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대장암을 앓게 된 후로 집안일의 거의 대부분은 내 차지가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차츰 회복 중이시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암은 왜 밤이 되면 그렇게 고통스럽게 사람의 몸을 조여 오는 걸까? 그런 밤이 엄마에게 한 달 넘게 지속이 되었고 그 때문에 아침엔 종종 녹초가 되곤 하셨다. 그런 엄마에게 집안 일 하나라도 대신 맡아주길 바란다는 건 근래 난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는 성격상 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뎌하시는 스타일이라 당신이 할 만한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시는 편이고, 나 역시도 모른 척 가만히 지켜보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마냥 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지는 않는다. 건강할 때 집안 일 중 빨래는 엄마가 담당할 때가 많았다. 그런 것을 어느새 난 그 일까지 점령해버리고 만 것이다. 하긴, 엄마가 건강하셨더라도 이 일은 진작 내 일이 됐어야 했다. 늙은 어미 일하고 있는 모습을 간단히 보아 넘길 자식이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건강할 때도 빨래 중 3분의 1은 엄마의 몫이고, 3분의 1은 나의 몫이며, 그 나머지는 세탁기가 할 일이었다

 

엄마는 늘 빨래를 온전히 세탁기에 맡기지 않으셨다. 늘 애벌빨래는 당신이 직접 손으로 하셨지만 기계엔 영 적응을 못하셨는지라 그 어머니의 그 딸이라고, 역시 기계치인 나는 그나마 헹굼에서 탈수까지의 기계 작동 정도는 가능해 이 모든 기능이 완료되면 너는 것까지가 내 담당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언제 빨래를 하건 엄마는 상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제는 이른 아침 내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도둑빨래라도 할 모양이었던지 당신이 먼저 서두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근래에 없던 일이었다. 엄마는 속옷만큼은 세제 푼 온수에 담가놔야 때가 잘 빠진다고 완고하게 믿는지라 이것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 동생이 샤워를 하고 더운물이 남아 있을 테니 그것을 이용해 빨래를 하려는 것이란다. 아유, 깜짝도 하셔라. 더운물은 조금 있다 나도 필요한데 그때 보일러 틀어 해도 되는 것을 그새를 못 참고 일을 벌이다니. 물 어라도 봤더라면 알려 드렸을 텐데.

 

사실 그때 나는 날씨가 더워서인지 요즘 연일 잠을 설치는 바람에 밀린 독서를 하고 다시 아침식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여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일에 차질을 빚게 생긴 것이다. 그래도 당신으로선 건강만 했더라면 본래 해 왔던 일이기도 하고, 그동안은 딸이 해 왔으니 이번만큼은 쉬게 해 주고도 싶으셨으리라. 그런데 기계를 쉬 작동하지 못하니 오히려 딸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도 그렇지. 짜증난다고 차마 대놓고 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말이 나갔을 리는 없었다. 그러자 엄마는 세탁기 어떻게 설정하는지 가르쳐 주면 그대로 할 테니 너는 들어가 잠이나 자란다. 앓느니 죽지 그 설명을 또 언제 하겠는가.

 

어쨌든 기계작동은 내 담당이니 잠시 후 나는 헹굼과 탈수를 설정해 놓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 그런데 또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잘 돌아가던 세탁기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엄마는 내가 설정해 논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직접 해 보겠다고 세탁기 앞에 어리둥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엄마가 기계작동을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 정확히 입력이 안 돼서 그렇지. 대충은 아신다. 그나마 빨래를 오랫동안 안하셨고, 긴급하게 세탁기를 작동할 일도 없었으니 아예 그쪽으론 퇴화가 되어버리셨던 것이다. 그런데 난 또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했으니 역시 이번에도 짜증을 안 냈을 리 만무하다. “오늘은 왜 그러는데?”

 

난 그저 엄마가 이런 시간에 빨래를 하겠다는 게 낯설었다. 엄마가 굳이 신경을 안 써도 다 알아서 할 것을. 모든 일의 질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아무리 전에 했었다고 이렇게 다시 비집고 하려고 해도 맡아서 일을 해 왔던 사람의 무의식이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근래에 보기 드물게 빨래를 깨끗이 빨아 너니 그도 한갓지고 좋았다. 평소 같으면 이제 막 시작했을 시간에 빨래를 마쳤으니 시간을 공으로 번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아까 엄마 앞에서 예쁘게 말하지 못한 죄도 있고 해서, “아유, 얼마만이야, 이렇게 일찍 빨래를 마쳐 보기는. 일찍 하니까 좋으네. 하하.”하며 그렇지 않아도 없는 아양을 떨어 본다.

 

그런데 나는 머리가 나쁜 아이였을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 그것도 그나마 새벽에 통증이 없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지, 통증이 있었어 봐라. 이 시간에 어림도 없어.”하는 것이다. 그랬구나. 내가 귀찮게 여겼던 시간이 엄마에겐 그리도 되찾고 싶었던 시간인지도 몰랐다. 건강했을 때 여름 아침이면 일찍 빨래를 마쳐놓고 엄마는 종종 나와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언제부터 엄마가 빨래를 하며 살았다고 저렇게 수선을 피우는 걸까 짜증부터 냈으니. 엄마에겐 축하받아 마땅할 일을 나는 한갓 귀찮다는 생각 따위로 누르려 했던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나만 아는 아이로 자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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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19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르셨을 몸으로 밤마다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 상상하니 뭐라고 해야할지. 저의 아버지도 밤에 주로 고통을 느끼셨는지 언제나 웅크리고 계셨었어요. 암이 무서운 건 고통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어머님께 그냥 푹 쉬시라 하세요. 딸 좀 부려 먹으시지. 암 이전의 일상이,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울 것 같기는 합니다. 스텔라님도 힘드시겠지만, 우리 평범한 일상에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stella.K 2016-07-19 18:3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요즘엔 그래도 고비를 넘기셨는지 요즘만 같아도
살 것 같다고 하시네요. 더 이상의 통증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어떨지 모르겠어요.
정말 아플 때 제일 그리운 건 일상인 것 같아요.
건강할 땐 하나도 좋지도 않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것이
아프면 이것도 못하나 얼마나 서럽던지.

기억님 아버님도 암이셨군요.
저의 엄니 보니까 이게 이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더군요.
건강이 최고여요.^^

yureka01 2016-07-19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시고 싶은대로 보조 맞춰 드리세요...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려하는데 말리면 스트레스거든요..

내 마음같아선 그저 빨래는 잊고 당신 자신의 몸과 마음이나 추스리련만,

엄니 마음이 또 그렇지가 못하거든요.

건강 찾으셨음 좋겠습니다.....

stella.K 2016-07-20 14:01   좋아요 2 | URL
그게 그렇더라구요. 제깐엔 엄니 신경 쓰지 않게
지금까지 군소리 않하고, 귀찮다는 내색도 안하고
하느라고 하는 건데 꼭 요런데서 삑사리가 나는 거죠.
요즘만 같아도 엄마가 편안해 하시니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
이게 좀 앞으로 길게 갔으면 좋겠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슴다.^^

페크(pek0501) 2016-07-21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나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함은 우리에게 늘 있는 일 같아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회할 일이 생기지요.
그래서 인간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면 좀 기분이 나아진답니다.
옥신각신하는 소리도 어쩌면 행복한 잡음일지 모릅니다.

stella.K 2016-07-22 14: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행복한 잡음!
오늘도 빨래를 또 하셨습니다.
전 이상하게 엄마가 빨래하는 걸 그냥 못 넘기는 것 같습니다.
내일쯤 해도 되는 걸 오늘 기어이 하셨으니.
당신이 먼저 나서서 하시려 하는 걸 보면
그만도 건강이 많이 회복된 건데
저는 이러고 있습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