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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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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이 신문지상을 통해 나왔다고 했을 때 꼭 한번을 사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언젠가는 내가 시간 사용을 어떻게 하고 있나 체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어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삶을 오늘도 똑같이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봐졌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매일이 새로웠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매일은 그리 새롭지 않았고, 단지 시간에 대해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살면 안되는데 하는 뭔가의 강박관념. 시간은 누가 책임져 주지 않고 오직 나만히 홀로 책임질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일고 있자니 학창시절 나의 공부 방법이 생각이 난다. 워낙에 되는대로 공부했던 나는, 한번은 마음을 먹고 시간을 잘 짜서 공부를 했다. 그랬더니 집중력도 좋아졌고, 크게는 아니어도 어느만큼의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진도에 시간을 맞출 것이냐, 시간에 진도를 맞출 것이냐를 흔들리다 이도저도 아닌 옛날의 나로 돌아가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 나의 삶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 이렇게 산 사람도 있었구나! 이마를 치며 말이다.

어린 아이의 시간은 더디흐른다고 한다. 나의 경험을 봐도 그렇다. 난 언제 어른이 되나 기다렸으니까. 그러다 가면 갈수록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노년으로 가면 물리적인 시간은 여전히 빠른데 삶의로써의 삶은 너무나 더디다고들 말한다.  지금은 내가 어렸던 시절 그렇게도 고대해 맞았던 어른이 되었다. 어른의 삶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나 호기심, 창조에 관련된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시간이 되고 의미가 되어야 한다.   

류비세프는 시간을 윤리로 보았다고 했다.

인간은 자기 일생에서 과연 어떤 일에 시간을 쓸 권리가 있으며 어떤 일에 그럴 권리가 없는가? 류비세프는 스스로 시간 사용이라는 윤리적 행동을 위한 윤리적 원칙을 만들었다.(202p) 그는 강박적으로 헛투로 사용하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이 책은 나에게 부담스러웠다. 그는 분명 시간을 정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자질구레한 부분에서까지 자신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것이 과연 평범한 나로써 감히 흉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나 그의 삶의 자세는 곰곰히 숙고해 볼 필요는 있다.

나는 여기에 그가 학자로서, 시간을 정복한 사람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몇 개의 글귀를 옮겨놓으므로 그의 삶의 단초들을 더듬어 볼까한다.

* 류비셰프의 생활 원칙

1. 의무적인 일은 맡지 않는다

2. 시간에 쫓기는 일은 맡지 않는다.

3. 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

4. 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

5.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 한다.   (165p)

* 그는 서두르는 법이 없었고 바쁘다는 한탄도 늘어놓지 않았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해냈다. 과연 언제 이 일을 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류비셰프 류의 사람들은 이렇게 독특하고 비밀스럽게 시간을 사용한다. 이들은 시간이라는 탐욕스러운 신과 두려움 없이 대면한다. (166p)

*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라면 절대적인 신념을 가질 수 없다(여기서 말하는 것은 논쟁이 존재하는 지적 분야에서의 신념이다).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논쟁을 벌이며 상대와 합의를 이루려고 애쓴다. 상대에 대한 우월감이나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서 논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논지가 무엇인지 분명해지고 그것이 객관적이고 엄정한 자료가 아닌 이런 저런 편견에 바탕을 두고 있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리하여 더 이상의 논쟁이 불필요할  때까지 논재쟁을 계속한다. 진지한 논쟁은 상대의 논지를 마치 자기 것인 양 확신에 차서 주장할 수 있을 때에야 종료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상대의 편견 혹은 선입견의 근원에 대한 논증이 덧붙어야 한다.  (178p)     

이렇게 그는 시간에 대하여 승리자답게 살았고, 학자답게 살았다. 우리 인간은 시간의 청지기라고 말한다. 청지기의 삶은 또 어때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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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길 3
이철환 지음 / 삼진기획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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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나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의 한국판 버전쯤이 아닌가 한다. 앞의 두 책은 저자가 미국 사람이니 미국의 정서가 베어있지만, 이 책은 역시 한국의 정서가 베어있다.

내가 만일 작가라면, 물론 작가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작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제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스테디셀러가 됐다. 이미 '알라딘'에서만도 리뷰가 450 개도 넘게 올라와 있다. 그래서 거기에 리뷰 하나를 더 한다는 것이 새삼스럽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리뷰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대중은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에 목말라했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일 매스컴에선 끔찍한 범죄 얘기가 보도되고 있을 때, 왜 좀 따뜻하고 인간적인 기사들은 없는 것인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파장은 끔찍한 범죄가 보도되는 것 보다 파장이 약한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원하게 되어있다.

이 책은 문학성이나 작품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따뜻하고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이것이 또한 작가의 몫이 아닐까? 그가 비록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만한 업적있는 작품을 못낸다 하더라도, 작가의 글은 세상을 정화시키고,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것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자에게 박수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는 사람 냄새나는 글을 전하기 위해 9 년 간 몸소 발로 뛰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요즘 KBS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 일부 소개되기도 했다고 하니, 정말 좋은 성과가 아닌가.

그런데 한가지 책을 읽으면서 드는 (삐딱한)생각은, 저자는 주로 서민들의 이야기를 파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정말 잘 사는 사람들에게선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나라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존재하기나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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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지수 1
옌쩐 지음, 박혜원 외 옮김 / 비봉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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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알게된 건, 우연한 기회에 모 일간지 북스팀의 기자가 쓴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 였다. 그 기자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오늘 날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현실이나 중국 사람들의 현실이 너무도 닮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후안무치, 만만디의 나라 중국의 모습은 과연 어떠하단 말인가?

이 책은 주인공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 양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고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가를 물흐르 듯한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정말 우리나라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직내에서의 비리, 알력등. 그래서 어찌보면 제목에서 보여주듯, 무슨 무협지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으면 큰 오산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중국인의 글(?)답게 호흡이 길다. 주인공 지대위가 어떻게 행동하고, 기지를 발휘해서 문제해결을 했다는 서술보단, 그가 무엇을 보고,생각하고, 깨닫는가에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해 읽는 이로하여금,과연 이렇게 3권으로까지 구성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약간은 지루하단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게 만든다.물론 중국 원본은 두껍게 한권이거나, 보통 두께의 두 권쯤이었는지도 모르지. 원래 번역 과정에서 두께가 들어나는 것이 보통이니까.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본 것은 중국인의 본래 모습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맹자와 공자의 나라. 우리나라만큼이나 역사가 오래고 깊은 나라에서 웬지 모르게 그 나라가 가지고 있을 법한 신비는 없고, 중국도 경제 동물의 우리에 갖혀 공룡화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 중국의 경제적 비상은 세계 어느 나라도 못 따라가리만치 위협적이다. 하지만 왠지모를 불안과 불온함이 느껴진다. 옛날에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불안한 미국을 보는 것처럼, 지금은 중국이 저리 발전이 된다고 뻐기지만 그 영광이 과연 30년이나 갈까? 물론 그렇다고 그 나라를 웃습게 볼 것만도 아니다. 한나라의 숨겨진 저력이라는 것도 무시 못하는 법이니까.

소설은, 주인공 지대위를 통해 인간이 정말로 붙잡아야할 진실은 무엇이며, 모든 진실을 은폐하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권력을 쟁취하려는 인간군상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또한 그것에 동조하고 쫓아가는 주인공의 내면 또한 놓치지 않는다.

'창랑에 물 맑으면 내 갓끈 씻으면 되고 창랑에 물 흐리면 내 발 씻으면 되지'라는 뜻의 이 책은 후안무치의 중국인의 의식을 정말 잘 대변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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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 미암일기 1567-1577
정창권 지음 / 사계절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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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하면 보통은 '정치사'를 생각하게 된다. 마치 정치사를 아는 것이 역사를 아는 것인 양 공부하고 교양을 쌓으려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종체적인 것이다. 그 시대의 정치뿐만이 아니라, 풍속, 일상, 건축, 복식 등 폭넓게 다양하게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시도가 새롭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옛날'이란 개념은 18세기에서 19세기를 겨냥한 때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아는 그 시절이란 여자들이 남자의 집에 시집을 가고, 칠거지약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여자가 18,19에도 시집을 못가면 큰일나고, 남존여비에, 남아선호 사상, 남편이 첩을 얻어도 본처가 아무 말도 못하는 정도가 전부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엔 어느 정도 매스컴의 책임도 있지만, 역사를 알려고 하지 않는 독자들도 책임이 있고, 역사를 좀 더 친숙하게 만들지 못한 학계의 대중화 노력도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서 16세기는 우리가 아는 옛날의 개념과는 정말 상상외로 달랐음을 발견했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장가를 갈 수도 있고, 여성의 나들이도 자유로왔고, 이혼도 엄연히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또한 '미암'의 세심한 성격과 성에 대한 솔직함도 이색적이었다. 또한 풀어 쓴 저자의 탄탄한 문장력도 돋보인다. 이렇게 역사가 대중에게로 가까이 가려고 하는 시도는 성과를 논하기 전에 일단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그냥 큰 기대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독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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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 할인행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 (Tom Hanks)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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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제목답게 쫓고 쫓기는 긴박성은 그리 많이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속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레오가 유능한 외과의사로 변신한 뒤, 자전거를 타다 심한 상처를 입고 후송되어 온 소년을 보는 장면이다. 그전에 레오가 의사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TV 영화에서 본다. 그 영화에선 의사가 연신'동의하나? 동의합니까?'를 연발했다는 점이다. 이에 착안한 레오는 그것을 써먹어 보기로 한다.

두명의 인턴 중, 한 인턴이 자기가 본 소견을 레오에게 보고한다. 그는 또 다른 인턴에게 '동의하나?'라고 물어 본다. 그 상황에서 그 인턴은 한번쯤 레오의 정체를 의심할 법도 하건만, 레오가 자리를 떠나고 오히려 자신이 동의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난 또 이 장면에서 얼마나 웃었던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사기꾼이 갖춰야할 세가지 이미지가 있다더니 과연 영화는 그것을 잘 살려낸 것 같다. 그 하나는 잘 생겨야 한다는 것이고, 머리가 비상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어진 직업에 있어서는 실제 그 사람보다 더 그 사람다워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에겐 여러가지 '나'가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영화 속 주인공은 한가지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역할을 너무나 잘 소화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주체 못할 에너지 때문에, 컨닝없이 한번에 변호사 자격 시험에 합격했어도 그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 나 같으면 변호사를 평생 안정된 직업으로 삼았을텐데 말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영화가 희대의 사기꾼의 삶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휴머니즘도 담고 있다는 것이다(허리우드 영화의 격식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톰 헹크스가 레오에게 끝까지 선처와 믿음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에 무릎꿇고 도망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돌아왔다. 그리고 주인공은 복역 후 FBI에서 위조수표 감식하는 일을 하면서 이아 셋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결국 세상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세상을 믿게 만드는 것도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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