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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들어 불뚝불뚝 중세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을 때가 있다.
내가 살았던 시대 보단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를 알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은 '타임머신'이란 상상의 기계를 만들고 과거나 미래를 여행하고 싶은 욕망을 저 "빽 투 더 퓨처"같은 영화에 투사했겠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구를 그린 오락 영화일 뿐 과거나 미래를 알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다다를 수 없다.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책을 통해서 아는 수 밖에.
그런데 난 왜 하필 중세를 알고 싶어하는 걸까? 특히 그 시절의 문화나 문학를 알고 싶은 것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웠을 시대. 오늘날 모던하고 슬림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런 것을 선호하는 것의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도판부터가 화려하고 오늘날의 책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고급스러워 보인다.
옛날 내가 청소년 시절에 비하면 오늘날의 책은 너무 좋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책들이 적지않다. 나의 시절이 이럴찐대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양과 소를 잡아서 책을 만들고 집 한채 팔아야 몇권의 책 밖에 살 수 없는 것이었다면 책에 대한 가치라는 것은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자면 정말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란 말이 실감나는 말이 아닌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이나 중세시대나 책도둑은 역시 도둑이다. 그것도 아주 명백한 도둑. 그러나 그 시대의 책도둑과 오늘날의 책도둑이 또 좀 그 의미가 다르지 않은가? 세상에 어떤 사람이 "야, 책 좀 빌려 줘."해서 다시 돌려 준 책도 있지만 어떻게 돌려 줄려고 하다가 입 닥는 일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명백한 도둑일 텐데 말이다.
나는 청소년 시절 "캔디" 만화책도 아는 아이에게 빌려줬다 선생님께 압수 당해 찢겨졌을 때도 인간의 관계 보단 그 만화책을 더 소중히해 그 아이와 다시는 상종 안 한 일도 있다. 하물며 종이로 만든 책이 이런데 양피지나 소가죽으로 만든 책을 도난 당했다고 생각해 보라. 중세 교회 벽에 책도둑에 대한 저주를 받을 것이란 말은 새겨둠직하지 않을까? 나라도 그 새대의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시에 책의 발달은 수도원에서 였음을 저자는 간과하지 않는다. 그 시대 수도사들이 책을 대했던 태도들을 보라 침 한 방울이라도 손에 묻혀 다음 장을 넘겼겠는가? 그들은 거의 경건예식을 하듯 책을 대했던 것 같다. 또한 몇몇 귀족에 의해서도 책이 다루어졌음은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뭔들 못하겠는가? 과연 문명의 발달은 권세와 금력이 가져오는 것일까?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중세시대 학생들은 오늘날의 학생 보다 더 똑똑한 두뇌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문맹자(文盲者)라고 하면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중세시대는 문맹자라도 오늘날 간과되는 능력, "기억력"에 의존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새대 교육의 기본 수단은 구술이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또한 오늘 날 학습능력에 있어 남녀의 차이는 속속 보고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남녀차별을 가져오는가는 의구심을 가져봄직 하다. 이 책에서 중세시대 여자는 주로 신앙서적과 소설책을 읽고 남자는 영사나 정치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고 잠깐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쪽 역시도 중세시대 신앙서적이나 문학이니 나도 천상 여자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쪽류의 책을 선호했던 여자들의 덕에 언어는 얼마나 더 발달이 되었을 것이며 신앙은 얼마나 더 깊어졌을까를 가늠해 보는 것이 더 좋을까?
아무튼 난 이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겨우 230쪽 남짓한 책이고, 그나마 도판이 주를 이루고 있을뿐인데도.
개인적으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제일 많이 생각이 났고, 그 시대 2,3백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으면 개인 도서관을 소유한 것이란 말에 나는 확실히 호사의 시대를 살고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나는 현재 그보다 많은 책들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좋은 책들이 넘쳐나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절판에 목마르고 조악한 책에 혀를 내둘러야 하는 이 풍요와 빈곤의 시대를 살고 있음 또한 간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언젠가 무슨 드라마에서 인쇄공으로 평생을 살았던 한 노인이 생각났다. 그 노인은 오늘날 디지탈 방식의 인쇄가 50년 밖에 그 수명을 보장 받지 못하므로 옛날 방식의 인쇄를 극찬했다. 그래야 100년 이상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데 과연 그게 정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책도 그럴 것이 아닌가? ㅋ.
그럼에도 이책은 정말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거기엔 그 시대의 책을 증명하는 도판도 도판이지만 종이의 질도 한몫한다. 옛날 계몽사 학생대백과 사전 종이와 같은 종이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