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지옥 여행기 단테의 여행기
단테 알리기에리 원작, 구스타브 도레 그림, 최승 엮음 / 정민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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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을 읽어보겠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문제의 사춘기 시절이다. 유독 청소년 시절에 고전을 많이 읽으라고 하지만 그것도 재미가 있어야 읽지. 그래서 그런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도 여기저기서 그런 말을 들으면 귓등으로는 듣는가 보다. 그러니 내가 그 어렵다던 <신곡>을 덜컥 샀겠지. 하지만 역시 고전은 귓등으로만 듣게 되는 책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사 놓고 읽지는 않게 되니 말이다. 더구나 매일 신간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런 책이 내 눈에 들어 올 리 없다. 그냥 하도 징징거리니 사 두기는 하겠다. 뭐 그런 심보가 작용하는 것 같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어느 일본인 저자가 썼다는 신곡 해설서를 샀다. 근데 이것 역시 사 두기만 하고 읽지를 않는다. 그때 난 역시 신곡과는 인연이 없는가 보다 했다. 이 해설서 조차 계속 뒤로 밀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인연이 있으려면 이렇게도 만나지는구나 싶다. 이렇게 소설로 만나니 말이다. 그런데 일고 봤더니 소설 신곡은 이번에 처음 새로 나온 건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처음 나오고 이번에 새롭게 복간된 것이다. 진작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읽기를 시도해 봤을지도 모르는데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읽게 됐으니 다행이지 뭐.

 

그런데 사람의 마음의 간사함은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이 책을 읽으려니 자존심이 좀 상하는 거다. 내가 독서를 한 세월이 얼만데 이걸 원본으로 못 읽고 소설판으로 읽는 건가? 책은 좀 고생스럽게 읽을 필요도 있는데 새삼 그동안 나의 독서가 너무 안일했던 건 아닌가. 반성도 해 본다. 더구나 이 책을 읽어보니 너무 쉽게 읽혀 그런 줄 알았다면 진작 읽어 볼 걸 그랬다 싶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난 또 이 책을 너무 만만히 보는 우를 범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처음 서사시인 신곡을 읽고 한 행, 한 행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책들을 참조하고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힘들긴 해도 그것을 이해해 갈 때마다 희열이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걸 소설로 쓰기까지 물론 원본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긴 하지만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과연 그의 작업이 얼마만한 것인지 알 것도 같다. 작업 기간도 무려 10년이 걸렸다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이런 생각도 역시 배부른 생각이다 싶다. 내가 언제부터 독서를 깊이 해 왔다고 이런 책을 소설로 읽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앞서도 얘기했지만 소설로 썼다지만 정말 유려하다. 그래서도 내가 더더욱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책장 사이사이에 보이는 그림 역시 이 책을 더욱 가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기독교 내세관의 출처가 알고 보면 다 여기서 나온 거였구나. 새삼 무릎을 탁 치겠다. 비록 정식으로 공부한 건 아니고 여기 저기 주워들은 것이긴 하지만 난 그게 신학자들이 오래도록 연구한 끝에 나온 말인 줄 알았다. 그랬더니 단테의 신곡에서 짜깁기 한 거였다니. 하긴, 이 책이 밀턴의 <실낙원>과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함께 당대 최고의 기독교 문학이고 보면 기독교 내세관이 여기서부터 나온 건 당연한 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 건, 이건 당대 로마의 역사와 윤리, 성경과 신화의 종합선물 세트다. 어쩌면 그리도 잘도 버무려 놨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게 되는 건 이 책의 윤리적 측면이다. 그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젊은 날, 어떤 교수님의 수업에서 이제 윤리는 절대 윤리가 아닌 상황 윤리로 대체되었고, 신학교에서도 기독교 윤리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고 개탄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지옥편은 신곡 중 가장 먼저 나오는 부분이고, 단테가 그의 스승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을 여행한 것을 기록한 것인데 읽는 것만으로도 제법 섬뜩하다. 또한 그림이 함께하고 있으니 그 섬뜩함은 배가되는 느낌이다. 이렇듯 거기서 만난 영혼들은 살아 있을 때 어떠한 죄를 짓고 지옥에서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가 상세히 기록되어져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상황 윤리가 득세하는 현대에 단테의 신곡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아직도 신곡은 유효한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그저 박재된 고전 중 하나로만 인식되어 지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특히 자살이나 동성애는 분명 단테의 신곡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죄라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진보적 기독교는 죄가 아니라고도 한다. 그들이 단테의 신곡을 읽는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물론 단테가 살았던 시기는 기독교가 절대 권력이었던 시대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종교 권력의 부패와 타락상이 만연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때문에 단테의 신곡도 소위 말해 먹어주기도 했다. 상황 윤리 때문에 죄를 죄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이 세대에 신곡은 어떻게 읽혀질 수 있을까? 정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작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언젠가 어느 서양의 영매가 쓴 책을 읽고 기겁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그 책은 살았을 때 어떤 죄를 졌어도 죽어서는 아무런 심판도 받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말이 좋아 영적 자유를 말하는 거지 죄를 부정하고, 따라서 천국과 지옥도 부정하면 나중엔 하나님의 존재조차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짐승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사람들의 사고를 그런 식으로 몰아간다면 그 죄를 무엇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단테는 성경에 의거해서 신곡을 썼다. 또한 당대 시성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당대 역사에 해박하기도 했다.

 

고전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과연 새로운 윤리가 가능할까? 윤리를 무시한 결과가 어떤지 우린 매일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과연 역사가 죄라고 했던 것들을 옹호하면 어떠한 세상이 될지 더 지켜봐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일견 들었다. 난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단테의 신곡 읽기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같은 고전 읽기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이런 책을 편역해준 저자에게 무한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단테의 신곡 중 이제 겨우 지옥편을 읽은 것이라 뭐가고 단정 짓기는 뭐하지만 모르긴 해도 지옥편이 세 편중 가장 리얼하고 역동적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연옥편은 어떨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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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5-04 17:52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ㅋ

cyrus 2016-05-04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레의 지옥편 삽화를 종교 책이나 어린이용 공포물에 출처 없이 사용되기도 해요. 그림만 떼어내서 소개하면 ‘이것이 바로 지옥이다. 무섭지? 그러니 죄 짓지 말고 신을 믿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요. 아무튼 지옥을 묘사한 단테의 <신곡>은 대단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stella.K 2016-05-04 17:51   좋아요 0 | URL
헉, 그렇단 말야?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된 그림인지 궁금하긴 했어.
특별히 책을 위해 제작된 그림인가 했지.
오래된 작가라면 맘대로 사용할 수 있겠네.
정말 단테의 상상력은 대단한 것 같아.

hnine 2016-05-0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야 고전을 읽는 십대...전 상상도 되지 않아요. 그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나이에 고전에 손이 가겠어요. 오히려 우리 나이쯤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고전으로 눈길이 가는것 같지 않나요? 그래도 단테의 신곡은 아직도 저에게는 저 먼 나라의 책이긴 하지만요 ㅠㅠ

stella.K 2016-05-04 18:5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진짜 나이 드니까 고전을 읽어 볼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도 이 책은 언제 한 번 읽어보세요.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거예요.^^

transient-guest 2016-05-05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은 무엇보다 나이와 시기에 따라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점이 - 물론 다른 책도 많이들 그렇지만 - 특히 이들을 계속 두고 뒤적거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만, 최소한 20대 안에는 한번 정도 다 읽어보면 좋은 것이 나이가 들면서 쌓이는 생각이나 경험 때문인지, 쉽게 한 페이지씩 넘어가지 못하고 지치기 일쑤입니다.. 님도 그렇고 다른 분들의 서재글을 보면 저는 critical reading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ㅎㅎ 읽는 그래도 쑥쑥 흡수하고 배출하는 정도...-_-

stella.K 2016-05-06 13:03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다른 책이면 모를까 고전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게
쉽지는 않죠. 더구나 신곡을...?!
이 책은 소설로 편역한 건데 저는 이걸 읽을 때야 비로소 신곡의 의미보단
단테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 것 같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단테는 역사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너무 오래된 인물이라서 그럴까요?

그리고 저의 리뷰 보시면 깐 것도 많아요.
님이 보실 땐 어떨지 몰라도...ㅋㅋ
당연히 비판적 책 읽기 해야죠.
무조건 무턱대고 좋다고 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또 감히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분명 존재하긴 하죠.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니.
까는 것도 아주 수준있게 까야하는데 그게 어려운 거겠죠.
잘못 까면 안 까느니만 못할 수도 있으니...ㅠ

yamoo 2016-05-10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테의 이 책은 3권으로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ㅎㅎ 1권을 읽고 지루해서 그냥 뒷날을 기약한다는..ㅎㅎ

stella.K 2016-05-10 18:10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책으로 읽어 보세요. 진짜 매력적이어요.
신곡도 여러 버전이 있더군요.
나중에 어떤 신부가 번역했다는 신곡을 읽어 볼까 해요.
신곡 권위자라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