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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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그녀의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을 한번이라도 접한 사람은 쉽사리 그 이름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또한 집착과 열정을 한데 아우른 치열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겠다는 그녀의 신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아니 에르노, 그녀의 이름은 독특한 세계를 맛보게 해준다. 그녀는 소설가로서 소설을 발표하지만 실상 그녀를 소설가이며 그녀의 작품을 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분류에 의하면 그녀의 글은 장르를 정의내리기가 어려울뿐더러 오늘날의 분류에 따라도 그녀의 삶과 같은 그녀의 글을 소설이라 명하기는 머뭇거려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니 에르노는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세상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녀는 써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를, 독특한 매력을 지닌 그 작가를 한 권에 책 속에 담아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닐 터다. 하지만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 아니 에르노의 대화 덕분에 이것이 가능해졌다. '아니 에르노의 세계'를 향한 두 사람의 소통 덕분에 <칼 같은 글쓰기>에서 아니 에르노는 입을 열었다. 덕분에 아니 에르노라는 독특한 작가의 속내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아니 에르노는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쓰지 않는다. 대신에 그녀는 체험한 것을 쓴다. 여자가 있는 남자와 은밀한 사랑을 나누었던 것, 미칠 것 같은 질투심으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했던 것 등 그녀의 글에 드러난 것들은 온통 그녀의 삶 속에 깃든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소설을 두고 열정적이고 치열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허구를 아무리 포장해봤자 사실보다 진실한 감정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런 글쓰기를 하게 된 것일까? 지금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이런 글쓰기에 중독되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한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봄직하다. 특히 이러한 글쓰기가 온갖 비판을 받은 것은 물론 '노출증'에 걸렸다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받았던 걸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녀는 왜 외길을 선택한 것일까?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 특히 여성작가들이 '눈물 콧물 쥐어짜내는 로맨스'로 세상을 주목을 받고 있는 이때에 그녀는 왜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인가?

그녀는 어린 시절 소위 '피지배계층'에 속했으나 성장하면서 '지배계층'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런 과거를 지닌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철저하게 지배계층이 되어 과거를 잊으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지배계층을 더욱 더 기억하려는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후자에 속했다. 그녀는 일종의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 시절이 좋든 싫든 간에 독서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던 그 시절을, 놀랍고 두려운 것들이 가득했던 그 시절을 잊지 않는다.

그런 그녀는 당연하게도 '환상'을 쫓지 않는다. 지배계층으로 향했다면 모를까 그녀의 삶은 환상으로 갈래야 갈 수가 없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당연하게도 그녀는 환상을 만들지 않는다. 그녀의 이성과 감성에서 로맨스의 탄생 따위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가 없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가식적인, 혹은 섣부른 포장이나 관념화가 피지배계층이라 불리는 그것들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허구를 쫓아냈다. 희망사항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 것이다. 독자들이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할지라도, 그녀는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기에 끝까지 멈추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속했던 피지배계층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자신의 성적인 생활까지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그녀가 옳았음을 인정하지만 과거를 본다면 <칼 같은 글쓰기>에서 언급되는 그녀의 신념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문단이나 독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급급해 하는 작가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녀처럼 신념을 고수할 수 있던 이 누가 있었겠는가. 여성작가하면 로맨스를 기대했던 세상에 자신의 성적인 기억들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내세워 외설로 취급당할 때도 그녀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나아가 ;여성작가;라는 테두리를 벗고 '한 작가'로 불리기 위해 애쓰는 작가가 어디에 있는가. 그녀의 신념은 가히 독보적인 것이라고 밖에는 말할 도리가 없다.

<칼 같은 글쓰기>라는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그녀의 글쓰기는 칼로 비유된다. 칼은 무엇인가? 무기다. 가슴 속 심장까지 찌를 수 있고 그것을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데 이것은 그녀의 글쓰기를 생각해본다면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소설답다'는 소설들이 눈물샘을 적시고 아려한 마음을 위로할 때 그녀의 무미건조하지만 생명력 있는 글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그녀의 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칼을 드는가? 그것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열정적인 작업장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 <칼 같은 글쓰기>에 그 답이 있다. 또한 글 쓰는 것에 대한 한 작가의 확고한 신념도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아니 에르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상관없을 테다. 이 뜨거운 작업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게 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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