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은 신분·계급을 포함한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는 시각언어인 한편, 성(性)·신분 같은 상징적 경계를 허무는 데 쓰이는 항거의 무기이기도 하다. 자아표현의 수단이란 측면에서 본 ‘패션의 사회사(社會史) 연구서’와, 독립적 문화장르로서 고유 영역을 넓혀가는 ‘패션 사진 분석서’가 함께 출간돼 눈길을 끈다.
패션의 문화와 사회사
다이애너 크레인 지음|서미석 옮김|한길사|464쪽|2만원
패션의 사회적 의미가 어떻게 변이돼 왔는지를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실증 연구를 통해 서술한 책(원제 Fashion and its Social Agendas)이다.
저자는 소외된 노동자 계급 연구의 초점을 두고, 1850~1910년 프랑스 노동자계급 가정 81가구를 대상으로 한 사회학자 르레데리크 르 플레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당시 노동자 10% 정도만이 슈트(정장)를 갖고 있었고 그것도 상복으로 쓸 수 있는 검정색 계열이 대부분이었고, 절대 다수가 소매 없는 양복 조끼와 나막신을 보유했다.
“패션의 변화는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계급 사람들이 상류계급 사람들을 모방하는 과정이다”라는 게오르크 지멜(독일 사회학자)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그 일부만 타당성을 인정한다. 19세기 중반 미국·영국의 젊은 여성 직공들이 의상 지출비를 늘려 신분상승 욕구를 해소하기도 했지만, 여성을 억압·통제하려는 이데올로기가 구현된 의상을 비언어적 저항의 상징으로도 활용했다. 1850년대 미국에서 복장개혁의 하나로 제안된 스커트 아래 터키풍 헐렁한 바지는 20세기 여성 바지의 대중화를 예고한 것이었다.
20세기 말 세분화된 사회에서 의상 행위는 일과 여가가 크게 분리됐음을 보여주고, 특정 스타일의 주기는 짧아지고 계급 대신 연령이 더 중요한 기준으로 대두된다. 저자는 의상을 물질문화의 여정을 밝히는 단서로 추적하면서 150년에 걸친 프랑스·미국·영국의 패션과 의상 선택을 고찰한다.
패션사진, 문화와 욕망을 읽는다
이선재·고영림 지음|숙명여대출판국|290쪽|1만8000원
패션(유행)이란 전염성 있는 사회적 동조 현상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패션은 산업혁명 후 잡지의 대중화와 함께 출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 제1부는 사진작가를 중심으로 패션사진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다. 1880년경 파리에서 시작된 패션사진의 초기 대표작가는 세실 베통과 베론 아돌프 드 메이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희미한 조명에 흐릿한 초점을 사용한 ‘영상 위주(pictorialism)’가 특징이다. 이후 차례로 만개한 모더니즘(조지 호이닝엔 휘네)·초현실주의(만 레이)·로맨티시즘(리처드 아벤돈과 어빙 펜)·섹슈얼리즘(기 부르뎅과 헬무트 뉴튼) 사조를 소개한다. 위르겐 텔러로 대표되는 1990년대 패션사진에 길거리 하위문화가 난입하고, 잔인함·죽음·가학과 평범한 일상의 단면이 혼재한다.
제2부는 정신분석학과 포스트구조주의의 욕망이론을 중심으로 잠재적 수요자가 소비에 이르고, 이런 유형이 재생산·순환돼 유행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분석한다. 남근을 형상화한 립스틱과 여성 성기를 표상하는 약간 벌린 입술을 병렬 배치한 립스틱 광고, 성인에게 유아기적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소녀 같은 의상(school-girl look)이 먹혀드는 심리적 기제를 설명한다. 치명적 관능미를 머금은 패션 사진 속 모델은 왜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가? 소비자는 모델의 응시에 적응하려다 동일시 과정을 거쳐 제작자의 의도에 휘말리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관음증·물신숭배 등이 욕망을 소비하게 만드는 도구로 활용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