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2disc)
장훈 감독, 고수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이제야 이 영화를 보았다.

전쟁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 영화에 대한 평이 워낙 좋기도 하고 관객동원에도 어느 정도 성공한 영화라 한번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말했다시피 전쟁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처음엔 몰입이 그다지 잘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특히 엔딩 부분에서 휴전협정이 정식으로 발효되기까지 최후 12시간 동안을 남과 북이 싸워야 할 때 싸우기 전 안개속에서 '전선야곡'을 북한군이 먼저 선창하고 남한군이 따라 부를 때 신파란 생각을 했었다. 나도 별 수 없는 관객이고, 시청자라 어떤 프로고 어떤 영화든 조금이라도 구라다 싶으면 (거의)가차없이 꺼버리거나 다른 채널로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엔딩 부분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지니 이제까지 본 것이 아까워 결국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또 그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귓가에 맴돌면서 사실은 그것을 위해 앞부분에서 그처럼 많은 신과 시퀀스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그 장면에서 그처럼 그 노래를 부르게 만들었을까?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건 휴전협정이 조인된 마당에 12시간을 버텨서 또 싸워야 한다는 건 남이든 북이든 다 싫어을 것이다. 이미도 많은 싸움을 했고 그처럼 많은 피를 흘리게 만들고,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지 않았는가. 전쟁에서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은 그런 것으로 대별될 수 있다.

그러기에 남한의 누구는 만일 안개가 이대로 걷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싸우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헛된 희망조차 긍정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안개가 12시간 동안 걷히지 않는다는 건 모세의 기적과 같은 얘기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몇만 분의 일의 기적에도 들지 않는. 그 기적을 기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대로 안타까워 차라리 전선야곡을 함께 부른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이니 그렇게 12시간을 버티면 안되는 걸까 하는 생각조차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게 남한이 북한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면 미군이 하늘에서 공중전을 벌여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전쟁에 지치기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만찬가지다. 사실 말이 에록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것이지 알고보면 휴전이 조인된 마당에 12시간 동안 싸워야 한다는 것은 그동안 전쟁에 쓰였던 개들(그들은 개였다)을 마지막엔 쓸어버리는 토사구팽을 위한 명분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잘 쓸 때는 언제고 이제와 쓸어버리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아마도 잘 썼던 전쟁의 개들이 훗날 전쟁을 진술할 때 전쟁을 일으켰던 당사자들에 대해 혹시라도 나쁘게 진술할까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전쟁에 정당한 논리는 있을까? 고지 탈환이란 명분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전이 조인된 마당에 그 싸움은 정당하고 명분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럴 때 자, 지금부터 우린 슬프고도 헛된 전쟁을 해야 해. 너희들의 죽어가는 영혼에 명복 있으라. 뭐 이런 의도로 그들은 합창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찌보면 그들은 토사구팽 당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그들은 간절히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품안에 안아보고 싶겠지만 그들의 열의 아홉. 아니 열의 열은 전쟁이 줬던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온전히 적만을 죽이지 않았다. 살기위해 아군도 죽었다. 그 죄책감은 평생을 따라 다니며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적군만을 죽였어도 그것은 마찬가지일텐데 휴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그들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처럼 전쟁은 인간을 말살시킨다. 그러므로 전쟁에 몸을 담근다는 건 타인의 피에 몸을 담근다는 것과 같은 것이라 처음부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몰핀에 중독이 돼 마지막에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그 고통을 알지도 못하고 미친 듯이 총을 갈겨대는 이제훈의 연기가 보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맑은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는 마지막 12시간의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랬을 때 자신이 속한 부대를 속칭 '악어부대'라고 했는데 그뜻을 설명하며 군인들에게 안그래도 없는 사기를 부추겨 줘야만 한다. 그건 우리가 익숙히 보아온 군대내 계급장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목소리는 떨리고 쪼그라들었다. 없는 목소리를 내려니 도대체 우리의 이제훈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연기를 안하고 있는 것인지 잠시 헷갈렸다.    

 

사실 이 영화는 작품성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분히 편향적인 것이 있어 보인다. 유일하게 북의 여군 하나가 남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정말 그럴까? 이념으로 가득하고 탈환의 목적과 사기만으로 충만한 남자들도 여자 하나가 알짱대기만 해도 쉽게 죽일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그녀는 저리도 여우같이 잘 죽이는데. 그럼 뭐란 말인가? 남한을 버티게 하는데 악재로 작용하는 게 북한의 에미나이 동무(김옥분 분)란 말인가? 이것에 동조할 여성 관객은 얼마나 될까? 물론 감독은 이를통해 남성은 전쟁광이기 전에 뜨거운 심장을 가진 남자임을 표현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그것도 받아들이기 나름 아닌가. 만일 그녀를 북한군이 아닌 남한군으로 설정했다면 우린 훨씬 더 많이 멋있다고 박수치며 봤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감독은 북한의 유일한 여성대원으로 설정했을까? 다소 평향된 시각이 있어 보인다.

그에 반해 영화의 주인공 김수혁 역시 의문의 여지는 있다. 끝까지 죽지 않는다. 그리고 끝까지 정의로운 척한다. 물론 극의 중심을 잡기위한 장치로도 해석이 되는데 그래도 남한군은 의롭고 북한군은 악하다는 옛날 반공 영화의 잔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 영화의 리뷰를 쓰고 싶게 만드는 것은 그 빌어먹을 '전선야곡'의 멜로디와 남한과 북한이 서로 물품을 주고 받으며 정 많은 교신을 하고 있다는 그것과, 역시 전쟁은 소모전이며 어느 나라든 전쟁의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선량한 사람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만든 장본인들 그들은 정말 자신의 지난 과오를 자신들의 후손 몇 세대를 통해서라도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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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4-2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지전> 안봤어요. 내용은 아는데. 동생이 읊어서 다 아니까 안보게 됐어요. 저는 보고 싶은데 시간 없을 때나 확 땡기지 않을 때 줄거리 읊어보라고 해요ㅋㅋㅋ 동생이 영화를 엄청 보거든요. 고전은 안 보는 거 같고, 얘는 취향이 확실해요. 전쟁/스릴러/액션!!!

스릴러만 저랑 겹쳐가지고. 근데 이 리뷰에 이런 댓글이면 안되는데..( '')

stella.K 2012-04-23 20:07   좋아요 0 | URL
뭐 어때서요.
그 동생 남자신가 봅니다. 남자들 그런 영화 좋아하잖아요.
내 말이 맞죠?ㅋㅋ

이진 2012-04-2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아이리시스님 따라서 리뷰에 안 맞는 댓글쓰겠어요.
<고지전> 저도 안봤는데, 수학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틀어줬음에도 안 봤어요.
고수가 나온다길래 기대가 되었는데 전쟁/스릴러/액션은 가히 혐오하는터라.

이제훈은 참 연기도 잘하고, 잘생겼고, 훈훈하고.. 참

비로그인 2012-04-23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우리는 책도 잘 읽고, 곧잘 쓰고, 또 우리도 훈훈하잖아요! :)

stella.K 2012-04-23 20:08   좋아요 0 | URL
네. 두 분 참 훈훈해요.ㅎㅎ
근데 이제훈 뭔가 마성이 있긴해.
패션왕 그래서 보고 있다능.ㅋㅋㅋ

파란놀 2012-04-2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을 다루면, 영화도 만화도 모두 재미없어요. 이런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일은, 사람들을 자꾸 전쟁에 길들게 하면서, '개'나 '톱니바퀴'나 '부속품'으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지구별 전쟁 가운데 '아군-적군'은 있을 수 없겠지요. 적군으로 삼는 이는 모두 내 벗이거나 친척이거나 이웃이니까요...

stella.K 2012-04-23 15:49   좋아요 0 | URL
지네들도 싸우다 나중엔 왜 싸우는지 모르고 싸우잖아요.
그런데 된장님 마지막 말씀이 참...!^^

비로그인 2012-04-2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에 안 맞는 댓글 하나 추가요! (그래도 잘 엮어볼게요 ㅋㅋ)

된장님 댓글처럼, 전쟁영화를 왜 만드나 모르겠어요. 문득 그런 의문이 들어요. 왜 전쟁을 자꾸 다시 보여주려고 할까? 그러면 당위적인 대답이 떠올라요. 그건 말이지, 잊으면 안 되기 때문이야. 기억해두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거지. 그러면 고개를 끄덕이는데 완벽히 수긍은 안 가요. 굳이 또 보여줄 필요가 있는 걸까? 안 보고 기억할 수는 없는 건가? 다시 봐도 전쟁은 언제라도 이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무튼 글 잘 읽고 가요~ 스텔라님! :)

stella.K 2012-04-23 15:55   좋아요 0 | URL
그건 일견 맞는 말이죠. 인간의 참혹함. 비열함.
전장의 치열함과 스산함. 영화가 아니면 어디서 보겠어요?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 지구 어디에선가는
총성이 멎지 않는다는 거죠. 한마디로 비극이어요. 비극!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