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스마엘
다니엘 퀸 지음, 박희원 옮김 / 평사리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드라마 대세는 아무래도 <뿌리 깊은 나무>에 있지 않나 싶다.
탄탄한 스토리 구성, 좋은 배우들, 화려한 액션.  그런 것들이 어우려져서 볼거리가 풍부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은 그런 부수적인 것에 있지 않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정신과 그것이 탄생하기까지의 쉽지 않은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나서 감동을 더하는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세종대왕의 정신 때문이다. 오천 자나 되는 한문은 사대부와 있는 자들의 전위물이었다. 평범한 백성들은 동틀  때 일어나 하루종일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계속 일만하다가 하루를 보낸다. 그들은 일만 하느라 글을 깨칠 시간이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양반들은 평민들이 언문을 깨치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깨우치게 되면 자기들의 세계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세종대왕은 평민도 글을 깨우치고 자기네들이 사는 세상을 함께 인식해 주길 바랐고, 그들을 위한 세상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세종대왕님의 한글은, 사회적 신분의 격차는 많이 줄이는 개기를 가져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내재해 있는 근본적인 의식의 벽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지금은 자본주의란 이름으로 그 힘을 더 크게 키워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빈부격차를 지금도 계속 낫고 있다.
지금도 지구상의 반은 굶주림에 허덕이든가, 영양실조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것이 그들 나라의 경제적 구조의 문제와 기후 조건의 문제라고 떠넘기고 있지만, 거기엔 막강한 글로벌한 자본주의가 있는 것을 안다면, 다시 말해 그들의 탐욕 때문인 것을 안다면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것은 우리가 결코 용납하거나 두고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래서 또 그것을 일깨워주는 저작물들이 속속들이 등장을 하고 있다.
그것은 확실히 반가운 일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성인들에게만 국한되어 버린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디가서 그런 책을 접해 볼 수가 있겠는가.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주도해야할 사람들은 누구보다 어린 아이와 청소년들이다. 그들이 그만한 때에 그만한 깨우침을 받지 못하면 변화를 주도하기는커녕 변화에 순응하는 인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이 나와 아이들에게 읽힌다면 그것은 뜻있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고릴라 이스마엘>이란 책의 후속작으로, 나는 아쉽게도 <고릴라 이스마엘>을 읽지 못하였지만(그렇지 않아도 그 책은 품절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릴라 이스마엘의 시각에서 풀어 쓴 책이다. 고릴라라는 동물을 등장시킨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무엇보다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른 시각, 다른 기준으로 이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길 원하는 저자의 의도가 다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태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길 원했던 것 같다.  

사실 다른 종(種)은 몰라도 인간이란 종만큼 자연과 부조화하고, 자연을 이겨 먹으려 하는 종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엔 세상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기심과 오만함이 항상 서려 있다. 이것을 그대로 방치해 뒀다가는 인류와 지구 전체의 종말을 지켜 보는 건 시간문제다.
모르긴 해도 인류라는 종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연과 어울려 살았을거라고 본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계기로 인간은 지구를 파괴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가 급속도로 병들기 시작한 건 최근 100년간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지구에 인류가 산지가 얼마나 됐는데 이 100년 동안 지구를 이렇게까지 병들 수 있게 만들었을까? 정말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 과연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이 지구를 병들기 이전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그래도 그 노력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볼 때 '희망'(아니 그건 차라리 소망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갈 아무런 근거는 없지 않는가.  

몇년 전부터 블루 오션이란 단어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가치. 다른 판단. 다른 기준. 지금 이대로의 체계와 가치로서는 이 세상을 살릴 방도가 없기에. 그래서 인류는 진화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진화하되 제대로 진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를 깨우칠 필요가 있다.
세종대왕이 참 위대하고 좋은 일을 했다. 우리 글이 있었기에 이 책의 우리말 번역판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읽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 손해다. 읽어라. 그리고 깨우쳐라.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단지 이런 건 있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면서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장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건, 저자가 이것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사려 깊은 사색이 느껴진다. 하긴, 청소년 책이라고 쉽게만 읽혀지는 책을 보라는 법있나? 그냥 오도독 생쌀 씹겠다는 각오로 읽으면 못 읽을 것도 없다. 그만큼 성인에게도 좋다는 말이다. 생쌀도 씹으면 그 나름의 맛있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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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1-2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책이라고 해놓고 어려운책 무진장 많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도 선생님께서 청소년이 읽어야한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하아, 첫 장읽고 바로 책 덮었지 말입니다 ㅋㅋㅋ
또 고전문학같은건 ㅠㅠ

stella.K 2011-11-27 20:2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정말 그 책 쉽게 볼 책은 아닌데...
그렇다면 진짜 청소년이 볼만한 책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번역이 더 쉬워져야 하는 걸까?
이 책도 청소년에게 쉽게 권할만한 책은 아닌듯 한데
그래도 미국내에선 무슨무슨 청소년문학상을 탓단 말이죠.ㅠ