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움직이면 모두 詩가 되었다

빠블로 네루다
애덤 펜스타인 지음|김현균·최권행 옮김|생각의나무|704쪽|25000원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네루다는 20세기가 인류에게 제안한 모든 열망의 계곡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답파한 시인이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이든 에로티시즘이든, 빙벽을 오르는 네루다의 손에는 시(詩)라는 피켈이 단단하게 쥐어져 있었다.

이 책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칠레 시인 네루다(1904~1973)의 평전이다.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72년 지병인 암이 악화되자 파리 주재 대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했다. 자신이 열렬히 지지했던 아옌데 정권이 귀국 이듬해(1973)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지자 마치 운명을 같이하듯 네루다 역시 쿠데타 12일만인 9월23일 산타마리아 병원에서 69세로 사망했다.

‘내가 죽더라도, 나보다 오래, 넘치는 맑은 힘으로 살아남아/ 창백한 자 시들한 자들의 마음을 격정으로 끓게 하라.’

네루다는 20세기에 가장 많이 읽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 저작인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는 1960년대 이미 100만부 이상 발행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세상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 책에는 연대기적으로 기술된 네루다의 모습이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문장은 드라이하다. 책의 저자 애덤 펜스타인은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이자 스페인 일간지의 런던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기자이다.

테무코의 자연 속에서 네루다가 시인의 꿈을 키우던 유년기, 보헤미안적 삶에 탐닉했던 학창시절, 외교관으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을 섭렵하던 시절, 그리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망명길에 올랐던 시절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이 책은 이슬라 네그라에서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파란만장했던 네루다의 삶을 숨가쁘게 뒤쫓는다. ‘인간은 한 조각 소금처럼 대양으로 녹아든다’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우리는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네루다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에로티시즘, 초현실주의적 직관, 투철한 역사의식, 동양적 에스프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상상력은 한계를 몰랐다. 그의 말처럼 자신의 삶은 ‘모든 삶들로 이루어진 삶’이었으며, 그의 노래는 ‘모두의 노래’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네루다는 모든 언어를 통틀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고 말했고,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네루다는 언어의 미다스 왕이다. 그가 손을 대면 모든 것은 시가 되었다.”고 찬사를 바치고 있다.


▲ 시인 네루다(오른쪽)가 소설가 마르케스와 자리를 함께 했다.
네루다가 교유했던 사람들은 그 이름만 열거해도 20세기의 영광된 자리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자리까지를, 그리고 문화예술사는 물론이고 정치사를 포함한 가장 굴곡진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가르시아 로르카, 사르트르, 미스트랄, 보르헤스, 엘뤼아르, 아라공, 아스투리아스, 파스, 피카소, 디에고 리베라…. 그리고 정치적 인물로는 체 게바라, 마오쩌둥, 카스트로, 스탈린, 히틀러, 프랑코, 트로츠키, 아옌데 등이 네루다의 삶에 ‘조연’으로 출연한다.

문학을 떠난 네루다의 사생활은 모순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보헤미안 아나키스트로 시작된 그의 정치적 행로는 열성적 스탈린주의자를 거쳤고, 나중에는 ‘프라하의 봄’에 대한 환멸로 드러난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수많은 여자를 만났다. 청년기에는 두 여성에게 동시에 구혼했다가 모두에게 거절 당한 적도 있다. 네루다의 시는 상당수 여성에게 바치는 것들이었다. “내가 쓴 시를 다 합하면 아마 칠천여 쪽쯤 될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정치를 주제로 쓴 것은 네 쪽도 채 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사랑을 더 자주 노래한다.”

이 평전에 드러난 네루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모든 종류의 열정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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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결정, 2초 안에 끝난다

블링크
말콤 글래드웰 지음|이무열 옮김|348쪽|1만3000원|21세기북스
강신장·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센터장

‘눈 깜짝할 사이,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첫 2초에 주목하라.’

스티브 잡스가 위기에 놓인 애플사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통찰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맥, 아이팟 등으로 애플을 혁신기업의 대표주자로 만들었다. 빛의 속도보다 빠른 스티브의 판단력 덕분에 애플은 IT 르네상스를 이끌어가고 있다. IT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경쟁사들이 상황을 냉철히 분석하기 위해 멈칫거리는 동안, 애플은 순간적인 판단력을 앞세워 남보다 앞서 달려갔던 것이다.

이런 순간 판단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바로 ‘블링크-첫 2초의 힘’이다.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이미 국내에도 번역된, 마케터들의 필독서로 알려진, ‘티핑 포인트’의 저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접하는 처음 2초 동안, 우리의 무의식은 수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하여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축적된 전문지식과 경험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이성적 직감하고는 다르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를 보며 일반인이 ‘이건 몇 대 몇으로 경기가 끝날 거 같은데’라고 예상하는 것은 ‘직감’이다. 그런데 해박한 축구 지식과 수많은 경기 경험으로 무장한 선수가 순간순간 어디로 공을 찰지, 어디로 움직일지 빠르게 판단하는 것은 순간 판단이다.

이 책은 매일 다른 상황 속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짜야 하는 조직과 개인에게 놀라운 아이디어를 준다. 남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가 이 책을 주목하는 이유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통찰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단지 지식이 많은 것만으로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 그것이 관건이다. 글래드웰은 누구나 순간 판단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순간 판단을 잘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전문 지식을 쌓고 판단을 흐리는 편견을 버리며, 자신의 순간 판단력을 믿고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 책은 개인뿐 아니라 조직의 생존 전략에 대해서 귀띔한다. 2000년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앞서 엄청난 돈을 들여 대규모 전쟁 게임을 실시했다. 청팀은 상황이 터질 때마다 고성능 위성과 센서, 슈퍼컴퓨터를 지원받아 합리적으로 분석을 시도했고, 홍팀은 미리 분석을 마친 뒤 상황이 시작되면 순간적인 감각에 의지해 결정을 내렸다. 결과는 홍팀의 압승이었다. 중요하고 급박한 순간에는 과잉 정보보다 미리 경험과 지식으로 훈련된 순간 판단력이 훨씬 빛을 발하는 것이다.

순간판단이 무조건 올바른 것은 아니다. 눈을 가리고 두 잔에 담긴 콜라를 한 모금씩 마신 뒤, 맛이 좋은 것을 선택하게 했던 테스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테스트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펩시콜라를 선택했다. 결과에 놀란 코카콜라사는 펩시와 비슷한 맛을 내는 ‘뉴코크’를 만들었고 사전 조사까지 성공리에 마쳤지만 쫄딱 망하고 말았다. 왜? 한 모금 테스트와 한 캔 전체를 먹을 때의 맛의 느낌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테스트에서는 코카콜라가 늘 패했지만 전통적인 코카콜라는 시장점유율의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뉴코크’는 순간판단을 잘못 활용한 경우다.


집단이 순간 판단을 잘못 내리는 경우도 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종종 거론되는 워런 하딩. 유권자들이 볼 때 그는 누가 보아도 키 크고 잘생긴, 다시 말해 ‘대통령처럼 생긴’ 남자였기 때문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순간판단의 결과는 참혹했고 하딩은 지금도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것이다.

글래드웰의 메시지는 ‘2초의 순간판단’을 무조건 따르라는게 아니다. 그것이 그 만큼 중요하니 어떻게 우리 인간만이 가진 이 능력을 활용할 것인지를 탐구하라고 말한다. 그건 독자들 스스로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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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도스토예프스키 비판에 관하여

 

 

 

 

3년전 '한겨레21'에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 교수의 칼럼으로 도스토예프스키 비판이 두 차례 실린 적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페도 운영하고 있었던지라 그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적은 생각들을 (그닥 달라진 바 없기에) 그대로 여기에 옮겨놓는다. 그리고 후반부엔 그때 다른 분이 퍼온 칼럼을 붙여놓는다. 그 글들은 <하얀 가면의 제국>(한겨레신문사, 2003)에 재수록돼 있다(나는 책을 갖고 있지만 다시 읽어보진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 러시아'란 제목의 첫머리에.(사실, 그 글들의 초점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체라기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한국인들의 스테레오타이프적인 선입관이 교정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에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는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보는 입장이다.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증언대로라면), '위대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하다. 그것이 차이이다. 박노자 교수는 대개 (잡지 발행인으로서도 활동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론(時論)을 근거로 하여 그의 국수주의적이고 반동적인 태도를 비판하지만, 그것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전모를 대신할 수는 없다(한 작가의 세계관이나 정치관이 그의 문학의 크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박노자 교수도 작가의 '위대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거인'의 명암을 올바로 보자고 제안할 뿐이다. 내게 그 명암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결함'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더욱 신뢰하도록 만든다(나이브한 이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지지하며, 그의 정치학이나 윤리학은 자신의 <작가일기> 등에서 공표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작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의 현실과 인간조건을 (단순하게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복잡하게 사고했다. 소설은 복잡성의 정신이라는 쿤데라의 주장에 따라 그것을 달리 '소설의 승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치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쓴 답장입니다. 박노자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비판과 관련한 저의 견해이기도 하니까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정치와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인만큼 궁금하고, 또 박노자의 칼럼으로 더욱 궁금해졌거든요. 박노자의 말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 과정이 이해가 되는것도 아니구요. 그와 같이 다층적인 성격을 가졌던 사람이 황제에게 충성한 보수파였다거나 평생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이 정치와 별 상관이 없다는 건 좀 편향된 의견입니다.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한 특징은 시류적인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투르게네프가 그러하고(그의 성격은 비사교적, 비정치적인데, 벨린스키와의 교우가 그를 사회소설 작가로 이끕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대개의 소설이 페시미즘적인 결말을 갖고 있습니다), 고골과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러합니다. 톨스토이는 푸슈킨과 마찬가지로 좀 예외인데, 이들은 서구식 미학주의를 수용한 경우입니다. 즉 미는 진과 선의 영역과는 좀 다른 걸로 생각하는 것이죠.

-<안나 카레니나>를 쓴 이후의 톨스토이는 물론 자신의 그런 미학관을 포기/비판하고, '미=선'의 자리로 복귀합니다. 반면에 고골과 도스토예프스키는 <친구들과의 왕복서한>이나 <작가일기> 등과 같은 저널적인 글들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국수적인 슬라브주의와 러시아 정교주의를 지지하고 옹호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왈, "인간(유럽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인이 되어야 한다."(*고골의 <친구들과의 왕복서한>은 근간 예정이고, 도스토에프스키의 <작가의 일기>(벽호, 1995)는 발췌역으로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됐다.) 

"하지만 그의 타민족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편벽되고 유치한 수준이니(폴란드, 독일, 동양에 대한 경멸, 프랑스에 대한 선망과 멸시 등등. 러시아에 대한 자학적인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그에겐 사회적인 시각에 대한 균형이 결여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적어도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저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인간 도스토예프스키가 좀 구별된다고 봅니다)는 유치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건 그의 전기들에 묘사되고 있는 기묘한 성벽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 시각에 대한 균형의 결여'는 좀더 탐구해야 하는 주제인데, 가령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관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떻게 그처럼 위대한 철학자가 국수적 민족주의(나치즘)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그건 어떤 '실수'가 아니라 그의 사상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어떤 성향의 발로로 보는 것이 최근의 시각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이 문제는 좀더 세밀한 논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혼의 리얼리즘'은 곧바로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비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죄와 벌>은 황당한 작품이었지요. <죄와 벌>을 읽은때가 몇 년 전인데, 그때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훨씬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렇게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파격을 행했던 사람이 갑자기 회심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느낀대로 하자면 '자존심도 없는' 결말이었지요. 자기를 그렇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가인데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죄와 벌>에 관한 건 좋은 지적이십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는 문제이구요. 라스콜리니코프의 '회심'은 정확히는 에필로그에서 이루어집니다.(이 주제에 관해서는 르네 지라르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김현 편,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에 부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에필로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의견이 있었고, 저도 그러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적어도 소설의 본문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서 회심이 계기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그러면 에필로그의 회심은 좀 억지스러운 것이 될 터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페테르부르크라는 폐쇄적(악마적) 공간에서 그러한 회심이 가능하지 않게 묘사한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독백적인!) 시사적인 글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의 이문열이나 조갑제 스타일의 인물처럼 보입니다.(이문열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고 봅니다. 바흐친이 다성악적 소설이라고 했지만, 거기엔 작가의 이념적 목소리는 결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적) 소설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소설들에선 어떠한 문제도 단순하게 처리되고 있지 않습니다.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악령>만 하더라도 단순한 (소설이 아닌) 정치 팜플렛을 의도했지만, '소설'로 확장된 <악령>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심연이 되고 맙니다. 그것을 단순한 정치적 주장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좀 무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의 소설들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뛰어넘고 있다고나 할까요(이 점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이문열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2002년08월13일 제422호

거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암

-그의 끔찍한 군사주의·배타주의 사상은 빨갱이 딱지를 떼기 위한 노력이었나

1877년 말, 러시아와 터키의 전쟁이 막바지를 향할 무렵이다. 우세한 무기를 갖고 있는 러시아 군대는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비잔틴 제국 시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할 정도로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서구의 금융자본에 의한 착취, 러시아의 끊임없는 남하, 근대화 부진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약해진 터키 제국은, 발칸 지역에 대한 패권을 러시아에 넘겨주는 셈이 되었다.

-독일인과 손잡고 프랑스를 박살내자?

30여년 뒤에 바로 발칸의 패권 문제가 발단이 되어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질 줄 알 리 없는 러시아의 보수적 지식인들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라는 이슬람식 명칭을 그들은 외면한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토론하고 있다. ‘러시아 문명론’을 내놓은 당대 우파의 유명 논객 다닐레프스키(N.Y.Danilevsky)는, 콘스탄티노플을 “러시아를 위시한 모든 동방민족을 위한 자유 도시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꽤 관대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서구에 대한 멸시와 러시아의 ‘영성’에 대한 거의 광적인 집착에서 다닐레브스키보다 한수 위인 우파의 저명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81)는 “그 따위 비열한 타협”이라며 단호하게 반대한다:

“러시아인과 기타 슬라브 민족들이 서로 비교라도 될 만한가? 러시아는 기타 슬라브의 각 민족보다 위대하고, 모든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도 그들보다 위대하다. 거인이 난쟁이들 보고 평등을 설교해봤자 쓸데없는 일 아닌가? 우리가 점령한 콘스탄티노플은 영원히 우리만의 도시로 남아야 하고, 콘스탄티노플과 인근 지역, 그리고 흑해와 지중해 사이의 해협을 지키기 위해 육·해군을 주둔해야 한다”(<작가의 일기>,1877년 11월)

이 정도면, 도스토예프스키를 ‘도덕성의 절대성과 인간의 심층적인 심리를 매우 깊숙이 아는 작가’로만 알고 있는 한국의 일반 독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무고한 생명을 살해한 일은 절대로 선(善)이 될 수 없다”는 이념을 기조로 전 세계의 독자를 매료시킨 <죄와 벌>을 쓴 사람이, 콘스탄티노플을 ‘우리 도시’로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로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야 하는지는 몰랐던 것일까? 위대한 인본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이 폭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일에 왜 그토록 열중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1인 잡지인 <작가의 일기>를 읽으면, 더 큰 수수께끼에 맞닥뜨린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짐승 같은’ 터키인들을 쫓아낸 뒤에 “사회주의의 모태가 된 프랑스를 독일인과 함께 손잡아 박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때문이다. 즉 권위주의적인 독일 제국과 함께 사회주의를 허용할 만큼 ‘타락한’ 민주적 프랑스를 멸망시키는 것이 러시아의 ‘민족적 사명’이라는 이야기다. 그 과정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슬람 짐승들과 적그리스도인 사회주의를 예수의 이름으로 이기는 성전(聖戰)”이라고 부른다.

-끈질긴 ‘훈육주의’경향

작품 속에서는 ‘생명 존중’을 그토록 강조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자신의 사회 참여적인 잡지에서 이처럼 끔찍한 군사주의적·배타주의적 언어를 썼을까? 일설에 따르면 자신의 농노를 학대하다가 살해당한 가혹하고 속물적인 아버지를 두었고, 군사기술자학교(일종의 사관학교)에서 온갖 집단 괴롭히기를 목격·체험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었을 때부터 악(惡)의 문제에 대해 매서운 성찰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1840년대)에 그는 초기 사회주의적 성향의 혁명가와 어울려 개혁·혁명을 통한 악의 제거와 인간·사회의 개선을 꾀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젊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구도(求道)를, 제정 러시아 정권은 가혹하게 차단해버렸다. 갑작스러운 체포(1849년)와 사형 선고, 총살 현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영원한 듯한 수십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감형(사실 ‘훈육을 위한 연극’이었다.). 그 뒤 4년간 시베리아 감옥살이를 하고 졸병으로 오지에서 4년간 복무한 그에게는 ‘사상범 전과자’라는 빨갱이 딱지가 붙었다. 혁명적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 망명을 하거나 혁명에 투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사회주의를 포기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때부터 정반대 길을 가기로 한다. 그는 자신의 ‘불온한’ 과거를 애써 부정하고 오히려 반사회주의운동의 선봉에 서는 특별한 ‘충성’을 보인다. 특히 귀족계·황실과 관계가 가까워진 1870년대 후반에 그는 ‘빨갱이 딱지를 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일제 시대의 많은 전향자들처럼 러시아 제국의 국체(國體)인 정교회 신앙과 관제 민족주의로 돌아온 전향자 도스토예프스키는 ‘국체 명징(明徵)’- 즉 어용적 이념의 강조·선포- 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전향’ 이후에도 그의 평생 화두인 ‘악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민의 형태는 완전히 바뀌었다. 악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단순한 표피’로 규정한 채 도스토예프스키는 ‘영혼 속의 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러한 탐구는 종교를 명분으로 내거는 제정 러시아 사회에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영혼 속에 악한 본질이 내재돼 있다는, 성악설(性惡說)적인 면모가 짙은 그의 결론은 러시아 국교인 정교회의 교리보다는 고대·중세의 신비주의적 이단인 그노시스교(Gnosticism·靈知敎)에 더 가깝기도 했다. 자신의 ‘온건함’을 입증하려는 욕망에 불탄 도스토예프스키는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더 강조했다. 러시아 진보진영으로부터 오랫동안 비웃음을 받아온 최초의 ‘반사회주의적 소설’ 가운데 하나인 <악령>을 쓴 1870년대의 도스토예프스키는, 교회와 국가가 없는 한 인간의 악한 본질이 그대로 드러나 사회가 생지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 ‘기독교적 국가’의 광신도였다.

“하나님이 없는 한 모든 것들이 다 허용돼 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언은, “하나님의 신앙을 강요·훈육하는 교회와 국가가 없으면 모든 악이 허용돼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작가의 일기>에서 체벌과 범죄에 대한 엄벌을 옹호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끈질긴 훈육주의적 경향과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악을 억제해주는’ 국가와 교회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물론 제1호 적이었다. 19세기 초반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책을 읽었을 뿐, 그 외의 진보운동 관련 소식을 보수적 신문을 통해서만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사회주의자들을 ‘억제를 받지 못해 악한 본질이 발전된 적그리스도형 인간’으로 취급했다. 노동자들이 빼앗긴 여유의 자유, 경영 참여와 정치 참여의 자유를 노동자에게 돌려주려는 것이 사회주의의 취지였다는 것은, 사회주의를 배태한 유럽의 문화토양을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작가로서의 위대성을 바로보기 위하여

그는 사회주의를 배태한 유럽- 특히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강한 프랑스- 의 자유주의마저도, ‘하나님의 은근한 부정’으로 규정해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였으면 러시아 제국의 경쟁자인 터키 같은 비유럽 국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인간의 악한 본질을 억제하는 구세(救世)의 위업(偉業)’으로서 가장 ‘건전한’- 즉 보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러시아와 독일의 세계 제패는 그의 열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작가의 일기> 1877년 11월호에서 러시아 육·해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의 비결은 바로 이 같은 세계관과 욕망의 구조였다.

이념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가 광적인 수구주의로 기울어졌다고 해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천재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천부적 재능에 고생과 고민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의 저변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외부로부터의 훈육’에 대한 기대 심리, 국가 권력에 대한 거의 맹목적 시각 등을 바로 이해해야 그의 작가로서의 위대성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거인의 명암을 다 아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거인에 대한 존중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은 410호에(아래 참조) 실린 ‘도스토예프스키를 선망한다고?’를 읽은 독자들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요청해 쓴 것입니다. 편집자 
[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2002년05월22일 제410호

도스토예프스키를 선망한다고?

-한국과 러시아, ‘서구인들이 강요한 색안경’을 벗고 서로의 진실을 아는 길

88올림픽 때 미국과 축구 경기를 벌인 옛 소련팀이 한국 관중의 응원을 받아 미국인의 질투를 산 획기적인 사건이 어언 15년이 지났다. 두 나라의 관계가 그동안 온갖 기복을 거듭했지만, 민간교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한국 유학생들이 러시아 대학의 외국 학생의 주종을 이루고, 러시아 출신의 노동자·기술자·상인·프로그래머 수천명이 한국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재, 두 나라의 민간인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생소하지 않다. 그러면 그들은 이미 낯익은 서로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어떤 스테레오타이프(고정관념)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한·러 교류의 발전을 지켜봐온 필자는 이에 대해 간단한 인상을 적어보겠다.

-사실과 허위의식의 비율

한국과의 교류에 관여하는 러시아인 쪽의 ‘눈’을 이야기하면, 맨 처음 느끼는 것은 한국의 과거나 역사·문화에 대한 무지다. 한국학(내지 인접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한국 인식 수준은 서구인의 평균과 다르지 않다. 무지의 원인인 자국(自國)과 서구·미국 중심의 편향된 오리엔탈리즘적 학교 교육과 매체의 보도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 교포나 러시아와 한국의 해방운동의 역사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그나마 영문 자료라도 읽어가면서 ‘한국 공부’를 조금씩 하려고 하는 재한 프로그래머나 교수 등과 달리, 한국과 업무상 관련이 있는 고급 관료들은 그러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해 전 협상에서 통역을 맡은 부장관급의 러시아 관료와 사석에서 나눈 대화가 지금도 기억난다.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화제를 돌리자, 원래 직업이 교육자(!)인 부장관이 마치 상식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듯 “100년 전에는 동굴에서나 살던 한국 사람들을 고층 아파트에서 살게 한 것이 미국의 원조지 딴 요인이 있나”와 같은 말을 거듭 했다. 주변부 국가의 매판형 지배층다운 그런 관료들의 숭미(崇美)의 병과 한심한 무지는 두 나라 관계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러시아를 독일 중심의 유럽에 예속시키려는 푸틴 정권의 종속적 노선은, 고질화된 오리엔탈리즘의 병폐를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 셈이다.

러시아를 보는 한국인들의 눈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한국인들의 러시아어나 문화에 대한 학습 열의는, 주한 러시아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보다 더 높다는 것도 필자가 많이 본 일이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이상시한 조상의 문화정신에 감사해야 하는지, 아니면 주러 서구인들이 주한 서구인들보다 주재 국가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사실과 연결시켜야 되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러시아에 관한 상식에서, 사실과 서구·미국의 프로파간다에 의한 허위의식의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정 러시아 관료층의 위선과 아첨, 철저한 인간성의 말살을 천재적으로 풍자한 살티코프-시체드린(Saltykov-Shchedrin)보다 관료층의 상부와 밀접하게 유착한 골수 보수주의자 도스토예프스키를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꼽는다는 것은, 미국·서구 보수층의 ‘가치 서열’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인 인간의 해방을 갈망한 미래 지향적인 스크랴빈(A.Skryabin)의 음악보다 보수적인 차이코프스키를 선호하는 것도, 서구의 ‘정전’(正典·canon)을 추종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평균적인’ 한국인이 러시아에 대해 덜 무지하지만, 러시아를 ‘서구인의 러시아관(觀)’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은 마찬가지다.

-상인과 노동자의 판이하게 다른 만족도

두 나라를 오가는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필자의 관측으로 체감적인 만족도는 객관적인 현실뿐 아니라 주관적인 기대의 수준에도 많이 달려 있다. 물론 기대의 주체인 여행자의 사회·경제적인 신분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국의 공산품을 사러 다니는 러시아의 상인(‘보따리꾼’이라고 하지만, 그 규모는 ‘보따리’의 수준을 넘는다)들은, 한국을 ‘바이어’가 장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무역 대국’이라는 기대를 안고 온다. 필자가 지켜본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기대는 충족됐다. 기대 이상의 상운(商運)을 만난 일도 많았다. 한국을 늘 만족해하는 한 상인이 필자에게 “한국은 실제로 기적의 나라야! 아니, 재고에 없는 물건마저도 주문하기만 하면 1주 내로 이렇게 많이 만들다니, 라인을 어쩜 이렇게까지 돌릴 수 있어?”라고 묻곤 했다.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비정규직들이 하루에 10∼12시간씩 고함소리를 들으며 사람을 기절시킬 만한 속도로 일한 그 공장의 라인이 돌아가는 모습을 상인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국에 노동(특히 미등록 막노동)을 하러 오는 러시아 출신들이 한국을 ‘착취와 폭력의 대국’으로 본다는 사실이 과연 이상한 것일까? 그들의 실망의 정도를 이해하려면, 한국의경제 기적과 근대화를 찬양하는 주류 신문 외에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그들은 한국의 ‘합리적인 노무 관리’(?)에 큰 기대를 걸고 온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러시아인의 만족도는 한마디로 한국 근대의 어느 측면을 접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수출 능력으로 득을 얻는 사람의 ‘한국’과, 그 수출 능력을 뒷받침해주는 착취공장에 건강과 인권, 생명까지도 바쳐야 하는 사람의 ‘한국’을 보는 눈은 천양지차다.

한국의 근대성에 큰 기대를 걸고 오는 러시아인과 달리, 러시아로 가는 한국인들은 역시 서구·미국의 매체를 따르는 한국 매체의 보도대로 ‘위험한 후진국’으로 가는 줄로 알고 경계심·체념의 태도를 미리 준비한다. 그들이 실제로 부정적인 경험(경찰관의 돈 갈취나 폭력·사기·범죄)을 할 때마다, 실망보다는 “역시 생각대로구나!”를 반복한다. 처음의 상상조차 뛰어넘을 만한 정도의 부정적인 경험만 아니면, 러시아에서 체류하는 한인은 쉽게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다. 경찰이 이유 없이 돈을 요구해도, 학교 당국이 노골적인 전횡을 저질러도, 행정 관료들이 뇌물 갈취에 혈안이 돼도, 재러 한인의 대다수는 “후진국은 다 그렇지”라고 하며 그대로 따른다.

현재 러시아 관료들의 저질성에 대해서는 필자도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돈 먹는 하마’인 러시아의 관료 체제에 돈을 계속 먹인다고 해서 선진화의 날이 오겠는가?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러시아의 발전을 막는 관료 기구들에게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맞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제정 러시아’흠모와 ‘소련’혐오

스테레오타이프를 이야기하자면, 역시 서구적인 오리엔탈리즘 식으로 한국인들을 ‘동양인’으로 여겨서 역대 극우정권이 악질화·고질화한 온갖 봉건적인 폐습들을 ‘동양 문화의 유산’으로 오해하는 러시아인들의 태도부터 꼬집어야 한다. 즉 주한 서구인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러시아인들도 학교 체벌을, 동양 사회에서 동양인의 사고방식이나 체질상 없어서는 안 될 문화 형태로 보고 있다. 제정 러시아에서도 만연한 체벌들을 레닌의 초기 공산당 정부가 전면 폐지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물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주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귀한 ‘서양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로 보내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군번·학번을 숭배하는 권위주의 사회가 낳은 연령 차별주의나 연소자 하대를, ‘동양 사회에서 당연한 일’로 취급하여 본인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한 분통을 터뜨리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의 스테레오타이프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서구·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서 배운 듯한 제정 러시아의 ‘고급 문화’에 대한 흠모와, 옛 소련 시기를 ‘기형’으로 보는 태도를 꼽을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마노프 왕가의 왕궁(겨울 궁전)의 사치 앞에서 넋을 잃는 한국 관광객들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70%의 문맹률과 흉년마다 아사자 몇십만명씩을 낸 제정 러시아를 흠모하는 것은 고혈을 빼앗긴 백성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너무나 많은 면에서 서로 닮은 한국과 러시아는 지금 서구인들이 강요한 ‘색안경’을 끼고 서로를 쳐다보는 셈이다. 주한 러시아인들이 갖고 있는 ‘한강의 기적’, ‘무역의 대국’, ‘유교적인 규율과 서열의 나라’의 이미지도, 러시아를 접촉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의 찬란한 고향, 공산주의 때문에 후진국이 된 나라’라는 생각도, 결국 냉전시대의 미국·서구의 보수 언론·학계가 만들어낸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스테레오타이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상대 나라 민중의 고생과 투쟁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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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같은 글쓰기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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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그녀의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을 한번이라도 접한 사람은 쉽사리 그 이름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또한 집착과 열정을 한데 아우른 치열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겠다는 그녀의 신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아니 에르노, 그녀의 이름은 독특한 세계를 맛보게 해준다. 그녀는 소설가로서 소설을 발표하지만 실상 그녀를 소설가이며 그녀의 작품을 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분류에 의하면 그녀의 글은 장르를 정의내리기가 어려울뿐더러 오늘날의 분류에 따라도 그녀의 삶과 같은 그녀의 글을 소설이라 명하기는 머뭇거려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니 에르노는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세상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녀는 써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를, 독특한 매력을 지닌 그 작가를 한 권에 책 속에 담아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닐 터다. 하지만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 아니 에르노의 대화 덕분에 이것이 가능해졌다. '아니 에르노의 세계'를 향한 두 사람의 소통 덕분에 <칼 같은 글쓰기>에서 아니 에르노는 입을 열었다. 덕분에 아니 에르노라는 독특한 작가의 속내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아니 에르노는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쓰지 않는다. 대신에 그녀는 체험한 것을 쓴다. 여자가 있는 남자와 은밀한 사랑을 나누었던 것, 미칠 것 같은 질투심으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던 것 등 그녀의 글에 드러난 것들은 온통 그녀의 삶 속에 깃든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소설을 두고 열정적이고 치열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허구를 아무리 포장해봤자 사실보다 진실한 감정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런 글쓰기를 하게 된 것일까? 지금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이런 글쓰기에 중독되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한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봄직하다. 특히 이러한 글쓰기가 온갖 비판을 받은 것은 물론 '노출증'에 걸렸다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받았던 걸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녀는 왜 외길을 선택한 것일까?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 특히 여성작가들이 '눈물 콧물 쥐어짜내는 로맨스'로 세상을 주목을 받고 있는 이때에 그녀는 왜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인가?

그녀는 어린 시절 소위 '피지배계층'에 속했으나 성장하면서 '지배계층'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런 과거를 지닌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철저하게 지배계층이 되어 과거를 잊으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지배계층을 더욱 더 기억하려는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후자에 속했다. 그녀는 일종의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 시절이 좋든 싫든 간에 독서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던 그 시절을, 놀랍고 두려운 것들이 가득했던 그 시절을 잊지 않는다.

그런 그녀는 당연하게도 '환상'을 쫓지 않는다. 지배계층으로 향했다면 모를까 그녀의 삶은 환상으로 갈래야 갈 수가 없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당연하게도 그녀는 환상을 만들지 않는다. 그녀의 이성과 감성에서 로맨스의 탄생 따위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가 없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가식적인, 혹은 섣부른 포장이나 관념화가 피지배계층이라 불리는 그것들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허구를 쫓아냈다. 희망사항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 것이다. 독자들이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할지라도, 그녀는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기에 끝까지 멈추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속했던 피지배계층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자신의 성적인 생활까지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그녀가 옳았음을 인정하지만 과거를 본다면 <칼 같은 글쓰기>에서 언급되는 그녀의 신념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문단이나 독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급급해 하는 작가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녀처럼 신념을 고수할 수 있던 이 누가 있었겠는가. 여성작가하면 로맨스를 기대했던 세상에 자신의 성적인 기억들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내세워 외설로 취급당할 때도 그녀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나아가 ;여성작가;라는 테두리를 벗고 '한 작가'로 불리기 위해 애쓰는 작가가 어디에 있는가. 그녀의 신념은 가히 독보적인 것이라고 밖에는 말할 도리가 없다.

<칼 같은 글쓰기>라는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그녀의 글쓰기는 칼로 비유된다. 칼은 무엇인가? 무기다. 가슴 속 심장까지 찌를 수 있고 그것을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데 이것은 그녀의 글쓰기를 생각해본다면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소설답다'는 소설들이 눈물샘을 적시고 아려한 마음을 위로할 때 그녀의 무미건조하지만 생명력 있는 글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그녀의 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칼을 드는가? 그것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열정적인 작업장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 <칼 같은 글쓰기>에 그 답이 있다. 또한 글 쓰는 것에 대한 한 작가의 확고한 신념도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아니 에르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상관없을 테다. 이 뜨거운 작업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게 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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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소설 <소피의 세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노르웨이 작가, 요슈타인 가아더의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주로 십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작들과 달리 <이야기 파는 남자>는 성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기이한 운명을 짊어진 사내 페테르와 그가 제공한 이야기 소재들을 가지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출판계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공상으로 보낸 페테르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생각과 이야기들을 가지고 작품을 쓰는 대신 사업을 시작한다. 바로 작가 지망생에서부터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를 향한 욕망으로 들끓는 모든 인간들에게 이야기의 소재를 파는 것이다.

페테르가 운영하는 '작가 구호소'는 잇달아 베스트셀러를 터뜨리고, 사업은 해외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페테르가 자신들의 모든 비밀을 폭로라도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작가들과 이야기를 파는 페테르 사이에는 점차 기묘한 권력 관계가 생겨난다.

사건들 사이사이에는 다양한 액자소설들이 등장한다. 서커스 단장과 그의 잃어버린 딸 파니나 마니나 이야기, 스코틀랜드 지방 영주의 '인간 체스' 파티와 이후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 등 이야기 등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사람들이 자꾸 내게 의존해오는 것이 마뜩지 않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일이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이젠 물고기들이 아아서 미끼를 덥석덥석 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시시나 엘에스디를 판 것도 아니고 값싼 담배나 밀수입된 술을 팔지도 않았다. 다만 판타지를 팔았을 뿐이다. 무해한 판타지를. 판타지는 대도시의 우아한 명예를 얻기 위한 열쇠이자 포스트모던한 자기 정체성의 복잡한 외피를 두를 수 있는 지름 길이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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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1-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타지 소설인가요? 저는 판타지는 별로 안읽어봐서리. 재미있을 것 같긴한데....
현실성의 '부재'가 왠지 막막한 현실을 더 갑갑하게 만들까봐. 피하고 있지요.
근데. 오히려 현실을 다시 조명할 수 있는 시각을 키워준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판타지나 환상소설에 대해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책 읽어보시려구요?

stella.K 2005-11-1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의 책은 판타지적인 경향이 있어. 하지만 동화적이고 재미있더라구. 이거 보는 순간 나를 위한 책이구나 했어.^^

반딧불,, 2005-11-1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피의 세계 괜찮게 봤었는데 요건 어떨지??

stella.K 2005-11-1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을 것 같아요. 지르세요.^^

비로그인 2005-11-1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의 서재에서 책 소개를 보면 왜 지르고 싶어질까요???

stella.K 2005-11-1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비숍님과 제가 책을 좋아하는 분야가 비슷한가 봅니다. 기분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