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법칙 - 나를 천재로 만드는 비밀이야기
김병완 지음 / 아이넷북스(구 북스앤드)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예전에 나는 시나리오 창작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같이 수강했던 한 수강생이 나의 손금을 봐주겠다는 것이다. 한참을 보더니 다짜고짜, 끝까지 못 간다고 너무나 확신있게 외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나중엔 자신도 그렇게 외치듯이 얘기한 게 쑥스러운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그렇다고 손금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누구라면 알만한 최고 갑부중 한 사람은 누가 손금을 보더니 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자 일부러 손바닥을 찢어서 손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노력 여하에 달린 거지 손금이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위로하듯 하는 것이었다. 

 

아니 누가 뭐랬나? 내가 가야한다면 어디까지 가야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그 갑부처럼 뭔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가기위해 손바닥이라도 찢어서 없는 손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차피 인간의 끝은 죽음 아니면 파멸인 것을 그걸 꼭 가 봐야 아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수강생은 그러더니 내 옆의 친구를 봐주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나 보다 후한 손금을 봐주면서 대체로 좋긴 하지만 대신 몸을 사리고, 조심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는 나와 다르기긴 했다. 좀 대범하고, 뭐든 끝을 보는 스타일이 었으니 그렇게 후한 손금을 봐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또 대체로 그런 캐릭터는 열정이 많아서 뭘 해도 해 내지만, 고집이 세고,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조심하고 스스로를 낮출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나는 끝까지 못 가는 타입이긴 하지만(그 친구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적당히 몸을 사리고, 피해 갈수도 있으니 적어도 세상을 험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이 책엔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천재들'이란 꼬리표를 달았고, 그들은 어찌보면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앞서 말한 일부러 자신의 손금을 만들며까지 최고부자가 되려했던 그 갑부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생각하는 것처럼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은 천재들의 천재성을 알고자 해서 읽었던 것은 아니다. 목차에서 보듯이 알만한 유명한 사람들, 특히 작가들의 뭔가 색다른 일면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읽은 것이다. 난 그런 책을 좋아하니까.

 

읽다보니 이 책은 나에게 용기를 줬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작가만 해도 나와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 중 천재 소리를 듣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작품을 생각하면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된다는 건 좀 어리석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렇게 천재 작가들도 원래부터 천재는 아니었으며, 그들 중엔 형편없는 실력의 작가들도 많았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특히 예로들고 있는 브론테 자매인 경우, 우리는 그들이 천재여서 하루 아침에 <제인 에어>나 <폭풍의 언덕>을 써 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처음엔 미숙하기 짝이 없는 글을 썼으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책을 표절하고, 플롯을 베꼈다고 폭로하듯이 말하고 있다(물론 이 책의 저자도 어느 책에선가 본 사실을 전해주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천재의 의외의 일면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가?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천재들의 범재 같은 이면만을 파헤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무조건,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많이 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아주는 천재들이 자기 분야에서 유명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쓰고, 그리며, 발표했는지를 확인 시켜 준다. 예를 들면 역사상 위대한 석학 중 한 사람인 프로이트도 '정신분석학 입문'이란 책을 내고 그 학파를 세우기까지 무려 300편 이상의 논문을 냈다고 전한다. 또한 우리가 고흐의 유명한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600편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고도 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작업량에서 단 1%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드라마 작가 김수현 씨가 생각난다. 그녀는 노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이 항상 성공했던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보했으며, 성공하지는 않더라도 고정 팬들에 의에 기꺼이 TV 앞에 앉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도 천재는 아닐까? 

 

이것은 확실히 범재인 나에겐 조금 솔깃한 이야기이긴 하다. 우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주입 되어진 '천재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래서 천재는 타고난, 상위 1%만이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책이니 어찌 솔깃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렇게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혔으니 게으른 사람이야 핑계가 있어 좋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짓눌려 열등감 내지는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한 예로, 나는 어렸을 때 거의 부모님의 강압으로 피아노를 배웠어야 했는데, 당시 지금은 지휘자지만 당시엔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던 정명훈씨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명훈씨 같이 되야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을 때 정말 싫었다. 내가 왜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피아노가 얼마나 멋진 악기인지를 얘기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꽤 오래도록 정명훈씨와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특히 피아노는 성인이 된 최근까지도 그 악기가 정말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인지 잘 몰랐다. 그렇다면 천재로 만들고 싶어하는 부모부터 읽어 봐야하는 책은 아닐까?      

 

이렇게 이 책은 나에게 희망도 주지만, 뜨끔하게도 만든다.

저자는 책에서 '임계점'이란 말을 쓰고 있다. 물은 99도씨에서도 끊지 않는다. 딱 100도씨가 되어야 끓는다. 그것을 '임계점'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100도씨까지 자기 열정을 끓게 하지 못한 사람이고, 천재들은 100도씨까지 끓어 발화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일을 어느 지점까지 열을 올렸다 식어버렸던 것일까?

 

난 그렇게 피아노엔 소질이 없다는 걸 안 부모님은 대신 무용을 시키시려 했었다. 물론 그건 결국 시작도 못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부모님은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비교적 늦게 발견되긴 했지만, 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작가의 꿈은 사춘기가 되면서 막연하게 갖긴 했지만 오래도록 그꿈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랬던 내가 20대 말이 되면서 '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나 자신 스스로를 밀어 넣었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것에 관해서 저자는 피카소와 장승업을 비교한 글이 흥미를 끄는데, 천재란 수식어가 두 사람 다 아깝지 않은 예술가임에 틀림없지만, 피카소는 갈수록 유명해졌지만, 장승업은 불운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환경이나 상황을 고려해 볼 수가 있는데,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을 발전시킬만한 여러 가지 상황이나 환경이 많았지만 장승업은 그 재능을 강화하고 발전시킬만한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했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도약할 수 있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그 길을 나름 찾은 셈이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가장 그야말로 '피 튀기게' 열심히 썼던 것 같다. 비록 그때 나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경쟁하며 나를 발전시켜 나갔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연극 대본 쓰는 일이 없는데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길이의 길고, 짧음을 상관없이 못해도 100편은 족히 썼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여러 이유를 들어 그 일을 임계점까지 끊어 오르게 하지 못하고 어느 지점에서 놔버렸다. 데이비드 베일즈가 그의 책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에서 '예술가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완벽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에,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장르가 아니라는 것에, 매번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는 것과 여러 가지 힘든 인간관계과 환경이 주는 의 한계 등 한마디로 슬럼프에 빠져 99도에도 못 미치고 그냥 제물에 식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때 이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공학이나 자기계발류의 책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읽어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구조는 뭔가의 자극을 받지 않으면 한 없이 가라앉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하기 싫을 땐 쉬는 것도 좋긴 하지만 이 책을 읽었더라면 훨씬 빨리 훌훌 털어버리고 뭐든 다시 시작하지 않았을까?  

 

앞서 말한 나와는 다른 캐릭터를 가진 친구 얘기를 잠시 더 하자면, 그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나는 간혹 내가 천재라고 생각해."란 말을 해서 약간 놀란 적이 있었다. 내가 왜 놀랐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물론 그 친구의 말을 되새겨보면, 그렇게 생각하리만치 그 친구는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란 말로도 들린다.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 확실히 천재에 대한 정의가 달라질 거라고 보는데 저자는 천재가 되는 여러 가지 요건 중 하나로 '담대함'과 '둔감력'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난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존감'을 포함시키고 싶다. 물론 이것은 둔감력에 포함시켜도 될 것도 같다. 책에서 말하는 둔감력은 남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람들로부터 어떤 비난이나 칭찬을 받아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거인(천재)은 둔감하다"(38p)이다.  또한 자성예언이란 말도 썼는데, 한마디로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던 그대로 된다는 것인데 그 친구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천재 맞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천재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들을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읽고 있노라면,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말하자면 천재는 은근과 끈기, 부지런함,  방대한 양의 독서와 작업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책을 인용하며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치 여느 자기계발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 같다.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천재를 성공과 결부시킨다는 것은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모든 사람이 천재가 되려 한다면 천재의 하양평가는 불가피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천재가 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다. 천재가 되고도 박제가 되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비근한 예로, 톨스토이나 헤밍웨이, 고흐가 천재인 건 맞지만 그들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맞지만 만족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너무 성급하게 천재들의 어느 한 일면만을 보고 쉽게 뭔가로 몰고가는 느낌이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즉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쓴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사회의 폐해를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절대 가치가 아닐텐데, 3년 동안 막대한 양의 독서를 했다면서 좀 더 새로운 가치에 관해서는 책을 써 볼 생각은 안 해 봤을까? 30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많은 지식을 담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이 분야에 잘 정리된 보고서를 보는 느낌이지 그 이상의 지성을 담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많은 책을 읽었다고 독자들에게도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도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각에선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읽느냐도 생각해 봐야한다고도 말한다. 인간의 허다한 많은 지식이 지성을 깨우지 못한다면, 거시적인 안목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독서를 많이 하고 적게함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내용은 천재가 되라고 해 놓고, 책의 수준은 평범 수준 이상을 넘어가지 않아 보이니 어떤 면에선 좀 아이러니해 보인다. 그냥 유희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3-12-0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가 되시려고 이 책을 읽지는 않으시겠지요 ^^;;;
어느덧 맞이한 섣달에
아름다운 책 즐거이 누리셔요~

stella.K 2013-12-02 13:59   좋아요 0 | URL
설마요...천재되기가 어디 그렇게 쉽나요?
전 그저 오늘에 만족하는 사람이고 싶어요.ㅋㅋ

아이리시스 2013-12-0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벌써 12월 1일이에요, 달력이 어느새 넘어가서 깜짝 놀랐어요.
새삼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이제야 서서히 뭔가가 아쉬운 기분.

stella.K 2013-12-02 14:03   좋아요 0 | URL
매년 그렇지 않나요?
매년 막달은 후딱 가지만 또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달이기도 해요.
그 다음 달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잖아요.
물론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싫긴 하지만,
나이보다 젊어요란 말로 위로 받고 사니까 그냥 나이 한 살 더 먹을래요.^^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법칙 - 나를 천재로 만드는 비밀이야기
김병완 지음 / 아이넷북스(구 북스앤드) / 2013년 11월
절판


하워드 가드너는 여러 천재의 예를 들면서 10년 정도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고 일단 도략하면 과거로부터 단절을 이루며 또다시 10년간 엄청난 훈련과 연습, 창작활동을 함으로써 두 번째 도약을 이룬다고 했다. 그 10년마다 찾아오는 도약의 순간에 창작한 작품들이 바로 1%의 걸작이 된다.-19쪽

괴테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또는 할 수 있다고 꿈꾸는 것이 있다면 시작하라. 대담함은 비범한 재능과 힘과 마법을 지니고 있다."

담대하게 오늘 도전할 수 있는 사람, 오늘 시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 명품 인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담대함이다.-29쪽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그것은 지능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완성된 창조물이 아니라 화합물과 같이 얼마든지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과 조합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능은 완성되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유동적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31쪽

와타나베 준이치의 '둔감력'이란 그 어떤 비난과 평가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만큼 영향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할 수 있게 된 지혜와 태도를 평가할 때 둔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돈감력'이라고 한다.
"거인(천재)는 둔감하다." -37~38쪽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가 충분한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갖고 있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45쪽

마이클 조던은 인타뷰에서,
"나는 선수 시절 9,000번 이상의 슛을 놓쳤다. 그리고 300번의 경기에서 졌으며 20여 번은 경기를 반드시 승리로 이끌라는 특별임무를 부여받고도 졌다. 나는 농구 인생에서 실패를 거듭해왔다. 이것이 내가 성공한 정확한 이유다."
-48쪽

"사람의 행위는 늘 반복된다. 따라서 탁월함이란 단일 행동이 아닌 습관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53쪽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의 저자 데이비드 베일즈는 예술가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완벽함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5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자 살인 (1disc)
박대민 감독, 황정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이야기의 구조가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함이 있긴하다. 어디서 봤을까?

하지만 이 영화는 나름 상당히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익숙한 탐정 영화를 후기 조선 시대로 설정했다고 보면 되는데, 내가 영화나 책이나 그 시대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정말 꽤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추격씬에서 보여지는 핸드 헬드 촬영 기법은 확실히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뛰는 것처럼 만드는 효과가 있어 영화에 공을 참 많이 들였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또한 양반가 아낙들이 궁수를 하는 장면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선 잘 보기 어려운 장면인 것 같은데 그런 장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림자 살인'일까 제목이 궁금했는데, 영화는 이것의 궁금증을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잘 풀어갔다고 생각한다. 시대물이라 고증이 쉽지 않았을 텐데 영화에서 보여지는 미장센도 좋았다.

 

영화를 볼 때마다 배우의 고충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 거의 없는데, 특별히 이 영화에선 아역으로 나왔던 별이 역을 맡았던 김향기의 연기가 짧지만 못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이 배우의 존재감을 올 여름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된 소녀역을 싱그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이 배우는 그 전에도 어디선가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알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도 나왔던 것이다. 이 영화가 2009년도 작이니 영화에선 10살도 안 됐다고 황정민이 대사에서 그랬더만, 실제로 내가 볼 때 6,7살 정도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아이를 유아성도착자의 상대역으로, 피 바가지를 뒤집어 쓴 모습으로 나왔으니 연기를 해야하는 본인으로선 좀 힘들지 않았을까? 물론 아무리 잠깐 나오는 장면이긴 하지만 성인도 아닌 것이 나름 오랫동안 그 잔상이 남았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황정민의 연기야 말할 것도 없고, 류덕환과의 연기 호흡이 좋아 보인다. 엄지원도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고. 하지만 마지막 엔딩은 굳이 없어도 되는 장면은 아닐까? 물론 본의 아니게 탐정이 된 홍진호(황정민)와 광수(류덕환)가 다음에도 여전히 탐정질을 하게 된다는 암시를 보여주는 대목이긴 하지만, 그래서도 이 영화는 더욱 어디선가 본듯한 영화의 냄새를 더욱 짙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느낌이다. 이런 영화는 일부러라도 좀 챙겨봐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943218#8994943218_MyReview

 

이 책의 출판일이 올해 10월 22일인데 벌써 절판이 되었다.

이유가 뭘까? 평점도 높은데...

그래24에서도 절판이고,

다행히도 옆동네는 판매가 되는 모양이다.

왜 그럴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길리아드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해서 좀 놀랐다.

아니 그 보단 박경리 문학상이 있다는 것이 좀 더 놀라웠을까? 박경리 작가야 워낙 유명하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분이니 이 분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있음직한 것은 당연한 것인데, 언제 또 이런 상이 제정되었단 말인가? 그건 또 차치하고라도, 기존의 우리나라 문학상은 당선작에 의미를 둔 경향이 있는데 이 상은 작가의 공로에 수여하며 그것을 우리나라 작가에만 국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노벨문학상처럼. 얼핏 들으니 벌써 3회째라고 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문학상이 이렇게까지 권위가 있어지다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알게된 작가 메릴린 로빈슨과 그의 작품이라...!

길라이드란 이름이 왠지 지구상에 없는 이상향의 이름인 것도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성경에서 접하는 '길르앗'의 미국식 발음이다. 미국의 아이오와주에 있는. 책이 왠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나 아미쉬를 배경으로 한 '위트니스'를 연상케도 한다. 단 영화 보다는 좀 더 잔잔하고, 유장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읽기에 따라선 적잖이 지루하고, 인내가 필요한 듯도 하다.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왜 이런 작품의 작가에게 이런 상을 줬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의 답을 구하지 못할 것도 없다. 박경리하면 대표작 <토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작품은 인간의 장구한 역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 소설이며 비록 픽션이긴 하지만 하나의 기록물처럼 읽혀지는 느낌을 갖는다. 이 작품도 그렇지 않을까? 어딘가 모르게 '토지'와 닮아 보인다. 그래서 수여했던 것은 아닐까?

 

특이한 점은 이 작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도 거의 쓰지 않는,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서간체'로 썼다는 것인데 왜 작가들이 서간체로 쓰지 않는지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 박완서 작가가 서간체는 아니지만 전화로 이야기하는 형식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참 인상 깊었다는 생각을 했었다(그런데 워낙 오래 전에 읽어 제목이 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존의 3인칭이나, 1인칭 소설이 아닌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는 작가 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작가들은 잊혀진 문체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보줄 것인가에만 촛점이 맞혀있는 듯하다. 뭐 그런 것 아니어도 편지는 누구나 받고 싶지 않은가? 그것을 소설의 한 형식으로 차용해서 썼다는 건 인간의 마음을 잘 공략한 작가의 글쓰기 작전(?)은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 작품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를 좀 놀라게도 하는데, 이야기 자체는 지루하고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기존의 내가 알고 있는 소설형식을 배반한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 기존의 소설 형식이라면 영화적 기법 내지는 기승전결에 의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뭐런 것으로 대별되고 그것이 소설 기법의 전부인 양 하지만, 이 작품은 그냥 인생 자체를 얘기할 뿐이다. 그것도 주인공이 아들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그냥 주저리 주저리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소설은 언제부턴가 인생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가 이 작품에서야 비로소 인생을 말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고나 할까?

그도 그럴것이, 인생을 말하는 건 어느 특정인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평전의 몫인 양 했었다. 그래서 마치 소설은 그런 방식을 차용하면 안 될 것처럼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하는 의혹이 들었다는 것이다(이것도 나의 게으름의 소치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    

 

사실 이 작품이 좀 지루하게 씌여져서 그렇지, 분명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역사는 존중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인생이어도. 그리고 그것은 사회의 역사와도 맞물려 있기도 하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 시대 사회의 역사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인공은 노예해방 전후세대를 얘기하지만, 나는 내가 주로 살았던 386 세대에 살았으니 나름 그 시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 민주화에 적극적으로 가담을 했건 안했건 간에 말이다.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다면 지극히 보수적이며 건전하달까? 우리가 흔히 아는 섹스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면을 기술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적 장치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지루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한 술 더 떠 성경 말씀까지 인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은 3대가 목사인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요즘 문학에서 성서를 인용한다는 건 서간체 문학의 낯섬만큼이나 어색한 것은 아닐까?

 

예전에 나도 비록 습작이긴 하지만, 소설 가운데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했었다. 고전문학에서 성경을 인용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이 세속화되고, 물질 만능의 사회에 언제부턴지 종교가 약화된 사회에서 성경 말씀을 작품에 인용한다는 건 좀 어색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세대에도 성경 말씀을 자기 작품에 삽입하는 작가가 있었다니 나도 언제고 정말 소설을 쓴다면 필요한 순간이 되면 인정 사정 보지 않고 쓸 것이다. 

 

솔직히 난 이 작품으로 인해 미국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왠지 미국은 물질만능주의의 최첨단을 달릴 것만 같은데, 이런 순수하고도 고전적인 작품을 아직까지 쓰고 있는 작가가 있고, 주목하고 있는 독자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남겨줄 요량으로 이런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자기 자녀나 손주에게 들려줄 마음으로 살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 줄 요량으로 산다면 그 삶이 얼마나 성실하게 살게 되는 것일까? 나는 사춘기 때 한때, 내가 일기를 쓰쓸 때 훗날 나의 손자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던 적도 있다(물론 지금은 그나마 거의 쓰지 않고 있긴 하지만). 책에서는 그것이 주인공의 설교원고였을 것이다. 꼭 설교원고가 아니어도 그런 성실함을 증거해 줄만한 근거물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지루함을 견딜 수만 있다면 이 유장한 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꽤 나쁘지 않은 독서 경험이 될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3-11-2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티커스 님도 애티커스 님 삶을 조곤조곤 적어서
살붙이나 동무한테 곱게 남겨 보셔요~

stella.K 2013-11-26 13:23   좋아요 0 | URL
와우, 이렇게 빨리 읽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다니!ㅋ
저도 그래보고 싶어요. 용기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