었던 반면, 진정한 문학은 어떤 정치 도구보다 강한 향내를 풍
기며 의식을 곧추세워 왔다”고 말했다. / 이덕훈기자
“거대 담론인 정치학이 광복 이후 60년 동안 정치현실은 고사하고라도, 도대체 개인의 행복에 무엇을 기여했을까요? 기록과 은유, 비유와 진술을 통해 권력이 감당 못할 감동과 흥분의 역사적 복원을 시도했던 건 오히려 문학이 아니었습니까?”

박종성 서원대 교수(정치학)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각’이 살아 있는 문어체적 사변을 마치 텍스트를 줄줄 읽듯 토해낸다. 하지만 그 속에는 도저한 힘과 울기(鬱氣)가 펄펄 끓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공허하지 않다. ‘박헌영론’ ‘왕조의 정치변동’ ‘백정과 기생’ ‘포르노는 없다’ 등, 의도적으로 ‘난삽하고 장황한 고담준론’을 탈피한 학술서들을 썼던 그의 새 저서는 ‘문학과 정치’다.

정치학자가 문학론을? 그는 마치 두 줄의 철도처럼 묘하게 평행선을 달려온 ‘문학’과 ‘정치’의 환승역을 하나 세운다. “모든 문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 문학은 권력의 허구를 분쇄하는 무기이며 역사의 이면을 들춰 내일의 행동노선을 각인하는 시대의 나침반이었습니다. 그 도도한 글 줄기 속으로 독자를 유인해 거듭날 토양을 끝없이 재생산하는 정치력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죠.”

그는 ‘일제 강점기 문학’에서 나타난 ‘퇴폐 문학’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문학은 무능했을지언정 최소한의 ‘진정성’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 “월북작가 서인식의 수필 ‘애수와 퇴폐의 비장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기막히게 형상화했습니다. ‘애수’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고, ‘퇴폐’란 민족 전체의 삶이 좌절된 끝에서 담벼락에 머리를 부딪치듯 자학으로 빠짐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것은 그대로 1930년대 현실의 반영이다.

▲ 문학과 정치
그는 ‘애수와 퇴폐’의 다른 편에 한용운과 백석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울거나 투덜대지도 않으면서 무섭게 참아낸다. 그러면서 고독을 내면화하고 ‘의도적인 마조히즘’을 드러낸다. “‘님의 침묵’은 혁명이 필요한 환장할 정치적 상황에서 오히려 ‘침묵’을 외치고 있습니다. 환장할 노릇이지요.” 왜 뒤집지 않는가? 너무 가슴이 벅차, 오히려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용운의 시 ‘나는 잊고저’는 “님을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도 않고,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다”며 역설의 계몽을 통한 자각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광복 후의 문학에 ‘매춘문학’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설정한다. 윤정모의 ‘고삐’와 안일순의 ‘뺏벌’ 등을 분석하며 “본능을 위해 몸을 사고 생존을 위해 살을 팔아야 했던 이 땅의 매매춘 시장이란 소재는 강제된 근대 편입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내면화나 자생적 합리성을 정착하지 못한 정치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내고 나면 ‘나만의 마스터베이션은 아닐까’란 의문이 듭니다. 이젠 휴지도 딸리고…. 하지만 씹는 덧글이 쏟아진다 해도 단 한 사람 공감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이 존재의 의미겠지요.” 만화나 가요도 정치학의 텍스트가 돼야 한다고 확신하는 그의 다음 작업은 ‘조선은 법가의 나라였는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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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촬영때 김정은이 이거 7번 타고 실신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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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냐 > 이병헌과 IQ

Y선배는 대중문화 리뷰에 있어서 이 바닥에서 손꼽히는 천재다. 사실 어제 컴퓨터에서 미리 Y선배의 박찬욱감독 인터뷰를 보고...이병헌 부분에서 맛이 확 가버렸다. 으으으와... 새삼 이병헌도 다시 보였지만...우우. 박감독, 무시무시하다.

20일 개봉되는 아시아3국 합작 호러물 `쓰리, 몬스터'는 올 여름 쏟아지는 공포영화 가운데 단연 발군이다.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을 비롯,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홍콩의 프루트 챈까지 3인의 개성파 감독이 세가지 공포감을 각각 전한다. 그중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컷'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한 영화감독(이병헌)을 주인공으로, 정교하게 직조된 공포스러운 상황을 통해 감독 특유의 압도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지난 12일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그의 영화사 모호필름에서 박감독을 만났다. `올드보이'`쓰리 몬스터'가 상영된 호주 시드니영화제에서 막 돌아오는 등 초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는 그는 익히 알려진 정력적인 달변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중략)

▲잘 짜여진 연극적 구성이 돋보이는데, 스토리는 어디서 착안했나.

"주변에 잘자란, 착한, 젊은 부자들이 많다. 도덕성마저 브르조와 계급에게 전유되는 현실이 굉장히 슬펐다. 영화사에 원래 냈던 아이디어가 `빠꾸'당한후 잠자리에 누웠다 떠오른 스토리다. 전체플롯이 1,2초 사이에 다 떠오른, 담배 한대 피우는 사이에 끝난 영화다."
 
▲이병헌과 두번째 작업인데, 배우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IQ다. 가방끈 길이나 독서량과 무관하게 말귀를 잘 알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똑바로 표현할 수 있는 똑똑한 배우가 좋다. 똑똑해야 세상을 잘 이해하고 배우로서 독창적 표현도 가능하다. 사실 감독은 촬영,음악,미술 등 모든 면에 속속들이 개입할 수 있는데 마지막까지 컨트롤할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이 바로 연기다. 리뷰어가 분석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만 읽으면 완전히 임원희의 영화다. 그런데 두 배역이 대등하게 나왔다. 이병헌이 그만큼 잘했기 때문이다. 임원희가 모든 것을 다 쥐고 있는 상황인데도 어쩐지 이병헌 아래에 있다는 느낌을 준 것, 즉 감독(이병헌)과 엑스트라(임원희)라는 애초의 본질적 계급관계가 살아있게 연기한 것은 두사람의 탁월한 소화력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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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9-02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병헌, 저도 좋아하는 배우죠.^^

stella.K 2004-09-0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잘 모르겠더라구요. 이병헌은 좀 왕자같은 느낌이 나서, 바람둥이란 말도 있고...근데 박찬욱은 제가 좀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 사람이 좋다고 하면 믿음을 줄만할 것도 같아요.
근데 지금 마냐님 이벤트 하셔서 뭐가 있나, 보다가 건진거예요. 혜경님도 마냐님 이벤트 도전해 보세요. 쉬운 거 같아도 어렵겠던데요.^^
 

18C 세계바다를 주름잡은 17세 소년의 파란만장 일대기
 조학제 옮김/ 연경미디어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18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대서양 해상권을 놓고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경쟁을 벌이던 시대를 배경으로 ‘바다 사나이’의 기개를 그린 해양소설이다.

이 소설은 서양 해양문학의 커다란 봉우리로 자리잡은 C S 포레스터의 대작 ‘혼블로워’ (Hornblower) 시리즈의 첫째권이다. 이 시리즈는 주인공 호레이쇼 혼블로워가 17세 소년시절 해군에 입대해 전세계 바다를 주름잡는 제독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1937년 첫 권 발표 이후 전 10권으로 완성하는 데만 26년이 걸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한 포레스터는 해군 취재 경험을 토대로 여러 편의 해양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영국이 세계의 바다를 제패할 때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풋내기 소년이 수많은 해전을 겪으며 해군장교로 성장하는 과정을 정밀한 항해묘사, 함상생활의 애환 등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 1820년 영국해군 트라팔가함의 진수 장면(존 위첼로 작). 혼블로워는 영국 해양력이 대양의 주도권을 쟁취한 시대를 배경으로모험담을 펼친다.
주인공 혼블로워는 처음 함정에 배치되자 배멀미에 취하고, 범선 시대 선원이면 누구나 익숙해야 할 마스트(돛대)에 올라가서는 고소공포증을 일으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풋내기 사관후보생인 주인공은 젊은 혈기에 상사에게 결투를 신청하기도 하고, 갖가지 모험에 뛰어들며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를 연출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향과 춤추는 파도 속을 항해하는 범선은 바다 위에 뜬 나뭇잎 같다. 해도 위에 몸을 굽혀 배의 위치를 측정하고 컴퍼스로 항로를 결정하는 과정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수학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다. 작가는 18세기 범선의 구조와 항해술에 대한 전문 지식을 동원, 마치 실제로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주인공이 처음 부하들을 이끌고 지휘한 항해는 나포된 프랑스 선박을 영국으로 끌고 가는 임무였다. 그러나 나포 당시 영국 전함의 함포 공격으로 선체 아랫부분에 구멍이 뚫린 함정은 배 안으로 바닷물이 흘러들어오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직면한다. 그 바닷물이 화물창고에 있던 쌀에 스며들어 부피가 불어나고 배는 결국 침몰한다. 간신히 탈출한 주인공 일행은 프랑스 전함에 발각되어 붙잡혀 포로 신세로 전락했으나, 선박 안 페인트 창고에 불을 질러 극적으로 탈출하기도 한다.

혼블로워는 프랑스 해안선에 보트로 침투해 적함을 탈취하는 원정 결사대에 참가하기도 한다. 야밤을 틈타 적함 근처에 침입했으나 부하 중 한 명이 간질을 일으켜 소리를 지르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적함의 갑판에 뛰어오른 100여명의 결사대는 일순간에 적들을 제압하고 군함을 탈취했으나, 주인공은 처음으로 동료들의 비참한 죽음을 목도한다.

혼블로워는 무엇보다 명예와 신사도를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 이 모험담이 단순히 해양 소설에 머물지 않고 세상에 눈을 뜨는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소설로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인공이 스페인군에 잡혀 포로생활을 할 때, 스페인 군함이 난파되자 그는 생존자 구조를 자청한다. 적군이었던 스페인군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표류하다 영국 군함에 구출되지만, 그는 “사관의 명예를 걸고 포로선서를 했다”며 다시 스페인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평민들을 짐승 취급하며 학살하는 사령관에 맞서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사답게 행동하고 싶습니다.”

소설은 자신에게 반항한 사람을 무조건 단두대로 보내는 인물과, 부하들이 위기에 처하자 옷을 벗어젖히고 선원들과 함께 직접 노를 젓는 펠류 함장 등을 대비시킨다. 진정한 바다의 사나이가 되기 위해서는 정의와 용기, 사랑 같은 신사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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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조선일보 Books 서평위원

 


이제 곧 개강이라 수강생 명단을 받아 대충 훑는데 눈이 저절로 가서 멈추는 이름이 있었다. ‘문영희’라는 이름이었다. 학생들 사이에 ‘영희’가 아주 드물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영희라는 이름이 너무 흔해서 적어도 한 반에 한두 명, 많으면 서너 명까지도 있었다. 그런데 ‘영희 세대’가 부모가 되어서는 절대로 자식들에게 영희라는 이름을 주지 않았는지, 요새는 오히려 아주 희귀한 이름이 되었다.

내 이름은 한자로 써도 아주 평범한, ‘꽃부리 영(英)’에 ‘계집 희(姬)’이다. 그런데 내 이름이 신문이나 잡지에 한자로 소개될 때는 온갖 독특한 ‘영’과 ‘희’자가 다 동원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희’로 嬉가 씌어졌고, 지난번 어느 일간지에는 禧라고 나왔다. 가톨릭 세례명도 있는데 그것도 내 세대에서는 제일 흔한 ‘마리아’이다. 내가 알기로 신약의 네 복음서에 나오는 마리아만 해도 일곱이나 되니(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를 다른 사람으로 칠 때), 그 당시에도 아주 흔한 이름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이름도, 한자도, 세례명도 모조리 다 흔한 것뿐이니 어렸을 적에 나는 걸핏하면 노트에 내가 개명을 하면 쓰게 될 독특하고 예쁜 이름이나 세례명의 목록을 적어 보곤 했다. 그런데 어영부영 살다 보니 개명을 못한 것은 물론, 그나마 정도 들고 포기하기도 해서 이름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독자가 내게 ‘오보(吾步)’라는 아호를 지어 보내 왔다. 한지에 정성스럽게 “吾步는 내 길을 가는 것이니 만고의 정도(正道)를 걷는 큰 길이요, 선친의 ‘보’(步)를 나 또한 가는 것이다”(돌아가신 아버지의 호가 우보〈又步〉였다)라고 뜻을 써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보 장영희’라고 하니 아주 그럴듯하고 멋있게 들리는 것 같다.

서양에는 아호라는 개념이 없지만 펜 네임, 또는 필명이 있다. 아마 가장 유명한 필명으로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일 것이다. 원래 이름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인데 청년 시절 미시시피강을 오가는 증기선의 견습 파일럿을 할 때 강물의 깊이가 가장 알맞은 ‘두 길’이라고 외쳐 알리는 말을 필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일러스 마너’의 작가 조지 엘리엇은 남자 이름이지만 사실은 ‘메리 앤 에반스’라는 여자이다. 당시에 여류 작가들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동거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남자 이름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쓴 ‘애담 비드’를 읽은 선배 작가 찰스 디킨스가 이 책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쓴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해서 정체가 밝혀지게 되었다.

▲ 장영희
이 외에도 우리의 귀에 아주 익숙한 이름들이 작가들의 본명이 아닌 경우는 꽤 많다.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의 본명은 커러 벨이고, 그녀의 동생이자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의 본명은 엘리스 벨이다. 단편 작가로 유명한 오 헨리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원래 찰스 도지슨이다. ‘동물농장’과 ‘1984’를 쓴 조지 오웰 역시 필명이다. 본명은 에릭 블레어였는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영국의 수호신 성(聖) 조지에서 이름을, 집 가까이에 있는 오웰강 이름을 따서 성(姓)을 만들었다.

吾步 장영희-. 멋있기는 한데 익숙지 않아서일까,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하기 짝이 없다. 그냥 장영희가 좋다. 촌스럽고 분위기 없으면 어떤가, 부르기 좋고 친근감 주고, 무엇보다 장영희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말한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은 그 어떤 이름으로라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을.” 맞다. 향기 없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향기 없는 사람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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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9-01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분이 스텔라님이시군요! 사진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04-09-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웃자고 쓴 겁니다. 저도 압니다!
그리고...오보라는 호는 별로 안좋군요. 기사가 픽사리난게 오보잖아요

stella.K 2004-09-0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교수 제가 참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한분이죠. 근데 저분 아호 저도 맘에 안들어요.
저는 오늘 저녁 드디어 마태님 볼 수 있어요.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근데 제가 미인 사칭했잖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토요일 번개에 나갈려고 했는데, 이 사칭죄에 걸릴까 봐 나가야할지 말야얄할지 고민 중이랍니다.
뭐, 이제 보니 제가 장영희 교수 정도의 인물은 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예쁘게 봐주시렵니까? 그럼 나가 보는 쪽으로 적극 생각해 볼께요. ㅠ.ㅠ

▶◀소굼 2004-09-0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론테 자매의 본명이 따로 있었군요..오호

아영엄마 2004-09-0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본명을 모르는 저자의 이름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제 이름도 상당히 독특한지라 유감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불러 줄 때 제대로 쓰는 사람 거의 못 봤습니다. 제가 써 주든가, 수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기다 조금 잘못 부르면.. 크흑.. (지랑->지렁??ㅜㅜ)

stella.K 2004-09-0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굼님/저도 그런 줄만 알았지 뭡니까...
아영엄마/지랑? 이름 예쁜 거 같은데 뭘요? 저는 너무 흔한 이름이 되어버려서 별로 사랑스럽진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