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의 입학식 -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키워드 한국문화 4
김문식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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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가 그의 스승인 대제학 남공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왕세자: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남공철: 저하, 이 물음은 참으로 종묘사직과 신민들의 복입니다. 세자께서 어린 나이에 입학하여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하는 뜻이 있으니......요임금도 될 수 있고, 순임금도 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왕세자: ......효도를 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남공철: ......다만 덕을 닦고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니,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또한, 수신은 제가, 치국, 평천하,의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효도하는 큰 근본으로는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13p) 

 
   

 아무리 왕의 아들이라고는 하나 아홉살바기 어린 아이가 그 꼬물대는 입으로 저런 말을 했다니 그것을 상상하는 나로선 대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나인들 스승에게 저렇게  질문할 수 있겠으며, 스승이 저리 대답하시는 바를 다 알아 들을 수 있었을까? 책을 다 읽고나니 새삼 조선시대 입학례는 성대하기도 했거니와 엄숙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람들 일생에 있어 평균 3~4번의 입학을 한다고 치면 과연 저런 입학식을 단 한번이라도 치뤄 보겠는가? 싶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학문을 숭상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책의 저자가 중국의 입학례와도 비교하는 글을 썼는데, 확실히 우리나라가 중국 보다 조금 더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배움을 중하게 여겼다. 그중 특이한 건, 왕실과 관련된 모든 행사는 다 궁안에서 치르되 이 왕세자의 입학례만큼은 궁이 아닌 성균관에서 치뤘다고 한다. 그런 것만 봐도 왕세자의 귀한 몸이라고 해도 배움에 관해서는 엄격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저자는 이책을 통해 조선 왕실의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줬다. 왕세자의 입학례는 주로 10세를 전후에서 거행했다고 한다. 물론 조선 왕실을 거쳐간 모든 왕세자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특수한 사례도 있어 20세를 훌쩍 넘겨 입학례를 거행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광해군은 23세 때, 효종은 27세, 영조는 29세가 되어서야 입학식을 거행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광해군은 전쟁을 치르느라, 효종은 형의 사망으로 후에 왕위 계승자가 되느라 늦어졌다고 하니, 이 왕세자의 입학례도 역사의 부침을 타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특히 임진왜란 직후 핍궁한 궁안의 살림에 왕세자의 입학례를 두고 의복 조차도 갖출 수 없어 이를 두고 중국에 도움을 받을까를 의논했어야 했다는 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라 안팎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 사안은 없던 것으로 했다고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거창한 형식 보다는 입학례의 정신을 더 뜻깊게 생각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다고 왕세자의 입학례가 거창하고 화려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의식이 거행되는 중 왕세자가 스승에게 올리는 예물이 있었는데 그것이 퍽이나 소박해 보인다. 제자가 스승에게 올리는 예물은 술과 육포 정도였다고 하니 소박하지 않는가? 그래도 입학례가 끝나면 그 배움의 길이 가히 고행이다 싶다. 무엇보다 아무리 왕세자란 고귀한 신분이라도 그 신분이 스승 보다 높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왕세자는 스승의 말에 절대복종 해야 했다.  

사실 왕세자의 스승이란 신분은 왕 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어찌보면 절대성역이란 생각도 든다. 오죽했으면 그 시대는 제자의 책이 스승의 그것과 같은 높이에서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즉 스승은 책상에 책을 놓고 볼 수 있어도, 제자는 책을 바닥에 놓고 볼 수가 있었다. 이에 몇 세대에 걸쳐 몇몇의 왕이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생각하여 이 부분을 개선해 줄 것을 건의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것이 관례며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지켜야할 예법이라며 왕의 건의도 묵살했다는 것이다.(키워드 속 키워드6)  

이것은 확실히 명암이 있어 보인다. 사실 처음에 나는 뭐 이런 걸 가지고 왕과 왕세자를 가르치는 선생 사이에 마찰이 있는 것인가? 좀 더 큰 대의를 가지고 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 국회의 당파들의 싸움이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던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도 크게 보고 부풀리고, 이슈화 하는 것 알고 보면, 이런 것은 그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역사에서부터 나온 것은 아닌가?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것은 아닌가, 혼자 씁쓸해 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지금이야 책상 없는 공부를 감히 생각해 볼 수나 있는가? 그러나 그 시절엔 그렇지가 못했을 것이다. 역사란 오늘의 시각해서 새롭게 해석은 할 수 있지만, 또 가급적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태도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즉 왕세자의 스승들이 반대했던 건 그것이 예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지 않는가? 조선시대는 특별히 유학의 시대로, 군신간의 예의, 사제지간의 예의를 귀중히 여겼다. 이런 것은 오늘 날의 후대 사람들이 배울만한 덕목이 아니던가? 

스승의 권위가 얼마만 했는지는 <예기>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보면,  

   
  모든 사람이 국왕이지만 국왕이 신하로 대접할 수 없는 경우가 두 번 있다. 하나는 제사를 지낼 때의 시동인데, 제사에서 시동은 조상의 신주를 대신해 앉아 있기 때문에 조상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다른 하나가 바로 국왕의 스승인데, 스승은 국왕의 신하이기는 하지만 함부로 대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를케면,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에는 국왕에 필적하는 지위가 있으므로, 모든 신하들이 절을 올려도 왕세자는 답례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스승에 대해서는 반드시 답례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 대리청장을 할 때에도 스승에 대한 예우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04p)        
   

 그러니 왕은 차마 왕명으로도 아들에게 책상 하나 놓아줄 수 없고, 스승 또한 왕의 말이라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그 시절 제자된 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닐 성 싶다. 

또한 조선 시대는 장유유서의 윤리가 강했던 시대라고 볼 수가 있는데, 그래서 배우는 자리 역시 나이순으로 서로가 자리를 양보해서 나이 많은 사람이 좀 더 좋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여기엔 왕세자나 왕세손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고 하니 과연 역시 배움에 있어서 특권 의식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청개구리는 있게 마련이다. 선조 때 이해수란 한 유생이 이에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장유유서가 아닌 성적순으로 앉자고. 이에 그 이름도 유명한 이이 선생께선 "장원을 높이는 것은 동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모임에서나 시행하는 하는 것입니다. 성균관은 인륜을 밝히는 곳인데 어떻게 장유유서를 폐지할 수 있겠습니까. 또 장원이 어떻게 왕세자 보다 높겠습니까? 옛날에 왕세자가 입학하면 나이 순으로 앉았으니 장원은 따질만한 것이 못 됩니다."(105p) 라며 그 의견을 묵살하였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이 이해수란 사람 장원을 했던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이런 교묘한 의견을 냈던 건 아닐까? 그가 만일 오늘 날, 우리나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실정을 본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런데 이렇게 왕세자의 입학례도 순종의 입학례를 끝으로 그 전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것은 한일합방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앞서도 말했지만 전통적인 우리나라 교육은 전인교육에 바탕을 둔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시대라고 입신양명을 위해 학문에 정진했던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왕세자 입학식만 봐도 옛 조선시대 학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땠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것은 오늘 날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린 과연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할만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왕세자 입학식은 읽기만 해도 진지함이 묻어난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나라 교육은 열의는 있어도 진지함은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교육에 장유유서의 윤리가 어디 있으며 예의와 법도가 어디 있는가? 

오늘 우리는 이렇게 얉은 책으로 나마 옛날의 입학식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하지만 앞으로 100년, 200년 후, 우리는 후손들에게 지금의 입학식과 교육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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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3-0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인 성'이라는 한자에 귀이가 들어가는 것은...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랍니다.
아래 삐침이 몸을 기울이는 모양이라고 해요.
남에게 귀기울일 줄 알고, 말을 조금만 하는 사람...

stella.K 2010-03-05 11:16   좋아요 0 | URL
오,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고맙습니다.^^
 
고고70 - Gogo70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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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최호
주연 : 조승우, 신민아

70년이면 지금부터 40년전 이야기다. 꽤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나에겐 제법 친근하다. 

그 시절, 우리 가요계는 이봉조라는 걸출한 작곡가가 있었고, 파격적인 무대의 아마도 한국의 제니스 조플린쯤 되는 김추자가 있었고, 정훈희와 펄시스터즈의 독주체제는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시절 김추자는 보는 것으로는 좋지만 감히 따라할 수는 없었고, 정훈희나 펄시스터즈를 더 좋아하고 따라하기를 즐겨했다. 워낙 그들의 아성은 웬만해서 깨지지 않을 것 같아 '데블스'란 그룹 사운드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땐 그룹 사운드가 빛을 보지 못한 때였다. 그나마 이를 대체할 팀이 있었다면 곽규석의 <쇼쇼쇼>에 가끔 출연했던 '봉봉 사중창단'이나 이에 필적할 '블루벨스'가 있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이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가려 '데블스'란 그룹은 철저하게 마이너리티에 속했는지도 모른다. 하긴 그땐 소울이란 장르가 막 형성되었을 때니 천하의 이봉조라도 감히 이 장르에 도전하지 못하고, 이들은 철저하게 남의 노래나 따라 부르는 정도가 다였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의 매니아들에겐 꽤나 인기가 있었던 그룹이었나 보다.  

사진에서 보듯 <플레이보이컵> 경연대회라는 노래 경연대회도 실제로 있었나 보다. 나 때로 치자면 <대학가요제>나 <국풍81(?)>또는 <강변가요제> 뭐 그런 것에 버금가는 대회는 아니었을까? 서울 변두리쯤에서 소울이 좋아 업소에서 노래나 불러주고 푼돈이나 버는 이들에게도 꿈은 있었다. 당시 서로 라이벌인 두 그룹이 한팀을 이뤄 대회에 나갔고, 1등은 못했지만 특별상인가 뭔가를 해서 밀가루 한 포대를 부상으로 받는다.  

어디나 그렇듯,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자다. 당시 1등을 차지했던 그룹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길이 없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알아줄만도 한데 오래 버텨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키지 않으면 누가 1등을하고, 2등을 하던 대중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 

무대 의상이 촌스럽긴 하지만 나름 파격적이기도 하다. 아무나 입상하는 것 아니지 않는가? 1등은 못했어도 어쨌든 입상은 했으니 어디든 이들은 불려나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부상으로 받은 밀가루 포대가 다 떨어져 갈 무렵, 그들은 당시 잘 나가던 음악 프로듀서에 적극 자신을 어필해 '닐바나(오늘 날의 명칭으로 하자면 '니르바나'를 당시로는 그렇게 불렀나 보다)'로 환골탈퇴 시켜 성공가도를 달린다. 

나름 이 그룹 멤버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돈만 많이 벌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멤버들과 진정한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상규(조승우)의 갈등이 제법 그럴 듯하다. 이들의 성공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되는 미미(신민아)의 백댄서 역할도 나름 볼거리다. 


무엇보다 이들이 주목을 받았던 때는 70년대는 유신 독재 시절이다. 당시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은 지금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해프닝 같다. 더구나 대통령에 의해 금지 가요가 선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또한  당시로선 통행금지가 시행되고 있는 때였다. 하지만 파격적이고 당차게도 12시부터 4시까지 밤새도록 춤추고 놀라고 고고장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이들의 무대와 젊음의 열기를 발산한다. 

하지만 점잖은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 이를 순순히 보아 넘길리 없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도 단속했는데 그런 허섭쓰레기 같은 고고장을 단속하지 못할까? 왜 그런 곳을 단속하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대의명분은 없다. 그저 대통령이 싫어하면 그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끗히 수행할 뿐이다.  

특히 이 영화는 중반까지는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다가 나중에 뒷심을 발휘한다. 지금도 인상적인 건, 군인들이 그 고고장을 진입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막는 공연장 관계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춤을 추고 공연을 한다. 하지만 마침내 군인들은 고고장 진입에 성공하고, 최루가스를 살포에 공연을 해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닐바나'와 고고장에 온 사람들이 누군가? 한창 혈기방자한 젊은이들이다. 아무도 이들의 젊음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은 최루 가스 때문에 숨은 고사하고 눈을 뜨고 있기에도 괴롭지만 누군가 물을 끌어와 공중에서 살포하고 그로인해 다소간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누군가 "계속 가는 거야"하며 춤과 노래를 계속한다. 그때 이들을 성공시킨 프로듀서도 있었는데 외치는 한마디 "그래. 여기가 바로 닐바나야!"란 말이 참 인상적이다. 니르바나. 나도 잘 몰랐던 단어다. 열반이란다. 고고장 밖에서는 아수라장이어도 그안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것. 그것이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역시 독재도 이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다.  

누구나 젊음은 한때고 그때를 지나오지만, 그래서 지금의 젊은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도 기성세대가 되면 대부분 젊은이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서, 문화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란 옛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나의 아버지도, 내가 한창 어리고 젊었을 때 팝송 듣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분명 아버지도 젊었을 때 들었던 음악이 있었을텐데도 말이다. 그러니 문화를 맞다 틀리다로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겠는가? 기성세대가 보기에 눈쌀이 찌푸려지면 무조건 잘못된 것인가? 그런 억측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독재체제는 그것을 서슴없이 행했다는 것이다. 문화 말살은 곧 인권 말살과 같은 것이다. 인권이 보장된 나라에서는 문화도 강성해 보인다. 물론 그에 대한 문제점도 없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빈대 잡자고 초가산간을 태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확실히 문화란 독재체제하에선 발전하기가 여간해서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문화는 또 여러가지 모양으로 환골탈퇴 후 살아 남기도 한다. 역시 변화에 능한 종이 오래 살아남는다란 말이 여기에도 해당이 되는가 보다.  

그렇게 인기를 구가했던 이들도 80년대 초 해산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 멤버들은 지금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감독은 어떻게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역시 음악 영화는 흥미롭다. 단지 아쉬운 건 좀 더 짜임새 있고, 임펙트 강하게 만들 수도 있었던 것을 그저 그렇고 그런 소품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영화의 자잘한 재미와 사람들의 고뇌와 방황을 그리느라 이들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적게 배치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대체로 유쾌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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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1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3-0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글에 말한 이봉조라면 가수 현미의 전 남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언제가 TV에서 말한것을 언뜻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나저나 신민아 정말 훌륭하네요^^

stella.K 2010-03-02 11:21   좋아요 0 | URL
네. 당시엔 이봉조랑 박춘석(?)이 작곡계를 꽉잡았죠.
쌍두마차겸 라이벌 뭐 그런...!^^

프레이야 2010-03-0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쾌하게 봤어요.
여기선 조승우보다 신민아 제 역할을 하더군요.
신민아가 여기서부터 좋아졌거든요, 전.^^
참, 알라딘에도 니르바나님 계신데요.ㅎ

stella.K 2010-03-02 11: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런데 조승우도 노래 꽤 하더라구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알라딘의 니르바나님 지금도 잘 계신지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10-03-03 22:58   좋아요 0 | URL
조승우야 뮤지컬도 하니까 정말 목소리 괜찮더군요.
좋아요, 둘다^^
 
다크 시티 - Dark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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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난해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이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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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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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놀랍다. 무엇보다 역사 드라마는 우리가 몰랐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주니 그건 가히 보물 같은 것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역사 드라마를 믿는 사람은 없다. 역사 드라마란 그저 있었던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니 그저 그것이 하나의 가교 역활을 해서 덕분에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일종의 흥미유발 정도가 전부가 아니겠는가.  

몇년 전, 한 TV 드라마에서는 정조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모은 바있다. 그 바람에 유독 그때를 전후해서 정조 관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었다. 나 또한 그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이 '정조'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가졌을까? 하지만 난 그 드라마 덕분에 정조에 대해 관심은 가졌지만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그에 관한 어떠한 책도 재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야 이책을 접하면서 정조 읽기의 숙원(?)을 풀었다.고 한다면 너무 속보이는 언사려나? 

사실 글은 말 보다 강한 임펙트가 있다. 말은 한번 뱉어 버리면 흔적이 남지 않지만, 글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그 글이 여러 사람을 두루 아우르지 않고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한 글일 때 그것이 받는 사람에게 어떤 것일까? 특히 우리는 편지라고 하면 사랑하는 연인끼리 주고 받는 '연서'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도 그렇지만 만일 임금에게 받는 편지라면 어떨까? 임금도 인간인지라 생면부지의 일개 백성에게 편지를 쓸리는 없고, 그에 상응하는 신하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건 가히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정조가 놀랍게 다가 왔던 건, 그 어찰(임금의 편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 믿을만한 신하들과 나눴던 것이 아니라 임금과 대립했던, 다시 말하면 정적에게(도) 보냈다는 것이다.  

알겠지만 그 사람이 유능한 정치가냐 아니냐를 보여주는 건, 뛰어난 언변이나 정책이 말해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정적을 얼마나 요리(?)를 하느냐가 관건인지도 모른다. 심환지(1730~1802). 그는 유감스럽게도 정조의 믿음직한 신하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조의 반대편에 서서 조금의 틈만 있으면 그의 왕권을 무력화 시킬려고 했던 사람이다. 정조는 왜 그토록 자기를 미워했던 신하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던 것일까? 앞에서도 썼듯이 정조는 정적조차 자기편으로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됐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밀고 당기기가 필요한데 하물며 정적이랴? 어르고 달래지 않으면 살얼음판 같은 조정을 이끌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심에 심환지가 있었다.  

원래 임금에게서 어찰을 받으면 그 수신인은 그것을 태워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단다. 왜냐하면, 임금의 어찰은 극비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정조의 경우 극비에 속하는 내용이 많았고, 그것의 철저한 비밀유지를 위해 폐기를 요구한 밀찰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13p) 하지만 심환지는 그러지 않았다. 할 수만 있으면 정조가 보낸 편지는 최선을 다해 보관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추측컨대, 그에게도 정조는 정적이었다. 나이도 그가 정조 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거의 아버지뻘 이거나 못해도 작은 아버지뻘은 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점점 달라진다. 미워도 미움이 다가 아니고, 사랑해도 그 사랑이 전부가 아니다. 모르긴 해도 심환지는 정조를 볼 때 애증과 연민을 교차하고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정조의 편지는 당시 돌아가는 정치의 판세를 어느 땐가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써 먹는데 사용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그도 선비일진대 나라에 대한 충절을 앞세우면서 누대에 걸친 종묘사직을 바로하기 위함이란 대의 명분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임금의 편지다. 이것을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으랴? 아무리 법이 그러해도 그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정조는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낼 때 나라에 대한 극비 사항만을 논하기 위해 편지를 사용했던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낙서같은 쪽지 편지도 보냈다고 한다. 그것을 보면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도 볼 수가 있는데, 인자한면도 있지만 아버지 같고, 작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심하게 꾸짖는 내용도 있어 우리가 정조에게 보는 어진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폭로하기도 한다. 역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인데 당시 심환지는 정조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기 위해 그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을런지 모르지만, 우리 후대의 사람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사료가 되었겠는가? 

사실 이렇게 심환지가 가지고 있는 어찰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조 이미지를 깨우긴 하지만, 나는 그래야만 했던 정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마이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동서양 어느 임금, 어느 군주에게나 통하는 뭔가의 아우라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조가 임금이 되지 않았다면 심환지를 어떻게 대했을까? 상상해 보면 알 수도 있는 면모라고 생각한다.   

이책은 사실 그다지 두꺼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읽기는 녹녹치 않다. 저자가 정조 어찰이 갖는 면모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도판도 세심히 사용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거기에 나온 정조의 필체는 거의 악필에 가깝다(적어도 내가 볼 땐). 하지만 정조는 너무도 바빴던 임금이었다. 일일이 퇴고할 여력이 없었고,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람이 심환지 한 사람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또 그럼에도 불불구하고 당시 씌였을 의성어를 과감하게 사용함으로 그의 유머와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과연 멋진 임금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정조는 역대 어느 임금 보다 어찰을 많이 썼던 임금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린 편지가 갖는 위력이 어느 만큼일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할 때. 내 속내를 들어내 보여야 할 때, 편지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린 이 '편지쓰는 마음'을 점점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그것이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는 많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또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 갇혀서 나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하긴, 정조 시대 때 달리 마음을 표현하고 전할 수 있는 도구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흔히들 편지를 아날로그의 산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예견하기를 좋아하는 동물이어서, TV가 나왔을 때 영화가 살아 남을까를 걱정했고, 책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이 최첨단 시대에도 버젓이 살아있다. 하물며 편지의 종언을 얘기할 자 그 누구랴?  

아마 모르긴 해도 심환지만큼 정조에 대해 가장 잘 말할 사람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는 누구보다도 정조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 정조의 마음을 뒤엎고 그는 정조의 또 하나의 정적인 정순왕후의 치세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정조의 죽음을 목도해야만 했다(지금까지의 정설로는 심환지가 정조를 죽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책의 저자는 정조가 독살 당하지 않고 자연사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과연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런 심환지의 마음은 또 어떠 했을까? 정치도 정적도 세월 지나면 무의미한 것을. 정조의 죽음 앞에 가장 많이 슬퍼했을 사람은 바로 심환지는 아니었을까? 그런 심환지도 결국 가고, 그가 남긴 정조 어찰은 이렇게 남아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심환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편지는 이러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책을 읽으면서 정조의 면모를 새롭게 알 수 있게되서 좋았다. 한번쯤 읽어 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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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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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작년 초였나, 재작년 말이었나? 아는 이에게 선물로 받고 작년 말경부터 조금 조금씩 읽었던 책이다. 이야기란 게 (남의 글을)읽을 때는 문제가 안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언제나 그렇듯 글이란 서론, 본론, 결론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스토리에도 법칙은 있는데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야기의 법칙을 알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으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시학'을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책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시나리오 쓰는데 도움을 주고자 접목시켜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총 33장으로 되어있고, 간결하게 '시학'의 핵심만을 요약했다.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게 쓸 수 있을까? 감탄했다. 물론 의심이 많은 나로선 '이거 저자가 '시학'을 진짜 잘 알고 쓴거 맞아?' 웬만해선 읽을 수 없다던 책을 저자는 어떻게 이해하고 이렇게 간결하게 쓸 수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거기다 거의 매 장이 끝날 때마다 철촌살인의 위트있는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예를들면, 

   
 

서브플롯 개념을 버리고 시나리오 구조를 <아메리칸 뷰티>처럼짜라. 그러면 당신의 시나리오는 그 구조 속에서 영화의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고, 어쩌면 당신은 오스카상을 타게될지도 모른다.             

                                               -<4. 최고의 플롯은 한 가지 길로만 간다. 63p>-  

    

 
   

 또는, 

   
 

시나리오를 쓸 때 하나의 완결된 행동을 만들고 우연. 필연. 개연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운명을 불러내야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쓴다면 당신은 오스카상을 받으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수상식장의 통로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10. 운명이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건일 뿐 98p>

 
   

 우습지 않은가? 어찌보면 그 말하는 것이, "밑줄 쫙~"의 요점만 간단히를 외치는  학원 선생님 같다.  

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미국 사람이고 그러니 미국 영화 실정에 맞게 쓴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나라에선 감독이 각본까지 써서 찍는 마당에, 스토리 애널리스트는 무엇이고, 피치(시나리오 작가가 감독 및 제작자들에게 자기 작품을 설명하며 팔아 먹을 때를 이름하여)가 웬말이냐? 더구나 저자는 20세기 허리우드의 잘난 영화들만을 엄선해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으~ 그놈의 허리우드! 잘 났어 정말!! 마치 허리우드가 영화의 모든 것인 양 잘난 척하는 게 마땅치 않지만 뭐 어쩌랴? 억울하면 출세하랬다고, 우리도 그런 시스템에 이런 책 하나 못낸 것을 아쉬워 할밖에.  

2년 전, 시나리오를 배웠을 때 나의 선생님은 허리우드 정석대로만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치셨다. "세계 영화의 흐름은 이거야." 하면서 거기서 단 한발짝도 비껴나가지 않으셨다. 모르는 사람은 그 선생님이 허리우드표 빠다를 좋아하시게 되었나 보다며 그야말로 듣는 우리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그러고 보니 나의 허리우드 불만이 여기서부터 촉발된지도 모르겠다. 그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난 점점 중증이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치는 이유가 있었다고 간파했다. 무엇을 뛰어 넘으려면 그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렇게 정석에 목 매달았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을 뛰어넘어 줄 사람이 나는 아닌 성 싶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허리우드의 벽을 넘어주지 않을까? 나는 바로 그를 위해 응원의 의미에서 허리우드표를 씹어 주는 것이다. 이러는 날 두고, 누구는 잘난 척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관객은 그 영화를 두고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다. 제작자의 입장이면 절대로 못한다. 그야말로 불만은 나의 힘인 것이다. 

이책은 보기에 나쁘지 않다. 하지만 참고서라고 하기엔 좋지만 교과서는 아닌 성 싶다. 만일 누군가 시나리오에 대해 전문적으로 잘 쓴 책을 원한다면 감히 다른 책을 알아 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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