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감독의 <황산벌>을 나는 하도 시시하게 봐서 과연 저 영화가 재밌을까? 반신반의 했었는데 알고 봤더니 이 영화는 희곡<이>가 사나리오 원본이 되었다고 하니 구미가 당겼다. 모름지기 영화란 시나리오가 탄탄해야 성공하는 법. 입소문이 퍼지면서 꼭 봐야할 것 같았고, 어제야 뜻을 이루었다.

동성애를 다뤘다고 했는데 그 시대에 동성애가 없을리 없고, 직접적으로 다뤘다기 보단 동성애 넘어 더 깊은 인간의 이면을 터치해줬다고 보여진다. 또한 놀이패들의 신명나면서도 가감없는 성애를 희회시키는 놀이를 보면서 어쩌면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덧칠하지 않은 원초적 놀음이 저런 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해 보았다.

등장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참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감히 놀이패들이 천민 출신으로 궁을 어찌 들어와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찌 어찌해서 궁에 들어와 왕의 눈에 띄였다는 이유만으로 호사스러움을 누리게 될 땐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겠지. 그러나  그들의 궁의 입성이 그리 좋은 것마는 아니었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오늘 신문을 보니 감우성이 분한 장생은 원래 역사엔 없는 가공의 인물이란다. 그럼에도 감우성의 연기는 발군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줬던 것 같고, 신예 공길의 이준기는 정말 중성의 묘한 느낌을 발산한다. 사람이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면 이성은 그다지 매력을 못 느낀다고 하는데, 이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그말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조연들의 맛깔스런 대사들도 일품이다. 일설에 따르면 연극<이>에서 주연급으로 나왔던 배우들이 이 영화에서 대거 조연으로 나왔다는데 그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저 사진을 올려놓긴 했지만(개인적으로 대나무를 좋아하는 까닭도 있긴 하지만) 몇몇 인상 깊었던 컷이 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멋진 씬은 맨 마지막에 공길과 장생이 외줄을 타면서 나눴던 대사들과 그 이후 반정이 일어났음에도 둘은 여전히 광대놀음을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공중에 몸을 던지는 엔딩컷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확실히 동성애 이상을 뛰어넘는 인간의 우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공길과 장생의 변치않는 우정을 우직하게 이끌어가는 영화가 참 보기가 좋다.

같이 간 후배는 이준기의 이미지에 관해 그다지 좋게는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좋아했던 남성의 이미지는 어떤가? 우리가 그토록 잊지못해하는 캔디의 테리우스나 사파이어 왕자는 다 여성적 이미지의 남성들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의 매력은 나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보아도 유난히 가지런한 의치같은 이가 눈에 거스리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저 입모양이 저 남자의 매력을 더 배가시켜줬던 건 아닌가 의심하면서...

후배는 이준기 같이 태가 고운 남자도 요즘엔 많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 배우의 아우라를 한사코 깍으려 한다. 영화를 보고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트럭에서 오뎅을 파는 젊은 총각을 보면서,"저봐. 저 총각도 태가 곱잖아." 그래도 이준기만 같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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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1-2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날 즐겁게, 행복하게 잘 보내세요.^^

피에쓰: 그래도 마준기만 같겠는가?

프레이야 2006-01-2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의 남자, 저도 참 좋더군요. 장생과 공길의 대사가 인상적이었구요^^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 전 두부 굽다가 잠시 들렀어요^^

stella.K 2006-01-2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그래도 마준기가 이준기만 같겠습니까? 님도 행복한 설날 되시길...^^
혜경님/반가워요. 와락! 부비 부비~잘 지내시죠? 님도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