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디너중 글 잘 쓰시는 분도 많은데, 부끄럽게도 제가 책을 내버리고 말았습니다.ㅠ
제안을 받기는 2년 전쯤인 것 같은데, 그동안은 내가 무슨 책을 내나 대답만 해 놓고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물론 제안을 받을 땐 신춘문예 당선된 것만큼이나 기뻤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알아봐 준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글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하고, 13,4년 동안 서재에 올렸던 글을 건드린다는 게 도무지 엄두가 안 나더군요. 그런데 무슨 바람인지 2년만에 그 생각이 바뀌더군요. 내가 주어진 기회조차 챙기지 못한다면 앞으로 무슨 작가가 되길 바랄까.
주어진 기회라고 해서 마냥 편하게 놀고 먹었던 것도 아닙니다. 글이 될만한 실한 놈을 뽑아 다시 다듬는 건 새로 쓰는 것 못지 않게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또 그렇다고 쳐도, 오탈자 남기지 않기 위해 몇번씩 원고를 재검토하는 교정과 교열 작업은 정말 지난한 작업 그 자체였습니다. 온정주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번에 출판인들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한 작업 끝에 책을 내놓을지라도 워낙 어려운 출판 시장에서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마치 망망대해에 조그만 촛불 하나 종이배에 실어 띄워 보낸 심정이랄까?
우스운 건 장난이지만, 제가 제 원고 교정본을 출판사에 넘기고, 편집자와 교정자 그리고 아는 지인. 이렇게 넷이 같이 모여서 조촐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편집자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데, 그전에 애써 보낸 제 초고에 빨간줄을 쳐서 다시 보냈던 터라 교정자와 지인은 제가 지금쯤 편집자에게 화가 많이 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각 테이블에 저와 편집자를 어떻게 앉히는 것이 좋은 지 고민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많이 웃었습니다.
서로 싫을테니 옆에 앉히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마주 앉게 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제가 일부러 편집자 옆에 앉기를 자청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편집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서머싯 모옴이었던가요? 에펠탑이 보기 싫어 아예 에펠탑 안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는 일화와 비슷한 거죠. 마주 보느니 옆에 앉겠다는.
그런데 뭐 생각만큼 제가 편집자와 아웅거리며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고, 애초에 작업을 시작할 때 편집자가 하자는대로 다 맞춰주자는 게 저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별무리는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 하루키도 그렇게 하는데 하루키 새끼발가락도 못 되는 제가 편집자에게 반기를 들어 뭐 하겠습니까?
그런데 역시 작가와 편집자도 인간은 인간인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부분에서의 불협화음은 불가피했으니까요. 그때는 저도 그냥 지켜보지마는 않았습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건 그 분야에 발전을 저해하는 것일테니. 싸움을 위한 싸움이 아니고, 발전적인 거라면 피해선 안 되는 거죠. 더구나 책은 한 번 찍으면 재판에 들어가기 전엔 다시 고치지도 못하고 원판불변을 유지해야 하니.
제가 편집자에게 가급적 맞추려 했던 건 책에도 썼지만, 작가는 편집자와 친해져야지 평론가와 친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의 책은 평론가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책이긴 합니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편집자의 능력은 더 커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죠.
그런데 저도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솔직히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은 서재질에 빠져 가열차게 글을 올렸을 시절의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그때만큼 열심히 쓸 수가 없습니다. 대신 하나를 올려도 꾹꾹 눌러 쓴 글만 올리려고 하는데 그도 쉽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게을러졌는지.
이제 책이 나왔으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 쓰기에 정진해야겠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제 글의 팔할은 서재질이 키웠으니 작가로 살아남으려면 더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바라기는 이 출판 시장이란 망망대해에 조그만 촛불 하나 불 밝히고 항해를 시작한 종이배 같은 저의 책이 어느 날 여러분의 눈에 띄이거든 부디 외면치 말아주시고 거들떠라도 봐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부디 책과 함께 하는 여러분의 삶이 더욱 행복하시길...
저자 : 김지안
9월 생.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독서를 시작함. 그 시절 대부분 그렇듯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소녀로 자람. 그러다 십대 말이 되면서 소설가의 꿈을 배신하고 심리학을 동경함. 겉멋에 취해 신학교 입학했다 간신히 졸업. 그 후 다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함. 나이 서른을 앞두고 우연히 교회에서 대본을 쓰기 시작함. 그렇게 하면 소설도 잘 쓰게 될 줄 알고 열심히 함.
세월이 한참 흘러 <뮤지컬 손양원> 대본을 쓰고, 2013년에 대학로에서 공연. 그때 애써 키운 나무가 열매를 맺는다는 걸 통감함. 2003년부터 stella.K, milk09 등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
소설을 못 쓰면 비소설을 쓴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낙서인지, 에세이인지, 비소설인지도 모를 글을
만연체로 쓰고 있다. 그중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내 멋대로 읽고, 내 멋대로 쓰는 리뷰라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