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집시고, 강도고, 볼셰비키다'

/ 양선아 옮김/ 영림카디널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현대 영미권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인 존 업다이크〈사진〉가 2차 대전 이후 미국 미술계의 흐름을 소설을 통해 되살려 냈다.

2001년 초봄, 미국 동북부의 버몬트주의 한적한 시골에 은둔 중이던 79세의 여류화가 호프 샤페즈는 야심에 찬 뉴욕의 잡지사 여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노(老)화가는 미국 화단의 추상 표현주의와 팝아트의 양대 산맥이었던 두 남자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더 유명하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 잭 맥코이의 모델은 액션 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록, 두 번째 남편 가이 할로웨이는 엔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거장을 혼합해 놓은 인물이다. 항상 시대를 앞서야 한다는 긴장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들의 예술적 실험과 도전, 내적 고민 등을 통해 거장들의 잘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를 되살린다. 인터뷰 과정에서 19~20세기 미국 미술계의 온갖 무용담이 당시 사회상황과 맞물리면서 등장해 현대 미국미술에 대한 교양서로도 읽힌다.

젊은 여기자와 노화가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되며, 오전의 두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보았던 인터뷰는 저녁까지 이어진다. 한 다발이나 되는 질문지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녹음기를 들이댄 여기자는 주인공이 피하고 싶은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두 여인 간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실험과 반동으로 점철된 미국 미술계의 단면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잭슨 폴록 등이 활약했던 시기는 전통적인 유럽화단의 강세에 맞서 미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를 주도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다.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미술사조는 추상 표현주의와 팝아트. 작가는 소설의 상당부분을 잭슨 폴록 연구서와 추상 표현주의 명화집에 기대고 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피카소는 별로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은 것을 해낸다. 마티스는 괜찮다, 모든 것에 외적인 절제가 있고 노력을 통해 달성하며, 검소한 부르주아다. 피카소는 집시고, 강도고, 볼셰비키다.’(50쪽)

새롭게 태동하기 시작한 미국 화단은 투박함과 열정, 그리고 폭력에 가까운 형식파괴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한다.

‘잭은 그림이 꾸며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해서 지저분하거나 깨진 유리잔을 물감이 아직 마르지도 않는 캔버스에 던지거나, 더러운 신발로 캔버스 위를 걸어다니기도 했다.’(76쪽)


거장들이 심혈을 기울여 작품에 몰두하는 과정은 “질문과 대답, 밀고 당기기”로 상징된다. 전쟁과 사회변혁 등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그 시대 예술가들에게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예술이 인간이나 사회와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한 탐색이기도 했다.

‘나는 모든 회화가 이야기, 즉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오. 화가가 하고 싶지 않은 것, 화가가 하고 싶어 하는 것, 화가가 죽기 살기로 시도하는 것, 자기 자신의 내부로부터 일종의 뭐랄까, 궁국적인 섭리?’(352쪽)

캔버스는 하나의 모험이자, 인생과 사회를 담는 그릇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여류 화가에게 열정과 창조와 사랑과 진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 던져진다. 그것은 온갖 역경을 거쳐 황혼기에 이른 자신의 얼굴이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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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국내 커피 역사 110년

국내 커피 역사 110년…'끽다점'을 아시나요

90년대 후반 들어 커피문화 급변

: 지정훈기자


 1896년 아관파천 때 웨델 러시아 공사의 처형인 ‘손탁’이라는 여인이 고종의 음식을 돌보면서 처음 커피를 드렸는데, 이후 고종은 커피 애호가가 됐다. 커피를 즐긴 고종은 덕수궁에 ‘청관헌’이라는 커피집을 짓고 이따금 대신들을 불러 함께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나중에 고종이 정동에 호텔을 지어 손탁 여사에게 하사한 것이 ‘손탁호텔’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바로 이 손탁호텔 1층에 문을 연 ‘정동구락부’다. 이곳을 드나들었던 외국의 저명 인사로는 데오도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와 종군 기자로 한국에 왔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 등이 있었다. 내국인 중에는 이상재·민영환·윤치호 등 개화파 인사들이 자주 들렀다.

민간에서는 1900년 초 서울 광교에서 장사하던 서양인이 거래하던 조선 상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존재를 알렸다. 검은 색깔이 나는 탕약 같다고 해 커피를 ‘양탕국’이라고 불렀다. 20년대 서울 다동에는 전통 다방들이 많아서 다방골이라고 했다. 객주들이 이곳을 상거래 장소로 자주 이용했다. 당시 다방에서 일하는 넉살 좋은 여자를 ‘다모’(茶母)라고 불렀다.

2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식 커피하우스인 ‘끽다점’(喫茶店)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영화감독 이경석씨가 차린 ‘카카듀’ 다. 당시 서울에는 세 곳의 끽다점이 인기가 높았다. 배우 복혜숙 여사가 서울 인사동에서 경영한 ‘비너스’ 에는 나운규·문예봉·이청전 같은 예술인과 여운형·김준연 같은 정치인들이 단골로 들러 담론을 나누곤 했다.

소공동에서는 김연실 여사가 연 ‘낙랑’ 이라는 커피하우스가 인기였는데 이광수·정지용·김기림·이헌구·모윤숙 등 작가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충무로에는 강석연씨가 차린 ‘모나리자’ 에 주로 가수들과 음악인들이 많이 모였다. 시인 이상도 한때 ‘제비’ 라는 소문난 커피하우스를 운영했으나 경영 미숙으로 문을 닫았다.

해방 뒤에는 수필가 전숙희 여사가 경영한 명동의 ‘마돈나’ 가 문학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부산 피난 시절에는 ‘밀다원’에 문학인과 영화인들이 단골로 모였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50년 후반에는 대학로의 ‘학림’ 이 많은 문학인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줬다. 56년에 문을 연 대학로 학림이 국내에서 영업하는 커피하우스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60~70년대에는 ‘르네상스’ 같은 음악다방이 성행했다. 음악다방들은 지금의 장노년층들에게 많은 음악을 소개하며 산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했고, 당시 젊은이들에게 낭만을 심어줬다.

80년대에는 ‘난다랑’ 등 새로운 스타일의 커피전문점들이 유행하면서 원두커피 문화가 조금씩 알려졌으나 경영상 어려움으로 쇠퇴했다.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커피하우스들은 세계적 커피 체인들과 경쟁을 하며 커피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 중 하나가 ‘걸어 다니며 즐기는 커피’가 됐다는 점이다.

뜨거운 커피는 앉아서 조심스레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세대에게 걸으며 마시는 커피는 충격이었다. 또 커피 한잔 주문하는 데도 상당한 커피 지식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과거에는 “커피 주세요”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20~30여 가지나 되는 다양한 커피 메뉴 중 하나를 골라 주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커피는 이제 개인별 맞춤 서비스로 변하고 있다. 개인의 기호를 최대한 만족시키려는 맞춤 마케팅이 커피 한잔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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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004년 12월 07일 765호 / 2004.11.30 15: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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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영철과 함께


 블로그의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국내 블로그의 역사는 지난해부터라고 봐야겠지요. 포털사이트들이 너도나도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빠른 속도로 대중화 되었으니까요. 조선-중앙 등 언론사가 블로그를 개설한 것은 올해입니다. 불과 몇달에 불과하죠.

 블로그라는 것이 시간을 갖고 천천히 확산돼 갔다면 블로그의 윤리도 어느정도 확립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윤리문제를 논의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에 블로그가 확산된 것 같습니다.
 블로그의 내글이 어느날 인테넷 뉴스 사이트의 대문에 걸리고 그에대한 속보가 쏟아지고 한다면 참 당황스러울 겁니다. 실제로 그러한 사태가 있었죠. 블로그의 글을 퍼다가 올린 뒤, 그 글의 논지와는 전혀 엉뚱한 방향의 문제를 제기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는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뉴스 사이트에서 한 개인 블로그의 글을 선택해 난도질 한 데는 분명히 목적과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신문산업이 왜 망할수 밖에 없는지를 분석했는 데,뭐 개인적으로 그 논지에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그야말로 개인 블로그질에선 충분히 할수 있는 '술집 접대부처럼'이란 표현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켰죠. 이러한 글이 일반 포털사이트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면 아무 문제없이 지났을 겁니다.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언론사의 블로그, 아울러 그 언론사에 종사하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형성돼 있는 전선이 개인적 차원에서 그냥 손가는 대로 쓴 글까지도 잘근잘근 씹어 해체해 '노출증환자'로 매도해야 할정도로 치열한 것이겠지요. 여성에 대한 비하적 표현은 문제가 됩니다. 특히 공인이라면 그러한 표현에 대해 잘잘못을 철저히 따져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기자의 불로그 질이라는 것이 공적인 것이냐 아니면 사적인 것이냐에 대해 블로거들이 성찰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채 일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블로그는 개인 미디어, 사적 일기장 등 '사적 영역'임이 강조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에서 수많은 주제의,  그 수많은 글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찾아보겠습니까? 그래서 컴뮤니티 형태로 운영되는 블로그의 조회수가 많은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컴뮤니티 간판을 내걸수도 있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 이웃을 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컴뮤니티를 형성할 수도 있겠지요. 아마도 사이월드의 폭발적인 인기는 바로 사적 영역의 '엿보기'와 그 엿보기를 가능케 해준 촌수맺기라는 '교통'방법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무한한 소재와 주제로 글쓰기가 가능한 포털 블로그에 비해 뉴스 사이트의 블로그는 말 그대로 '뉴스'라는 창이 개입되기 때문에 무한한 다양성은 어느 정도 제한된다고 봅니다. 물론 뉴스  사이트의 블로그에 매일매일 생각나는 대로 글을 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이 경우엔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아주 낮겠지요. 그만큼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애기 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의 블로깅은 거의 대부분 뉴스란 '창'을 통해 본 것으로 이뤄질 겁니다. 뉴스와 관련된 글, 그것도 뉴스를 찾기위해 일부러 방문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관련 글에 클릭 버튼을 누르겠지요. 말하자면 노출도가 그것도 뉴스에 관심있는 사람들에 대한 노출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다 훨씬 민감한 측면이 있지요.

  언론사가 운영하는 기자들의 블로그에는 대개 '기자 블로그는 기자 개개인의 미디어로,기자 블로그에 나타난 생각은 신문사나 신문사닷컴의 편집 방향 및 논조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고의 경직성은 기자 블로그는 그 소속사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여기고 있지요. 그래서 혹 그 소속사의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되면 또 다른 '뉴스의  창'에 걸리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실 인터넷 언론이란 그 속성상 무한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옳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그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사회의 실현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 인터넷 언론이지요. 블로그는 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 인터넷 사이트에서 블로그의 글을 문제삼기 시작한다면 인터넷이 추구하고 있는 다양성은 갈 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종이신문과 공중파 방송의 제한된 정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만인을 위해, 블로그의 글만은 '뉴스'로 퍼나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일이 블로그의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어 준게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블로그에 글쓰기를 할때는 몇가지 원칙을 갖고 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기자 블로그는 공인이라 생각하고 글쓰기에 임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특히 기자블로그를 따로 관리하는 상황일 땐 더욱 그래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아래 퍼온 글은 생각할 단서를 제공합니다. '일상이 아니라 일상 속의 '일부분'이도록 하고' '독서와 생각들의 결과물이어야 하고' '책에서 만나는 옛사람들과의 소통같은 글쓰기'여야 한다.  '블로그에서 춤추는 입들을 단속해 나날이 진행되는 자기발언의 허를 점검하고 그 '오버'를 붙드는데 공력을 기울이라'는 말은 특히 새길만하다. 바로 아랫글은 이 '단서 제공자'의 '퍼 온 블로그 발언의 뉴스화'에 대한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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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입(mouth)이나 일기장(log)인 ‘블로그 발언’이 공적인 미디어의 취사선택 작업에 의해 갑자기 ‘공론’의 위상에 처해을 때 당황하지 않을수 없다. 이럴 때 이 발언에 기존의 미디어의 '공적 권위'를 실어주는 게 맞는지, 아니면 사적인 자유발언으로 감안해 들어야 하는지 헷갈리게 된다. 물론 문갑식 기자는 '블로그를 출입하는 일부 독자'에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또한 그것이 경쟁지의 인터넷 사이트에 대서 특필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블로그의 기술적 특성인 사적인 자유와 공공성의 혼재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저런 파문을 부를 수 있다고 본다. 문갑식 블로그 발언에 대해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개인적인 발언인데 그것을 기자의 공공적인 기사로 읽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입장에서부터, 중견기자가 '어디로든 유포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블로그에다 그런 글을 올렸을 때는 이미 공적인 발언이라고 보는 입장까지 엇갈려있다. 전자의 의견에 무게를 둘 경우, 무책임한 사적 발언으로 포장된 '미디어의 의견'들이 범람할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 되고, 후자의 의견에 힘을 실으면, 블로그라는 개인적인 자유언론에 족쇄를 채우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 이래저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블로그의 공-사적 특징 혼합은, 어쩌면 미디어의 공공성의 위기를 재촉할 지도 모른다. 의견들은 거대한 입에 의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수천 개의 다양한 의견으로 핵분열하는 사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회가 오기 전에, 대중매체와 일인매체 간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오해와 낯선 현상들은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갑식 발언은 사랑방에서 몇 사람이 모였을  때 했던 얘기가 감나무에 걸린 마을회관의 확성기를 타고 온 동네에 퍼진 경우라 할 만하다. 본인이 당혹스러운 것이야 짐작이 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반상회에서 정식으로 결정되어 나온 얘기로 듣고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도 얄궂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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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원칙 10가지

 

 수고하는 일이고 그것이 매일매일 계속되는 일이라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을 가꾸는 일이어야 할 텐데 이 블로그 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영혼을 황폐하게 하고 부질없는 욕심에 눈멀게  되는 기분입니다. 중독처럼 생겨난 관성이 일상을 지배해버리는 듯 합니다. 이제라도 마음 좀 가다듬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마음 속에 '블로그 원칙'을 심습니다.

 

1>블로그 첫 마음으로 돌아가자.
처음 시작할 때처럼 다시 거리를 두며 '블로그'를 헐겁게 쥐자. 블로그가 일상이 아니라 일상 속의 일부분이도록, 알맞은 자리에 이 대상을 다시 갖다 두자. 순간순간 멈추고, 쉬어라. 블로그의 기본은 마음 정리와 휴식이다.

 

2>블로그를 위한 블로그를 하지마라.
이 사이버 공간 속의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를 위한 블로그를 하라.
블로그 속의 갈채나 소음들에 신경쓰지 말고 내 삶을 경작하는 작은 텃밭으로 블로그를 일구라.

 

3>내게 블로그는 독서와 생각들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이 하얀 모니터의 광선들이 야기하는 '영혼의 안구건조증을' 늘 상기해야 한다. 사유를 말려죽이는 '온라인 놀이'는 인성을 피폐하게 한다. 블로그는 한 개인이 갖는 가식없는 태도이며 사회를 향한 의미있는 입장이며 공감을 바탕으로 한 힘이어야 한다.

 

4>블로그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즐겁지 않은 블로깅은 미친 짓이다. 즐거움을 만들어내지 않고 괴롭고 답답하고 쓸쓸한 생각만을 늘리는 블로깅은 헛수고이다. 그 즐거움은 타인에게서 구할 것이 아니라, 내부의 자기진작과 자기완성에서 생겨나는 것이어야 한다.

 

5>블로그 글쓰기는 심심풀이 독자서비스가 아니다.
독자와의 깊이있는 소통을 향한 욕망이어야 한다. 글쓰기는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기에 앞서
자기와의 대화이어야 한다. 네 글쓰기의 취지가 무엇인지 늘 생각하라. 성찰도 고집도 없는 무뇌아적인 글쓰기는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6>블로그는 공부하는 하나의 장(場)이어야 한다.
신문을 읽는 일, 편집을 하는 일, 세상을 바라보는 일, 사람에 대한 관점들,문제를 인식하는 틀의 분석들, 시적인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을 깊이있는 울림으로 메모해나가는 일들. 그게 블로그에서 충만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집어치우는 게 낫다.

 

7>블로그는 민주주의적 평화이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생각들이 깊어지고, 자기와의 불화에서 화해하는 아늑한 마당이어야 한다. 이 인터넷 공론장은 상처를 치유하고 분쟁을 타결하는데 쓰여야 한다. 블로그는 평화주의다. 타인의 삶과 그의 인격을 배려하고 아끼는 '좋은 마음'들의 결집이어야 한다. 블로깅하는 마음을 늘 점검하고 온기를 높여야 한다. 블로그를 로그아웃할 때 늘 자기체온을 재라.

 

8>블로그 교유는 품격과 향기가 있어야 한다.
소통과 사귐은 미덕(美德)의 오고감이어야 한다. 그저 무익한 헛소리들을 늘어뜨려 삶을 산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정신의 익우(益友)를 가려 은은하게 교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서로의 글을 알아보고 그 영혼의 그림자를 따라가며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그런 사귐이어야 한다. 책에서 만나는 옛사람들과의 소통처럼, 문자향으로 감화받고 따뜻한 공감들로 한 시대의 도반(道伴)이 되는 지란지교여야 한다.

 

9>블로그에서 춤추는 입을 단속하라.
블로그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세상이 바뀌어가는 와중에 홀연히 생긴 이 마당에 지나치게 자기투사를 하지는 마라. 나날이 진행되는 자기발언의 허를 점검하고 그 '오버'를 붙드는데 공력을 기울이라. 그것을 수행처로 삼아라. 절제와 자제, 그리고 겸허의 공부처로 삼아라.

 

10>그러나 블로그에서 하나의 희망을 가져라.
마음 속에서 잉걸불로 타오르는 문명의 전망을 가져라. 낮은 곳에서 생각을 시작하되, 높은 곳까지 생각을 밀어올리는 꿈의 전진을 담아내라. 이 일이 비록 허깨비의 춤일지라도
그 안에서 어떤 완성된 무엇을 기하라. 그 고결한 정점이 다른 문명의 토양이 될 것임을 깊이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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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방황이 끝나지 않았는데 가을이 문을 닫는다. 무참히 낙엽은 져버리고 싸늘한 저녁비에 함몰하는 도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걸음을 멈추면 서늘하게 목덜미를 적시는 겨울예감 새떼들이 떠나 버린 광장에는 맹목의 개들만 어슬렁거리고 있다.
        예술이 암장되고 희망도 유보된 시대 시계탑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수은주의 눈금이 내려갈수록 눈물은 투명해진다. 나는 투명해지는 눈물로 만들어진 한 마리 해파리 홀로 시간 의 바다를 표류한다.
        이제는 누구의 사랑도 믿지 않는다. 오로지 독약 같은 외로움만 일용할 양식이다 李/外/秀 Luz Casal / Piensa En Mi 편집 / 자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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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라님으로 부터 <프로이트는 요리사였다>란 책을 선물 받았다. 얼마 전 있었던 플레져님 이벤트 때, 플레져님이 이벤트 상품으로 내건 책이기도 했는데, 나는 본래 프로이트란 이름만 들으면 잠자고 있던 이드의 충동이 되살아나 눈이 돌아가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프로이트를 신봉하고 그를 연구한 것은 아니다. 사실 한때 심리학을 좀 좋아했고 공부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물론 그는 정신분석학에서 더 많이 논의되지만, 심리학에서 그를 그냥 지나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프로이트란 이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내 안에 아직도 심리학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증거일까?

하지만 난 플레져님 이벤트에서 이 책을 고르지 못하고 다른 책을 고르고 말았다. 이것은 또 내 안에 무슨 기저가 숨어있기 때문일까? 프로이트는 좋아하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산맥이라서일까? 아니면 오늘 날 프로이트를 능가하는 새로운 학설 때문에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거란 생각 때문일까?

아무리 프로이트를 반박해도 프로이트를 무시할 수는 없다. 알고 그를 무시하는 거랑, 모르고 무시하는 거랑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어쨌든 난 프로이트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대충 내용을 보니 저자는 프로이트의 학설을 요리에 비유해서 해설해 놓은 책 같다. 요리라는 당의정을 입혀 해설에 놓은 것이니 일단은 재미있을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요리를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한 책이 뭐가 있을까?

 만화 <맛의 달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만화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맛의 달인>을 알 정도라면 굉장히 유명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 책이 벌써 89권까지 나왔다니 앞으로 몇권까지 나올까?

 

 

 다음으론 <바베트의 만찬>을 들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난 아직 책으로는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건 오래 전 영화로 보았다.

먹는 것은 본능일진대, 신앙을 이유로 맛있는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고 일부러 거칠고 소박한 음식을 먹는 프랑스의 어느 한 마을에 전직 요리사 출신이 쫓겨 이 마을에 은신하면서 자신을 숨겨준 댓가로 갖가지 진귀한 음식을 만들면서 겪게되는 인간 군상을 참으로 잔잔하고 그윽하게 그려냈다. 그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프랑스 요리를 먹어 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다음으론 <초콜릿>이란 책이다. 이것 역시 영화로 봤는데 보면서 초콜릿이 먹고 싶어졌다기 보단 초콜릿이란 매개를 통해 인간의 신앙의 허위성을 까발렸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줬던 작품이었다. 감독의 비주얼한 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번에 책으로 새롭게 나왔는데,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초콜릿>의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아직 안 읽어봤는데 자못 궁금하다.

 

 

 이것 역시 영화로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도 책도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런 책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다.

재미있을 것도 같다.

 

 

 대장금도 있다.

 

 

 

 

이렇 듯 먹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원초적이고 이것을 소설로, 만화로,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다면 어린 아기 때 보인다는 구강기 고착이란 프로이트의 이론은 사실 인생 어느 시기에든 나타날 수 있는 영원한 태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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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2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대사각하의 요리사>도 무지 재밌습니다. 권수가 좀 많긴 하지만......^^

stella.K 2004-12-2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만화가 있넜네요.^^

잉크냄새 2004-12-2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영만의 <식객>도 대단합니다.
아, 그리고 구강기 고착이란 말의 의미를 간략하게 알려주시죠?

stella.K 2004-12-2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또 뭐가 있을까요?

stella.K 2004-12-2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하도 오래 전에 배운 이론이라 학술적인 서술은 좀 어렵구요, 갓난 아기들 뭐든지 입에 대보잖아요. 혀를 통해 사물을 알려고 한다는...그러다 좀 크면 코로 킁킁거리고...뭐 그렇고 그렇다는...(긁적 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