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오독을 피할 수 없는 없는가 보다.  

내가 이 책을 언제 읽었던가?  

한동안 나도 하루키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소싯적 이야기지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장편이라곤 <노르웨이 숲을 걷다>가 유일하고, 나는 거의 그의 단편을 주로 좋아했던 것 같다. 이러고도 내가 과연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라면, 그는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풍의 소설을 쓰지 않고 미국적 소설을 쓴다는 것이었고 등장인물의 자유분방함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어느 틈엔가 하루키를 잊었다. 그러다 우연히 <하루키와 노루웨이 숲을 걷다>가 눈에 띄었고 그래서 오랜만에 읽어줬다. 이 책은 어느 하루키 매니아가 그를 입체적으로 취채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으로서 가볍게 읽어줄만 하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책의 가벼움이 좀 불만이긴 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하루키는 사후에라도 평전이 나옴직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작가가 누가 됐든 좀 더 심도있게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이 책 16p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 필립 말로우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였다." 
 

나는 이 말을 필립 말로우는 하루키를 가리켜, 그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라고 말한 줄 알고 리뷰 제목에 써 먹기까지 했다. 그때 제목이 아마도, "하루키, 그대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라고 하고 필립 말로우는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인용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여름 아는 이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요는 필립 말로우가 하루키를 가리켜 그런 말을 했을리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인물이기 때문에. 

 

그 메일을 읽는 순간 완전히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메일 전달자가 아직 레이먼드 챈들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 분도 누군가가 그렇게 지적해 줬기 때문에 전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남겼다. 그러니 더 화끈거리는 수 밖에. 비록 지적해 준 사람이 누군지 알지는 못 하지만 잘못 안 것을 가지고 아는 체를 했으니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책 정리를 하면서 그 점을 확인할 겸 그 책을 빼놓았었다. 솔직히 내방은 책상이 아니면 책 한 권 온전히 세워놓을 공간이 없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옆으로 누워있는 상태. 이 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결국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정말 필립 말로우는 가상의 인물이었으며 오히려 하루키가 너무 좋아해 '한마리 외로운 늑대'란 표현을 했던 것이 드러난 것이다. 즉 자유분방한 모험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 이런 은유적 표현을 한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그러니 이 책에서 이런 오독을 했는데 다른 책에선 얼마나 많은 오독을 해왔을까를 생각하니 헛독서를 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은 거듭해서 읽으라고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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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1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마로우 시리즈를 읽으셨으면 이런 오독을 피하실수 있으셨을 텐데요^^
한번 읽어보세요.무척 재미있읍니다.

stella.K 2009-11-16 12:1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 부분을 새삼 재인식했을 때야 비로소
하루키의 작품 거의 대부분이 레이먼드 챈들러에게서 왔겠구나 싶어
급호감입니다. 한번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 Good morning, Presiden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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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마치 2020년대나 30년대의 미래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꼭 나이 많은 사람이 하라는 법있나? 그때쯤 되면 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여자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미국이나 다른 서방 국가는 이미 젊은 대통령이나 수상도 나오고 여자 대통령도 나왔다. 우리나라도 그럴 날이 머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 참 잘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사실 나랏님이 사시는 집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치장을 했어도 웬지 화장실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대통령을 비롯해 너무 고귀한 분들만 내집 삼아 드나드는 곳이라 그럴 것만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라고 왜 화장실이 없겠는가? 감독은 바로 이 점에 착안을 한듯 싶기도 하다. 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의 인간적인 면들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그래서 늙은 대통령에게 사석에서 아저씨라 부르며 따지는 젊은 대통령. 어떻게하면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지지 않으며 복권 당청금을 손에 넣을까를 고민하다 해프닝을 벌이는 늙은 대통령. 남편이 사고칠까 봐 전전긍긍하며 결국 이혼 담화문을 발표하려고 하는 여자 대통령. 그리고 그 뒤엔 하나 같이 보좌진들이 언론을 마크하며 일명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각종 에피소드도 다양하고 풍성하다. 정말 보다보면 웃게 만들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등장하는 세 명의 대통령에 공감도 많이 가기도 하고.  

그러나 그렇게 빠져있다 보면 너무 공감이가 자칫 감독이 우리나라 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을 옹호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모르긴 해도 감독이 그러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대통령이 나왔으면 해서 만들지 않았을까?  재임시보단 퇴임 후가 더 아름다운 대통령. 내외적으로 공적 임무를 수행하느라 중요한 몸인 건 알겠는데 때론 꼭 한 명의 국민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장기도 떼어내 줄 수 있는 대통령. 가정을 먼저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그런 대통령이 나오길 바래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자꾸 전자에 더 많은 혐의를 두게 만드는 건 의도는 좋으나 풍자가 적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마디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은 의도에서 영화를 만들면 모든 사람이 다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것. 왜 작품을 만드는 감독으로서 좀 더 비틀지 않는 것인지? 왜 보는이로 하여금 '그래, 내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이 바로 저거였어.' 하는 통쾌함이 없었다. 그래서 영화는 지극히 소박하고 소프트 하다. 하긴 우린 최근 몇 년간 몇 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소박한 것에 진실함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그것은 대선 홍보를 통해 그것을 믿게끔 만들었던 요인이 먼저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소박한 것에 진실이 없다 할 수는 없겠으나 그런 이미지가 진실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국민은, 아직도 정치적 부패를 척결하지 못해 대통령을 비롯해 측근들이 재임시 보다 퇴임 후에 더 많은 실망과 배신감마저 느껴야 했던 적이 한 두번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난 차라리 이 영화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영화는 그런 적지 않은 아쉬움 속에서도 어느 만큼은 성공한듯 싶기도 하다.  

또 어찌보면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소재로한 영화가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처음 시도된만큼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이 다소간의 부담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감독의 최근 만들어진 일련의 영화들(특히 '웰컴 투 동막골')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동화적이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같은 코드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인정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고백컨대 나 개인적으론 이제까지 감독의 그런 코드를 반겨하지는 않았다.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좀 다르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동화적이고 상상력을 극대화 시킨 부분이 적지 않지만 제법 아귀가 맞아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세 명의 대통령이 나온 것인만큼 세 편의 옴니버스로 구성이 되며 독립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곱씹을만한 대사도 있다. 이를테면 장동건이 분한 차지욱이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나라를 구하려거든 내 이웃을 먼저 구하라고 했던가? 암튼 그 장면을 보면 꼭 김구가 살아돌아 온 느낌이었다. 또한 영화 말미에 고두심이 청와대 수석 주방장과 나누는 대화는 그야말로 백미다. 대통령 개인이 불행하다고 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말란 법 없지 않은가? 그러나 주방장은 그 말을 맞받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민은 행복한 대통령을 원할 것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그것으로서 왜 제목이 '굿모닝 프레지던트'인지를 충분히 설명해 줬다고 생각한다. 일개의 국민인 주방장의 말 한마디는 이혼을 고민중인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고 본가로 가버린 남편을 만나러 가게 만들었다. 결국 현명한 대통령에 현명한 국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국민에 현명한 대통령이 나오는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다가 차지욱은 어떤가? 홀아비인 그가 그녀에게 힘을 더 실어, 언젠가는 한 사람을 위한 대통령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고 조언해 줬노라고, 어느 대학 강연회에서 말한다. 너무 멋있는 말이다. 결국 여타의 드라마들이 그렇듯 '가족'이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아, 물론 그러다고 해서 이 영화를 비아냥거릴 생각은 없다. 그러리만큼 영화는 좋고 잘 만들었다. 특히 감독의 영화가 그렇듯 음악을 정말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지욱이 장기를 이식하기 위해 환자복에 가운을 휘날리며 흐르는 음악은 자못 비장해서 그 언벨런스에 웃음이 나왔고, 고두심이 남편이 있는 본가로 갈 때 경호차량이 따라붙는 장면에서 흐르던 탱고 음악이 정말 좋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력도 유감없이 잘 발휘되었다.   

그러나 역시 감독은 미니멀리스트란 생각이 든다. 단지 이채로운 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애국주의를 드러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하긴 나라 얘기하는 사람치고 애국주의자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감독만큼만 하면 좋지 않을까? 비판과 비난만이 나라를 살리는 것은 아닐 터. 

영화를 보면서 올해 유명을 달리하신 두 명의 대통령이 생각났고, 지금의 대통령이 생각났다. 확실히 젊은 대통령 차지욱은 현 대통령을 향한 감독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디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도 재임시보다 퇴임 후가 더 아름다운 대통령을 갖게되길 기대해 본다.   



뭘 해도 멋있는 차지욱 역의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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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라이즈 디즈 - Analyze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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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영화 무겁고 칙칙할 필요 있는가? 빌리 크리스탈의 연기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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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 The Not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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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듯 이 영화는 어디서 본듯한 뻔한 그렇고 그런 사랑이야기 같다.   

이를테면 가난한 청년과 부자집 딸과의 운명적인 사랑. 그러나 그런 차이 나는 사람끼리의 사랑이 그렇듯 결혼까지는 적지않은 난관이 있어 보인다. 이럴 때 적수가 되는 경우는 부모가 될 경우가 많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의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전쟁은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서로를 잊을 수 없어 그들은 헤어진 후에도 한동안 편지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이 편지는 여자의 어머니에 의해 확실히 차단이 되고 그렇게 둘은 잊혀져 간다. 그런데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 우연히 신문에난 노아(남자 주인공의 이름)의 기사를 본 앨리(여자 주인공)는 용기를 내어 연락을 하게 되고 이로인해 끊어졌던 그들의 사랑은 다시 불 타오르기 시작한다. 앨리는 약혼자까지 있지만 파혼을 하고 노아에게로 간다. 

보통의 작가들은 그렇게만 되면 할 얘기를 다 마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았더래요.' 그런데 보통 이렇게 끝나는 남녀 주인공의 나이는 평균 얼마나 될까? 옛날 같으면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이었을 것이고, 최근엔 20대 중반에서 말까지 잡을 것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70에서 80을 놓고 볼 때 이들은 그렇게 사랑을 이루고도 30년에서 길게는 40년까지도 바라보는 나이를 산다. 그때까지 정말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살아가는 동안 그렇게 힘겹게 사랑을 이루고도 막상 살아보니 아니더라 해서 헤어지는 사람이 얼마며, 둘중 하나가 먼저 죽는 쌍이 얼마며, 둘 중 하나가 바람을 피우는 경우는 얼마일까? 그러니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말은 믿을만한 게 못된다. 그러므로 작가의 동화같은 말을 다 믿지는 말아라.  

그런데 영화는 독특하게도 이들이 사랑을 이루고 나서의 삶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고, 이사하고 승진하고 등등의 삶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딱 사랑을 이루고 훌쩍 뛰어넘어 죽음을 바라보는 노년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가장 슬플 때가 잊혀지는 것이라고 한다. 잊혀지면 그 전에 있었던 모든 일은 없는거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또 얼마나 안타깝고 불행한 일인가? 당신이 사랑했던 내가 아직도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니 그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치매는 그렇게 앨리의 기억을 갉아 먹었고 요양소에서 만난 웬 낮선 노인에게서 어느 젊은 남녀 한 쌍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남편 노아이고, 그 이야기의 기록은 아내인 앨리가 쓴 것이다. 언젠가 치매에 걸려 자신의 사랑을 잊게 될 것을 미리 대비해서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사랑한 걸까? 치매에 걸려도 변함없는 사랑을 바친 노아일까? 자신이 사랑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그것을 대비해 기록해 놓았던 앨리일까? 노아 없이 그 사랑의 기록은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왠지 앨리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싶다. 아무튼 사랑을 하면 이렇게 예지가 생기나 보다.

그렇다. 사랑은 이루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순간을 자주 기억하고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이룬 사랑인가? 어떻게 그것을 다 이루었다고 한순간 마음의 창고에 넣어두고 산단 말인가? 

그래서 기록은 중요하다. 내 사랑은 너무나 귀해서 자랑 삼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래서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록은 역시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사랑의 순간을 가장 먼저 잊어버릴 나를 위해서 말이다. 결국 그랬을 때 남도 알아주는 법이다.  

나는 이쯤되면 판에 밖힌 사랑 얘기나 쓸 줄 아는 그렇고 그런 작가들 보다 앨리가 더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늙으면 매력도 없고 어떻게 그렇게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늙으면 늙는대로 사랑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새롭게 생긴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조금만 주위를 기울이면 죽음 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정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둘은 한 날 한 시에 앨리가 누웠던 일인용 침대에서 손을 꼭잡고 죽었다. 또 아니면 어떠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죽음으로 헤어지는 것도 아름답지 않은가?  

영화는 처음 볼 때는 그저 그랬는데 보고나니 인생의 지평을 넓혀주는 뭔가가 느껴져 여운이 잔잔히 오래 갔다. 더구나 이 영화는 실화라고 한다. 이런 영화가 있어 인생을 좀 더 넉넉히 관조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나도 저런 사랑의 기록물 하나쯤 갖고 싶은데 (아직)없으니 사랑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난 뭐에 대한 기록을하며 순간을 기억할까? 

감독: 닉 카사베츠 

주연: 라이언 고슬링, 레이첼 맥애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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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독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청소년 시절에 독서를 많이 할 것으로 권장 받고 있다. 사춘기 시절 나는 이것이 늘 불만이었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해 놓고 어디 책을 읽을 틈을 줘야 많이 읽을 것이 아닌가? 이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면 누구는 또 그런다. 원래 독서란 시간이 많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이라고. 터진 입으로 누군들 그런 말을 못할까? 그런데 그건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청소년 시절만큼 공부도 않하고 시간이 그때 보단 훨씬 많아 보이지만 그때만큼 열심히 독서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열정의 문제겠지. 또한 언제든지 독서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고.

그런데  모순이 하나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청소년 시절에 무조건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해놓고 그 시절만큼 검열이 심한 때가 또 있을까? 하긴 그것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사춘기가 되면 유년기와 달리 모든 것에 호기심이 왕성해진다. 따라서 많은 정보를 흡수하게 된다. 그 정보 중엔 좋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게다. 

또한 그 많은 정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의심도 더불어 많이 생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알아서 해줬고 그것에 추호의 의심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의심이라는 게 자기가 관심있어하는 것에 대한 의심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부모에 대한 의심인 것이다. 그래서 '이거 좋은 거 맞아?'하며 나도 충분이 좋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자율성을 부모님께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비근한 예로 나는 불과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  뜬금없이 <만딩고>를 읽겠다고 한적이 있다. 그것의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그와 엇비슷한 시기에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책이 영화화 되고 후에 책으로도 나와 관심을 끈적이 있다.  영화 <뿌리>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흑인 노예 시대를 배경으로한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내가 알기론 <만딩고>도 이게 필적한 작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깐엔 <뿌리>는 이미 영화로 봤으니 같은 계열의 다른 책을 읽는다면 동명소설을 읽는 것 보다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만딩고>란 소설이 당시 19금으로 분류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19금 때문에 보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뿌리>와 필적할만한 다른 책을 보겠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한 달 용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말씀 드리고 타 쓰곤 했는데 아버지는 딸이 책을 사겠다면 비교적 아무 말씀 안하시고 돈을 주시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때따라 무엇을 아시고 그러시는 것인지 무슨 책을 살거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나는 순간 거짓말을 할까 하다가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만딩고>를 살거라고. 나는 아버지가 설마 19금으로 분류된 이 책을 아실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설혹 안다고 해도 나는 19금에 관심있어 읽은 것이 아니라 그저 명작이기 때문에 읽고 싶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난 아버지를 제대로 설득해 보지도 못하고 초전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하신 것이다. 도대체 그 책이 뭐 어디가 어떻다고. 하긴 물주가 아버지이고 보면 당신이 돈을 안 주시겠다는데 버텨낼 제간은 없다. 그런데 책은 정말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읽고 싶은 책도 다른 군침 흘린 책에 밀려 흐지부지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설득은 내가 아버지께 해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에게 해 주셔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왜 책은 좋은 거고 많이 읽으라고 해놓고 유독 그런 책은 못 읽는 것인가? 읽지 말아야 한다면 왜 읽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저 단순히 19금이기 때문에 읽지 말라면 그것을 두 말 않고 순종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설혹 순종한다해도 그것을 믿는 어른은 또 몇이나 될까? 내 아이는 그런 책 안 읽는다고?  

그런데 책이 좋은 줄은 알지만 정말 악서와 양서로 구분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과연 양서와 악서를 두부모판처럼 나눌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다소 위험하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어떤 책은 누구에겐 유익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악서와 양서의 기준은 뭐란 말인가?  

사실 사람은 금지된 것의 유혹을 자제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10가지 중 9가지 유혹을 통과했어도 꼭 한 가지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더구나 인간에겐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게 되어있다.  

그 시절 아버지에게 <만딩고>읽기를 제지 당한 나는 다른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이틴 로맨스 읽기와 본격 예술 소설 읽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쪽 분야의 책을 전문으로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호기심에 몇 권 읽어본 것 뿐이다. 그런데 사춘기가 혼란한 시기는 시기인가 보다. 나는 책 읽기에서 조차 그것을 경험해야 했으니 말이다. 

같은 시기 어느 날 나의 담임 선생님은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하셨다. 지금은 제목이 뭔지 기억도 안 나지만 한 손에 잡히는 포켓판 하이틴 로맨스를 순식간에 앞에 앉은 아이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평소 나에게 관심도 없던 아이가 그러고 있으니 난 순간 이 아이가 책 가지고 장난을 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야, 그거 왜 가져 가?"했다. 그런데 순간 담임 선생님이 나의 입모양을 본 것이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이면서도 경멸조로 "왜 가져 가긴 왜 가져 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모든 것이 굳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사태 파악이 된 것이다. 나는 그 책이 하이틴 로맨스이기에 앞서 문제의 19금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압수당할 책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알고 압수를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히 하이틴 로맨스란 이유만으로 압수를 하신 것이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어른들이 자기네들은 독서를 안하면서 아이들에겐 독서할 것을 권하면서 또 한쪽에서는 이런 식으로 독서하는 학생을 탄압한다는 사실을. 그것은 나로선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상처였다.     

그때 난 아직 완독을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아마도 4분의 1쯤 남겨뒀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까지 4분의 3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우려하는 19금 장면은 나오지 않았고 그 지점까지도 안 나온다면 끝까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고 봐야했다. 고작 그책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음만 졸이다 끝내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 그런 책을 빼앗겼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공히 말하건데 그 책은 내가 읽은 책중에 가장 건전한 책이었다.  

 그런데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예술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고 있었다. 전에 책을 압수 당한 경험이 있으니 조심해야겠지만 나는 그때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 책을 당당히 가방속에 넣고 다녔다.  그때 기억하기론 출판사가 동서문화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히 말하건데 난 모범생이었으므로 애초에 그 책이 그렇게 야한 책인 줄 알았으면 학교에 들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한 소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그저 표지 그림이 예뻐서 읽어 볼 생각을 했을 뿐이다. 

아마 내용도 상당히 파격적이긴 하지만문체가 상당히 싯적이고 아름다워 읽기를 포기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지금은 워낙에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는 한데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가 있다. 그것은 자기 집 정원사와 통정을 하고 절정에 올랐을 때 했던 "아아, 좋아요."라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그 부분을 읽고 온 몸에 난 털 즉 하다못해 복숭아털까지 쭈뼛서는 느낌이었다. 이런 대사가 있을 수 있다니! 그래서 주위의 아이들에게 그 부분을 들이밀며 "야야, 읽어 봐."하고 권했다. 과연 그것을 읽은 아이들마다 거의 뒤집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 국어 선생님에게 들킨 것이다. 나는 전에 담임 선생님께 책을 압수당한 경험이 있어 또 뺐기겠구나 했다. 그런데 또 놀라운 건 선생님은 그 책을 뺐지 않으셨다는 거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면서 나의 독서 수준을 높이 평가하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그 보다 훨씬 건전한 하이틴 로맨스는 빼앗기면서 우리의 눈엔19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오히려 칭찬을 받다니. 결국 그 19금이라는 것도 아이들을 위한 19금인 것 같지만 그냥 어른이 임의로 만든 19금은 아닐까?

과연 책을 읽는 사람에게 있어서 악서는 무엇이고 양서는 무엇인가? 그것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이어야 하는가? 그때 두 분의 선생님께서 보여준 그 행동의 기준에 대해서 지금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하이틴 로맨스류는 내용이 얄팍하다. 적어도 나의 청소년 시절에 유행했던 그런 책들은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았다. 그냥 성인이 흔히 보는 '선데이 서울' 같은 잡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본다. 그래서 읽으면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책은 당시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했지만 그 문체의 아름다움이나 깊이에 있어서 가히 고전의 반열에 낄만하고 언제고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도서목록에  포함이 된다. 그래서 아마도 선생님들은 고전을 읽으라고 하셨는지도 모른다. 고전을 읽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뭐 때문에 쓸데없는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하지만 그래도 하이틴 로맨스를 금하는 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어른들 당신들도 늘 합리적인 선택만하고 시간 낭비 안하고 사는 것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고전만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 주입식 교육의 잔재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학교에서의 독서 교육의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시절엔 거의 사각 지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고전만 읽으라는 것은 또 다른 면에서의 독서 편식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해놓고 왜 독서에선 실패를 하면 안되는 것인가? 사람은 실패에서도 참된 지혜를 얻고 성공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실패를 해 보지 않고 어떻게 양서와 악서를 구분해 내겠는가?  

독서에서 실패하는 것은 다른 실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책이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으면 그만이니까. 하이틴 로맨스가 정서를 혼란시키며 탈선을 조장한다고? 그건 책에 대한 지나친 강박인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영상에서 지나친 폭력물이나 어른을 모방하는 것이 더 심각하지 않은가? 아니할 말로 어른이 되어도 제대로된 연애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그에 따라 그것을 가르쳐 주는 책도 있고 그것을 전문으로하는 상담가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 것이 청소년 때 한때 하이틴 로맨스를 읽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독서 교육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그렇게 강압적이거나 흑백으로 나누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난 엄밀한 의미에서 양서니 악서니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렇게 만만하고 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습관이 들이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어떤 책이 안 좋은지를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 세상에 정말로 나쁜 책이 있다면 좋은 책이 그 나쁜 책을 압도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책 읽기를 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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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스텔라님 글을 보니 저도 갑자기 옛 생각이 나네요.정말 추억의 19금 소설에 대한 글입니다.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경우 뭐 야동이랄것 까지는 없지만 예전에 선생님들이 많이 압수한 책이지요.근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에로틱 소설의 기준이 무척 엄한것 같습니다.아마 위 하이틴 소설도 미국등에서는 청 소년소설로 읽힌 것으로 아는데 말이죠.뭐 만화 짱구시리즈도 짱구가 고추를 내놓는 바람에 국내에서도 한때 19금 만화로 분류되어 국제적 망신을 당한적이 있으니 말 다했죠.
스텔라님 글을 보니 저도 예전에 읽었던 에로틱 소설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stella.K 2009-11-02 12:11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이 긴 글을 읽어주시다니...!
그런데 그렇지요? 우린 검열이 너무 심해요.
지금도 선생님들이 애들이 그런 책 읽는다고 뺏는지 모르겠어요.
한간엔 아직도 그런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요. 카스피님도 한번 정리해 보세요.
님은 어떤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