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오빠의 3주기다. 특별히 기억할 것도, 챙길 것도 없다. 그냥 이렇게 기억하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짧은 생애를 살다 갈 줄은.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것도 모르고 누군가 자기 보다 먼저 간 사람에게 연민을 보내곤 했겠지. 지금의 나처럼. 사실 엄마와 난 오빠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때 오빠는 강릉의 호스피스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임종은 언니네 가족들과 평소 땐 존재감이 없다가 막판에 빛을 발휘하는 내 동생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는 서울에서 내려 온 동생에게 나와 엄마를 부탁한다고 하곤 떠났다고 한다. 난 실제로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그렇게 말하고 떠났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질 지경이다. 자기가 살아생전에 언제부터 나와 엄마를 끔찍이 여겼다고 그런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떠났을까.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한동안 잊혀지지 않아 난 한동안 오빠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인간의 기억은 어쩌면 그리도 집요하고 끈질긴 것인지. 형제를 잊는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2년, 길면 3년이라더니 그것 또한 조금도 비껴가지 않는 것 같다. 그동안 엄마 문제로 오빠는 어느새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삶과 죽음의 문제는 나의 의식 어디쯤을 맴돌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오빠 보다 긴 생애를 살게 된다. 나는 또 얼마를 살다가 오빠가 갔던 길을 가게 될까? 지금으선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저 그는 나 보다 짧은 생애를 살다 갔다는 것만 인식시켜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