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동반자들 -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새 삶을 선사하는 동반견들 이야기
제인 비더 지음, 박웅희 옮김, 니나 본다렌코 그림 / 바움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우연히 TV에서 개가 장애자의 생활을 돕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맹인 안내견이나 청각장애를 돕는 개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개가 이토록 장애자들을 세심하게 돕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수 개월 후 이 동반견들에 대한 수기 12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얼마 전 내 손에 쥐어졌다. 그 개들은 장애인을 돕도록 특수한 훈련을 받았고 그들은 하나 같이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주인이 미쳐 다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척척해내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녀석들에겐 사람 보다 더한 예리한 촉수가 있는가 보다.

그 촉수가 뭐일까를 생각해 본다. 녀석들에겐 주인에게 사랑 받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뭔가의 신경 하나가 더 발달되 있는 듯 하다. 그렇게도 사랑받고 싶은 것일까? 그래서 '개'하면 떠오르는 것이 '충성심'이 아니던가?

맹인 안내견이나 동반견들을 보면 그들의 수고로움은 인간이 하는 간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보이기까지 한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도 병수발을 오래하면 지친다. 하지만 그렇게 훈련 받은 개들은 오직 충성심 하나로 지치는 법이 없다. 또한 그 개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주는 생의 자신감이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한 주먹꺼리도 안 되는 녀석이 그렇게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니!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 인간만 만들지 않으시고 개도 만드셨다는 것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사람에게 인생이라는 것이 있듯이 개에게도 견생이라는 것이 있을진대, 너무 인간 편에서 개를 개조시키려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묘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동반견이 (아직은)필요없는 제 3자적 시각이라는 것을 안다. 그 제 3자가 단 하루라도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라면 그 입장에서도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개를 더 많이 사랑해 줘야 한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간에 말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특권을 허락해 주셨다. 그것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다스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을 한다. 그래서 언제든 잡아 먹어도 좋고, 유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위이다.

어찌보면 '공생'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다스리는 특권'의 의미와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관점에서라고 한다면 개를 훈련시켜 인간을 돕도록 하는 것은 맞는 것이 될 것이다. 개는 인간에게 봉사하므로 사랑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공감이 가는 말은, 사람들이 개를 선택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개가 주인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자신이 섬길 사람이 저 사람이다 싶으면 그 개는 끝까지 따르고 도와준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개의 주인이란 오만한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집만 해도 그렇다. 우리집은 개를 키운 역사가 꽤 되는데, 나는 한때 나와 잘못된 인연으로 그 개가 다른 집으로 갈 때까지 나와 잘 지내지 못했던 개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그 개를 좀 심하게 구박했었다. 내깐엔 주인의 권위를 내세운다는 것이었는데, 녀석에게는 미운털이 박혀 내내 좋은 관계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나더러 어쩌라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동반견을 훈련하는 센터가 만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었다. 또 그러기 전에 시설이나 물건을 디자인할 때도 장애인을 고려하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동반견이나 맹인안내견이 자유롭게 식당이나 공공기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엔 그 비율이 예전보다 좀 줄었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맹인 안내견을 차에 태우지 않으려는 택시기사들도 있어 애를 먹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화낼 줄 모르는 개가 있다는 것이 한켠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이 책을 보면, 영국은 동반견이 주인 따라 대학 강의실에도 들어 올 수 있다고 하는데 장애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없다면 그런 배려 정도는 비장애인들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이 책은 동반견들에 대해 소개를 하는 것으로선 좋은 책이긴 하지만 반복되는 느낌이 있어 다소 지루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동반견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우리나라 장애자 복지정책이 어떠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데 좋은 책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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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6-04-18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책 리뷰에 댓글이 하나도 없다니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글 잘쓰시는 분들이 쓰시면 으레 그려러니 하고 만성이 되어 보게 되잖아요.
오랜만에 스텔라님 리뷰에 댓글을 적으면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stella.K 2006-04-1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별로 잘 쓴 리뷰는 아니어요. 읽는데 좀 지루했거든요. 그래도 리뷰에 댓글이 없으면 좀 그런데 니르바나님이 이렇게 멋지게 달아주시니 감사할다름이죠.^^

푸하 2006-04-2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니 제가 어릴 때 키우던 '메리'가 생각나네요. 집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였거든요. "메리야!...."이렇게 부르고 놀았는데.... 참 순한 개였어요. 그리고 얼마전 '에너지대안센터'안에서 큼지막한 개를 본적이 있는데 녀석이 모르는 사람을 얼마나 잘 따르는지. 놀랄정도였어요. 제가 아는 상식으로 개는 본능적으로 자기의 영역이 있고, 그것을 침범하는 자에 대해 적대한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제가 궁금해서 어느 분에게 물어보니 그 개는 어렸을 때 부터 드나드는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그래서 영역에 대한 본능보다도 사람들의 관심에 더 많은 반응을 하는 것 같았구요. 사람의 내부엔 악의 특성과 천사의 특성이 공존하는 것 같은데, 개 또한 그럴 것 같다는 사례로서 저에게 다가왔어요. 유전자적 특성이 성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내부의 여러 가지 가능성이 외부의 여러 조건과 상호작용해서 성향(행위)이(가) 결정되는 것이 '생명체'의 가능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헉... 점점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요...ㅠㅜ 제가 문득 진화론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어져서요...)

stella.K 2006-04-2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고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