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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새해 첫 리뷰는 나의 완소작가 박범신의 고산자가 되고 말았다.
말았다.니. 그도 그럴 것이, 이책은 작년 마지막 주에 읽었는데 그러니만큼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한해를 넘겨버리고 새해에 읽은 첫책이 되고 말았다.
글쎄, 박범신 작가가 나의 완소작가라고 해도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긴 하다. 언젠가 전작을 독파하고 싶은 욕심나는 작가이긴한데(문제는 생각만 있지 의욕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읽어 본 중에 이책은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도 작년 대미를 장식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박범신 작가라면 적어도 나에겐 '뜨거운 문장'의 작가라고 생각했다. 이 뜨겁다는 것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삶을 문장으로 태울 줄 아는 작가고, 에로틱한 문체를 구사할 줄 안다는 점에서 그런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그런 작가의 면면이 이책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밋밋하다고 느끼는 건 뭐 때문인지 모르겠다. 특별히 클라이막스라고 보여지는 부분도 없는 것 같고, 주인공의 투지가 강하게 드러나지도 않는 것 같다. 그저 잘못 만든 지도 때문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고산자 김정호의 관조하는 듯한 자세가 이 소설을 강하게 이끌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맨끝에 작가의 질문이 좋았다.
고산자 김정호는 누굴까? 천주학쟁이로 핍박을 받거나, 문둥병자는 아닐까?
도대체 왜 그는 대동여지도에 독도를 그려넣지 않아 일본인의 말거리를 만들었을까?중국과 아라사가 각각 제 것이라고 우기는 압록강 하구의 녹둔도나 두만강 하구의 신도는 대동여지도에 당당히 그려넣으면서, 왜 간도 일대는 모두 빠뜨렸을까? 대마도는 오키나와는? 대체 그는 어떻게 백수십 년 전에 그처럼 오차가 거의 없는 과학적인 축척지도를 그렸을까, 대동여지도 목판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까. (작가의 말 중에서) 이런 모든 질문이 작가로 하여금 김정호를 형상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지구는 편편하였을 것이라는 사람의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어 놓았던 것은 갈릴레오였다.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 지도는 토끼 모양을 하고 있다거나 호랑이가 꿈틀거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어쨌거나 그런 모양을 발견하기 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수차례 올랐다고 하는데 거기 올라서면 정말 우리나라가 그런 모양인 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내 나라나 남의 나라나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신기하다. 어떻게 그렸을까?
작가는 김정호를 고독한 자로 그렸다. 좀 더 탐험가적 인물로 지도를 그리기까지의 과정 보다 존재의 본질을 찾고 천하를 주유하는 인물로 그린 것이 어떻게도 주인공을 살려내지 못하는 범작이 되고 만 것은 아닌지.
하긴, 아무리 기고, 뛰고, 날으는 작가라도 거기엔 반드시 범작은 있게 마련이다. 아쉽게도 이 작품이 그런 작품이 되고만 것은 아닌가 한다. 또 모를 일이다. 세월 흘러 다시 읽는다면 또 다른 읽는 맛을 느끼게 될런지.
나는 이런 식으로 나의 완소 작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