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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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언젠가 카뮈의 <이방인>을 새롭게 번역하고 알라디너들과 번역논쟁이 붙었던 걸 기억한다. 그때 워낙 많은 글들이 난무했던지라 일일이 다 읽어 볼 수도 없는 일이고, 그때 그저 나의 바람은 그가 얼른 백기를 들어주길 바랐었다. 왜 그랬을까? 처음엔 그의 오만함이 싫었다. <이방인>의 번역본이 어디 한 둘인가? 그의 번역도 그 많은 번역 중의 하나일 뿐인데 이제까지의 번역본들은 다 가짜라며 오로지 자신의 것만 진짜인 척 하는 게 같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껏 힘쓰고 애쓴 김화영의 번역본을 위시해서 이것을 번역하느라 고생했을 다른 번역자들은 뭐란 말인가? 그리고 누구의 번역이던 지간에 그것을 사 봤을 독자들은 또 뭐란 말인가. 우매하다는 소리로도 들릴 수 있다. 더구나 난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란 책을 읽었는데 뭐 나름 중대 사안을 다뤘던 건 사실이나 그다지 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사람 자신의 책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좀 바뀌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논쟁은 생각보다 길었고 치열했던 것으로 안다. 그렇게 치열한 정도면 꺾이기도 할 텐데 그는 꺾이지 않았고 그동안의 논쟁을 집대성이라도 한 듯 이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딱히 재미있는 건 아니다. 저자가 기존의 번역을 거부하고 새로운 번역작업을 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일기체로 담담하게 썼다. 특히 예문을 위해 카뮈의 <이방인> 원서를 그대로 옮기기도 했는데 프랑스어 전공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까막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특히 그의 저격 대상은 김화영 교수(소설에서는 김수영)의 번역본이다. 일일이 여기에 옮길 수는 없지만 그의 번역본이 뭐가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를 줄줄이 나열하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으니 이 정도라면 마음이 흔들릴 법도 하다. 그러면서 이런 번역이 지난 25년 동안 문제제기 없이 계속 이어올 수 있었는지 개탄했다.

 

사실 김화영 교수가 우리나라 1세대 카뮈 전문가이고 보면 어느 듣보잡이 이러고 나오는 걸 편하게 봐 넘길 수는 없을 것 같다. 하극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고,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통해 우리나라 학계의 카르텔을 비판하더니 또 이 문젠가 싶기도 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우리나라에 <이방인> 번역본이 수십 종이 있는데 그것도 하나 같이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뭐 꼭 그게 아니어도 아무래도 권위자 앞에 이인자이기를 자처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만그만한 번역본을 내놓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우리나라가 늘 주관적인 사고를 박제시키고 교육받아 온 탓에 기인한 줄도 모른다

 

 솔직히 저는 카뮈의 <이방인>을 번역하는 내내 분노와 흥분으로 잠 못 이룬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러한 번역이 25년 이상 우리 번역문학, 출판문화를 대표해서 세대를 달리하여 권장도서로 읽힐 수 있었던 것인지 감히 참담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교한 결과, 김수영 교수님의 번역은 단지 그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뒤를 이은 수많은 후학들의 번역서들이 거의 비슷한 번역들을 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번역은 우선 작품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일 터인데, 소설에서 중요시되는 인물에 대한 이해를 앞선 선학의 시각으로부터 이해하고 시작하는 것이니, 그 번역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지요.(330p) 

 

그렇다고 저자의 문체가 시종 자기 오만으로 채워졌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상당히 진지하다. 읽다보면 저자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일지가 짐작이 되는데(이 소설은 메타 픽션으로 처음엔 이윤으로 시작했다 저자 자신의 이름으로 나오고 있다) 대체로 과묵하고, 신중하며, 치밀하고, 판단력과 대처능력이 좋은 그런 이미지로 읽힌다. 게다가 이미 읽은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와 함께 보면 뭔가 혁명가적 기질이 다분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소설가 김진명은 추천사에서 저자가 옳은 일에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투사 이미지로 말하고 있다. 하긴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기존에 없던 이야기를 하는데 처음부터 좋게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 이건 잘못됐다고 문제제기를 하면 사람은 듣게 된다.

 

아무튼 그래서일까? 번역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는 없지만 뭔가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난 아직 저자가 번역했다는 <이방인>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리뷰나 평점을 보면 상당히 긍정적이다. 물론 그의 번역본을 탐탁지 않게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 방송국 경제부 기자가 TV에 나오면 항상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기업과 기업이 경쟁이 붙으면 그 사이에 덕을 보는 사람은 소비자다. 나는 이 말을 여기에도 적용 해 보고 싶다. 우리가 어떤 작품에 대해 번역에 경쟁이 붙으면 그 사이에서 덕을 볼 사람은 독자다. 그렇지 않아도 저자는 말한다. 왜 우리는 고전은 재미없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거냐고거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느냐고. 사실 <이방인>은 그렇게 어렵고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랑스어 전공자가 아닌 자신도 번역할 수 있으리만치 평이한 언어로 씌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번역만 거치면 어려운 것이 되어 읽기를 꺼려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이것에 관해 번역자들도 나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의 지인 중에 번역가가 있어, 지난 주말 그동안의 안부도 물을 겸 이 책과 관련해서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아직 이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대충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아직 책을 읽지 못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카뮈가 20세기 중반의 사람이고 보면 그 시대 프랑스어도 그리 세련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김화영 교수 역시도 그나마 카뮈가 살았을 연대에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이고 보면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다 보니 오늘 날 보기엔 좀 다소 세련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말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결국 또 원점인 듯싶기도 하다. 정말 번역에 대해서만큼은 황희정승이 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저자의 말처럼 김화영 교수는 자신의 번역에 대해 말이 없다저자 역시 뭐라고 해명해 주길 바라고 있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를 나도 생각해 본다. 김화영 교수의 침묵은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 험하다>의 김윤식 교수의 침묵과는 뭔가 달라 보인다. 그것은 번역을 한다는 나의 지인의 말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번역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했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 하지 않는가? 얼마나 많은 윤문이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 원작 그대로의 번역을 기대한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으며, 답이 없는 일이 번역 일 같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번역은 혼자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오해 하곤 하는데 이 분야처럼 부침이 많은 것도 없다고 한다. 어떤 편집자를 만날지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어쨌거나  책이 나와 독자들로부터 말이나 안 들으면 좋겠지만, 번역이 개판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고 그러면 욕을 먹는 건 번역자일 뿐 이라는 것이다. 번역자의 고충이 얼마만한 것인지 짐작이 갈 것도 같다. 물론 김화영 교수가 번역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에 관해 구구하게 설명해 자신의 위신을 깎는 일을 할 리가 없다.

 

사실 독자들에겐 한 작품에 관해 그렇게 많은 번역본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번역자나 특별히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특이체질이라면 여러 번역본을 비교하며 쾌감을 얻을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구의 번역본이 좋다고 하면 그것 하나만을 선택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독자들은 그 번역본에서 줄거리가 뭔지 원작자가 작품에서 의미하는 바가 뭔지를 알려고 할 뿐 번역본끼리의 차이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저자가 지금까지의 <이방인>의 번역이 잘못됐다면 그것 하나만 잘못됐을 리 없다. 얼마나 많은 역자의 번역이 잘못됐을지 알 수없다. 몇 년 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냈다 회수한 출판사가 있어 화제였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모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박수칠 일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나 같이 언어에 둔감한 독자는 말 안하면 그러면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내가 무슨 러시아어 전공자도 아니고.

 

그런 것처럼 나는 저자를 비판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나는 저자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태도를 환영한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옳고 남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지 우리나라 번역 잘 되고 있는가를 문제 삼는 건 필요해 보인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나라 번역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이 책은 적어도 독자 편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별뜻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말장난이나 하는 요즘 작가의 가벼운 언어유희 보다 훨씬 훌륭하고 값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작이다. 번역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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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8-2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 진짜 좋네요~

stella.K 2016-08-23 13:5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기억님.^^

2016-08-23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8-23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어 전공자로서 말씀드리면 이 분은 <이방인> 오역을 굉장히 많이 고치셨습니다.
반면에 대화체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번역을 많이 하셨고
카뮈 <이방인>을 과연 이해했는가에 대해선 의문입니다.
(뫼로소의 네 발의 짧은 노크를 정당방위라고 하셨죠.....공감할 수 없어요 )

스텔라님 말처럼 기존 번역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과보다 공이 많다고 봐요. ^^


stella.K 2016-08-23 14:07   좋아요 1 | URL
아, 하나하나 드러나는 시이소님의 정체!ㅋㅋ
프랑스어 전공하셨군요. 부럽슴다.
저는 뭐 한국어 하나 밖엔....ㅠ

참고로, 리뷰엔 쓰지 않았지만 번역한다는 지인이 최근
문학동네판으로 읽으셨나 봐요. 거긴 <이인>으로 나왔을 걸요?
거기 역자는 이방인 원본을 100번을 읽고 번역을 했다고 하는데
번역된 것 중 가장 쉬운 언어라나 뭐라나 그런데 이건 정말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완벽한 번역은 없는 것 같고, 자신에게 맞는 번역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그걸 테스트 할 수는 없을 테니
가장 많이 팔린 번역본을 찾겠죠. 그러다 보면 다른 번역도 비슷해질 테고.

전 저자의 번역 자체보단 이런 문제의식과 번역 자체에 들인 공 뭐
그런 것들을 높이 사고 싶더라구요.^^

시이소오 2016-08-23 14:14   좋아요 0 | URL
전공을 했지 공부한건 아니구요. 문학동네판 이인도 읽어보고싶네요.

맞는 말씀입니다
번역도 개인취향을 타는것같아요. 한 책을 백명이 번역해도 다 다를거같ㄱㅓ든요. ^^


stella.K 2016-08-23 14: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대학 다니는 거 비슷한 거 같아요.
전공 따로 공부하는 것 따로.
저도 그래요.^^

기억의집 2016-08-23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양반이 뭘 그리 잘 못 했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는지 이해가 안 가더라구요. 우리나라 상명하복의 유교문화가 너무 거쎄서 저렇게 문화적 권력을 가지면 주변에서 더 난리더라구요. 아닌 말로 김화영이가 절대 지식이나 절대 언어감각을 가진 사람이 아닐 건데 까면 어때요? 저 양반의 언어가 김화영만 못한다하더라도 김화영교수가 절대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저런 양반 있어야 우리 번역문화도 발전하죠. 이 세상에 절대 지식 절대 언어 없어요. 오류도 많고요. 오류 있으면 좀 어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년 이상 그 잘 못된 학문도 잘도 써 먹었다가 아리스토델레스의 지식에 의문이 들어 갈리레이같은 지식인들이 그 오류를 수정한 거잖아요. 아휴. 저 양반 번역 오류 있을 때 완전 우리 나라 상명하복의 절처한 라인을 보았네요.

stella.K 2016-08-23 17:52   좋아요 1 | URL
원래 없던 소리하면 반발이 많잖아요.
그래서 천재나 혁명가들이 외로운 거고.
근데 없던 소리도 못해도 세 번 정도 일관성 있게 떠들어 주면
저 같은 팔랑귀는 듣는다는 거죠.ㅋ
이 사람 참 많이 외로웠을 것 같습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랬다고는 하지만 누군가 족적을 남겨버리면
다 쫓아가게 마련이죠. 그래야 뭐라도 건질 테니...
우리나라는 문제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지성계가 깨어있어야 하는데 다들 제 잘난 맛에 살고 있으니...ㅉ

yamoo 2016-08-23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는 카뮈의 대부분 책을 김화영 번역본으로 모았는데욤....이정서 라는 분이 그렇게도 김화영을 깠다면, 한번 거들떠 보고 싶네요. 그리 깐데에는 분명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허접함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요. 서점가서 몇 페이지만이라도 읽어봐야 겠습니다!

교수가 번역한 것이 좋다는 걸 보증하지 못하는 걸 많이 봐서뤼...어쨌건 요즘 계속 스텔라 님 때문에 책과 영활 찾게 되네요..^^

stella.K 2016-08-24 13:27   좋아요 0 | URL
이런 영광스런 일이...!ㅋㅋㅋㅋ
뭐 그 사람이라고 완벽한 번역을 했겠습니까?
시이소오님 댓글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도 번역에 문제는
아주 없어 보이진 않습니다.
본인도 자신의 번역 문장을 쓸 때마다 졸역이라고 겸손해 했으니까요.
근데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깠다는 거죠.
문제를 문제로 봤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야무님.^^

2016-08-24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4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4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4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4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소설이군요. 원래 이정서가 소설가였습니다. 번역을 해서 의아하다 생각했었는데....
이 출판사에서 나온 << 타는혀 >> 라는 평론집 한번 읽어보십시오. 문단이 돌아가는 꼴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stella.K 2016-08-25 13:45   좋아요 0 | URL
꽤 똑똑한 사람이더군요. 지금은 출판사 대표로 일을 하는가 본데...
저도 <타는 혀> 읽어 보고도 싶은데 읽으면 뒷목 잡을 것 같아 자신이 없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