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책과 램프사이'] 50년 후 내 모습
패이스 팝콘·애덤 한프트‘미래생활사전’
50년 전, 우리는 인터넷폰도 워드 프로세서도 몰랐다. 동네에 전화가 한 대뿐이어도 불편하지 않았으며, 연필 흑심에 침을 발라가며 원고지에 글자를 꾹꾹 눌러쓰면서도 마냥 행복했다.
시체(屍體)를 뒤지듯, 이미 와버린 시간인 과거를 파헤치는 것만이 역사는 아니다. 시간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 오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은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향수만큼이나 짙다. 오늘의 평안은 어제 들인 노력의 결과이며 오늘의 헌신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과거를 탐색하며 기억을 일깨우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다. 현재를 ‘곧 과거가 될 미래’로 규정하는 것도 이러한 삶의 연속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미래를 가늠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노스트라다무스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서책에는 비유나 상징이 가득하다. 정확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엇비슷한 사건이나 사물만 등장해도 큰 화제가 된다. 미래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많다. 그러나 그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래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만 전면에 배치할 뿐, 자질구레한 일상을 낯선 단어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어떤 부분은 고대나 중세와 닮았고 어떤 부분은 지금 우리네 생활과 비슷하다.
그러나 ‘아직 없는’ 단어들과 ‘이제 막 쓰이려는’ 단어들을 모아놓은 사전은 다르다. 애매모호함이 틈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미래생활사전’ (을유문화사)은 오로지 미래의 삶만을 항목별로 조목조목 쪼개어 냉정하게 설명한다. 가령 ‘배아 메뉴(Embryo Menus)’는 “수정(受精) 기술의 발달에 따라 원하는 아기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에서 사용될 단어이고, ‘이메일 코치(Email Coaches)’는 “이메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신종직업이다.
이 사전대로 미래가 펼쳐지리라고 완전히 믿는 것은 곤란하다. 사전이란 형식이 가치중립적인 것 같지만, 이 두툼한 책에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 비관이 뒤섞여 있다. 미래가 점점 유토피아로 다가선다면 디스토피아에 어울리는 단어들은 사라질 것이고, 디스토피아로 추락한다면 유토피아를 치장했던 단어들은 찾을 수 없게 된다. 저자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이 사전의 냉정함이자 한계다. 사전이 다시 집필되는 것은 필연이지만, 그 두께와 빛깔을 결정짓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지금이 원고지를 쓰던 시절보다 더 나아졌다고 확정지을 수 있을까. 내게는 과학문명의 발달을 곧바로 장밋빛 미래와 연결시키기를 주저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50년이 지나면 지금 내 삶을 둘러싼 사건과 사물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생활이 펼쳐지리라. 앞당겨 묻고 싶다. 2056년, 여든아홉 살 디지털 스토리 텔러 김탁환씨! 50년 전보다 행복한가요?
김탁환·소설가·카이스트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