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겨우내 만나지 못했던 말하자면 성경공부 리더님과 한 분의 멤버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엘 들어갔다. 식당엔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마침 방안에 자리가 있어 불편은 했지만 신발을 벗고 냉큼 가 앉았다.

 

우린 대충 음식을 주문했고, 잠시 후 음식이 나와 먹고 있는데 우리와 조금 떨어져 있는 상에 앉은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기 시작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거기엔 남자와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채 4살이나 5살이 됐을까 말까한 여자 아이가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아주머니가 실수로 이 남자에게 할아버지라고 했건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이 남자에겐 용서가 안 됐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할아버지로 보입니까? 아, 똑똑히 좀 보세요."

그제야 아주머니는 실수한 걸 알고 실실 웃어가며 미안하다고 했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우리를 포함해 방에 있는 모두를 둘러보며,

"아니 제가 그렇게 늙어보입니까?"

 

그러자 우리 옆 테이블에 어떤 여자 손님이 장단이라도 맞추듯 아니라고 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그 남자는 젊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그 여자 아이가 너무 어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젊은 할아버지쯤. 그 여자아이가 귀여워 아는 척 한다는 게 "할아버지와 왔구나. 할아버지와 맛있게 먹었쪄요?" 했었나 보지. 

 

그의 아내는 남편이 그럴수록 얌전히 밥을 먹으며 "알았어. 조용히 해." 한다. 솔직히 이럴 때 남자는 아내가 자신과 함께 동조해 주길 바랐는가 본데 그녀는 오히려 남편으로 인해 주위가 소란스러운 게 더 창피하고 싫었던 것이다. 그러자 남자는 더 열에 받혔고, 결국 입맛도 잃었는지 밥을 두 숟깔쯤 뜨고 말아 버렸다. 여자는 끝까지 침착하게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우리가 밥을 다 먹고 개산할 때쯤 그들도 계산을 했는데 그곳 주인은 남자가 자기 종업원 때문에 밥을 못 먹었다는 것을 알고 합의하에 밥 한 공기 계산은 제외했던 것 같다.

 

나와 함께 밥을 먹었던 지인이 계산할 때 보니 여자도 남자 만큼이나 젊은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들 부부는 늦게 결혼을 해 딸 하나를 낳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평소 그 아이에게 신경 쓰였던 것은 아닐까. 하긴 그게 아니어도 그런 소릴 들으면 유쾌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딸이 웃겼다. 아빠가 그렇게 화를 낼 때마다 추임새라도 넣듯 "재밌냐? 재밌냐?"하는데 아빠한테 하는 소린지 종업원 아주머니한테 하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가지고 써 먹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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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2-27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글에서 웃었어요.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저 같으면 늙어 보이는 게 창피해서라도 또 소심하지 않게 보이기위해서라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척했을 텐데 사람마다 반응하는 게 그렇게 다르네요.

늦둥이가 많은 세상이 되고 또 젊게 보이는 노인이 많은 세상이 되어
저도 아는 척하기 조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아이와 함께 있는
여자가 나이 든 엄마인지 젊게 보이는 할머니인지 정확히 모르겠거든요.
참 헷갈리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ㅋ

stella.K 2017-02-28 14:0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니까요. 저 같으면 점잖게 몇 마디 하고 말텐데
그러니까 진짜 늙은 것 표내는 것 같잖아요.
전 그 아저씨 와이프 마음이 이해되겠구만
자기 편 안 들어준다고 더 오버하고.
그 종업원 아줌마 사람 볼 줄 모르는 것 같긴해요.ㅋㅋ

yureka01 2017-02-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밋냐...////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떠오릅니다.ㄷㄷㄷ

stella.K 2017-02-28 14:07   좋아요 1 | URL
그러니깐요. 애들 앞에서 냉수도 못 마신다는 말
그냥 있는 말이 아니어요.
귀엽기도 하고.ㅎㅎ

마태우스 2017-02-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거 가지고 그리 화를 내고 그런답니까. 참 속이 좁네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으면 그렇게 남의 평가에 예민하게 구는 듯요. 스텔나케이님은 참 글 잘써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stella.K 2017-02-28 14:14   좋아요 0 | URL
오, 마태우스님! 지난 주 우연히 TV 보다가
마태님 곽정은 씨와 토크쇼에 나온 거 보고 반가웠습니다.
더 화사해지시고 멋 있어 지셨더군요.
그 특유의 유머 감각은 여전하시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태님께서 칭찬해 주시니 기분 좋습니다.ㅋㅋ

cyrus 2017-02-2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공공장소에서 언성을 높이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가 많아요. 그 사정을 살펴보면 그렇게 크게 화를 낼만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조금 이런 성향이 있어서.. ㅎㅎㅎ 제가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부끄러운 행동을 한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솔직히 걱정되긴 해요.

stella.K 2017-02-28 16: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남자들 그런 경향이 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와이프는 얼마나 쪽팔리겠니?
계속 조용히 하라는데도 말도 안 듣고.
근데 난 그 아저씨도 솔직히 이해는 간다.
나도 그런 일 당한 적 있었거든.
중학생 녀석이 나하네 할머니라고 그러는데 얼마나 열 받던지.
그런다고 그렇게 열 받아하는 건 좀 심하긴 해.ㅋ

cyrus 2017-02-28 16:37   좋아요 1 | URL
화를 먼저 낸 사람이 진 겁니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한 부정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화를 낼 수 있거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