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연휴 IP TV를 뒤지다 작년 언젠가 K 본부에서 화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 드라마를 방영한 걸 알고는 냉큼 틀어 보았다.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로 고흐나 피카소를 꼽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화가로 이중섭을 꼽는다고 한다. 아무튼 그걸 보는데 와, 좋다~! 거의 감탄하면서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그 프로 그램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다큐 드라마라고 해서 전혀 낮설지도 않았고 해설과 함께 보니 그도 빠져들만 했다. 

 

그가 북한 공산 치하에선 그림을 맘대로 그릴 수 없어 남하에 제주도와 부산, 통영 등지에서 살았던 건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가 말년에 왜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는가에 대해선 잘 몰랐다. 아니 모르지 않았다. 나는 몇년 전 최문희가 쓴 그의 전기 소설을 읽었었다. 하지만 자꾸 뭔가 모르게 눌리는 느낌이 들어서 나중에 다시 읽어 볼 생각을 하고 대충 읽고 덮어버려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났던 것이다.

 

그는 유학 중 만난 일본인 아내와 귀국해 힘들긴 했지만 나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던 중 그의 일본인 장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보를 받고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그는 한국에 홀로남아 외로운 화가 생활을 이어간다. 그도 그림을 팔아 돈을 마련해 일본으로 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려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시인 구상의 도움으로 여비를 마련해 일본에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6일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 올 수 밖에 없었고, 다시 돌아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때는 6.25  직후라 경제 사정이 좋지 못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음의 병을 얻어 결국 정신착란과 영양실조로 병원에서 지켜보는 가족하나 없이 병사하고 만다.

 

그는 일본으로 아내를 보내놓고 평균 일주일에 두번 꼴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귀국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목적으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실제로 몇몇 그림은 팔기도 했지만 워낙에 경제 사정이 안 좋다보니 수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병원에 입원중에도 아내에게 편지가 와도 뜯어보지도 않았다. 물론 중섭도 처음엔 아내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생의 위로와 낙을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오히려 아내의 편지를 보는 것이 괴로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인간이 갖는 그리움의 실체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그리움이라는 건 사랑 때문에 갖는 감정이고 또한 삶을 지탱하는 동력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중섭 같은 경우 열심히 그림을 그려 하루 빨리 가족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그는 세상을 향하여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마음의 병으로 바뀌고 말았다.    

         

왜 어떤 사람은 그리움을 삶의 동력이자 목적으로 삼기도 하는데 왜 어떤 사람에겐 그토록 잔인한 병이 되기도 하는 것일까? 70년 대 열사의 나라 중동의 노동자를 자처하고, 파독의 광부를 자처할 수 있었던 것도 가족 때문아닌가. 혼자의 몸이라면 거길 선뜻 지원할 수 있었을까? (물론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 있기 싫다면 말이다.) 어쨌든 꿈은 이루어진다고도 했고, 누구는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나를 도와줄 거라고도 했다. 가족을 만나야겠다는 이 확실한 목표만큼 간절한 소망이 또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이것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움이 자신의 영혼을 갉아 먹도록 한 이중섭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그 그리움을 떠받치는 뭔가가 더 있었어야 하는데 없었던 것 같다. 그건 바로 생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사실 그 프로를 보면서 한 가지 의혹이 남기는 한다. 그렇게 중섭이 마음의 병을 얻을 정도였다면 일본의 아내 또한 뭔가의 노력을 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이를테면 남편을 다시 일본에 오게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방도를 구하거나.  하지만 인터뷰는 금방 만나게 될 줄만 알았는데 다시는 못 만났다고만 했다. 물론 그녀를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역시 아쉬움은 남는다. 그로인해 병원에서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이 쓸쓸히 죽어갔다는 것도 그렇고.   

 

왠지 모르게 고흐가 생각나기도 한다. 병은 같지 않았지만 그도 말년에 병을 얻어 쓸쓸한 죽음을 맞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런가? 사실 이중섭이 화풍이 범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림을 보면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중섭을 그렸다고 하는데 어찌보면 어린 아이의 낙서 같기도 하고 추상화 같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그리움은 세상 전체를 삼켜버릴만큼 큰데 비해 생의 의지는 어린 아이처럼 약하디 약했던 건 아닌지. 아무튼 그가 정신착란을 보이기도 했다니 만일 어느 분석가가 저 그림을 비롯해 그의 작품을 보고 어떤 분석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안타까운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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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05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중섭의 소 그림에서 피카소의 미노타우로스 그림보다 자연적인 야성미가 느꼈어요. 피카소의 미노타우로스는 야성미가 있는데, 여성을 정복하는 느낌이 강해요. 그런데 이중섭의 소는 이남덕 여사에 향한 일편단심 사랑이 느껴져서 좋아요.

stella.K 2017-02-05 20:27   좋아요 0 | URL
그래. 이중섭이 아내를 몹시 사랑했었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는 사랑만 했지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지 못했다는 거지.
그림엔 뛰어났지만 굉장히 어린 사랑을 하지 않았나 싶어.
참 안타까워.ㅠ

북프리쿠키 2017-02-05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이중섭 100주년 기념 미술관에 가서 봤습니다.
소만 그린 줄 알았는데 은박지(?)에 아이들 그림을 많이 새겼더군요.
현재도 일본에 살아계신(아마..맞지 싶습니다^^)
아내와의 편지들이 많은데..읽어보니 저도 아내에게 평소에 사랑표현을 많이 해야겠구나..싶었어요. ㅎㅎㅎ

stella.K 2017-02-06 13:06   좋아요 1 | URL
작년에 제작됐고 미망인의 나이가 95세로 나오더라구요.
아직 돌아가셨다는 말이 없으니 살아계실 겁니다.
이중섭 화가가 죽은 나이가 40세니 같이 산 세월 보다
안 산 세월이 더 길겠죠.
그래도 먼저 간 남편을 가슴에 묻고 사는 건 어땠을까요?
사모는 그렇게 그리워도 사는데 왜 그리 일찍 이중섭은 허망하게 간 건지...
맞아요. 사람과 사는 세월이 긴 것 같아도 그게 결코 긴게 아니더라구요.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며 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쿠키님.^^

2017-02-06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2-06 13:50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밖에는 생각이 안 되더군요.
그래도 이중섭이 가족이 없으면 모를까 혼자 병실에서
외로이 죽어갔다는 게 가슴이 시리더군요.
그렇게 굳이 헤어졌어야 했나 왜 그 부분은 명확치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최문희의 소설을 조만간 다시 읽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