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사연이 있는 책: 거꾸로 읽는 세계사

 

 

 

 

 

아버님 서재를 뒤지다 보니 유시민의 명저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있다. 꺼내서 읽고 있는데 아버님이 이러신다.

“그 책 재미있지? 나도 읽었는데 그 책을 보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모택동이 대장정을 한 얘기부터 베트남전의 진실까지”

읽으면서 충격이 크셨던 듯 책 원래 책을 깨끗이 보시던 것과는 달리 책 곳곳에 빨간볼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외눈을 가지도록 교육받았던 우리에게 그 책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이리라.


사실 난 그 책을 읽으면서 별반 놀라지 않았다. 내가 무디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책을 너무 늦게 읽어서. 그 책을 읽을 때의 난 리영희나 강준만, 진중권의 각종 저작들을 읽은 후라 거기 나온 사건들의 진실을 대충 다 알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그냥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지, 놀랄 일은 하나도 없었다. 속상한 것은 어찌어찌하다가 그만 그 책을 잃어버렸다는 것. 돌아가신 아버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책을 잃어버린 게 어찌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홧김에 서점에 가서 그 책을 다시 샀지만, 그건 별반 의미없는 일이었다. 그 책이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좋은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엊그제, 누나 집에 놀러갔다가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조카애의 책장에 그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벌써 그런 책을 읽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카도 나처럼 그 책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기는 힘들 것 같다. PD를 그만두고 수능 공부를 3년째 하고 있는 친구에 의하면, 요즘 교과서는 우리가 예전에 배우던 것들과 전혀 다르단다. 유신이 구국의 결단이 아닌 독재를 위한 수단으로 이야기되고, 5공화국이 구현하려던 정의사회라는 것이 말짱 허황된 소리였다는 등 학생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들이 버젓히 실려 있어서 놀랐다는 것이다. 피카소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딴 크레파스가 판매금지를 당하던 때에 비하면 세상도 크게 달라졌다. 체 게바라의 평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모택동의 자서전도 합법적으로 출간되는 세상이 아닌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가장 큰 가치는 그 책이 다루는 사건들이 우리가 기존에 배웠던 관념들과 180도 다른 각도에서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접한 내 조카에게는 그 책의 제목이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을까.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해방 전후의 혼란스러운 한국사회를 다룬 책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다며 ‘좌파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적이 있다. 한나라당이 문제삼고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한 ‘교과서 파동’을 보면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거꾸로 살고 있는 사람이 이 땅에는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너무 오랜 기간 한쪽 눈만 뜨고 세상을 산 부작용일텐데, 한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가 되버린 그들을 위해 <거꾸로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바르게 살 수 있다>는 제목의  책을 써줄 사람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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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 오렌지 향에 숨겨진 인간의 상실감

송은경 옮김 | 문학동네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토속요리, 원예 등에 해박한 조안 해리스는 전원을 배경으로 하는 향기롭고오감을 자극하는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어린 시절의 원초적이고 포근한 기억들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에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아득한 향기는 그 음식과 연관된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기에서 유년기를 보낸 한 프랑스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어머니와 오빠, 언니에 대한 소녀의 내밀한 기억과 인생 역정이 음식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

조안 해리스는 몇 년 전 개봉된 영화 ‘초콜릿’의 원작자로, ‘오렌지 다섯 조각’ ‘블랙베리 와인’ ‘프랑스풍 주방’ 등 오감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요리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이 소설은 특히 프랑스 전원마을에서 성장한 작가의 토속 음식과 원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감칠맛 나는 묘사가 돋보인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시골 마을 레 라뷔즈에서 나고 자랐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 때문에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나이 든 과부 프랑수아즈 시몽(본명 프랑부아즈 다르티장). 그녀가 자신의 본명을 숨기면서까지 결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과거는 그녀가 아홉 살 때, 독일군 점령 당시 일어난 한 살인 사건이었다.

예쁘지도 않고 귀염성도 없지만 물러설 줄 모르는 고집을 지녔던 소녀 프랑스와즈는 어린 시절 내내 어머니와 부딪친다. 자녀들의 이름에 모두 과일 이름을 붙여 부를 정도로 과일을 사랑했던 어머니는 요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괴팍한 성격의 그녀는 자신의 기질을 가장 많이 물려 받은 주인공인 막내딸을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 겉으로는 여자다운 맏딸 레네트를 더 사랑하는 듯이 보인다.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은 막내딸은 어머니에 대한 애증(愛憎)으로 사사건건 대립한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독일 점령군이 찾아오면서 주인공인 어린 소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 신분이었지만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그 병사에게 어린 소녀는 무지갯빛 환상을 품는다. 오빠와 언니도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비밀을 그 병사에게 고자질하고 립스틱이나 담배 등을 얻어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병사가 살해당하자 독일군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다. 부역자로 몰린 주인공 가족은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당하고 집이 불타는 소동을 겪으면서 쫓기듯 마을을 떠난다.

그 병사를 죽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제는 나이가 먹어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형벌처럼 내려진 그 비밀을 혼자 짊어진다.

소설 중간중간 프랑스 토속 요리 조리법과 요리맛에 대한 관능적인 묘사는 소설 읽는 맛을 더해준다. 나이 탓에 쪼그라진 노인을 마치 만들다 실패한 수플레(계란 흰자에 우유를 섞어 거품을 낸 다음 구운 요리)가 슬그머니 가라앉는 것 같다고 묘사한다. 울컥 감정이 복받치는 장면은 ‘찬란한 혜성 같은 흥분이 겨드랑이를 쿡쿡 찌르고 뱃속을 팬케이크 뒤집듯 홱홱 뒤집었다’(61쪽)라고 표현한다.

고향에서 식당을 연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요리는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모티브다. 요리에 대해 애정을 쏟은 어머니지만, 유독 오렌지 향기만 맡으면 편두통을 앓는다. 그 오렌지에 얽힌 비밀스런 애증과 관능을 푸는 열쇠는 어머니가 죽으면서 물려준,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요리책에 담겨 있었다. 입 안에서 터지는 새콤달콤한 오렌지 향기 속에는 어둡게 얽혀든 상실과 원한 같은 인간의 어두운 면이 숨겨져 있었다.

성장소설로도 읽히는 이 작품은 미스터리 같은 인생의 진실에 접근하는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해 사랑과 미움, 양심과 배신 등이 얽힌 삶의 이중성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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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이 소설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요리 나오는 책, 영화, 방송 프로그램 모두 좋아해요.^^

stella.K 2004-12-12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초콜렛이란 영화 본적이 있는데, 되게 재밌게봤어요.^^

마냐 2004-12-12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어느 후배가 가져가려는 거 얍실하게 먼저 챙겨놓은 책인데....아직 읽지를 못하고 있으니, 제가 참 복에 겨운 게으름뱅이다 싶군요.

mira95 2004-12-13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콜렛 봤었는데 재미있더군요.. 이 책 저도 사려고 보관함에 담아 놨답니다. ㅋㅋ 언제 살 지는 모르겠지만...

stella.K 2004-12-1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님이 게으름뱅이라 하시면 저는 땅파고 누워야겠습니다. 마냐님처럼 부지런쟁이가 어디 있다고...^^

미라님/저도 이 책을 빨리 읽고 싶은데 어느 세월에 읽을런지 모르겠네요. 흐흐.
 

단두대에 대한 성찰·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프랑스는 1982년 사형 제도를 폐지했다. 사형 폐지론자들의 오랜 투쟁 끝에 진보적인 사회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루어진 일이다. 우연하게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사형장으로 끌려 가는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사형 제도 폐지 운동에 적극적인 지식인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1957년 사형수의 목을 자르는 프랑스식 사형 제도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오늘날에는 처형 광경을 아예 볼 수 없게 되었고, 형의 집행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만 들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간혹 사형 집행 소식은 부드러운 표현으로 분장되어 들려온다. 이렇듯 벌의 내용을 점점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 궁리만 하고 있는데 어떻게 미래의 범죄자가 범행 순간에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사형 장면을 공개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카뮈는 이것도 반박했다. “20세기 초에 영국에서 낸 통계를 보면 교수형에 처해진 250명 중 170명이 과거에 한두 번씩은 사형 집행 광경을 직접 구경해본 사람들이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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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의상은 신분·계급을 포함한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는 시각언어인 한편, 성(性)·신분 같은 상징적 경계를 허무는 데 쓰이는 항거의 무기이기도 하다. 자아표현의 수단이란 측면에서 본 ‘패션의 사회사(社會史) 연구서’와, 독립적 문화장르로서 고유 영역을 넓혀가는 ‘패션 사진 분석서’가 함께 출간돼 눈길을 끈다.

패션의 문화와 사회사

다이애너 크레인 지음|서미석 옮김|한길사|464쪽|2만원

패션의 사회적 의미가 어떻게 변이돼 왔는지를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실증 연구를 통해 서술한 책(원제 Fashion and its Social Agendas)이다.

저자는 소외된 노동자 계급 연구의 초점을 두고, 1850~1910년 프랑스 노동자계급 가정 81가구를 대상으로 한 사회학자 르레데리크 르 플레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당시 노동자 10% 정도만이 슈트(정장)를 갖고 있었고 그것도 상복으로 쓸 수 있는 검정색 계열이 대부분이었고, 절대 다수가 소매 없는 양복 조끼와 나막신을 보유했다.

“패션의 변화는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계급 사람들이 상류계급 사람들을 모방하는 과정이다”라는 게오르크 지멜(독일 사회학자)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그 일부만 타당성을 인정한다. 19세기 중반 미국·영국의 젊은 여성 직공들이 의상 지출비를 늘려 신분상승 욕구를 해소하기도 했지만, 여성을 억압·통제하려는 이데올로기가 구현된 의상을 비언어적 저항의 상징으로도 활용했다. 1850년대 미국에서 복장개혁의 하나로 제안된 스커트 아래 터키풍 헐렁한 바지는 20세기 여성 바지의 대중화를 예고한 것이었다.

20세기 말 세분화된 사회에서 의상 행위는 일과 여가가 크게 분리됐음을 보여주고, 특정 스타일의 주기는 짧아지고 계급 대신 연령이 더 중요한 기준으로 대두된다. 저자는 의상을 물질문화의 여정을 밝히는 단서로 추적하면서 150년에 걸친 프랑스·미국·영국의 패션과 의상 선택을 고찰한다.

패션사진, 문화와 욕망을 읽는다

이선재·고영림 지음|숙명여대출판국|290쪽|1만8000원

패션(유행)이란 전염성 있는 사회적 동조 현상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패션은 산업혁명 후 잡지의 대중화와 함께 출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 제1부는 사진작가를 중심으로 패션사진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다. 1880년경 파리에서 시작된 패션사진의 초기 대표작가는 세실 베통과 베론 아돌프 드 메이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희미한 조명에 흐릿한 초점을 사용한 ‘영상 위주(pictorialism)’가 특징이다. 이후 차례로 만개한 모더니즘(조지 호이닝엔 휘네)·초현실주의(만 레이)·로맨티시즘(리처드 아벤돈과 어빙 펜)·섹슈얼리즘(기 부르뎅과 헬무트 뉴튼) 사조를 소개한다. 위르겐 텔러로 대표되는 1990년대 패션사진에 길거리 하위문화가 난입하고, 잔인함·죽음·가학과 평범한 일상의 단면이 혼재한다.

제2부는 정신분석학과 포스트구조주의의 욕망이론을 중심으로 잠재적 수요자가 소비에 이르고, 이런 유형이 재생산·순환돼 유행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분석한다. 남근을 형상화한 립스틱과 여성 성기를 표상하는 약간 벌린 입술을 병렬 배치한 립스틱 광고, 성인에게 유아기적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소녀 같은 의상(school-girl look)이 먹혀드는 심리적 기제를 설명한다. 치명적 관능미를 머금은 패션 사진 속 모델은 왜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가? 소비자는 모델의 응시에 적응하려다 동일시 과정을 거쳐 제작자의 의도에 휘말리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관음증·물신숭배 등이 욕망을 소비하게 만드는 도구로 활용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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